좋아했던 형 이야기 Vol.[6]

한국조폐공사 작성일 21.09.28 12: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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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4시간을 달려 강남 고터에 도착하니 이미 형은 도착해서 터미널 주변을 뱅뱅 돌고있었다. 

 

덕훈 : 형 저 도착했어요! 지금 지하철역 주변이에요

 

형 : 어 그래. 형이 그쪽으로갈게 도로변으로 나와있어

 

덕훈 : 넵. 아 저기 형 차 보여요

 

나는 깜빡이를 켜고 내 옆쪽으로 다가오는 S클래스의 앞문을 얼른 열었다. 근 2년만이지만 거의

 

달라지지 않은 얼굴로 형이 반갑게 악수를 청해왔다

 

형 : 덕훈이 살 많이 빠졌네~ 많이 힘들었냐 ㅎㅎ?

 

덕훈 : 형은 거의 안변했네요. 이제 낼모레면 서른인데 옛날이랑 똑같아요 ㅋㅋㅋ

 

형 : 형은 항상 젊게 살잖냐.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 배 많이 고프지? 이제 곧 저녁이니까 조금만 참아

 

형 집에 차 갖다놓고 맛있는거 먹으러가자

 

덕훈 : 네 형. 괜찮아요. 휴게소에서 폭풍흡입좀 했어요 ㅋㅋㅋㅋ

 

형 : 아 그러냐. 그러면 형 집에 짐 놔두고 좀 쉬다가 한잔하러 가자. 오늘 너 온다고 해서 다른 후배들 좀 불렀어

 

맘에드는 친구 있으면 잘 해봐라. 형이 밀어줄테니까 ㅎㅎㅎㅎ

 

나는 형 이외에 다른 사람들도 온다는 사실에 살짝 당황했다. 종종 외박 나와서 헌팅을 하거나 술자리를 갖긴 했지만

 

아직 여자들에 대해 면역이 부족했고, 특히나 아는사람이 끼인 상황에서는 체면을 차려야 하니 기쁨보다는 부담이

 

들었기 때문이였다. 

 

덕훈 : 오늘 형이랑 둘이서 마실 줄 알았는데 서프라이즈네요 ㅎㅎ. 저 때문에 괜히 무리하신거 아니에요? 이거 부담되는

 

데요 ㅋㅋㅋㅋ

 

형 : 뭐 어차피 나중에라도 봐야할 친구들이라서 이왕 볼거면 너랑도 인사하면 좋겠다싶어 오늘 연락했지. 다 괜찮은 친구

 

들이니까 걱정하지 말구~. 형 체면 봐서라도 실수하면 안되는거 알지?

 

덕훈 : 당연하죠. 제가 설마 옷이라도 벗겠어요 ㅎㅎㅎㅎ?

 

형 : 우리 덕훈이가 여자들 많이 못만나봐서 괜히 껄떡댈까봐 걱정이긴 하지~ ㅎㅎ

 

덕훈 : 껄떡댈정도로 제가 용기있었으면 진작 여자친구 사귀고도 남았겠죠?

 

형 : 그러게. 우리 덕훈이 여자친구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없어서 형이 걱정했으니 이런 자리 만들었겠지?

 

덕훈 : 역시 형밖에 없어요 ㅋㅋㅋㅋ

 

형 : 그러니까 형 얼굴에 먹칠하면 안된다~

 

지난 대화로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형이 나름대로 신경써 준 것 같아 형에게 고마움이 들었고, 경험 삼아

 

이런 자리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이외로 긴장은 쉽게 풀렸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도 잘 될 확률은

 

극히 낮을테니 괜히 김칫국 드링킹 하지말고 분위기나 맞추면서 재밌게 노는게 오늘의 미션이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형의 집에 도착했고 나는 말로만 듣던 형의 집을 처음 방문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어디가 어딘지 모를 정도로 쓸데없이(?) 넓은 거실에 짐을 대충 놔두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형 : 형이 요앞 우체국에 잠시 갔다와야 되거든, 너 다리 아프면 집에서 좀 쉬고 있던가. 금방 올테니 기다리고 있어

 

덕훈 : 아니에요. 구경삼아 같이 나가죠 뭐.

