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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야상 수상작 '야수의 날' (1995) 플릭스하우스에서 공개 중
*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 장르 및 소재 특성 상 잔혹한 내용 및 충격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 부탁 드립니다. 야수의 날 (1995)El día de la bestia The Day of the Beast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연출작, 알렉스 앙글로 , 산티아고 세구라 , 아르만도 드 라자 , 지미 바르나탄 , 루디스 바토롬 출연작이자 스페인, 이탈리아 합작인 블랙 코미디 영화 작품으로 주인공 일행이 크리스마스에 태어난다는 적 그리스도의 탄생 장소를 알아내려다 벌어지는 내용을 다룬 작품으로 평론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 로튼토마토에서 신선한 토마토를 받는데 성공했으며, 고야상 수상작에도 등극했습니다. https://flixhouse.com/video/3404 이 글을 올린 시점 기준으로 플릭스하우스에서 영어 자막 지원 캡션 기능과 함께 공개 중이며, 아래 내용은 TMDB에서 인용한 작품 소개입니다. 1997년 크리스마스 이브. 마드리드에 사는 수백만 명의 시민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들떠있다. 하지만 이 모든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잉태하려는 악마의 출현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다. 앤젤 베라투아 신부는 신학자로서 25년간 대학에서 요한 계시록을 연구해왔다. 마침내 그는 요한 계시록에 숨어있는 세계 종말의 메시지를 찾아내게 된다. 그것은 1997년 크리스마스 새벽에 마드리드에서 적 그리스도가 태어날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신부는 적그리스도가 태어나는 시간만을 알아냈을 뿐 장소는 알지 못한다. 그는 사탄과의 만남을 위해 임시방편으로 스스로 악의 길로 접어드는데... 한국의 제도권 언론 기사에서도 이 작품에 대해 소개한 바 있으며, 이와 관련해선 아래 뉴스 링크를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영화 다시보기]야수의 날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0100059?sid=103
콩라인박작성일
2025-10-31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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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신과 외계인
신은 존재 하는가? 라는 단순 명료 심플한 명제에 대해 몇가지 낙서를 해볼까 합니다. 우선, 첫단계로 예수는 존재 하는가? 1. 예수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사용되는 자료 비기독교 사료로마 역사학자 타키투스(《연대기》, 약 116년): “크리스투스(그리스도)는 티베리우스 치세에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되었다” 기록.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유대 고대사》, 약 93년): 예수를 언급하는 구절 존재(다만 기독교인들이 후대에 수정했을 가능성 있음).플리니우스(서간집, 112년경):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신으로 숭배했다고 기록.→ 이 자료들은 예수가 실제 인물이었다는 강력한 간접 증거로 자주 인용됩니다. 성경적 전승자료신학적 색채가 강하긴 하지만, 복음서에 등장하는 구체적 지명, 정치 상황, 인물 관계는 상당 부분 역사적 사실과 일치.특히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했다”는 사건은, 당시 로마와 유대 사회 맥락상 충분히 발생 가능한 역사적 사실. 2. 예수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장(예수 신화론, Jesus Myth Theory) 동시대 기록의 부재예수는 기원후 30년경에 활동했지만, 그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는 최소 수십 년 후(70년 이후)에 집필됨.예수와 직접 같은 시대를 산 로마·유대 저술가 중 그를 직접 언급한 사람은 거의 없음. 유사 신화 패턴예수의 이야기(동정녀 탄생, 죽음과 부활, 기적)는 고대 근동·지중해 신화와 유사한 부분이 많음.예: 이집트의 오시리스,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페르시아의 미트라 신화 등.따라서 예수 전승은 기존 신화 모티프를 차용한 종교적 창작물일 가능성. 요세푸스 기록의 조작 가능성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에 등장하는 예수 관련 구절은 후대 기독교인이 삽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학자도 많음.