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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지카바이러스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2/02/0200000000AKR20160202007700088.HTML WHO, 지카 바이러스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 WHO는 지난 2014년 서아프리카에서 1만 1천 명 이상이 사망한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생했을 때도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었다. 그러나 이미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이후 뒤늦게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해 늑장 대응을 한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WHO가 이날 긴급위원회 회의가 끝나자마자 그 결과를 발표한 것도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 당시 빗발친 늑장 대응이란 비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찬 WHO 사무총장은 아직 브라질만 집중적으로 지카 바이러스가 나타나는데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소두증 등 심각한 결과가 나오는 상황에서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면서 즉각적인 상황 대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브라질 보건당국은 이날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의 혈액체취를 금지하고, 각 지역의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 발생 상황을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등 적극적인 지카 바이러스 차단 정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 소두증을 일으키는 지카 바이러스에 대해 현재 인수공통전염병인지의 여부는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합니다.다만 WHO에 따르면 지카 바이러스는 1947년 우간다의 rhesus m원숭이)에서 처음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인수공통전염병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Zika virus는 웨스트나일, 황열, 뎅기열, 일본뇌염바이러스와 같은 flaviviridae 입니다.Zika virus를 전파하는 모기는 Aedes aegypti, Aedes albopictus(국내서식) 같은 Aedes 로 알려져 있지만, 브라질에서는 우리나라에도 흔한 Culex 종을 통해서 전파가 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Researchers first identified Zika virus in rhesus min Uganda in 1947, during a surveillance project to find yellow fever. A few years later, in 1952, they found the first human cases in Uganda and the United Republic of Tanzania, according to the WHO." ------------------------------------------------------------------------------------- 공중보건 이슈가 또 떳습니다. 우리나라 공중보건은 뭐 알아서 조심하는 수 밖에 없는거 같습니다. 일단 발병국 확인하셔서 해외 여행 피하시고 가셔야 할 때는 몸에 뿌리는 모기 기피제 같은거 꼭 챙기세요. 일반 성인이 감염되면 일단은 두통 동반한 열병 1주에서 10일 정도 앓는다고 합니다.문제는 산모가 감염시 태아가 소두증을 일으킨다는 겁니다. https://namu.wiki/w/%EC%86%8C%EB%91%90%EC%A6%9D 일단은 중남미 지역에 많이 퍼졌다고 하는데.. 작년에 인도네시아 남성에게서 지카바리어스 분리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모기 날라다니는 나라는 일단 피하는걸로.. 우리나라 모기 퍼지는 여름 오기 전에 진정 되기를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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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지카바이러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2/02/0200000000AKR20160202007700088.HTML WHO, 지카 바이러스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 WHO는 지난 2014년 서아프리카에서 1만 1천 명 이상이 사망한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생했을 때도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었다. 그러나 이미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이후 뒤늦게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해 늑장 대응을 한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WHO가 이날 긴급위원회 회의가 끝나자마자 그 결과를 발표한 것도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 당시 빗발친 늑장 대응이란 비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찬 WHO 사무총장은 아직 브라질만 집중적으로 지카 바이러스가 나타나는데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소두증 등 심각한 결과가 나오는 상황에서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면서 즉각적인 상황 대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브라질 보건당국은 이날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의 혈액체취를 금지하고, 각 지역의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 발생 상황을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등 적극적인 지카 바이러스 차단 정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 소두증을 일으키는 지카 바이러스에 대해 현재 인수공통전염병인지의 여부는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합니다.다만 WHO에 따르면 지카 바이러스는 1947년 우간다의 rhesus m원숭이)에서 처음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인수공통전염병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Zika virus는 웨스트나일, 황열, 뎅기열, 일본뇌염바이러스와 같은 flaviviridae 입니다.Zika virus를 전파하는 모기는 Aedes aegypti, Aedes albopictus(국내서식) 같은 Aedes 로 알려져 있지만, 브라질에서는 우리나라에도 흔한 Culex 종을 통해서 전파가 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Researchers first identified Zika virus in rhesus min Uganda in 1947, during a surveillance project to find yellow fever. A few years later, in 1952, they found the first human cases in Uganda and the United Republic of Tanzania, according to the WHO." ------------------------------------------------------------------------------------- 공중보건 이슈가 또 떳습니다. 우리나라 공중보건은 뭐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거 같습니다. 일단 발병국 확인하셔서 해외 여행 피하시고 가셔야 할 때는 몸에 뿌리는 모기 기피제 같은거 꼭 챙기세요. 일반 성이이 감염되면 일단은 두통 동반한 열병 1주에서 10일 정도 앓는다고 합니다.문제는 산모가 감염시 태아가 소두증을 일으킨다는 겁니다. https://namu.wiki/w/%EC%86%8C%EB%91%90%EC%A6%9D 일단은 중남미 지역에 많이 퍼졌다고 하는데.. 작년에 인도네시아 남성에게서 지카바리어스 분리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모기 날라다니는 나라는 일단 피하는걸로.. 우리나라 모기 퍼지는 여름 오기 전에 진정 되기를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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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고마운 뉴욕타임즈의 특대보도
한국 세월호 침몰이 우리에게 남긴 것 한국 제주도 ? 한국의 가장 유명한 휴양섬인 이곳 바람 많은 항구에서 부두 인부들이 쇠사슬을 철그덩거리며 트럭들을 물에 젖은 화물 갑판으로 옮겨 남서부 해안에 위치한 목포를 향한 4시간 반의 운항을 위해 여객선을 준비했다. 소와 무와 알루미늄 창틀을 운반하는 트럭운전사들이 차량 행렬의 맨 앞으로 조금씩 다가서는 동안 지난해 전까지는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을 했다: 이들은 화물의 무게를 증빙하는 서류를 건넸다. 위험한 과적을 피하고자 하는 이 간단한 안전 규칙은 평화시기의 한국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참사 중 하나였던 세월호 침몰 이후로 변경된 수많은 규제들 중 하나다. 이번주로 1주년을 맞는 그 사고는 대부분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었던 3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과거에는 트럭의 무게를 달지도 않았고 배에 화물이 얼마만큼 적재되어 있는지도 몰랐다”고 다른 4명의 제주도 검사관과 함께,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과적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재판을 받는 동안 일터로 돌아온 검사관 오명오씨가 말했다. “우리는 세월호가 평형수를 가지고 부정행위를 할 것은 의심하지도 않았다. 우리가 잘못 생각했다.” 검사들이 나중에 밝혔듯이, 세월호의 마지막 항해시에 법적 제한의 두 배에 이르는 화물이 적재되면서 배가 균형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평형수의 대부분이 버려졌다. 검사관들은 해안에 있는 많은 선박들에 대한 감시만을 하며, 선박들이 물 위에 아주 낮게 떠 있지 않는 이상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에 선박 운영자들은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위험한 급물살 속에서 극심한 변침을 했을 때 과적은 세월호를 파멸로 치닫게 하는 요인이 됐다. 그러나 이는 매우 심각한 수많은 규제 위반 중 하나에 불과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이 이번 비극의 중심에 있다고 믿는 오랫동안 묵과되어온 기업과의 담합 관계를 풀겠다고 약속했다. 타임라인 한국의 세월호 참사: 일 년 후 세월호의 침몰은 평화시기에 벌어진 한국의 최악의 참사였고 형사상 유죄판결, 국무총리의 사임, 그리고 선박주인 억만장자의 죽음을 가져왔다. 일 년 후, 많은 안전 전문가들과 해운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정부 관료가 고가의 선물을 받는 것을 금지하는 법과 대형 참사에 연루된 기업들의 기업주를 엄중히 단속하는 법의 통과를 포함한 중요한 변화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검사들이 세월호의 소유주라고 말했던 부유한 가족의 구성원들이 선박 회사의 자금을 불법적으로 유용함으로써 회사의 매니저들로 하여금 선박에 과적을 하고 안전 규칙을 무시하도록 하게 했다는 혐의를 검찰로부터 받은 후 두 번째 법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정부 비판가들은,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참사 및 구조작업이 실패해 버린 것에 대한 진지한 조사에 임하기보다는 정권에 가장 큰 위협이 될 뻔했던 이 참사를 대충 넘겨버리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고 확신하며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 그들은 계속된 부정의 증거로 선박에 대한 최근의 안전 과실을 말한다. 지난 주 항의의 표시로 머리를 삭발한 세월호 희생자들의 부모 70명을 포함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새로운 조사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며 서울 시내를 행진했다. 일부에서 말하는 대로 비난을 멈추게 하려는 시도로서, 세월호 침몰 이후 지지율이 전혀 회복되지 않은 박 대통령은 월요일에 정부가 세월호 인양이라는 거액이 소요되는 작업을 고려해보겠다고 발표했다. 4명의 고등학생이 포함된 9명 승객의 시신은 아직까지도 수습되지 않았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간청했다”고 십대인 자신의 아이가 여전히 실종 상태인 이금희씨는 말했다. “그러나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슬픔에 잠긴 많은 부모들은 검찰이 세월호 소유주라 일컫는 그 가족으로 분노의 초점을 맞추려 정부가 시도했다고 믿는다. (유병언은 아직 완전한 설명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도주 중에 사망했다.) 한국은 국가의 경제를 살리는 과업에서 벌어지는 부패에 대해 눈감아주는 것으로 오랫동안 잘 알려져 있다. 규제자들과 사업자들 사이의 결탁은 한국의 원전산업에 대한 증대하는 공포, 그리고 건물의 붕괴 등에 책임이 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2014년 4월 16일 해양경찰이 촬영한 세월호. 정부는 안전 향상을 위해 270억 달러를 쓸 것이다. 해운업에서의 그러한 부패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으로 정부는 최근 몇 달 동안 안전 법규를 위반하는 기업과 여객선 승무원들에 대해 더욱 가혹한 재정적 제재와 더 긴 징역형이 명시되도록 법안을 수정했다. 수십 명의 규제 담당자들, 승무원, 선박 검사관들, 그리고 여객선과 선적 회사와 관련된 공무원들은 세월호 참사에서 각자가 한 역할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거나 재판을 앞두고 있다. 토요일 서울에서의 대규모 집회 후 일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경찰과 충돌했다. “세월호 참사 후로는 여객선에서 근무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기가 창피하다”고 한국 남부 해안의 또 다른 섬인 완도와 제주 간을 항해하는 카 페리호, 한일블루나래호의 선장인 김영진 씨가 말했다. ”우리는 이제 안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지난달 정부는 더 많은 구조대원들과 안전 감독관을 고용하고, 더 큰 구조선과 헬리콥터를 배치하며, 승무원들을 위해 더 많은 훈련에 비용을 댈 수 있도록 270억 달러 규모의 안전 계획을 발표했다. (세월호 참사에 처음 도착한 해양 경찰 구조선은 불충분한 장비를 가지고 있었고 배 안에 갇힌 승객들이 창문을 통해 도움을 요청하는 동안 배가 천천히 파도 아래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시민단체인 사회진보연대의 박준도씨는 정부의 안전조치가 “겉치레”에 지나지 않으며 여전히 안전을 해치고 있는 뿌리 깊은 부패를 해결하기에는 한참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후 거의 8개월이 지난 후 한국의 저인망 어선이 악천후 속에서 러시아 동쪽 해안에서 침몰했고, 53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기록상에는 선장이 선상에 있었다고 했지만 선장은 승선하지 않았고, 책임을 지고 있던 선원은 그 일을 할 만한 자질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발견했다. 모든 트럭이 정부허가를 받은 측량소에서 스스로 무게를 잴 것을 정부가 요구한 후 3개월이 흐른 지난 1월에 지역 케이블 채널 JTBC는 몇몇 운전사들이 측량소를 떠난 후 추가 화물을 실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지금 무작위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위험한 이해의 상충을 근절하기 위한 시도로서, 정부는 선사에서 재정지원을 받는 해운조합의 오 씨 같은 부두 검사관을 정부 지원을 받는 기관으로 전출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로 지난달, 정부 감사관들은 그 기관의 공무원 두 명이 배의 불법 리모델링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검사에 따르면, 세월호에서 발견된 많은 문제들 중의 하나는 규제관들이 선주가 수익을 늘리도록 침상을 추가하는 것을 허용했던 것으로, 이 개조는 배의 상부를 무겁게 하여 배가 쉽게 기울어지도록 만들었다.) 만 오천 톤급 씨스타크루즈 여객선 선장 김철수씨는 선원들 간에 존재하는 이와 비슷한 책임감 부재가 지속적으로 안전상의 위험이 된다고 말했다. 배가 서해안에서 침몰하는 동안 승객들을 대피시키려 하지 않고 다른 승무원들과 함께 배를 버리고 떠난 혐의로 36년 징역형을 살고 있는 선장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에서 그랬듯이 전국적으로 여객선 승무원들의 약 75퍼센트가 임시 계약직이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히 필요한 것은, 더 가혹한 벌이나 오래된 배를 폐선시키는 것보다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자랑스러워 하고 의욕 있고 책임감 있는 선원들이다”고 김 씨는 말했다.