 

괜히 남의집에 혼자있는것도 예의는 아니다 싶어 형과 함께 우체국에 들렀다 바로 강남으로 출발했다. 주말에 연말이라

 

사람들이 많아 시간이 조금 지체돼서 간단히 주전부리도 못하고 서둘러야 했다.

 

군인일 때 줄창나게 서울을 들락거렸을 때와는 달리 민간인이 되어 방문한 강남의 분위기는 지방 소시민인 나에게 적잖은 문화 충격으로 다가왔다

 

연말이 다가오는 강남의 거리는 물샐 틈 없이 북적거린다는 말을 증명하듯 발 디딜 틈도 없는 인파에, 소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패션 스타일의 사람들을 보며 제대를 했다는 사실이 다시금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형에게 전화가 왔고 모 주점에서 자리잡고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과 함께 형과 나는

 

그 주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미 테이블에 앉아 세팅을 하고 있는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세명의 여성들은 형이 오자 자리를 만들어 주었고

 

나는 삐질거리며 인사를 하고 형 옆에 앉았다. 저녁겸 반주를 한잔 하면서 대충 자기소개가 끝났고 나는 눈치를 보며

 

분위기를 살폈다. 역시나 형의 후배들이라 그런지, 아니면 갓 제대를 한 민간인의 눈이라서 그런지 세 여자들 모두

 

포스가 장난이 아니였고 특히 맨 안쪽에 앉은 여자분(C)은 가수 지망생이라고 들었는데 일반인인 내가 보기에도 범접할 수

 

없는 오라가 풍기는 것 같기도 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눈빛이나 이목구비가 아직 기억이 나는게(한예슬 

 

약간 하위호환 정도의) 최소 홍대나 강남 라이브 카페에서 얼굴마담을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부위기였다.

 

형 : 여기는 이번에 갓 제대한 내 제일 친한 학교 후배야.~ 나 혼자 오면 분위기 칙칙할 것 같아서 젊은 피 섭외좀 했어~

 

A : 아 그래요? 난 오빠 동생인줄~안녕하세요! 제대했으면 축하주로 한잔 받으셔야죠 ㅋㅋㅋ

 

B : 동생이라 그랬죠? 약간 정찬우 닮은것 같은데? 아. 김재우 닮은 것 같아요. 맞네 김재우랑 똑같이 생겼네~

 

형 : 야. 처음만났는데 왜 그러냐~ 얘가 할줄 아는게 많아서 얼마나 인기 많은데~. 악기도 잘 다루구.

 

가장 포스 쩔었던 C는 웃으면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초면에 미친소를 닮았다는 말에 조금 충격을 받은 나는

 

형과 다른 여자들이 주고받는 말이 귀로 잘 들어오진 않았고, 중간에 형이 나를 띄워주려 몇 마디를 던진 것 같았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뭐 어차피 좋은 경험하려 나온 자리인데, 체면 차리지 말자 생각하고 그 이후부터는 분위기를 띄우려고 최대한 노력했고

 

군대에서 배웠던 시간죽이기용 트래시 토크나 하면서 그들(?)의 직속 장난감이 되어 재롱이나 부리고 술자리를 마무리했다. 

 

간혹가다 C가 웃음을 짓거나 몇가지 이야기를 할 때 받아주면서 C의 분위기를 살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C는 그 형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았다. A와B하고도 거의 대답하지 않고 형과만 주로 이야기를 했는데 그 때 보았던 C의 눈빛은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눈빛이였던것 같았다. 물론 내가 알 정도면 형도 짐작하고 있겠지만 크게 내색하지 

 

않고 어느 정도 선을 지켰었다. 그리고 나는 이유도 없고, 알 수도 없는 패배감에 또한번 좌절감을 느꼈었다.