복음서의 내부 모순4복음서 사이에도 연대·사건·말씀 기록이 다르며, 신학적 목적에 따라 편집된 흔적이 분명.따라서 역사 기록이라기보다는 종교 공동체의 신앙 고백일 수 있음. 두줄 요약다수 학자 입장: 예수는 역사적 인물일 가능성이 높음. (소규모 유대인 설교자 → 사후 신격화)소수 학자 입장: 예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복음서와 초기 기독교 신앙은 신화적 창작물. 외계인 입장.(헛소리니 무시해도 됨)예수는 실존 인물이지만 내용과 전승은 터무니 없이 왜곡되고 과장 되었음. 대표적으로 오병이어..마치 빵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가 뻥튀기 된것처럼 서술된건데, 사실 모인 대중들에게서 처음으로 삥뜯은게 오병이어고, 예수 똘마니들이 돌아 가면서 걷은게 많아서 갈수록 늘어난게 와전됨. 재미로 보는거고 실제로 신의 존재 유무를 논하는 심각한 철학 게시글 아님…심각하게 갑론을박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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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축의금 내고 피로연장 직행,충격”.韓결혼식에 탄식한 그리스 출신 대주교
[헤럴드경제=나은정 기자] 그리스 출신으로 26년간 한국에서 사목활동을 해 온 조성암(64·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 대주교가 한국의 결혼식에서 하객이 축의금을 낸 뒤 피로연장으로 직행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조 대주교는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한국 정교회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달라진 한국의 결혼식 풍격을 언급하며 “한국에는 가족 간 유대, 사람들 사이의 정, 훌륭한 음악적 전통, 춤과 노래가 많다. 왜 이런 아름다운 것을 버리고 미국과 같은 스타일을 모방하는지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조 대주교는 부임 초기 때와는 너무나 달라진 결혼식 모습에 놀라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더니 함께 갔던 한국 지인들이 “이게 코리안 스타일”이라고 반응했다고 한다.이에 그는 “예전에는 결혼식장 가면 다 같이 인사를 나누고, 하객도 풍성했는데 지금은 형식적으로 의례를 치른다”며 “사랑의 부재, 소통의 부재가 어디까지 왔는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국내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났던 조 대주교는 요즘엔 학생들 간에도 대면 소통을 잘 하지 않는다며 “우리에게 지금 부족하고,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고 짚었다.그는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림으로써 직접 사랑을 가르쳐 주셨다”며 그리스도교에서 강조하는 사랑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행동·실천을 의미한다. 특히 희생이 있는 실천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조 대주교는 기후 위기에 대해서도 “우리는 바로 재앙, 큰 파국 직전에 서 있다”고 꼬집다.그는 이날 배포한 회견문에서 기후 위기의 고통이 특히 약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가중되고 있다면서 “약자·소수자 편에 섰던 역사를 이어받아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이뤄지는 세상, 모든 생명의 존엄이 지켜지는 세상을 위해 불평등에 도전하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조 대주교는 1960년 그리스 아이기나섬에서 출생, 1991년 사제 서품을 받고 1998년 아테네 신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그해 12월부터 한국 정교회에서 사목활동을 시작했다.
나딤작성일
2024-11-26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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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일반] [도서] 2022년 3, 4분기 지극히 개인적인 문학 작품 리뷰