[뉴스프로번역제공] [뉴욕타임즈에 실린 세월호 관련 다량의 사진들] Legacy of a South Korean Ferry SinkingBy CHOE SANG-HUN, APRIL 11, 2015 JEJU, South Korea ? At the windy port here on South Korea’s most famous resort island, stevedores prepared a ferry for its four-and-a-half-hour journey to Mokpo in the country’s southwest, chains clanking as they lashed trucks to the damp cargo deck. As truck drivers hauling cows, radishes and aluminum window frames inched their way to the front of the line, they did something they had never done before last year: They handed in paperwork certifying the weight of their cargo. That simple safety step ? an attempt to avoid dangerous overloading ? is one of a host of regulatory changes made since the sinking of the Sewol ferry, one of South Korea’s most traumatic peacetime disasters. A year ago this week, the accident claimed the lives of more than 300 passengers, most of them teenagers on a school trip to Jeju. “In the past, we didn’t weigh trucks and we didn’t know how much ships were carrying in cargo,” said Oh Myung-o, an inspector in Jeju who is back on the job while he and four other inspectors from the island stand trial for failing to stop routine overloading. “We did not suspect the Sewol would do foul play with its ballast water. We were wrong.” As prosecutors later discovered, the Sewol was carrying twice its legal limit of cargo on its final voyage, having dumped most of the ballast water that would have helped stabilize it. The ferry operators got away with it because inspectors had limited themselves to monitoring many ships from shore; so long as vessels did not sit too low in the water, the inspectors raised no questions. The overloading helped doom the ferry when it made a sharp turn in dangerous currents. But it was just one of numerous regulatory sins so serious that the country’s president, Park Geun-hye, vowed to untangle long-tolerated collusive ties with industry that many believe were at the heart of the tragedy. TIMELINEFerry Disaster in South Korea: A Year Later The sinking of the ferry Sewol was among South Korea’s worst peacetime disasters and led to criminal convictions, the resignation of the country’s prime minister and the death of the billionaire who owned the ferry. One year later, many safety experts and those working in the shipping industry say important changes have been made, including the passage of a law to ban government officials from taking expensive gifts and another to crack down on business owners whose companies are involved in major disasters. The second law was passed after prosecutors alleged that members of the flamboyant family they say owned the Sewol had illegally siphoned funds from the ferry company, forcing its managers to overload ferries and scrimp on safety measures. But government critics remain bitter, convinced Ms. Park’s administration is more interested in moving past the tragedy that has threatened to become her biggest legacy than in undertaking a serious investigation of the disaster and bungled rescue. They cite recent safety lapses on ships as evidence of continued wrongdoing. Last weekend, thousands of people, including 70 of the Sewol victims’ parents who shaved their heads in protest, marched in downtown Seoul to demand that a new investigation be opened. In what some saw as an effort to halt the criticism, Ms. Park ? whose approval ratings have never recovered after the sinking ? announced on Monday that her government would consider the costly task of raising the Sewol. The bodies of nine passengers ? four of them high school students ? have never been found.“For one year, we have been praying and begging to them to help find our loved ones,” said Lee Keum-hui, the mother of a teenager whose body is still missing. “But nothing has changed for us.” Many of the grieving parents believe the government has tried to refocus anger on the family who prosecutors say owned the Sewol. (The patriarch died while on the run under circumstances that have yet to be fully explained.) South Korea has long been known for its high tolerance of corruption in service of stoking its economy. Collusive ties between regulators and businesses have been blamed for building collapses, as well as rising fears about the country’s nuclear power industry. The Sewol, which sank on April 16, 2014, in a photo from the South Korean Coast Guard. The government will spend $27 billion to improve safety. Credit South Korea Coast Guard European Press photo Agency In an attempt to address such corruption in the shipping industry, the government revised laws in recent months to stipulate harsher financial penalties and longer prison terms for ferry crews and companies that violate safety rules. Dozens of regulators, crew members, ship inspectors and officials with ferry and loading companies have been convicted or face trial for their roles in the Sewol disaster. “After the Sewol, I was ashamed to tell people that I worked on a ferry,” said Kim Young-jin, the captain of the Hanil Blue Narae, a car ferry that sails between Jeju and Wando, another island off the country’s southern coast. “We now pay more attention to safety.” Last month, the government announced a $27 billion safety plan that called for hiring more rescuers and safety supervisors, deploying bigger rescue ships and helicopters, and financing more training for ferry crews. (The first coast guard rescue boats arriving at the Sewol disaster had inadequate equipment and did little more than watch the ship slowly disappear beneath the waves as passengers trapped inside called for help through the windows.) But Park Jun-do, of the civic group People’s Solidarity for Social Progress, said the government’s safety measures were little more than “window-dressing” and fell far short of addressing deeply rooted corruption that is still undermining safety. Nearly eight months after the Sewol disaster, a South Korean trawler sank off eastern Russia in stormy weather, with 53 sailors presumed dead. The police later discovered that the ship’s captain was not on board, though its log said he was, and the sailor in charge was not qualified for the job. In January, three months after the government required all trucks to weigh themselves at government-licensed measuring stations, JTBC, a local cable channel, discovered that some drivers loaded extra cargo after leaving the stations. As a result, the government is now conducting random inspections. And in an attempt to eradicate dangerous conflicts of interest, the government has said it would transfer pier-side inspectors like Mr. Oh from the Korea Shipping Association, which is financed by shipping companies, to a government-funded agency. But just last month, government auditors revealed that two officials from that agency had approved the illegal remodeling of two ships. (One of the many problems found with the Sewol, according to prosecutors, was that regulators allowed the ferry owners to add passenger berths to improve earnings, changes that made the ship top-heavy and vulnerable to tilting.) Kim Chul-soo, the captain of the 15,000-ton Sea Star Cruise ferry recently docked at Jeju, cited a similar lack of responsibility among mariners as a continuing safety hazard. An estimated 75 percent of ferry crew members nationwide work on temporary contracts ? as many did aboard the Sewol, including the captain, who is serving a 36-year prison term for abandoning ship with other crew members without trying to evacuate passengers trapped as the ship slipped into the Yellow Sea. “What we need most urgently, more than harsher punishments or retiring older ships,” Mr. Kim said, “is sailors who are proud of what they do and feel motivated and responsible.”
키토모작성일 2015-04-13추천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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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외신, 박근혜, 교황 평화 메시지 하루 만에 무시, 생생보도
외신, 박근혜, 교황 평화 메시지 하루 만에 무시, 생생보도외신, 박근혜, 교황 평화 메시지 하루 만에 무시, 생생보도-내셔널가톨릭뉴스, 경찰 대거 동원 김영오씨 산보길 막아-유민아빠 김영오씨 국민과 정부의 분열의 표징내셔널가톨릭뉴스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화의 시대가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박근혜가 그녀의 경찰을 대거 동원하여 한국에서 가장 나약하고 힘없는 영혼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남자를 에워싸고 막아 나섰다고 비난했다.내셔널가톨릭뉴스는 15일 ‘Police confront Korean ferryboat victim’s father-한국 여객선 피해자 아버지를 막아선 경찰’이라는 제목으로 단식 중인 김영오씨의 산책길을 막아 선 경찰의 모습은 박근혜가 교황에게 ‘교황의 방한으로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과 모순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이 기사는 ‘한국 사회에서 힘없는 자를 꼽자면, 그의 딸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에 대한 독립적인 수사 팀을 구성하고 죄가 드러난 자들은 누구든지 기소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박근혜정부에 요구하며 33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 씨보다 눈에 띄는 사람은 없다’ 며 박근혜와 그녀의 경찰이 김영오씨의 산책길을 막아섰다고 전했다. 단식 중인 김영오씨는 날마다 광화문 광장을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하고 있었고 이날도 산책을 나서던 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내셔널가톨릭뉴스는 현장사진 5장과 함께 이 소식을 전했는데 내셔널뉴스는 산책길에 나서기 직전부터 김영오씨와 인터뷰를 진행 중이었던 관계로 생생한 현장 뉴스를 포착해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됐다. 내셔널가톨릭뉴스의 폭스 기자는 경찰이 김씨를 둘러싼 현장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지난 한 달 동안 그가 계속 머물고 있는 광장에서 김 씨와 내가 함께 대화하던 중, 그가 때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서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우리가 앞으로 움직이자, 처음엔 경찰 십 수명이, 다음엔 수십 명이 우리 앞에 저지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곧 우리는 저지선 안에 갇혔고, 경찰이 김 씨에게 돌아가라고 말했고 그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몇 분 만에, 한 사람 대 경찰 수십 명 간의 대치상태는, 더 많은 경찰이 그를 저지시키는 대열에 가담함으로써 확대되었다.(중략) 김 씨는 발걸음을 돌려 광장 발치에 있는 그의 흰색 텐트로 조용히 돌아갔다.>내셔널가톨릭뉴스의 이 뉴스로 박근혜와 그녀의 정부가 얼마나 기만적이며 위선적인가가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내셔널가톨릭뉴스는 광복절을 맞아 텅 빈 도시의 모습을 전하며 단지 한 곳, 여객선 참사 가족들을 응원하기 위해 무수의 사람들이 모인 시청 광장만이 예외이고 이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노란 리본들과 기도 리본들이 광장을 장식하고 있다고 현장의 모습을 전했다.내셔널가톨릭뉴스는 김영오씨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하며 그에게 우리의 독립적 수사요구를 지지해 달라고 간청하기 위해 버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한국인들이 김씨의 쇠약해진 어깨 위에 희망을 올려놓은 것 같다며 김영오씨가 국민적 상징, 즉 국민과 정부의 분열의 표징이 되었다고 전했다.내셔널가톨릭뉴스는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며,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는 교황의 한국과 세월호 희생자들, 그리고 유족들을 위한 기도문을 소개하며 기사를 마무리했다.한편 경찰이 김영오씨를 막아 선 것은 같은 날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광복절 기념행사에 박근혜가 참석하기 때문에 경찰이 과잉반응을 한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국민TV의 뉴스에 따르면 아침마다 하는 산책을 하기 위해 김영오씨가 걸음을 옮겼고 10시로 예정된 광복절 기념식이 시작되기 30분 전인 오전 9시 30분경, 김영오씨와 도철스님, 김 씨를 부축하는 유가족 1명, 천주교 사제 등 4명은 광화문 광장을 한 바퀴 돌려고 했지만 경찰에 가로막혀 40미터도 나가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전했다.김영오씨는 이에 대해 ‘“대한민국이 이런 곳입니다. 제가 아침저녁으로 한 바퀴 도는데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이래요. 나 혼자고 유가족 몇 명밖에 없어요. 딱 4명 갑니다. 매일 하는 운동을 지금 못하게 합니다. 이래서 대한민국 국민이 더 일어나는 겁니다. 모르십니까?’라고 일갈했다. 박근혜, 그녀는 한 달이 넘는 단식으로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이 남자가 무엇이 그리 무서워 대거 경찰병력을 동원해 막아서는 것일까?어둠과 사악한 곳에 있는 자들은 진리와 정의, 그리고 해 아래 서기를 두려워한다. 김영오씨는 목숨을 내건 단식으로 진실과 정의를 온 삶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김영오씨를 막아서는 박근혜와 경찰들, 그들이 막아서는 이유는 그들 자신이 어둠의 세력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내셔널가톨릭뉴스의 기사전문이다.번역 감수: elisabeth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rGGN2b Police confront Korean ferryboat victim’s father한국 여객선 피해자 아버지를 막아선 경찰National Catholic Reporter by Thomas C. Fox | Aug. 15, 2014NCR’s Tom Fox interviewing father of ferryboat victim before police moved in (photo by Hoa Fox)경찰이 진입하기 전 여객선 피해자의 아버지와 인터뷰 중인 NCR 기자 톰 폭스Kim begins walk on plaza set for beatifications (photos by Tom Fox)김 씨가 시복식을 준비 중인 광장을 걷기 시작Police tell Kim he must stop walking경찰이 그에게 걸음을 멈추라고 지시Police cordon off Kim김 씨를 둘러싼 경찰Ferryboat victim supporters confront police경찰에 맞서는 여객선 피해자의 지지자들 SEOUL, SOUTH KOREA ? Less than a day after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told Pope Francis, here on a five-day visit, that she hoped his trip would “begin an era of peace and reconciliation,” her police were out in force Friday and cordoned off and confronted the man most widely seen as the soul of the vulnerable and voiceless of South Korea.한국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일정으로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그의 방한으로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그녀의 경찰은 금요일 병력을 대거 동원해 한국에서 가장 나약하고 힘없는 영혼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남자를 에워싸고 막아섰다.There is an irony here. Pope Francis, speaking Thursday afternoon to Park, assembled dignitaries, and later to the Korean bishops, also called for reconciliation. He told the bishops they must live in solidarity with the poor and vulnerable.여기에는 모순이 있다. 목요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박 대통령 및 주요 공직자들과의 만남에서, 이후에 만난 한국 주교단에게도 화해를 주문했다. 