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떠난다 (上)

한국조폐공사 작성일 23.04.14 13: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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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잠시 피시방에 들러 오빠워치를 하는 도중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왔다

 

휴대폰 액정에 뜨는 루시퍼♡ 라는 글자… 아 x벌 승급전인데……

 

안받으면 피시방 허락시간이 삭감당하겠지…

 

헤드폰 볼륨을 최소화 시켜놓고 귀와 헤드폰 사이에 휴대폰을 끼우고 전화를 받았다

 

“응 예쁜이 무슨일이야? 아직 1시간 남았는데?"

 

“나 할말이 있어, 시간 늦지말고 바로 들어와, 그리고 컴퓨터는 집에서 좀 해"

 

우리집 보물1호 세나짱이 내 보물 2호 데스크톱에 쑥쑥 자라라고 물 부어준게 불과 몇주 전이다 이아줌마야… 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알았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래… 오늘은 그랜드 마스터도 달았으니 통닭 사들고 집에 일찍 들어가야지. 

 

통닭을 사랑하는 내 보물 1호가 보물 2호를 질투하여 독살하긴 했지만 어쩌겠나, 2호보다는 1호가 더 소중한걸

 

조금 일찍 들어간 집의 풍경은 항상 가관이다

 

큰맘먹고 산 로지텍 마우스는 USB단자가 너덜너덜해진 채 보물 1호의 손에 휘둘리며 강제 쥐불놀이를 당하고 있었고

 

내방 마룻바닥은 정체모를 싸인펜에 의해 외계인도 못알아볼 암호들이 괴발개발 온 천지에 도배가 되어 있었다.

 

우리 보물1호 세나짱이 외계에서 또 지령을 받았나보다, 20년 후엔 나사에 취직할 수 있을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기분이 참 좋아진다.

 

거실에는 와이프가 나사 유망주인 세나짱을 보다 지쳤는지 마루바닥에 누워 퀭한 눈으로 눈윙크를 보낸다.

 

웬만한 남자애기보다 활동량이 2배는 많은 우량아 세나짱은 오늘도 자고 있는 엄마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엄마 대머리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나보다. 개도 안키우는 우리집 마루바닥에 나뒹구는 털은

 

와이프 머리카락밖에 없으니 말이다.

 

와이프 쪽으로 다가가니 와이프는 지친 몸을 일으키며 밥을 먹자고 보챈다

 

만삭 전까지는 항상 내가 원하는 반찬이 Ready made였으나 보물 1호가 태어난 이후로는 주말에나 겨우 구경할 수 있다

 

슬프지만 머리털 숭숭빠진 채 달팽이처럼 마루를 기어다니며 집안을 정리하는 와이프에게 크림치즈 리조또를 해달라는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배탈의 민족 앱으로 애기와 엄마가 둘 다 좋아하는 보쌈을 시켰다. 

 

내가 사온 통닭은 야식 안주로나 해야지

 

 

대충 집안 정리를 하고 보물 1호를 세차한 후 옥수수 미싱까지 끝내니 벌써 밤 11시다. 

 

안 자겠다고 난리치는 보물 1호를 들어 침대에 눕히니 분노의 발차기가 내 얼굴을 가격한다

 

허허 그놈 발 각도가 론다 로우지 하이킥도 울고 가겠구나, 예체능 꿈나무라 생각하니 맞아도 아프지 않은것 같다

 

배터리 0%가 되기 전까지 쉴 새 없이 입과 몸을 움직이는 보물1호지만 0%가 되는 순간 기절하여 다음날 8시 까지는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을 자니 일단은 안심이다.

 

주방에서 설거지와 빨래를 마친 와이프도 거실에 나와 남은 장난감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미리 사둔 통닭 세팅을 마친 후 와이프를 부르니 좀비같은 움직임으로 의자에 앉았다.

 

“오늘 뭐 때문에 빨리 오라고 한거야?”

 

와이프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나에게 뭔가 결심을 했다는 듯 핸드폰을 보여주며 말했다

 

“나 미국갈거야, 오늘 미국 미행기 티켓 봤는데 엄청 싸게 나왔더라고!”

 

미국 왕복 1인 240 초특가라는 대한항공 어플을 들이미는 와이프의 눈에는 방금 전까지 볼 수 없었던 비장함과 기대감이

 

서려있었다

 

오늘도 어떤 망언으로 나를 즐겁게 해줄까 기대했던 나는 뚫린 입이라고 막 지껄이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으나

 

결과가 어떻게 될 지 뻔하므로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최대한 흥분을 가라앉힌 나는 와이프의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지금 가고싶다고 한곳이 내가 아는 그 미국 말하는건 아니지? 미역국을 말하고 싶었는데 말이 잘못 나온거지?"

 

“헛소리 하지말고 들어봐바. 지금 티켓값이 1인 240만원인데 세나는 어리니까 70% 할인 해주거든! 그러면 500만원도 안들어! 달러값 더 비싸지기 전에 얼른 갔다와야 해.

 

우리 세나도 어릴 때 견문 넓혀 놓으면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질거고, 인생의 밑거름이 된다니까!"

 

고작 5살밖에 안된 애기 견문이 넓어지면 얼마나 넓어지겠냐… 그리고 500만원이 누구집 댕댕이 이름도 아니고

 

니가 밖에 나가서 한달에 500만원만 벌어오면 내가 너 평생 손에 물 안묻히고 구두라도 햝으라면 햝는다 이 악마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돌아오는 말은 뻔할테니 이번에도 속으로 삼키면서 침착하게 와이프를 설득했다

 

"예쁜아… 아직 세나 비행기 장기간 태우는 것도 무리고, 비행기 값은 그렇다 치더라도 생활비나 여러 경비 포함하면

 

너 갖다 팔아도 가기 힘들어… 제발 헛소리좀 그만해…"

 

하지만 이미 자기 말에 자기가 흥분해 버린 와이프의 귀에는 내가 하는 말 따위는 전혀 들어오지도 않는것 같았다.

 

그 후에 이어진 말은 황당하지만 자기 나름대로 짱구를 굴린다고 머리를 쥐어짜며 낸 결론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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