2022년 3, 4분기 읽었던 (문학작품위주) 책들의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찰스 디킨스 저/왕은철 역재미 ★★★ 작품성 ★★★ 시작은 허클베리핀의 순수함에서 중반은 하울의 성속 미스테리로후반은 셜록 홈즈의 스릴러와 같이결말은 참다운 신사 위 책은 학생들을 위한 축약본 입니다. 두꺼운 책에 불편함을 느끼시는 분은 위 책으로 읽어 보셔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시대는 영국이 산업 혁명 초입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죄수선 에서 도망친 죄수를 도와 주자 누나의 꾸중을 듣게된 핍은 해비삼이라는 큰저텍에서 ‘숙녀의 말벗’을 통해 첫사랑 소녀(에스텔라)를 만나게 됩니다. 시골뜨기라고 놀림을 받지만 그녀의 외모에 빠져들어 신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어느날 익명의 누군가가 그를 신사로 키워주겠다고 하여 런던으로 떠나게된 핍은 친구 허버트를 만나 흥청망청 돈을 쓰며, 매형 조를 도와 대장장이 일을 했던 자신의 본 모습을 잃어 가기 시작 합니다. 은인을 알게 되고 영국을 떠나 무역상으로 큰 성공을 하게된 핍. 고향에 돌아온 핍은 자신에게 파멸과 복수심마저 들게 했던 에스텔라를 고향에서 우연히 만나 그녀에게 참다운 신사가 무엇인가를 보여 주게 됩니다. 재미 ★★★ 작품성 ★ 결말은 “그래서?” 작가는 큰 것들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래, 코끼리, 덩치 큰 여인 겉은 크지만 속은 여린 대상들에 대하여 잔혹하게 다룹니다. 이야기 또한 모든 것은 결정되어져 있다 말합니다. 금복, 박색 노파, 춘희 3명의 여인의 삶이 얽혀져 끝없는 다양한 이야기 힘으로 끌고 갑니다. 책을 읽을 때 지루함이 생길 여력이 없이 현실과 상상을 오가며 독자를 즐겁게 해줍니다. 생존을 위한 가학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이것은 숙명적인 것입니다. 후반부 아기의 죽음은 이 여인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려고 이러나 싶기도 했습니다. 이야기 구조는 솔직히 그렇게 탄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걸 풀어가는 작가의 능력은 탁월한 것은 인정 합니다. 재미 ★ 작품성 ★ 딕의 작품 중 가장 실망한 작품입니다. 1965년 최우수 휴고상등 여러상을 받았지만 이 작품이 그만한 가치가 있나 하고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내용은 2차 대전의 승전국 일본, 독일이 미국을 통치 하지만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일본은 미국의 역사, 문화(카우보이, 재즈, 야구)를 부러워하고 기념품으로 소장하고 싶어 합니다. “높은 성의 사내” 에 사는 작가는 연합군이 승리한다는 소설을 발표하고 은둔하였지만 사회적으로 책은 반체제적 소설이라 하여 금서가 되고 그를 암살 하기 위해 킬러를 보내게 됩니다. 일본인이나 미국인이나 미래를 주역을 통해 점을 치고 의지하려 합니다, 물론 작가도 일반 생활은 물론이고 주역의 퀘를 뽑아서 책을 쓸 때도 있다고 하지만 너무도 얕은 주역해석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습니다. 재미 ★★ 작품성 ★★ 냉동보존된 인간과 의식을 되살려 대화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참신했습니다. 반 초능력자를 막으려는 런시터라는 초능력회사가 등장합니다. 어벤져스와는 다른, 신체적인 능력보다는 정신적 능력에 특화된 초능력자들입니다. 런시터의 직원들은 의뢰를 받고 11명의 초능력자들은 달기지로 이동 하지만 반 초능력 세력의 함정에 빠져 시간 퇴화라는 기괴한 현상에 휩싸이게 되며 한명씩 퇴화로 인해 사망하게 되지만, 퇴화를 멈추기 위해서는 ‘유빅’ 이라는 물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읽다 보면 정신이 어지러울 수도 있습니다. 시간대가 후퇴하다 갑자기 이전 시간대로 오고 가면서 공간을 넘나들다 보면 반전으로 결말을 맺습니다. 재미 ★★★ 작품성 ★★★ 초한지 하면 이문열의 ‘초한지’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문열은 초한지를 자신의 사관으로 해석해서 ‘초한지’의 역사를 소설처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책은 견위의 [서한연의]를 저본으로 삼아 옮긴 것입니다. 초한지 또한 삼국지처럼 여러 버전이 있지만. 역사적 진위를 따지기 위해서는 사마천의 [사기]외에는 어떤 판본을 저본으로 근거로 삼았는지 밝혀진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이 책은 국내에 누락되었던 부분을 추가하며 삽입시를 모두 번역해 넣은 최초의 책입니다. 각주 또한 상세히 기록하며 원전의 삽화를 되살려 고증을 되살렸습니다. ‘사면초가’, 지록위마‘, ’금의환양‘, ’건곤일척‘ 등 익숙한 사자성어들의 어원과 함께 모사, 배신, 정략, 전술 등 서초 패왕항우, 한중왕 유방 그리고 중국인들이 말하는 진정한 한족의 역사 “한”이 등장 하게 됩니다. 장기판도 항우와 유방의 초, 한을 기초로 하는 게임이죠. 재미 ★★ 작품성 ★★★ 단편 중 광인일기와 아큐정전이 재미 있었습니다.. 광인일기 모씨는 모든 사람이 식인 한다는 피해망상증을 잃고 있습니다.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이 식인을 한다고 믿으며, 자신에게 좋지 못한 시선의 사람들이 자신을 살찌워 잡아먹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심지어 가족인 형마저 식인을 한다고 믿게 되고, 광인이 아이들을 구하라고 말하며 일기가 끝이 납니다. 아큐정전 아큐는 날품팔이 일을 하는 미천한 남자입니다. 하지만 그는 늘 정신승리를 합니다. 