교황은 주교들에게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과 연대해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No one in South Korean society more visibly represents the vulnerable of the nation than does Kim Young-oh, who has been fasting for 33 days while demanding the Park government set up an independent investigation into the ferry disaster that took his daughter’s life, calling for legislation to prosecute anyone found culpable.한국 사회에서 힘없는 자를 꼽자면, 그의 딸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에 대한 독립적인 수사 팀을 구성하고 죄가 드러난 자들은 누구든지 기소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박근혜정부에 요구하며 33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 씨보다 눈에 띄는 사람은 없다.Korean Catholics are celebrating two feast days Friday. The first, Liberation Day, a national holiday, commemorates the Korean liberation from Japanese rule at the end of World War II. The second is the feast of the Assumption. Offices are closed. The streets of the city are quiet. The exception is City Hall plaza, where countless thousands are gathered in support of the families of the ferry disaster. Countless yellow ribbons, prayer ribbons, adorn the plaza.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금요일 2개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첫 번째는 한국이 제2차 세계대전 말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을 기념하는 국경일인 광복절이다. 두 번째는 성모승천 대축일이다. 사무실들은 문을 닫았다. 도시의 거리들은 조용하다. 여객선 참사 가족들을 응원하기 위해 무수의 사람들이 모인 시청 광장만이 예외이다. 셀 수 없는 노란 리본들과 기도 리본들이 광장을 장식한다.Pope Francis on Friday morning was celebrating Mass in Daejeon, South Korea, 90 miles south of here. He will spend the rest of the day with young Catholics there, gathered for Asian Youth Day. He briefly met families of ferry victims as he stepped off his plane Thursday. Today, he will encounter young Koreans the very age of those who died in the ferryboat sinking, which took the lives of 306, most of them high school students, one of them Kim’s 17-year-old daughter, Kim Yoo Min.금요일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에서 남쪽으로 90마일 (역주: 약 145 킬로미터) 떨어진 대전, 한국에서 미사를 거행하고 있었다. 그는 이 날 나머지 시간을 그곳에서 아시아청년대회를 위해 모인 젊은 가톨릭신자들과 보낼 것이다. 그는 목요일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여객선 희생자 유가족들을 잠시 만났다. 오늘 그는 대부분 고등학생들이었고 그 중 한 명이 김 씨의 17살 딸 김유민 양인, 306명이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사망한 이들과 똑같은 나이의 젊은 한국인들을 만날 예정이다.Three days ago, on the 30th day of his fast, Kim told me his fondest memory was of his daughter coming up from behind him each day, hugging him and calling out, “Father, Father.”3일 전, 단식 30일째인 김 씨가 가장 애정 어린 기억은 그의 딸이 매일 그를 뒤에서 안으며 “아빠, 아빠”하고 부르던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Today, on the 33rd day of his fast, I visited with Kim again and asked him how his spirits were holding out. “I am holding on,” he said. “I am hoping I can meet Pope Francis. I will beg him to support our demands for an independent investigation,” he told me through an interpreter.오늘, 단식 33일 째, 나는 김 씨를 다시 방문해 그가 정신력으로 어떻게 버티고있는지 물어보았다. “버티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에게 우리의 독립적 수사요구를 지지해 달라고 간청할 것이다”고 그는 통역을 통해 내게 말했다.Scores of ferry victim relatives began a fast one month back, trying to draw attention to their demands. All but Kim has dropped out. He is weak and bone thin. He has a difficult time standing. He leaned upon a cane when I met him Friday.한달 전 많은 희생자 유가족들이 그들의 요구에 관심을 끌기 위해 단식을 시작했다. 김 씨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중단했다. 그는 쇠약하고 뼈밖에 없이 말랐다. 그는 서있는 것도 힘들어 한다. 금요일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지팡이에 기대어있었다.“I’m still hopeful I can speak with the pope,” he repeated more than once. ”교황님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여전히 품고 있다”고 그는 반복해서 말했다.As the days have passed, Koreans have focused more and more on Kim, seemingly placing their own hopes on his weakened shoulders. He has become a national symbol, increasingly a sign of a divide between the people and their government. He has become the voice of the marginalized that Francis on Thursday called his bishops to become. Kim’s picture can be seen on placards throughout the city. His face appears in newspapers daily. They are following his fast, which daily seems to grow in importance to the Korean people.날이 갈수록, 한국인들은 김 씨에게 더욱더 집중해 왔는데, 이는 그들의 희망을 그의 쇠약해진 어깨에 올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국민적 상징이 되었고 점점 더 국민과 정부 간 분열의 표징이 되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의 주교들에게 되어야 한다고 주문한 소외계층의 대변자가 되었다. 김 씨의 사진은 이 도시 전역의 플래카드에 올려져 있다. 그의 사진은 일간신문에 게재되고 있다. 사람들은 그의 단식을 뒤따르고 있으며, 이는 한국인들에게 매일 더욱 중요해지는 듯하다.As Kim and I spoke together on the plaza where he has remained for the past month, he walked slowing, leaning at times on his cane. As we proceeded, dozens, then scores, of Korean police began forming a line in front of us. Soon we were being cordoned off, and the police told Kim he would have to turn around, that he could no longer walk forward.지난 한 달 동안 그가 계속 머물고 있는 광장에서 김 씨와 내가 함께 대화하던 중, 그가 때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서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우리가 앞으로 움직이자, 처음엔 경찰 십 수명이, 다음엔 수십 명이 우리 앞에 저지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곧 우리는 저지선 안에 갇혔고, 경찰이 김 씨에게 돌아가라고 말했고 그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Within minutes, what became a confrontation between one man and a few dozen police had escalated as scores of police added to the ranks of those stopping Kim.몇 분 만에, 한 사람 대 경찰 수십 명 간의 대치상태는, 더 많은 경찰이 그를 저지시키는 대열에 가담함으로써 확대되었다.Within a few more minutes, dozens, then scores, of Kim supporters were lining up face-to-face with the police. The Kim supporters started chanting through megaphones, demanding legislation to investigate the ferry disaster. The protesters held placards over their heads ? and in the faces of the police ? with Korean characters printed on them demanding the legislation.몇 분이 더 흐르자, 수십 명의 김 씨의 지지자들이 경찰과 얼굴을 맞대며 대열을 갖췄다. 김 씨의 지지자들은 세월호 참사를 수사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확성기를 통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시위자들은 그들의 머리 위로 ?그리고 경찰들의 얼굴 앞에? 한국어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구호가 인쇄된 플래카드를 들었다.Kim stepped back and returned quietly to his white tent at the foot of the plaza.김 씨는 발걸음을 돌려 광장 발치에 있는 그의 흰색 텐트로 조용히 돌아갔다.Saturday, on the same plaza where the police confronted Kim, Pope Francis is set to beatify 124 18th- and 19th-century martyrs. The police want Kim and the other ferry victim families out of Gwanghwamun Plaza by the end of the day Friday so it can be readied for the beatification ceremony.토요일, 경찰이 김 씨와 대치한 같은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124위의 18-19 세기 순교자들을 시복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경찰은 시복미사 준비를 위해 금요일까지 김 씨와 다른 희생자 유가족들이 광화문광장에서 철수해주기를 원하고 있다.The families have reluctantly agreed to leave by 4 p.m. to avoid violence. They have been told by city officials they can return to the plaza after the ceremony.유가족들은 물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오후 4시까지 철수하기로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시복식 후에 광장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시청직원의 말을 들었다.While Catholic officials here hope the beatification ceremony will stir the souls of the faithful, renewing their faith as Christian disciples, it is clear that many Korean souls have already been stirred, and that in the process, they are giving more attention to the vulnerability of others as well as their own vulnerability.가톨릭 측은, 시복식이 신자들의 영혼에 울림을 주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들의 신앙을 새롭게 할 것으로 바라고 있는 가운데, 많은 한국인들의 영혼은 이미 동요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나약함 뿐 아니라 타인들의 나약함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것은 자명하다.One day before a planned historic beatification of Korean martyrs, this nation, including the Catholics within it, are struggling to seize the ghosts of the past, martyrs from different ages ? 19th-century Catholics and 21st-century children ? implore their memories to renew the hearts and souls of a nation to give it direction in the years ahead.예정된 한국의 순교자들을 위한 역사적 시복식을 하루 앞두고, 가톨릭 신자들을 포함한 이 나라 국민들은 과거의 영혼들, 다른 시대의 순교자들?19세기 가톨릭 순교자들과 21세기 아이들?을 붙잡아 그들에 대한 기억으로 국가의 심장과 영혼을 새롭게 하여 이 국가의 앞날에 방향을 제시하기를 애원하며 분투하고 있다.How Francis understands this moment and helps shape it in the hours ahead could make a significant difference for the health of the church and wider Korean society for years to come.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순간을 어떻게 이해하여 앞으로 주어진 시간에 그것을 형상화할 것인지에 따라 가톨릭 교회의 성장과 다가올 한국 사회의 지평에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There are early indications he does, and that he is ready to touch the souls of this nation. In Daejeon on Friday, in his Angelus remarks, he entrusted to Mary “all who lost their lives in the sinking of the Sewol ferry, as well as those who continue to be affected by this great national disaster.”일찍이 그는 행동으로 이 나라 국민들의 영혼을 위로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금요일 대전에서, 그의 삼종기도문에서, 그는 “이 국가적 대재난으로 인하여 여전히 영향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월호 선박 침몰로 인하여 생명을 잃은 모든 사람들”을 성모님께 의탁했다.“May the Lord,” he prayed, “welcome the dead into his peace, console those who mourn, and continue to sustain those who so generously came to the aid of their brothers and sisters. May this tragic event, which has brought all Koreans together in grief, confirm their commitment to work together in solidarity for the common good.”“주여” 그는 기도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며,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http://linkis.com/thenewspro.org/b8LF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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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천안함 침몰의 진실일까?
먼저 이게시물은 천안함 사건의 사실을 게시하는것이 아닌 추측 기사를 인용하여 정황을 추정해본 가설임을 밝힙니다.
근거는 공개된 자료를 기반으로 하지만 정확도는 확신할수 없으므로 사실여부의 한계가 명확하지 않음을 미리 밝힙니다.