 

같은 자리에서 수다로만 두시간 정도를 떠들었던 그 자리는 C의 사정때문에 2차로 이어지지는 않고 그 자리에서

 

헤어졌고, 나와 형은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며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 : 오랜만에 여자들이랑 술자리하니까 괜찮았냐? 마음에 드는 애들은 없었어? 다들 누나들이라 좀 부담됐지?

 

덕훈 : 아녜요 형. 덕분에 좋은경험 했는걸요 뭘. C누나가 정말 예뻐서 눈호강도 잘했어요 ㅋㅋㅋ

 

형 : 그래 니가 나올때 C한테 목도리 챙겨주는거보고 그런가보다 했었어. 다음에 또 기회되면 이런자리 만들어 줄게

 

덕훈 : 어휴 저야 고맙죠. 어쨌든 진짜 덕분에 비싼 안주도 먹고 전 만족합니다 ㅎㅎㅎ

 

형 : 덕훈이가 좋았으면 다행이지. 사실 형도 조금 피곤해서 2차는 안가려고 했었거든. 너네들 좋았으면 붙여주려고

 

했는데 아쉽긴 하네.

 

덕훈 : 아녜요. 이런자리 만들어준건만 해도 고맙죠 ㅎㅎ. 좋은경험 했어요

 

아무리 떠먹여 주는 사람이 잘 먹여줘도 받아먹는놈이 입을 못열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나름 외박이나 휴가때

 

많은 경험을 쌓았다곤 해도 실전(?)에 들어가니 말 헛나오는건 잘 고쳐지지 않았다. 경험만이 해결해 주겠지

 

 

형 : 이제 복학하면 학고받지 말고 열심히 하구.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즐겁게 학교생활 보내. 진짜 시간 금방간다

 

덕훈 : 네 형. 이제 형도 없으니 저 스스로 잘해봐야죠. 

 

형 : 진로는 생각해 봤어? 생명과학쪽이면 연구원도 괜찮고, 제약도 괜찮은데 내가 알기론 지금부터 미리미리

 

스펙 쌓아놓아야 나중에 편하다고 들었거든. 

 

덕훈 : 사실 조금 생각해보긴 했는데 아직 정하진 못했구요. 연구원도 생각해 봤는데, 저랑은 좀 안 맞는것 같고…

 

형 따라서 의대 준비해 볼 생각도 했구요… 뭐 고민이 많죠

 

사실 술김에 대충 이야기를 했던 것 뿐인데 형은 사뭇 진지하게 내 말을 받아쳤다.

 

형 : 하긴. 요즘에 그쪽으로 자리도 안나고 취직도 힘들긴 하지. 그래도 만약에 형 따라서 의대 준비하려면 멘탈

 

단단히 잡고 해야 될거야. 내가 좋은 선례가 됐으면 좋겠지만 형은 영어점수 때문에 정말 운이 좋았던 케이스고

 

이제부터는 그렇지 않을거거든, 니가 졸업하는 시점이면 더욱더 그렇겠지. 이제 토익 안보고 텝스만 보는거 알지?

 

덕훈 : 아 정말요? X 됐네요 ㅋㅋㅋㅋㅋ.

 

형 : 형은 사실 덕훈이가 형이랑 같은 길로 오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형이 무책임하게 이렇게 말만하면 나중에 정말

 

욕먹을수도 있을 것 같아서 진심으로 말해주는 거야. 형 생각에 덕훈이가 정말 착하고 성실하고 좋은애인건 알지만

 

공부쪽에서 보면 집중력이 많이 부족하고 끈기도 없는건 사실이야. 형이 너랑 생활해봐서 생활패턴을 잘 알잖아.

 

다른 공부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이쪽 공부는 공부량도 많지만 단기 집중력이 정말 중요하거든, 이해력도 당연히

 

중요하구. 덕훈이가 머리는 좋으니까 잘 해갈 수 있겠지만 현실적인 부분에서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 될거야. 