한국 “천안함” 침몰의 심층이 번역문은 “한국 천안함 침몰의 심층”이라는 다나카 사카이라는 언론인의 일본어 기사를 구글 번역한 내용에 영문번역을 참조하여 수정한 번역이지만, 그 내용은 원본과 거의 오차가 없음을 밝혀둔다. 원본 기사의 링크는 한국 군함 "천안" 침몰의 심층이며, 영어 번역본의 링크는Who Sank the South Korean Warship Cheonan?이다. 영어 번역본에는 미국의 9/11을 언급한 내용을 미국인 배려? 차원에서 생략했는데, 그 부분의 번역과 원본에서 아예 생략한 2문단은 하이라이트로 강조해 두었다. 빠진 부분도 읽어보는 재미가 솔솔할 것이다.The stern of the Cheonan docked on a barge off Baengnyeong Island on 7 May, 2010. Lee Jung-hoon. 백령도 근처 바지선에 천안함 선미가 인양되는 모습 2010년 5월 7일 이정훈Map of Baengnyeong Island (1) 백령도 지도 (1)Map of Baengnyeong lsland (2) 백령도 지도 (2)한국 "천안함" 침몰의 심층On 26 March, 2010 near Baengnyeong Island (White Wing, also known as Baekreong) to the South of the northern limit line, the maritime demarcation line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South Korea’s large patrol boat Cheonan (Heaven’s Peace) exploded and sank. Already, more than one month after the accident, the cause of the sinking has not been confirmed. In early April, the South Korean government announced that either a torpedo struck or an underwater mine exploded, sinking the ship, indicating that it was not destroyed by an explosion or accident inside the boat but by an external cause.2010년 3월 26일 한국과 북한의 해상 경계선 (북방 한계선, NLL)의 바로 남쪽에 있는 백령도 (백령도, 흰색 날개 섬)의 근처에서, 한국의 대형 초계함 “천안함”(하늘의 평화)이 폭발·침몰한 사건은 발생한 지 1개월 이상이 지났어도 그 침몰 원인이 확실하지 않다. 한국 정부는 4월에 들어서 “어뢰인지 기뢰인지가 배의 외부에서 폭발했다고 생각된다”고 발표해, 군함 내부 폭파나 파괴(고장 등)이 아닌 외부로부터의 어뢰(바닷속으로 온)나 기뢰(사전에 설치되어있는)에 의해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However, it remains an enigma as to who fired or set off a torpedo or underwater mine. The South Korean right, claiming that a North Korean semi-submersible ship fired a torpedo, demands tha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launch a revenge attack on the North. The left and pacifists in the South suggest that the warship may have touched off an underwater mine installed in the 1970s by the South Korean military to prevent North Korean infiltration and still left there.그러나 누가 어뢰나 기뢰를 발사 또는 부설했는지는 수수께끼의 상태이다. 한국의 우파 세력은 북한의 잠수함 (반잠수정)이 어뢰를 쐈다고 주장하고, 한국 정부에 '북을 보복 공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좌파나 평화주의자들은 “1970년대의 한국군이 부설한 채 방치된 낡은 기뢰에 부딪힌 것은 아닌가”라고 분석하고 있다. (서해 긴장에 따라 기뢰 136개 설치, 10년 후 10%도 회수되지 않아)136 underwater mines were installed in response to the tensions in the Yellow Sea and, ten years later, fewer than ten percent had been removedBaengnyeong Island is only 20 kilometers from North Korea in an area that the North claims as its maritime territory, except for the South Korean territorial sea around the island. At present there are two demarcation lines on the sea. South Korea and the US (UN) claim that the Northern Limit Line (NLL), which runs just north of Baengnyeong Island, is the demarcation line between North and South. However, since 1999, North Korea has claimed that the Military Demarcation Line further south is the border between North and South. About 5,000 South Koreans live on Baengnyeong Island and regular ferries link it from Inchon. In the reconciliation between North and South in the year 2000, North Korea recognized this ferry route and the sea around the island as an area where South Korean and American boats can navigate freely. At the same time, North Korea has regarded American and South Korean boats entering the sea area beyond that as violating the economic zone of North Korea.백령도는 북한의 본토에서 20킬로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섬 주변의 한국 영해의 외곽은 북조선이 '자국의 영해다'라고 주장하는 해역이다. 현재 북한과 한국의 해상 경계선은 2종류가 있다. 한국과 미국(유엔)은 백령도를 북쪽을 바로 지나는 '북방 한계선'(NLL)이 남북의 경계선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북한은 1999년 이래 좀 더 남쪽의 '군사 경계선'이 남북의 경계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백령도에는 약 5천 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으며, 인천항에서 출항하는 정기 페리가 운행하고 있다. 2000년 남북 화해로 북한이 페리의 항로와 백령도의 주변 영해를 한국과 미군의 배가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는 영해로서 인정하고, 그 외의 해역에 들어온 미군과 한국의 배는 북한의 경제 수역을 침범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을 돌아다 보았다)In the vicinity of Baengnyeong Island South Korea constantly confronts the North Korean military. The Cheonan was a patrol boat whose mission was to survey with radar and sonar the enemy’s submarines, torpedoes, and aircraft, and to attack. If North Korean submarines and torpedoes were approaching, the Cheonan should have been able to sense it quickly and take measures to counterattack or evade. Moreover, on the day the Cheonan sank, US and ROK military exercises were under way, so it could be anticipated that North Korean submarines would move south to conduct surveillance. It is hard to imagine that the Cheonan sonar forces were not on alert.백령도 주변은 북조선군과 항시적으로 대치하는 해역이다. 그리고 천안함은 초계함이라 레이더 나 소나를 사용해 적군의 잠수함과 어뢰, 항공기, 미사일 등을 감지해 공격하는 것이 임무이다. 북한의 잠수함이나 어뢰가 접근해 오면, 조기에 감지해서 요격이나 회피 등의 대책을 취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천암함이 침몰한 당일은 한미 합동 군사 연습이 행해지고 있어 북한의 잠수함이 연습을 정찰하기 위해 남하해올 것을 예상되고 있었다. 천안함 내의 소나 담당자가 주의를 태만히 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South Korean military spokespersons told the media immediately after the incident that the probability of sensing torpedoes two kilometers away with sonar was over 70 percent. Later the probability was reduced to over 50 percent because the water is only 30 meters deep. This reduction, I believe, is for the purpose of theorizing North Korean responsibility for the attack.한국군 관계자는 미디어에 대해, 애초 소나로 2킬로 앞의 어뢰를 감지할 수 있는 확률은 70% 이상이라고 했다. 그 후 현장 수심이 30미터로 얕아서 감지 확률은 50% 미만이라는 말로 물러섰다. 이런 감지력 축소는 “북한 범인설”을 보강하기 위한 방향 전환이라는 느낌도 든다. (초계함 침몰 : 수색 해역을 2배로 확대)The patrol boat sinking; doubling the area of the searchA map provided by KBS TV. The third buoy to the East of Baengnyeong Island is where the head of the Cheonan sank, and the rear of the Cheonan sank to the West. (KBS 텔레비전이 보도한 지도. 백령도에 가장 근접한 곳이 제3 부표 그 우측(동쪽)의 부표가 천암함의 함수, 왼쪽(서쪽)의 부표가 천암함의 함미 침몰 장소)The map of the search generally reported: two black dots to the South of Baengnyong are where the halves of Cheonan reportedly sank. The third buoy is not shown. (일반인에게 보도 된 수색 지점에 대한 지도. 백령도의 남쪽에 있는 2개의 검은 둥근 표시가 천안함 함수와 함미의 침몰 지점. 제3 부표는 나타나 있지 않다.)제3 부표에 침몰한 미 잠수함The sinking of the Cheonan remains unsolved. But around the time of this incident another sinking occurred that has hardly been reported in Japan. Near the site of the sinking of the Cheonan, a colossal object, which appears to be a US submarine, was found to have sunk. An ROK underwater team searched for, and on April 7 South Korea’s KBS TV showed, a US helicopter carrying what seems to be the body of a US soldier. KBS is a public broadcasting station with the highest credibility in South Korea.천안함 침몰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은 채이지만, 이 사건을 둘러싸고, 일본에서 거의 보도되지 않은 “또 하나의 침몰”이 일어났다. 천안함 침몰 현장 인근의 해역에 미군의 잠수함으로 보이는 거대한 물체가 침몰한 게 발견되었다. 한국군 잠수팀이 수색을 맡았으며, 미군 헬리콥터가 미군의 사체로 보이는 물체를 운반해가는 영상을 한국의 KBS 텔레비전이 4월 7일 보도했다. KBS 텔레비전은 공영 방송으로서, 한국 매스컴 중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Following the sinking of the Cheonan, in the course of conducting an underwater search, a member of the special unit of the ROK Navy, UDT-SEAL (Underwater Demolition Team, Sea Air Land) Han Joo-ho, lost consciousness and later died. This was a secondary disaster. While collecting information on the death of Warrant Officer Han, KBS learned that his memorial took place neither near where the rear of the ship was found (the first buoy), nor near where the head of the ship was found (second buoy). Rather, it was six kilometers away near the third buoy, between the first and second buoy, that is, at a location that had nothing to do with the Cheonan sinking.천안함 침몰 후 잠수 수색 과정에서 한국 해군 특수 심해잠수대대(UDT, 특수전 여단)의 한주호 준위가 잠수 중에 실신한 후, 사망하는 2차 재해가 발생하였다. KBS는 한 준위의 사망사고를 취재하면서, 한 준위의 위령제가 거행 된 장소가 선미가 발견 된 장소(제1 부표)도, 함수가 발견 된 장소(제2 부표)가 아닌 오히려 약 6킬로 떨어진 제1 부표와 제2 부표의 사이에 존재하는 천안함과 관계없는 “제3 부표”인 것을 알았다.US and ROK troops at work searching the sea several hundred meters from the cliff of the island. The first and second buoys where the Cheonan sank are both separated from the island by about two kilometers, and are not right in front of the cliff as shown in this Yonhap News photo. This is likely to be the place of the third buoy where the US submarine sank. But there South Korean reports claim that this is the location of the search for the Cheonan survivors.([사진] 백령도의 절벽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바다에서 미국 한국군이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 장소인 제1 부표와 제2 부표 지점은 양쪽 모두 섬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 이 연합 뉴스 사진과 같이 절벽의 바로 근처에는 없다. 이 사진은 미군 잠수함이 가라앉아있는 제3 부표 지점일 가능성이 크지만, 한국에서는 천안함의 수색 모습으로는 보도되고 있다.)This site is the source of the maps and photo.(상기지도와 사진의 원래 인용처. 블로그 “정훈이 좋아”)(When a boat is discovered on the sea bed, divers connect a buoy with a rope to the sunken boat, so that the location can be specified from above. After the explosion split the Cheonan in two, the two halves separated, drifting on the fast tide. They were discovered 6.5 kilometers apart.)(침몰선을 해저에서 발견하면, 잠수 대원은 침몰선에 로프를 묶은 부표(부표, 낚시찌 구슬)를 묶어 해상에서 침몰 현장을 확정할 수 있도록 해서, 침몰 현장은 “부표”의 이름으로 정했다. 천안함 폭발 후 두 동강 후 빠른 조류에 휩쓸려 붕괴하였기 때문에, 함수와 함미가 6.4㎞나 떨어져 발견되었다.)Warrant Officer Han, who dove at the third buoy, lost consciousness and later died. KBS, while investigating UDT-SEAL and other sources on the sea bed at the location of the third buoy, learned that something like a large submarine had sunk and that the interior of the submarine was quickly searched under US military jurisdiction.한 준위는 제3 부표의 해저에 잠수, 수색 활동을 하는 중에 의식을 잃고 사망했다. KBS는 특수 잠수대대 등 관계자를 취재하면서, 제3 부표의 해저에 대형 잠수함으로 여겨지는 물체가 침몰해 있고 미군의 지휘 아래 몰래 잠수함 내부 수색이 신속하게 개시했음을 알았다.The US military so rushed this search that it did not wait for decompressors necessary for underwater search to arrive before sending ROK troops underwater. Although the safe duration of the time for diving is as short as fifteen minutes, the US military pushed ahead to make the Koreans search the complex interior of the boat so that even skilled UDT-SEAL personnel lost consciousness one after another. And in that situation, the accident involving Warrant Officer Han occurred. Some UDT-SEAL officers claimed that “US divers declined to carry out such a dangerous operation, so they made our ROK team do the work.”미군은 수색을 서두른 나머지, 잠수 수색에 필요한 감압 장치가 현장에 운반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한국의 부대를 잠수 수색시켰다. 잠수 가능한 시간이 15분 정도로 짧은데, 복잡한 선내를 무리하게 수색시켰기 때문에, 숙련된 잠수 대원조차 의식을 잃은 사람이 잇따라 그중 한 준위의 사망 사고가 일어났다. 한국군의 특수잠수대대로부터 '미군 잠수대대는 이러한 위험한 작업을 거부했기 때문에, 한국 부대에 무리하게 시켰다.'라는 견해도 나왔다.밀봉된 KBS 텔레비전의 특종A Suppressed KBS TV ScoopROK and US authorities did their best to hide the fact that a US submarine sank at about the same time as the Cheonan. The ROK authorities did not announce the sinking of the US submarine, nor did they call Warrant Officer Han’s death an accident which occurred while searching inside a US submarine. Instead, they announced that he died while searching for Cheonan survivors’ bodies. Warrant Officer Han was honored as a national hero.한국과 미국 당국은 천안함과 같은 시간대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미군 잠수함이 침몰한 것을 기를 쓰고 감추고 있다. 미 잠수함 침몰 사실을 발표하지 않는 한국 당국은 한 준위의 사망에 대해, 미 잠수함의 수색 중의 사고라고 말하지 않고, 천안함 생존자를 수색하는 중에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한 준위는 국민적인 영웅으로 추대되었다.However, the memorial for Warrant Officer Han was performed not at the site of the Cheonan, but at the site of the sunk US submarine. US Ambassador Kathleen Stevens and Commander-in-Chief Walter Sharp of US forces in Korea attended. They praised Han and offered solatium to the bereaved family. The attendance by high US officials and monetary payments probably were for the purpose of suppressing anti-American sentiment that might blame the delayed search for Cheonan survivors caused by the precipitous US search for its own victims, resulting in Han falling victim.하지만 한 준위의 위령제가 열린 곳은 당연히 천안함이 아니라 미 잠수함의 침몰 현장이었고 위령제에는 미국의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와 주한 미군 사령관 샤프가 참석해서 한 준위의 영예를 기리고, 한 준위의 유족에게 위로금을 냈다. 미국 고위 관계자의 참석 및 위문금은 한국군에 “미군의 사정으로 천안함 수색이 늦어지고, 미군의 무리한 비밀 수색 작전 탓에 순직자가 나왔다.”라는 반미 감정이 들끓는 것을 무마하기 위해서일 것이다.An object like a corpse pulled up from the sea at the third buoy was taken away not by an ROK helicopter but by a US military helicopter. This too suggests that what sank at the third buoy was not an ROK ship but a US military boat.제3 부표의 해저에서 인양된 사체로 보이는 물체를 끌어 올려 운반 해 간 것은 한국군의 헬리콥터가 아니고, 미군의 호크 헬기이었다. 이것으로부터도 제3 부표의 해저에 침몰한 것은 한국군의 군함이 아니라 미군의 함선이라고 느껴진다.The search and recovery of the Cheonan was given to a civilian company and the command of the operation was in the hands of a Korean barge. The search at the third buoy was conducted by a special ROK UDT-SEAL team and the latest ROK light-weight aircraft carrier, the Dokdo, served as the command center. What can be assumed from this disparity is that the US and ROK military prioritized the search for the American submarine at the third buoy over the search and recovery of the Cheonan. This is especially the case for the US military, which commands the ROK military. After the incident, the start of the search and recovery of the Cheonan was delayed, probably because US and ROK authorities prioritized the search for the US submarine.천안함 수색과 인양은 민간 잠수 회사에 위탁되어 작업 사령탑은 민간 바지선에 맡겨졌지만, 제3 부표의 수색은 한국군의 특수 잠수조였고, 사령탑으로는 한국군 최신의 경량 항공모함 '독도'가 동원되었다. 이러한 격차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한미 군, 특히 한국군의 상위에 있는 미군이 천안함의 수색인양보다도 제3 부표에 가라앉은 미 잠수함의 수색을 중시했던 것이다. 사건 발생 후 천안함에 대한 구조나 수색 개시가 늦었지만, 그 이유도 한미 당국이 미국 잠수함의 수색을 우선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KBS TV in the 9 o’clock news featured this under the title, “The Mysterious Third Buoy. Why?” Subsequently, a number of ROK newspapers and magazines reported on the incident. The ROK authorities vigorously criticized these reports and sued KBS for “false reporting” and maligning the government. After the trial, the KBS website had to stop displaying film and articles about the incident.KBS 텔레비전은 4월 7일 “9시 뉴스”에서 “수수께끼의 제 3 부표 · 왜?”라는 제목으로 이 건을 방송했다. 그 후, 한국의 일부 신문과 잡지사가 이 건을 보도했다. 한국 당국은 이러한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고 '오보'를 한 KBS를 명예 훼손으로 고소했다. 재판을 받아 KBS의 웹 사이트에서는 문제의 기사에 대한 동영상과 기사의 공개가 정지되었다. (수수께끼의 제3 부표·왜?)The Mysterious Third Buoy. Why?A gag order was issued to the UDT-SEAL team. When it was found that the problem of the third buoy was not about the ROK authorities but about the US military, official pressure increased and KBS and other Korean media stopped reporting on the incident. As in Japan, the Korean media, which is subject to American authority, seems to share an implicit rule not to inquire into US military matters.특수 잠수 부대에 발설 금지 명령이 내려지고 제3 부표의 문제가 한국 당국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미군에 관한 이야기로 밝혀졌고, 당국으로부터 탄압이 내려진 시점에서, KBS 등 한국 미디어는 더 이상이 이야기를 취재해 보도하는 것을 그만뒀다고 쓰여 있다. 일본과 마찬가지의 대미 종속의 한국 언론은 미군 문제를 캐지 않겠다는 암시적 규칙이 있는 것 같다.핵무장 한 원자력 잠수함이 잠항했다?A Nuclear Submarine Armed with Nuclear Weapons was Underwater?KBS, which reported on the existence of the third buoy, was criticized for filing a false report. Thereafter, the possibility that the Cheonan was attacked by an American submarine was regarded as a dangerous and groundless rumor, and was virtually suppressed in South Korea.제3 부표의 존재를 보도한 KBS는 오보 취급되어 그 이후 “천안함은 미 잠수함에 의해 오폭” 되었다는 견해 자체가 “위험한 유언비어”로 간주하여 한국 사회에서 사실상 “금지”되었다.However, the suspicion that the Cheonan sank as a result of friendly fire surfaced within the South Korean media immediately after the event. On the day of the incident, ROK and US forces were conducting the joint military exercise Foal Eagle to the south of Byaengnyeong Island. According to a joint US-ROK announcement, the exercise was to have been completed on 18 March, but the actual exercise was prolonged to 30 April. On the day of the incident, the exercise was underway. After the incident, the US-ROK authorities made no mention of the fact that the joint military exercise was in progress. But the day after the incident, various ROK media and newspapers reported that the Cheonan might have been sunk by friendly fire during the military exercise.그러나 천안함이 아군의 오폭을 받아 침몰했다는 의혹은 (천안함) 침몰 직후부터 한국의 미디어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사건 당일 한국군과 미군은 백령도보다 남쪽 해역에서 한미 합동 군사 연습 '독수리' 연습을 전개하고 있었다. 한미 양국의 사전 발표에서는 군사 연습이 3월 18일에 끝났지만, 실제 연습은 4월 30일까지 비밀리에 연장되어 3월 26일 사건 당일도 연습을 거행하고 있었다. 사건 후에도 한미 당국은 당일 합동 연습이 시행된 것을 전혀 발표하지 않았지만, 사건 다음 날에 정보가 미디어에 누설되어 “천안함은 군사 훈련 중 오폭을 받아 침몰한 것이 아니냐”는 기사를 각 신문이 보도했다. (천안함, 한미 합동 훈련 중 오폭 사고 '의혹')The Cheonan and the “suspicion” of inadvertent attack during the ROK-US Joint Military ExerciseIn response to the report, ROK authorities acknowledged that the military exercise was in progress, but stated that it was not taking place near Byaengnyeong. Rather, it was off the coast of Taeon, Chungchong Namdo, which is about 100 kilometers to the south of Byaengnyeong. ROK authorities announced that the Cheonan did not participate in the military exercise. But a high-speed ship can reach Byaengnyeong from Taeon in two to three hours. Since last year, the DPRK has been criticizing the US and ROK for threatening activity in approaching its maritime area during ROK-US joint military exercises. This time, too, US and ROK ships may have gone north close to Byaengnyeong island. If the Cheonan had sunk during the exercise, the ROK authorities, in order to avoid criticism from North Korea, would not make such an announcement. Although the authorities announced that the Cheonan did not participate in the exercise, it is possible that the announcement deviates from the fact.보도를 받아 한국 당국은 사건 당일에 한미 합동 연습이 행해지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연습 해역은 백령도 주변이 아니고, 그보다 100킬로 정도 남쪽의 충청남도 · 태안 앞바다였다고 발표했다. 한국 당국은 천안함은 연습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고속 함정이라면 태안 앞바다에서 백령도까지 2~3 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다. 작년 이래 북한은 한미 합동 군사 연습 때에 북조선의 해역 근처까지 와서 위협하고 있다고 한국과 미국을 비난했고, 이번 군사 연습에서도 한미의 군함이 백령도 주변까지 북상했을 가능성이 있다. 혹시, 천안함이 군사 연습 중에 침몰 했다고 해도, 북조선으로부터의 비난을 막고 싶어하는 한국 당국은 그렇게 발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천안함은 연습에 참가하지 않았다.”라고 당국이 발표해도 그것은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있다.The Jaju Minbo of the ROK (left wing) analysed the KBS News report. What is interesting is the analysis of the geographical environment of the third buoy where the submarine sank. The American submarine sank in the offing several hundred meters off the coast near cliffs that are called Yongteurim Rocks, on the southern side of Byaengnyeong. Around Byaengnyeong Island there are many shoals where submarines can run aground while underwater, but the sea in front of the cliffs is deep. There, the northern and eastern sides are divided by land and if North Koreans tried to watch Byaengnyeong from their territory, they would not be able to locate a US submarine on the south side of the island. North Korea recognizes the sea area around Byaengnyeong as ROK territory. A boat moving underwater near the island would not be attacked by the North Korean military, making this a safe hiding place for a US submarine.문제의 KBS 뉴스 내용에 대해 한국의 자주민보(좌파계)가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 분석에서 흥미로운 점은 미 잠수함이 침몰해 있는 제3 부표의 지리적 환경이다. 미 잠수함은 백령도의 남쪽에 있는 '용트림 바위'라고 불리는 단애 절벽의 근처 수백 미터 앞바다에 침몰해 있다. 백령도의 주변에는 잠수함이 잠함 중 좌초하기 쉬운 얕은 곳이 많지만, 단애 절벽의 해안 앞의 바다는 깊다. 용트림 바위의 주변은 북쪽과 동쪽이 육지로 가로막혀, 섬의 북쪽에 위치한 북조선의 본토에서 백령도 방향을 감시해도, 섬의 남쪽 용트림 바위 주변의 미 잠수함의 움직임을 알 수 없다. 북한은 백령도 주변의 해역을 한국의 영해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섬 근처를 잠항하는 한, 북조선으로부터 공격받지 않고 미 잠수함의 은신처로도 안전하다.On the basis of this kind of geographical information, novelist Soo Hyon-o, a specialist in military affairs, told the Jaju Minbo: “Perhaps the American submarine adopted a posture of near war. Meaning that it can send a missile toward North Korea during an emergency while underwater in the sea near Byaengnyeong Island. Using the sea around the rocks as a base, it can intercept DPRK communications from the opposite shore of the island.”Jaju Minbo: “Did the North Hit and Completely Sink a US Submarine?”그러한 지리적 상황에 더해, 자주민보가 취재한 군사 문제 소설가 서현우는 침몰한 미 잠수함에 대해 용트림 바위 앞바다를 거점으로 한 백령도의 주변 해역에서 잠행을 계속해 섬 건너편에 있는 북한의 통신을 감청하면서, 유사시 북한에 미사일을 발사 임전 태세를 취하고 있던 것이 아니냐고 분석하고있다. (자주민보 "북한이 미 잠수함을 완전히 격침했다?")Byaengnyeong Island is the nearest point in South Korea to Pyongyang . . . about 170 kilometers. For the US-ROK military, it is the best place to counterattack in the event of emergency, and it is also well placed for radio interception. If the US places a submarine near Byaengnyeong Island and it stays for a long time, in the event of a North Korean attack on Seoul, the submarine can fire a missile within minutes.백령도는 한국에서도 가장 평양에 가까운 장소로 평양까지 170 킬로 정도다. 한미 양군에게 감청이나 유사시 반격의 거점으로서도 최적이다. 미군이 백령도 주변에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을 장기 체재시켜 놓으면, 북조선이 서울을 공격해올 때, 잠수함은 수 분내로 평양에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A submarine employed for such an operation is undoubtedly an atomic submarine, which can stay under water for one month. An atomic submarine extracts oxygen using electric power generated by the atomic reactor on the boat by electrolysis of sea water. Unlike a diesel submarine, such a boat does not have to surface at all. Many US atomic submarines can be loaded with nuclear missiles. In order to counter North Korea, which claims to be armed with nuclear weapons, the US military might maintain a nuclear-armed submarine at all times near Byaengnyeong Island, the closest point to North Korea.이러한 작전에 사용되는 잠수함은 틀림없이, 1개월 이상 잠항 한 채로 견딜 수 있는 원자력 잠수함이다. 원자력 잠수함은 함 내의 원자로에서 발전한 풍부한 전력을 사용해, 해수를 전기 분해하여 산소를 추출해 선내에 공급한다. 디젤 엔진의 잠수함과 달리 해상에 나갈 필요가 전혀 없다. 미군의 원자력 잠수함 중에는 핵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것도 많다. 핵무장을 하고 있다고 자칭하는 북한에 대항하기 위해 미군이 핵무기를 탑재 한 원자력 잠수함을 평양에 가장 가까운 백령도의 주변에 상시 잠항시키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후일담] :이 기사의 모방에 일가견이 있는 “일간 겐 다이” 5월 13일자 기사에 따르면, 핵 탑재 가능한 미국 원자력 잠수함 '컬럼비아'(USS Columbia)이 한미 군사 훈련에 참가한 후 하와이에 귀항하지 않았고, 침몰한 것은 원자력 잠수함 컬럼비아라고 볼 수 있다. 컬럼비아는 사건 4일 전, 3월 22일 한국의 항구에 기항하고 있다. (관련 기사)[후일담 2] : 미 핵 잠수함 콜롬비아가 하와이에 귀항하지 않았다고, 먼저 지적한 곳도 한국의 자주 민보의 기사 "미국 원자력 잠수함 컬럼비아 호는 어디로 사라졌나"였다. 이 문서에는 사고 다음 날 아침 백령도 용트림 바위 해안에서 자주 민보 기자가 찍은 침몰 함선 (미 원자력 잠수함?)의 일부가 해상에 나와있는 사진도 실려있다. (구글의 일본어 기계 번역된 버전)If the US and ROK military installed a missile aimed at North Korea on Byaengnyeong Island, they would be fiercely criticized by North Korea, which would agitate ROK citizens who regard citizens of the North as their brethren, necessitating removal of such a missile. However, a US submarine loaded with atomic missiles underwater near the island would have the same effect as a land-based missile at a time of emergency. It would not be known by the North, nor would there be a need to inform ROK citizens about it. Thought about in this way, the possibility of a US submarine armed with nuclear weapons being near Byaengnyeong Island is almost greater than its not being there. 만일 미국과 한국군이 백령도 육상에 북한을 겨냥한 미사일을 설치하면, 북한의 격렬한 비난을 받게 된다. 북한을 동포로 간주하는 한국민의 여론도 거스르기 때문에 철거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미사일이 실린 미 잠수함을 섬 주변에 잠항시킨다면, 유사시에는 지상의 미사일 기지와 같은 효과를 낳는 데다 북쪽에서 감지되지 않기에, 한국민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는다. 비록 미 원자력 잠수함이 핵병기를 탑재하고 있어도, 한국 측에 알리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핵탄두의 유무는 차치하고, 백령도 주변에 무장 한 미군의 원자력 잠수함이 없을 공산이 작아질 정도다.Many US atomic submarines have more than 100 crew members. They operate the submarine by night and day shifts, so the crew is large. If a US submarine sank under the third buoy, there could have been many victims, their number comparable to those who died in the Cheonan incident. There is also the fear of radioactivity leakage. What the US military hastened to recover from the sunken submarine could have been a nuclear warhead. That is why the UDT-SEAL team of the ROK military was made to conduct the search hastily. Warrant Officer Han’s death on duty occurred in the process.미군의 원자력 잠수함 대부분은 100명이 넘는 승무원을 정원으로 하고 있다. 주야 교대제로 잠수함을 관리하기 때문에 전체 명수가 많아진다. 제3의 부표 아래에 미 원자력 잠수함이 가라앉아 있다면, 천안함 사망자 수와 비교해도 훨씬 많은 사망자가 나왔을 것이다. 방사능 유출의 염려도 있다. 침몰한 잠수함에서 미군이 급하게 꺼내려고 했던 게 핵탄두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 이유로 한국군 특수 잠수 조의 수색을 재촉하였고 그 과정에서 임무 수행 중인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다.천안함 침몰은 바로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지만, 미 잠수함의 침몰은 미 정부에 의해 은폐되고, 한국 당국도 은폐 공작을 돕고 있다. 