 

비단 이런 공부뿐만이 아니라 나중에 뭘 하더라도 끈기는 기를 필요가 있어. 덕훈이는 끈기가 많이 부족해

 

형이 합격했다고 훈계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너도 같이 의사하면서 좋은 일 많이 하면 서로 얼마나 

 

좋지않겠어?

 

덕훈 : 네… 그렇죠…

 

사실 형의 말은 조금도 틀린 점이 없었다. 끈기가 얼마나 부족했으면 전공도 아닌 교양공부도 제대로 안해서

 

낙제점 천지이겠는가. 형의 말에 화가 나는게 아니라 부끄러워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괜히 아무말이나 꺼냈다가

 

치부가 다 까발려져서 2병 가까이 마셨던 술이 단번에 깨는것 같았다.

 

형 : 정말 이길로 가고자하고 싶은 의지가 생기면 형이 어떻게해서든 열심히 도와줄게. 덕훈이는 마음만 먹으면

 

잘 할 수 있을거야. 형이 이때까지 공부했던 자료랑 공부 계획서같은거 전부 팔려고 했는데 너 줄테니까 필요한 것만

 

갖다 써. 그리고 학기중에 형이 어떤 강의 듣고 어떻게 사전준비 하는지도 알려줄테니 매달 형한테 연락하구. 남들보다

 

미리 준비하면 좋으니까. 알겠냐?

 

덕훈 : 아 형 정말 고마워요..ㅜ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그냔 해본소리라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아무 관계도 없는 남을 이렇게 챙겨준다는 사실이

 

너무 고마웠고, 그 때 나는 정말 형을 따라 의대에 한번 도전해보기로 마음을 잡았다.

 

형의 집에 도착한 후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다가 나는 금방 잠이 들었고, 다음날 아침에 형이 이때까지 공부했던

 

자료들을 대형 캐리어에 하나씩 정리한다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나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형은 책값만 합쳐도 백만원은 훌쩍 넘길 것 같은 교과서와 문제집 자료와 형이 정리했던 노트등을 전부 캐리어에 넣고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형 : 캐리어는 형이 이제 안써도 되는거니까 너 가지고, 정리노트는 형이 정말 열심히 정리한 거라

 

나중에 돌려줘야 된다. 알겠냐? 다른 자료도 괜히 보기싫다고 중고사이트에 올려서 팔아먹지 말구.

 

형은 웃으면서 캐리어 손잡이를 나에게 넘겨줬고 나는 묵묵히 손잡이를 받아들고 형에게 감사를 표했다. 정말 감사해서

 

몸둘바를 몰랐다라는 말이 이런 의미였으리라. 이정도까지 챙겨줄 줄 몰랐던 나는 앞으로 정말 미친듯이 공부해서

 

보란듯이 형에게 합격장을 내밀고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엄청나게 많아진 짐덩이를 택배로 부치고 다시 집으로 내려오는 길은 가벼우면서도 부담스러운 그런 길이였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휴가기간. 제대로 준비해서 여태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나 자신에게 스스로 다짐했고,

 

학교공부도 열심히 하는 동시에 스펙을 쌓기 위한 인생 계획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난 변할 것이고, 내가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제대와 동시에, 나는 다시 태어나겠다!

 

 

 

 

 

 

 

 

 

 

 

 

 

 

 

 

 

 

 

 

 

 

 

 

 

 

 

 

 

 

 

 

 

 

 

 

 

 

 

 

 

 

 

 

 

 

 

 

 

 

 

 

 

 

 

 

 

 

하지만 인간은 역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동물이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였다.

 

복학과 동시에 내 계획은 슈어사이드 스쿼드 6인(가제) 결성과 동시에 달나라로 날아가 버렸고, 나는 남은 2,3,4학년을

 

최저학점만 받는 동시에, 학교에서 미친짓만을 골라서 하는 정신병자 6인중 한명으로 낙인 찍혀 내 인생 최대의 스펙타클한 드라마를 찍으며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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