침몰 사실을 은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미 잠수함이 유사시에 북조선을 기습으로 공격하기 위해 백령도 주변에 잠항하고 있던 사실을 북한 측이나 한국의 국민에게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사실이) 알려진다면, 북한은 화가 나서 어떠한 보복을 걸어올 것이며, 한국민의 반미 감정도 부추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KBS 등이 오보 취급당했지만, 미 잠수함의 침몰을 보도해 버렸기 때문에 이미 북한은 이번 사고의 경위를 상당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군, 군사기밀 노출 대응책 마련 착수)미 잠수함을 북한 잠수함으로 오인?The discussion so far has not come to the most important question: why did the Cheonan and the American submarine sink? I will address this now. The Jaju Minbo article, which analyzed the report by KBS TV, writes that a North Korean submarine came South, attacked the Cheonan and the US submarine, and may have sunk both boats. However, in my view, the possibility of the North having done this is extremely low.지금까지의 논의 전개는 가장 중요한 '천안함과 미 잠수함은 왜 침몰했는가'라는 분석에 이르지 않았다. 지금부터 알아보자. KBS 등의 보도를 분석한 앞의 자주민보 기사는 북조선의 잠수함이 남하해 내려와, 천안함과 미 잠수함 모두에 대해 공격하고 두 함선을 침몰시켰을 거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내가 볼 때는, 북한이 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Right after the Cheonan sinking, the US and ROK governments announced that there was little possibility that the Cheonan sank as a result of North Korean attack. If there had been a North Korean submarine attack, the North Korean government, after a few days, might have proudly announced that it had sunk both ROK and US boats. If US and ROK governments announced before then that the sinking was probably not the result of a North Korean attack, both governments would risk being criticized by citizens, and high officials would have had to assume responsibility and resign. If it was truly not an attack from the North, the US and ROK governments would be expected to quickly announce that it was not from the North. Jaju Minbo, a leftwing newspaper close to North Korea, perhaps simply wanted to show the power of North Korean military.한미 양국 정부는 천안함 침몰 직후 “북한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을 가능성은 낮다.”라고 발표했다. 만약 북한의 잠수함 공격으로 침몰했다면, 북조선 정부가 며칠 지나고 나서 “한국과 미국의 군함을 격침했다”고 소리 높여 “전과”를 발표할지도 모른다. 그 전에 한미 양국 정부가 “북조선의 공격은 아닌 것 같다”고 발표해 버리면, 한미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비난 받아 고위 관계자가 책임을 지고 사임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정말 북의 공격이 아닌 경우에만, 한미 양국 정부가 조속히 “북의 공격은 아니다.”라고 발표하는 것은 아니다. 자주민보는 북한 편향의 좌파 신문이기 때문에, 북조선의 군사력의 강력하다는 결론을 짓고 싶었을 뿐이다.As noted, a US-ROK joint military exercise was in progress that day near Byaengnyeong Island and it is highly probable that the Cheonan was at the site as part of the exercise. If a military exercise was going on, then other US and ROK ships were present. So if a North Korean submarine did attack, the US and ROK would have fiercely counterattacked and sunk it. Even if they failed to sink it and it escaped, if there had been an attack from the North, then the US and ROK could stand in the of justice for simply having defended themselves, so they would immediately have announced that such a battle had occurred.이미 말한 대로, 사건 당일에 실시 된 한미 합동 군사 연습이 백령도의 주변에서 전개되어 그 일환으로 천안함이 현장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군사 연습이 행해지고 있었다고 하면 한미 군의 다른 함선이 많이 있고, 북조선의 잠수함이 공격해와도 바로 한국과 미국이 맹렬하게 반격해 침몰시켰을 것이다. 침몰하지 않고 달아났다 해도 북측의 공격이 있었다면, 한국과 미국은 방어했을 뿐 정당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교전이 발생한 것을 바로 발표했을 것이다.The North feared that the US and ROK would use the joint military exercise as a pretext to move north and attack its nuclear facilities. Pretending to conduct a military exercise as a cover for a real attack is a plausible US military strategy. For the North to attack in such a situation would be suicidal as it would give the US and ROK a pretext for war.북한은 한미가 합동 연습을 구실로 (한미 양국 군이) 북상해 북의 핵 시설을 향해 실제 공격을 취해 올 것을 두려워했다. 군사 연습을 하는 체해서 진짜 전쟁을 준비하는 것은 미군의 전술로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 북측에서 공격을 준비하는 것은 미군과 한국군에게 전쟁의 대의명분을 주게 되는 자살 행위이다.이미 말한 대로, 천안함과 미 잠수함이 침몰하고 11일 후인 4월 7일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와 샤프 주한 미군 사령관이라는 미국의 고위 관리가 백령도 부근의 제3 부표의 수색 활동 현장에서 행해진 한 준위의 위령제에 참석하였다. 만약 3월 26일 북한 잠수함이 천안함과 미 잠수함을 격침했다면, 그것은 한미와 북한은 교전한 것이기에 한미 양국과 북한 사이에 무언가 화이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교전한 지 11일 후에 더구나 전장의 최전선인 백령도 주변에서 미국의 군사령관과 대사 2명이 모여 어슬렁어슬렁 오는 것은 너무 위험한 행위이다. (한미 양국이 북한이 교전하고 수일 내에 비밀리에 화해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천안함과 미 잠수함의 침몰은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이 아닐 것이다.5월 초순에는 중국이 김정일 위원장을 북경에 초대했는데, 이점도 3월 26일 한미 양국과 북한이 교전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는 근거이다. 후진타오의 중국은 미국의 군산 복합체에 의해, 조선 전쟁 후와 같은 '한미 VS 북중'이라는 구도에 재차 휘말리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3월 26일 미국 한국과 북한이 교전했고 그 1개월 후에 중국이 김정일 위원장을 북경에 부르면, 그것은 중국이 북한의 편을 들게 되어 “한미 VS 북중” 구도에 접근되어 무덤을 파는 격이 된다. 한미 양국과 북한이 교전했다면 중국은 김정일을 외면했을 것이다.If the boat was not sunk by an attack from the North, the remaining possibility is that an error occurred. I suspect that the US military had not informed the ROK that an American submarine was stationed underwater near Byaengnyeong Island. If the American submarine that sank at the third buoy was underwater for a long time, it follows that it did not participate in the joint exercise that day (it had other duties).북한의 공격으로 침몰한 게 아니라면, 남는 건 오폭설이 된다. 내가 의심하고 있는 것은 “미군은 잠수함을 백령도 주변에 상시 잠항시키고 있던 것을, 한국군에게 알리지 않았던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제3 부표 위치에 가라앉은 미 잠수함이 장기 잠항하고 있었다면, 당일 한미 합동 연습에도 참가하지 않은 것이 된다 (합동 연습과 별도의 임무가 있다는 말).I think it likely that the US submarine, which was off the coast to the south of Byaengnyeong, happened to approach closer to the shore than expected and ROK forces, mistaking it for a North Korean submarine, fired. When the US submarine returned fire, both boats sank as a result of a friendly attack due to a misconception. The US submarine must have known of the approach of the Cheonan with the use of a passive sonar used for receiving communication. But if the American military was keeping the presence of the submarine secret from the ROK, then the US submarine could not communicate by radio with the Cheonan.천안함은 백령도의 남쪽 앞바다를 항해하다가 예상보다 해안에 근접했고 그 결과 한국군에게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미 잠수함의 존재를 탐지해 북한의 잠수함이 잠입해 있다고 착각해 발포하고 공격받은 미 잠수함도 순식간에 반격 2척이 함께 침몰하게 되는 오인 끝에 같은 편끼리 싸워서 일어난 것이 아닐까. 미 잠수함은 수신 전용의 패시브 소나를 사용하여, 천안함의 접근을 탐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군이 한국군에 대해서도 비밀로 해 미 잠수함을 잠행시키고 있었다면, 미 잠수함으로부터 천안함에 무선 연락을 취할 수는 없다.The Cheonan was attacked from the port side. The ROK authorities announced that the Cheonan at that time was heading northwest. If that is really the case, then the boat’s port faced the open sea. The American submarine underwater near the shore would have attacked from the island side, the reverse of the open sea side. This contradicts the above hypothesis. Except, in order to hide the friendly attack by the US military ship, the possibility exists that the ROK authorities announced the direction of the Cheonan in reverse. (If they announced that the Cheonan was attacked from the island side, then the North Korea attack theory would not be possible and the suspicion of a friendly attack would become stronger.)천안함은 좌현으로부터 공격당하였다. 한국 당국은 당시 천안함은 북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그 말대로라면 좌현은 먼바다 쪽이다. 연안 가깝게 잠항하고 있던 미 잠수함은 섬이 있는 방향에서 쐈기 때문에, 먼바다 쪽과는 정반대 방향이라 위의 가설과 모순된다. 다만, 한국 당국은 미 전함과의 오인 전투의 사실을 숨기기 위해 천안함의 진행 방향을 거꾸로 발표했을 가능성이 있다. (섬 쪽에서 가격 받았다고 발표하면 북한 범행설은 있을 수 없으며 오인 전투라는 의문이 커진다.)천안함 사건 이후 중국에 위임된 남북 중재Following the sinking of the Cheonan, media and political circles in South Korea uniformly expressed condolences. Concerts and entertainment events were canceled one after another. The rightwing suddenly became active, demanding that the government “counterattack North Korea.” ROK local elections will take place in June. The Cheonan political situation will greatly influence the campaign.천안함 침몰 이후 한국의 언론과 정치권은 '애도' 일색으로, 한국에서는 콘서트나 오락물이 연이어 취소되었다. 한국 우파의 활동은 갑자기 늘어나 “북한에 반격하라”고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6월에 지방 선거가 있을 텐데, 이 '천안함 정국'은 선거전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Donald Kirk, an American reporter in South Korea, who is familiar with the American military situation, compares the Cheonan incident to 9/11. Some people say that this is going too far. But the possibility that they wish to conceal, that the Cheonan was sunk by friendly fire from the American submarine, is achieved by casting suspicion that it was sunk by North Korea. The result is that political circles and society are aroused, naturally making Americans want to liken the incident to 9/11.주한 미군의 내정에 친숙한 한국 주재 미국인 기자 도널드 커크는 천안함 사건을 “미국의 9/11 사건에 필적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지나친 말이라는 소리도 있지만, 천안함이 미 잠수함과의 오인 전투로 침몰했을 가능성을 감추고, 북조선에 격침된 의혹이 있다고 바꿔 말해, 정계 나 사회가 단숨에 호전적이 되는 사태는 미국인이 보기에 9/11과 비교하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원래 NYT 기자 '천안함 침몰, 9/11 테러에 필적하는 비극")An opmember of the ROK National Assembly challenged the Minister of National Defense, demanding that the truth be revealed and noting that the sinking of the Cheonan may have been a mistake made by the US military. He was criticized by rightwing media as “a foolish congressman trusting conspiracy theorists.” The same label was applied by the mass media to US and Japanese representatives who sought to inquire into the truth of 9/11.한국 국회의 좌파성향 한 의원은 국방 장관에게 “천안함은 미군의 핵 잠수함에 의한 오폭으로 침몰 한 것은 아닌가. 진상 규명해 달라”고 요청해 우파 언론에서 “음모론을 믿는 얼간이 같은 의원”이라고 야유로 비판하고 있다. 이것은 9/11의 진상 규명을 호소하는 미국이나 일본 의원을 요 몇 년 미일 언론에서 선동하며 격렬하게 야유하고 비판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박영선의원, 오보 판명의 “미군 오폭설”로 국방부 장관과 논쟁)Following the sinking of the Cheonan, if the US and ROK had announced that the Cheonan was attacked by the North and they would counterattack, the result would have been full-scale war. However, the US military in South Korea is moving toward withdrawal. The command in case of emergencies is scheduled to be transferred from the US to the ROK military in 2012. Moreover, leadership of international politics in the Korean peninsula is in process of transfer from the US to China with the approval of US administrations from Bush to Obama.천안함 침몰 후 한미가 “북쪽에서 공격했다.”고 선언하면, 한미는 “반격한다.” 하게 되고 사태는 정말 전면전이 되었을 것이다. 주한 미군은 철수로 방향을 잡았고, 2012년 전시 작전권이 미군에서 한국군으로 이양된다. 한반도의 국제 정치에서의 주도력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양되고 있다. 부시에서 오바마를 거쳐 미 정권은 작전권 이양을 시인하고 있다.Within the military-industrial complex centered in the Pentagon, there must be opponents of multipolarization who wish to reverse this. They do not wish to sit back and watch East Asia fall under Chinese hegemony in this manner, with US military withdrawal. They naturally seek to take advantage of the Cheonan incident to induce war betwee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and, as at the time of the Korean war, develop it into war between the US and China so as to reverse multipolarization in East Asia. Although I may be projecting too far, one may even suspect that they provoked the friendly attack by concealing from the ROK military the underwater navigation of the US submarine around Byaengnyeong Island.미 국방성의 군산 복합체의 세력 중에는 이러한 다극화의 흐름을 멈추고 역행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대로 동아시아가 중국의 패권하에 들어가고, 미군이 철수하는 것을 간과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한국과 북한과의 전쟁을 유발해 한국 전쟁 때처럼, 그것을 미국과 중국과의 전쟁으로까지 발전시켜 동아시아에서의 다극화의 흐름을 역행하고 싶다는 생각은 당연하다. 너무 지나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백령도에서 미 잠수함의 잠항을 한국군에게 알리지 않고, 아군끼리의 오폭 사건을 유발했다고 의심할 수도 있다.If a great war again erupts on the Korean peninsula triggered by the Cheonan Incident, even if Japan does not bribe the US with the “sympathy budget”, the stationing of US forces in Japan would continue, and the US would again view Japan as an unsinkable aircraft carrier. The Japanese economy would thus again benefit from Korean special procurements after sixty years. This would be a desirable outcome for Japanese who favor dependency on the US.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한반도에 큰 전쟁이 재발하는 경우 “배려 예산”으로 뇌물 하지 않아도 주일 미군의 주둔이 계속되게 미국은 다시 일본을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평가하고, 일본 경제는 60년 만의 '조선 특수'로 부흥하게 되어, 그 결과는 일본의 대미 종속 파에게는 기쁠 따름일 것이다.However, amidst the strife centered, US multipolarists appear to be stronger than the military-industrial complex (and US-Britain centrists). The result is that the Cheonan Incident has not led to a second US- Korean War. Further, what is regrettable for those in Japan and the ROK who wish to continue dependence on the US, the US has transferred to China the role of mitigating the aggravated North-South relationship.그러나 미국 권력 중심의 암투에서는 군산 복합체(미영 중심주의)보다 숨은 다극주의자들이 강한 것 같아서 천안함 침몰 사건은 한국 전쟁의 재발로 연결되지 않았다. 또한, 한일의 대미 종속 파에게는 아쉽게도, 미국은 사실상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 관계의 악화 방지 역할을 중국에 이양하고 말았다.Chairman Hu Jintao of China, on 30 April, talked with President Lee Myung-bak who attended the opening ceremony of the World Expo in Shanghai. Three days later he hosted a visit from North Korean President Kim Jong-il, making possible a China-North Korea summit. It is unclear whether Six-Party talks will be held subsequently, but China has certainly strengthened its role as mediator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4월 30일 상하이 엑스포 개막식에 참석한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과 회담하고 3일 후에는 북한의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하여 베이징에서 북중 정상 회담을 열었다. 향후 6자 회담이 열리게 될지 불명확하지만, 중국이 한국과 북한의 중개자 역할을 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Many South Korean citizens have come to distrust government pronouncements on the Cheonan Incident. In the ROK, the fact that the American submarine sank near the third buoy may change at some future time from “conspiracy theory” to fact. As long as ROK national policy remains one of dependence on the US, the matter of the third buoy will have to be suppressed. But to the extent that the ROK moves toward multipolarization (emphasizing China and coexistence between North and South), the lid will be taken off.한국의 많은 사람은 이미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지 않으며, 무언가 뒤에 숨겨진 것이 있다고 느끼고 있다. 미국에서는 9/11 사건의 내막을 좀처럼 사실로 간주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백령도의 제3 부표 아래에 미 잠수함이 가라앉아 있다는 점이 향후 어느 시점에서 '음모론'에서 '사실'로 바뀔지도 모른다. 한국이 대미 종속을 국가 정책으로 유지하는 한 제3 부표의 비밀을 은폐할 수밖에 없겠지만, 한국이 다극화 대응(중국 중시, 남북 공존)의 방향으로 바뀌면 그 은폐가 풀릴 것이다.http://www.wikileaks-kr.org/dokuwiki/cheonan위 기사 내용중 잠수함 USS Columbia SSN-771이 언급되고 있으나 저는 SSN-776으로 추정합니다..아래는 2010.05.05 수리중인 사진..2010.11월 부산에 입항한 USS Hawaii (SSN-776) 모습SSN-776 구멍난 사진추가 입니다.위사진은 USS Hawaii (SSN-776) 2010.09.03 일본 요크시카항 입항 사진위사진은 USS Hawaii (SSN-776)2010.09.24 괌 입항 사진위사진은 2010.04.14 촬영사진Let’s see! The USS Hawaii (SSN-776)?commissioned in May 2007?left for her initial West Pacific deployment on August 24-25, her shark-like skin intact. (Some background: The USS Hawaii had, in November 2009, arrived at Hawaii, skin in tatters, and went into dry dock in April 2010 to enjoy some TLC?and get that special hull treatment repaired.)http://nextnavy.com/virginia-class-announcing-the-uss-hawaii-mip-sht-failure-watch/위사진처럼 수리를 하기 위해The USS Hawaii (SSN-776) 잠수함이 into dry dock in April 2010(2010.04월)에 드라이도크에 수리 입항햇다고 합니다.2010.04월 수리하기전까지 The USS Hawaii (SSN-776)의 행적을 찿아보았습니다.USS HAWAII
SSN 776 U.S. Carriers | Decommissioned | Links | Info | History The Hawaii (SSN 776) is the 3rd Virginia-class attack submarine and the first U.S. Navy ship to be named for the 50th state. She is designed with a reactor plant that will not require refueling during the planned life of the ship - reducing lifecycle costs while increasing underway time. The contract to build her was awarded to the Electric Boat Division of General Dynamics Corporation in Groton, Connecticut, on September 30, 1998, and her keel was laid down on August 27, 2004.June 17, 2006 The Pre-Commissioning Unit (PCU) Hawaii was christened during an 11 a.m. EDT ceremony at General Dynamics Electric Boat in Groton, Conn. The Honorable Linda Lingle, Hawaii Governor, served as sponsor of the ship. Cmdr. David A. Solms is the prospective commanding officer.December 22, General Dynamics Electric Boat delivered PCU Hawaii to the U.S. Navy ahead of schedule.May 5, 2007 USS Hawaii was commissioned during an 11 a.m. EDT ceremony in Groton, Conn. The third submarine of the Virginia class, SSN 776, will bear the name Hawaii to recognize the tremendous support the Navy has enjoyed from the people of the Aloha State and in honor of the rich heritage of submarines in the Pacific theater.May 6, 2008 SSN 776 returned to Naval Submarine Base New London after a maiden underway period.May 7, 2009 USS Hawaii became the second Naval submarine in history to receive the U.S. Coast Guard Meritorious Unit Commendation for its part in counter-drug operations in the eastern Pacific Ocean, in support of Joint Interagency Task Force (JIATF) South from Feb. 20 to April 17, 2008.July 23, USS Hawaii arrived in its new homeport of Naval Station Pearl Harbor afer more than a two-month transit forom Groton, Connecticut.January 7, 2010 Cmdr. Stephen G. Mack relieved Cmdr. Edward L. Herrington as CO of USS Hawaii during a change-of-command ceremony at Joint Base Pearl Harbor-Hickam.February 16, SSN 776 is currently conducting tests at Southeast Alaska Acoustic Measurement Facility in Katchikan, Alaska.March 30, The Virginia-class attack submarine entered the dry-dock at Pearl Harbor Naval Shipyard and Intermediate Maintenance Facility (PHNSY&IMF) for routine inspection and maintenance until early May.August 25, USS Hawaii departed Pearl Harbor for its maiden western Pacific deployment.http://www.uscarriers.net/ssn776history.htm윗글 해석2010.02.16 SSN 776은 현재 katchikan, 알래스카 남동부 음향 측정 시설에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2010.03.30일 버지니아 급 공격 잠수함은 진주만 해군 조선소에서 건조 도크에 입항 중급 정비 시설에서 일상 점검 및 유지 보수를 위해 다음달까지 한다.고 나와있습니다...하지만 2010.03.30일에 입항 하지 않앗고 4월에 입항햇다고 윗에서 말하고 잇습니다.음향 테스트는 잠수함이 들키지 않고 잠항하는 테스트인데 좋은 장소는 한미연합훈련장소에 알리지 않고잠항 테스트를 하지 않았을까요?천안함 사고일 2010.03.26 부터 2010.04.05~06 정도까지 하와이 드라이 도크까지 입항했다면 충분히 도달할수 있는 거리입니다."최고 시속 40km/h로 전속 도주할 경우 추돌잠수함의 일일 이동거리는 40km/h x 24시간/day 이므로 대략 1280km를 항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중상을 입은 추돌잠수함이 최고 속도로 도주할 수 있는 지 의문이 들어서 1일 항진 거리를 약 800km 에서 1000km로 제한해 봤다. 그렇게 해서 백령도에서 진주만 까지 거리 8000km를 이 등식에 대입해 보면 곧 바로 답이 나온다. 백령도에서 야반도주한 추돌잠수함은 자신이 태어난(건조된) 하와이의 드라이도크 까지 대략 10일 (전후)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는 간단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CYz9&fldid=Gq9E&datanum=642&openArticle=true&docid=1CYz9Gq9E64220120724105722 인용오늘은 여기까지 하겟습니다...여러 사이트 자료를 보고 나름 추측해본것이니 사실과 다를수 있습니다.관심 댓글 감사합니다...다음에 또 자료가 나타나면 추론글을 올려 보겟습니다...감사합니다http://www.uscarriers.net/ssn776history.htmhttp://boramirang.tistory.com/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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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We are the Reds, 부적절한 이유"
"We are the Reds, 부적절한 이유" "붉은악마 선전이냐, 한국팀 응원이냐" [2006-03-08 09:59:31] 붉은 악마의 새 응원 구호가 We are the Reds.라 한다. 이 것은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응원 구호로는 부적절하다. 응원 구호는 경기를 하는 팀이나 그 팀의 소속 국가를 선전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 뉴우욕 양키스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New York Yankees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티셔츠를 입고 Go, Yankees, Go!라고 소리친다. 그런데 한국의 붉은 악마 응원단은 Korea는 쑥 빼고 자기 자신들의 명칭인 붉은 악마를 상징한다는 Reds만 골라 처음엔 Be the Reds라는 영어 아닌 영어를 쓰더니 다음엔 Reds, Go Together라고 맥빠지는 구호로 바꾸고 이번엔 We are the Reds.라고 또 바꾸었다. 자기들이 응원할 팀이나 국가의 명칭을 놔두고 엉뚱하게 자기 자신들의 이름을 외치며 응원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이 웃기는 응원 구호를 만든 사람들은 우리 축구팀이 주로 붉은 상의를 입고 뛰기 때문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만일 우리 팀이 노란 셔츠를 입고 뛴다면 We are the Yellows.라고 할 건가? (yellow는 미국 속어로 "겁장이" "비겁한자"를 가리킨다.) 한국팀의 공식 명칭은 따로 없다. 붉은 악마도 아니고 Reds도 아니다. 그냥 한국 팀일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Korea가 들어가는 새 구호를 만들어야 한다. Go, Korea, Go! (한국 팀 잘 해라!)라고 해도 좋고 We are Proud Koreans! (우리는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또는 Proud To Be a Korean!(한국인임이 자랑스럽다) 같은 좋은 말이 얼마든지 있다. We are the Reds.를 반대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지금 세계에는 남북한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에 서울시가 미국 수도 워싱턴 시와 자매결연을 맺으려고 하니까 워싱턴 시의원 일부가 서울이 남한의 수도냐, 북한의 수도냐고 묻더라고 한다. 그런 판인데, 외국에 나가 We are the Reds.라고 외치며 응원을 해보라.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아마도 북한 팀을 응원하는 걸로 생각할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김정일이 한국 대통령보다 더 유명한 상태다. 이렇게 말하는 필자를 보고 어떤 사람들은 아마도 반공수구꼴/통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KOREA를 빼고 Reds를 응원구호로 쓰는 것은 말이 안된다. Reds는 한국팀이나 한국을 상징하지 못한다. 당장 바꿔야한다. 워싱턴에서 조 화 유(소설가/영어교재저술가)[재미작가 조화유]http://blog.joins.com/drwyj
석종대작성일 2013-07-24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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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엽기영상] 영화같은 노래
가사와함께 한번 들어보세용
Her name was Lola, she was a showgirl
그녀의 이름은 로라였고, 쇼걸이었습니다.With yellow feathers in her hair and a dress cut down to there 그녀는 머리에 노란 깃털을 달았고 짧은 드레스를 입었답니다.She would merengue and do the cha-cha 그녀는 메렝게와 차차차 춤을 추었지요.And while she tried to be a star, Tony always tended bar 그녀가 스타를 꿈꾸는 동안, 토니는 항상 바에서 손님을 접대했었죠.Across a crowded floor, they worked from 8 till 4 북적 이는 플로어를 가로질러 그들은 8시부터 4시까지 일했습니다.They were young and they had each other 그들은 젊었고 그리고 서로가 끌렸답니다. Who could ask for more? 더 이상 바랄 것이 어디 있겠어요?At the Copa (CO!), Copacabana (Copacabana) 코파카바나에서The hottest spot north of Havana (here) 하바나 북쪽의 가장 열정적인 곳At the Copa (CO!), Copacabana 코파카바나에서Music and passion were always the fashion 음악과 정열이 항상 앞서가는 곳…At the Copa....they fell in love 코파카바나에서 그들은 사랑에 빠졌답니다.His name was Rico, he wore a diamond 그의 이름은 리코였고 부자였지요.He was escorted to his chair, he saw Lola dancing there 그는 그의 자리로 안내 받았고 로라의 춤을 보았죠.And when she finished, he called her over 그리고 그녀의 춤이 끝나자 그는 그녀를 자리로 불렀답니다.But Rico went a bit too far, Tony sailed across the bar 그러나 리코는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고, 토니는 바를 가로질러 달려갔다.And then the punches flew and chairs were smashed in two 그리고, 주먹을 날렸고 의자들은 두 조각으로 부서졌다.There was blood and a single gun shot 그곳에는 피가 난무했고 그리고 한 방의 총성이 울렸다.But just who shot who? 누가 누구를 쏜 것일까?At the Copa (CO!), Copacabana (Copacabana) 코파카바나에서The hottest spot north of Havana (here) 하바나 북쪽의 가장 열정적인 곳At the Copa (CO!), Copacabana 코파카바나에서Music and passion were always the fashion 음악과 정열이 항상 앞서가는 곳…At the Copa....she lost her love 코파카바나에서… 그녀는 사랑을 잃었답니다.Her name is Lola, she was a showgirl 그녀의 이름은 로라예요. 그녀는 쇼걸이었답니다.But that was 30 years ago, when they used to have a show 그들이 쇼를 가진지는 30년이 전의 일이었지요. Now it's a disco, but not for Lola 지금은 디스코가 인기이고, 그것은 로라에게 쇼를 하기에는 버거운 것이지요.Still in the dress she used to wear, faded feathers in her hair 여전히 그녀가 예전에 입었던 옷과 머리의 깃털들을 하고She sits there so refined, and drinks herself half-blind 반쯤 취한 그녀는 우아하게 앉아 있답니다. She lost her youth and she lost her Tony 그녀는 청춘을 잃었고 그녀의 토니도 잃었죠.Now she's lost her mind! 그녀는 망연자실해왔죠. At the Copa (CO!), Copacabana (Copacabana) 코파카바나에서The hottest spot north of Havana (here) 하바나 북쪽의 가장 열정적인 곳At the Copa (CO!), Copacabana 코파카바나에서Music and passion were always the fashion 음악과 정열이 항상 앞서가는 곳…At the Copa....don't fall in love 코파카바나에서… 사랑에 빠지지 마세요.(Copa) don't fall in love 사랑에 빠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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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영상의학 권위자 "연대 MRI는 박주신 아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인터뷰 내내 깊숙한 미궁 속에 빠져버린 듯 답답한 느낌이었다의혹과 논란이 산더미 같은데, 도대체 왜!? 박원순 서울시장은 아들 박주신의 공개신검을 뒤로 미뤄둔 채,갑작스럽고 은밀하게 MRI 촬영을 감행한 것일까? 그리고 나온 결론이 [죽은 사람이 살아날 확률보다 적다]는 세계적 희귀 증례?마치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의문점 투성이였다.겉으로 보기엔 호리호리한 20대 청년.그런데 MRI 영상을 보면 깜짝 놀랄 수준이다. 20대 청년인데, 최소 40대 수준의 노화(老化)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혹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세브란스병원이 발표한 박주신 MRI(좌측)와 35세 남자의 비교 MRI(182cm/90kg). 다음은,[영상의학계의 석학]이라 불리는 <주세페 굴리엘미> 박사가 박주신 MRI 이미지를 접한 뒤 보인 반응이다. “In regard to your question due to the BM aspect and the disc signal, I believe that this lumbar MRI can be attributed to a male of 36-40 years old.골수양태와 추간판 신호에 근거해 답을 드리면, 해당 요추 MRI는 36~40세 남성의 것으로 볼 수 있다.” * Giuseppe Guglielmi: 유럽 근골격 방사선학회, 골다공위원장Foggia 대학교(이태리), 영상의학과(방사선학) 교수, 의학박사 “late 40 to 60 I guess.Bone marrow of adult, disc bulge a little bit, mild flavum thickening, and considerable amount of visceral fat. Surprising that the retrolisthesis didn't cause pain. 40대 후반에서 60대로 추측된다.성인의 골수, 디스크 약간 돌출. 인대가 두꺼워져 있고 상당한 양의 내장지방이 보인다. 척추전위증이 통증을 수반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다.” 위는 박주신 MRI 이미지에 대한 태국 <너트> 박사의 소견이다.* Nutaya(Pattamapaspong):아시아근골격학회(AMS) 회원, Chiang Mai 대학교당시 박주신의 나이는 27세.하지만 MRI 영상의 주인은 약 40~60대로 추정된다는 게 해당분야 전문가들의 공통 소견이다.과연, 박주신은 일반인보다 최소 10~20년 이상을 앞서 살고 있는 것일까. <뉴데일리>는 좀 더 자세하고 전문적인 의견을 듣기 위해, [영상의학 분야 아시아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양승오 박사와 황성혁 대우병원 척추 신경외과 전문의를 함께 만나보기로 했다.?양승오(58)학력:?서울대학교 의학사. 석사-박사 주요 경력: 1981~1989년 서울대학교병원 수련의-전공의-전임의 1992~1993년 UCSF(캘리포니아주립대) 방사선과 연수 2004~2010년 을지대학교 영상의학부 교수, 영상의학센터 소장 2011년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암센터 병원장 2011년~ 現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암센터 핵의학과 주임과장2011년~ 現 서울대학교의과대학 영상의학 겸임교수학회활동: 아시아 근골격계학회(AMS)회장 (2011-2014) 아시아 근골격계학회(AMS)2011 조직위원장국제 근골격계학회(ISS) 평생회원, 국제협력위원대한골다공증학회 골밀도교육 위원장대한골대사학회 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 [편집자 주] 양승오 박사가 방사선과 연수를 받은 UCSF(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는 국내에서는 같은 캘리포니아주립대인 UC버클리나 UCLA보다 인지도가 낮다.그 이유는 의학-치의학-약학-간호학-생명공학에 국한해, 학사 이후 과정만 운영하는 보건의료과학중심 교육 및 연구수행 전문대학원이기 때문이다. 10개의 캘리포니아 대학 캠퍼스 중 유일하게 대학원과정만 운영한다. US News & World Report 의 2014학년도 의과대학 조사에서 미국내 4위를 차지했다.5명의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했다.샌프란시스코 시내서 동쪽으로 다리 하나 건너 있는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 의학-치의학-약학-간호학 과정이 없는 것도 샌프란시스코에 UCSF가 존재하기 때문이다.샌프란시스코 남쪽에 조성된 생명공학기업단지인 [바이오밸리]는 UCSF-버클리-스탠포드 등 3개 대학의 연구 기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황성혁(39)학력: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졸업주요 경력:신경외과 전문의 취득미국의사자격증 취득(ECFMG Certificate)울산동강병원 신경외과 척추센터 소장 역임마산센텀병원 신경외과 척추센터 소장 역임 現 대우병원 척추 신경외과 전문의활동 내역:미국 AANS 회원대한신경외과학회 회원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 회원대한근골격계초음파연구회 회원대한IMS학회 회원병원생활영어(clinically oriented medical english) 저자진료분야 : 척추클리닉-미세현미경 척추수술, 무절개 척추수술, 비수술적 척추질환치료, 척추 측만증 교정치료 이번 인터뷰는 정치적 논리를 전면 배제하고, 오로지 박주신 MRI에 대한 전문의들의 의학적 소견을 듣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MRI 주인이 박주신일 확률은 0%에 가깝다”간단한 인사를 마친 뒤 양승오 박사에게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양승오 박사가 제기한 [골수 신호강도] 문제에 대해, 한시라도 빨리 설명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주신 MRI 골수 신호강도에 어떤 문제점이 있다는 것인가. “언론을 통해 알려진 T2영상 신호강도에 따르면, 적색 조혈 골수와 황색 지방 골수가 불규칙하게 섞여 있는데, 이는 20대의 골수에서는 상당히 찾아보기 힘든 패턴이다.골수는 적색의 조혈 골수와 황색의 지방 골수로 이뤄지는데, 나이가 들면서 황색의 지방 골수가 늘어나게 된다.10~20세 남성은 24.6%의 황색 지방 골수(yellow fatty marrow) 분포를 보이지만, 21~30세 남성은 33.5%, 31~40세 남성은 41.4%, 41~50세 남성은 47.6%의 황색 지방 골수 분포를 보인다. 이러한 연령대별 골수강도를 고려할 때, 박주신의 MRI 영상에 나타나는 골수강도는 최소 35세 이상에 가까운 상태다. 20대로서는 불가능한 골수강도라 할 수 있다. 만약 박주신이 정말 심한 골초라면, 골수의 변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박주신은 비흡연자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이에 해당 MRI 영상은 박주신의 것이 아닐 가능성이 의학적으로 아주 높다. 참고로 연세대 발표 사진과 35세 남자의 척추영상 MRI 증례를 비교해 보면, 연세대 사진이 얼마나 흰색으로 나타나는 지방골수가 불규칙한 양상으로 증가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정말 희귀한 사례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데이터 모집단이 몇 명이냐 이런 식으로 따지는 분이 계실 수도 있는데, 의학적으로 한 연령군에 20~30명 이상의 통계가 있다고 하면, 정상 데이터를 낼 때 통계적 의의가 있다고 돼 있다.정상인의 골수를 모아서 냈던 통계이기 때문에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보시면 되겠다.정말 특별한 예외가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이 간혹 나오기도 하니까, 제가 0.0001%에 해당한다면 공개적으로 검증을 해보자고 하는 게 아니겠나. 골수 문제만 가지고도 재검의 여지가 있는데, 추가로 밝혀진 치아 문제와 척추 문제 등.7~8가지에 달하는 희귀한 사례들이 복합적으로 몰려 있다. 서울 방배동에 살았던 변호사 집안의 27세 남성의 것으로 보기엔, 희귀한 경우가 너무 많이 겹친다.제가 이런 생각도 해봤다.아이가 낀 자동차 보험사기 사건이라고 기억하시는가.아이를 데리고 차량 사고를 내고는, 아이의 건강보다 보험금에 더 신경을 쓰다가 발각된 사건이다.아이가 다쳤다는 걸 빌미로 상대방에게 돈을 요구하던 상황을 하나의 유추 예로 생각하시면 빠를 수 있다. 박주신의 MRI가 맞다면 정말 심각한 상태다.정상적인 집안이라면 아이가 저런 몸 상태로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 치료를 먼저 걱정해야 할 게 아닌가.”- 박주신의 치아 엑스레이(X-RAY)에도 문제점이 있다고 하셨다. 질문이 끝나자 양승오 박사가 한 치의학 박사의 분석 자료를 내밀었다. “자료를 보면 2개의 이빨은 아예 없고, 아말감으로 때운 치아 14개가 보인다.치의학 박사의 소견에 따르면, 아말감(Amalgam) 치료는 여러 단점을 갖고 있어 점차 감소추세에 있다. 실제 요즘 상당수 치과에선 레진(Resin) 치료를 선호하지 않나.젊은 사람들은 아말감이 입안에서 검게 보이기 때문에 꺼리기도 한다.일부 나이 드신 의사분들은 아직까지 (아말감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감소추세라는 점은 확실하다. 게다가 박주신 엑스레이를 보면, 하악 1소구치(아래 어금니 앞쪽)까지 아말감으로 치료했다.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이 치의학 박사는, 박주신의 영구치가 맹출을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젊은 사람이 하악 1소구치를 아말감으로 치료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전체적인 치료 상태를 보면, 소위 말하는 [야매]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최근 국내에서 교육받은 치과의사의 치료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45번, 46번 보철 치료 및 치아 상실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보철물로는 상당히 저렴한 비귀금속 합금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37번 치아는 아예 없는 상태로 방치하기도 했다.박주신의 가정환경을 고려하면, 이러한 치료를 받았을 가능성은 1%도 안 된다.서울 방배동에 거주했던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는 흔치 않은 상황이다.혹자는 아말감 치료를 10개 이상 한 게 무슨 대수냐, 하면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이는 모든 인과관계와 사실들을 무시하려는 것이다.” 아말감의 경우, 색상이 치아 색과 뚜렷하게 구별이 되며 시간이 지나면서 부식산물에 의해 치질이 착색될 수 있다. 레진은 주변 치질과 색이 비슷하고 치질과의 접착을 얻을 수 있으므로 치질 삭제량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아말감은 수복물 자체가 금속 색이고 구강 내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식이 일어나 주변 치질을 변색시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 <국가건강정보포털> 中당초 논란의 핵심이었던 박주신의 희귀한 허리(척추) 문제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황성혁 척추 신경외과 전문의에게 물었다. - 박주신은 중증디스크 환자로 확인됐는데, 그런 상태로 계단을 뛰어다닐 수 있는가?“고령의 환자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환자의 나이는 만 26세다. 나이가 어리면 통증수용체도 활발하고 전반적으로 통증에 대한 감각이 예민하다. 고령인 경우 통증감각이 둔해져서, 디스크가 심한 경우나 심지어 압박골절이 있는 경우에도 잘 견디는 분들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저 나이 때는 많이 아파한다. 그리고 중앙부위 탈출의 경우에는, 양이 좀 많아도 공간이 비교적 넓기 때문에 견디는 경우가 있지만, 저 사진의 경우 편측으로 쏠려 있다. 편측성 디스크가 통증이 더 많이 올 수 있고, 편측으로 치우치면 치우칠수록 통증이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저 MRI는 편측으로 많이 치우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탈출정도가 심해 후종인대까지 들어 올릴 정도라면 통증이 많이 심할 것이다. 급성기가 지나면 통증이 약간 줄어든다. 중증디스크라도 간간히 견딜 수 있는 정도로 통증이 감소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주 불편할 정도의 통증은 잔존한다는 것이다. 횟수가 얼마나 되건 분명히 간헐적인 통증이 찾아온다. 즉 병원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너무 심한 디스크탈출을 방치하다보면, 감각신경이 부분적으로 손상되면서 통증감각이 둔해져 통증이 덜해질 수 있다. 이런 경우 당기는 통증은 줄어들 수 있으나 찌릿찌릿한 전기적 감각이 남을 수 있고, 저린감-무딘감 등이 잔존하게 되므로 불편한 통증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신경 손상으로 인해 다리를 부분적으로 절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박주신 MRI 문제와 비교했을 때 이해가 비교적 쉬운 그림의 예시. ⓒ황성혁 제공 - 지난해 논란 당시, 박주신은 치료를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는데.“그게 이상하다는 얘기다.박주신 정도의 디스크의 경우 실제 어떤 치료를 하게 되는지 설명하겠다. 디스크의 치료방침과 치료방식은 의사마다 상당한 변이(variation)가 있다. 따라서 여기서 설명하는 내용은, 일반적으로 수술적인 치료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저의 치료방법에 대해서 알려드린다.일단 심한 디스크이므로 신경마비의 유무를 파악한다. 만약 마비(발가락, 발등 등이 힘이 약간 빠지는 경우)가 있다면 응급수술이다. 마비가 없는 대부분의 경우에는 우선 통증을 가라앉히는 치료가 우선될 것이다. 급!성!!기에 통증이 너무 심한 경우는 마약성 진통제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다행히 심한 급!성!기 통증이 지나갔다고 치자. 다행히 마비도 없다. 하지만 급성!기가 지나갔다고 해도 저 정도의 중증 디스크라면 통증이 심할 것이다. 급!성!!기가 지나갔다고 해도 아주 강력한 진통제 및 뉴론틴(neurontin) 같은 신경통증을 안정화 시키는 전문적인 약을 써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보통 뉴론틴은 수술 후 3개월이 지난 경우에, 하지-방사통이 잔존해 불편감이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약으로서 증세가 심한 사람에게 보통 처방된다. 강력한 진통제 및 뉴론틴을 적절히 병용해서 사용한다고 해도 가끔씩 좌측 다리로 뻗쳐 내려가는 좌골신경통(sciatic pain)은 계속 발생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저 정도의 환자라면 약물치료 단독으로는 어려울 것이고, 경막외강신경차단술(epiidural block)이나 신경차단술(nerve block)과 같은 시술이, 통증을 조절하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그렇다면 저렇게 젊은 사람이, 집안도 넉넉한데, 저런 상태를, 독한 약만 먹고 간간히 신경차단술을 받으며 전전하려 할까? 통계적으로 가능성이 아주 낮다. 젊고, 할 일도 많고, 집안도 부유하다면, 통증을 견디는 것보다는 요즘에는 여러 가지 비수술적인 시술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므로 비수술적 무절개시술을 받지 않겠나 생각한다.① 경피적 내시경적 디스크 제거술② 경피적 내시경하 레이저 디스크 제거술 ③ 경피적 디스크내 열치료④ 경피적 경막외강 신경박리술이러한 비수술적 무절개 시술을 큰 부작용 없이 받을 수 있는데 약만 먹고 참고 산다? 저런 시술을 받지 않는다면 정규적인 신경차단술 등이 필요하며 약물도 계속 필요할 수 있으므로 병원 이용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다.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 상황이다.”- 혹시 MRI 및 X-RAY에서 다른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나?질문을 던지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날아들었다.양승오 박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황성혁 척추 신경외과 전문의가 [박주신 의혹]과 관련해 설명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양승오 박사는 일부 네티즌이 일련의 의혹제기를 [타진요] 사건과 비교하는 것과 관련, “증명하는 법이 간단한 문제를 갖고 [타진요] 사건에 빗대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의학계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양승오 박사가 말을 이었다.“이런 조합들이 한사람에 일어날 가능성은 산술적 확률을 떠나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근데 박원순 시장 측에서는 무슨 이유인지 아예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저는 국가기관인 <원자력의학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종의 공인이다.국가의 녹을 먹는 공인이 이렇게 얘기를 하면 어떤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신기한 일이다.저 뿐만이 아니다. 의학계에서 상당한 궁금증을 갖고 있는 사안이다.공개재검에서 박주신의 MRI가 맞다고 검증이 되면, 제가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든지, 혹은 MRI 등 검사비용 일체를 부담하든지 책임을 질 수 있겠다. 그런데도 아무런 대응이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정치적 목적도 없는 의학적 확인 차원이 아닌가.(양승오 박사와 <사회지도층 병역비리 감시단>은 박근혜 정부의 첫 국무총리 정홍원 당시 후보의 장남 정우준 검사의 병역문제도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이건 희귀증례 보고 차원의 문제도 아니라고 본다.왜냐? 희귀증례라 하면, 무슨 질병이 있다는 인과관계에 따라 치료법을 추구하든지 해야 희귀증례지, 이건 애시당초 27세 남성의 MRI 영상이 아니라는 게 제 입장이다.일반인과 의학계의 상식을 벗어나있지 않은가.이게 정말 박주신의 것이라면 [골수 조로증](progeria·早老症)이 있는 것이다.이런 병은 어디에도 존재하질 않는다.만약 진짜라면, [빨리 늙는다]는 새로운 병이다.35세 이상 환자의 사진을 갖고 27세라고 우기는 게 아닌가 싶다.”이쯤에서 궁금해졌다.왜 양승오 박사가 박주신 병역의혹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는지, 그래서 물었다.- 공인(公人)의 신분으로 이렇게 전면에 나서게 된 계기가 있다면?“처음엔 박주신 MRI 영상에 대해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만 인지하고 있었을 뿐, [이걸 내가 나서야 되나] 하는 생각만 갖고 있었다.트위터 상에서만 활동하고 있을 때였다.그런데 중 박원순 시장이 지난해 4월 서울대 강연에서 박주신 MRI 발표 건과 관련, [끝까지 가만히 있으려 했지만 의사까지 나서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 의사 자격증 제도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조차 했다]고 하더라. 말도 안 되는 적반하장격이었다.여기서 그냥 두면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대한민국 의사들이 [멍청이]라는 소리인데 과연 이게 타당한 건지, 그걸 제가 직접 검증해보자는 취지로 나서게 됐다. 아울러 진중권씨가 우리나라 의사들을 영상맹(image blindness)이라고 비난한 것과 네티즌 배정태씨-박원순 시장의 [4억 내기] [10배 배팅] 발언도 제가 직접적으로 개입하게 된 계기가 됐다.” [조중동은 쓰레기 하류 일간지]라고 주장하는 네티즌 배정태씨는 지난해 2월 양승오 박사에게 돈 내기를 제의했다.양승오 박사가 [박주신 대리신검 의혹]을 거듭 제기하자, 배정태씨는 4억원 내기를 제안했고, 양승오 박사는 다시 판돈을 10억원으로 올리자고 했다.이에 배정태씨는 트위터를 통해 박원순 시장에게 [새로운 타진요가 많다]고 알렸고,박원순 시장은 한 술 더 떠 (판돈을) 10배로 높이라고 했다.
이단호크작성일 2013-05-21추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