마을의 부자가 잘사는 것을 부러워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잘 났고, 그 부자에게 빰을 맞아도 아들이 아버지를 팬다는 식으로 괴변을 합니다. 무대뽀, 똥배짱 정신이 가장 어울립니다. 어느날 ‘우마’라는 여자에게 청혼을 하다 거절 당한 후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져 일거리를 배정 받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하는 상황에서도 내가 마을을 떠난다고 생각 합니다. 얼마뒤 아큐는 돈을 벌어 돌아와 그를 무시하던 이들도 그를 환대하지만 도둑질을 한 사실을 들통 나게 됩니다. 1920년 신해혁명 혼란한 시기 혁명당원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마을일에 간섭합니다. 마을 부자집에 도둑이 들고 자신이 체포되어 끌려 가는데 그는 혁명당원이라서 끌려 간다고 생각 합니다. 아큐는 결국 사형을 당하게 되지만 마을 사람들은 외면하고, 결국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고 허무하게 총살을 당하고 맙니다. 중국인의 민족성을 적나라하게 표현 되었습니다. 마오는 혁명에 대한 중국인의 정신을 지적하며 문화 혁명 속에서도 살아남은 작품이 루쉰의 작품입니다. 아큐를 통해 자신이 패배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정신승리법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중국의 민족성. 중화주의에 빠져 여전히 봉건적 사고방식에 빠져 개혁과 근대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중국 사회를 비판하는 소설입니다. 번역에서 좀 아쉬웠습니다. 혹시 읽어 보실 분은 다른 번역가의 작품으로 읽어 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재미 ★★★ 작품성 ★★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형수 ‘게리 길모어’의 가족사 논픽션 소설입니다.모르몬교 어머니, 사기꾼 아버지, 그리고 4형제, 어찌 보면 평범할 수도 있는 가족. 살인을 저지른 게리는 재판장에서 자신을 사형하고 모든 법적 절차를 포기 합니다. 이런 형을 회유 하며 마이클(막내)는 여기 까지 오게된 이유를 가족사를 통해 찾아갑니다. 총 6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어머니 베시 길모어의 종교 모르몬교, 종파 이야기 형제들의 폭력성의 연관성 2부는 아버지 프랭크 길모어의 내용으로 아버지의 폭력성을 추적 합니다.3부 4부는 길모어 4형제의 성장과 방황 폭력의 역사를 정리 해갑니다.5부는 게리의 사형집행과정 6부는 게리의 사형 후 삶 가족을 추적한 내용을 정리 합니다. 범죄자 가족사를 끈질기게 추적하면서, 밑바닥까지 내려가 가족이란 끊어질 수 없는 끔찍한 존재임과 동시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란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재미 ★★★ 작품성 ★ 현생 인류보다 더 뛰어난 초인류가 존재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을 결정 하는 이는 누구인가? 유전의 법칙에 의해서 현생인류는 멸망하고 초인류가 지배하는 세상이 될 것인가? 문제는 간단하게 제노사이드로 결정되고, 그들을 지키려하는 자, 제거 하려는 자, 살아남으려는 자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며 긴장감을 늦출 수 없습니다. 700페이지 정도 되는데도, 거의 단숨에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척이나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책의 내용 중 한 심리학자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근거리에서 적 병사와 조우한 미군 병사가 총의 방아쇠를 당긴 비율이 얼마나 될 것 같나?”“겨우 20%”“이 결과에 군은 당황했어. 병사가 도덕적이라면 그쪽이 곤란하지. 그래서 발표율을 높일 만한 심리학 연구가 새행되었고 배트남 전쟁의 발표율은 95포센타까지 급상승했어”“사격 훈련 때 표적을 원형 표적에서 인간형 표적으로 바꾸고 진짜 인간인 것처럼 자동적으로 튀어나오게 했어. 거기다 사격 성적에 따라 가벼운 징계를 내리거나 보수를 주었지.”‘적을 보면 반사적으로 발포한다’는 목적을 위한 이 훈련 방법에는 큰 결함이 있었다. 병사의 심리적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은 발포하는 시점까지였던 데다 적을 죽인 후에 발생하는 트라우마까지는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베트남 전쟁 귀환병들 사이에 대량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가 발생했다. 이를 보완하는 또 다른 대안 ‘심리적 거리와 물리적 거리’ 즉 원거리 공격입니다. 인류를 멸망 시킬 수 있는 핵은 상대를 마주 보지 않고 쉽게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는 손쉬운 방법이지만 이 버튼을 누를수 있는 자가 있는자가 미치광이라면.. “DON’T LOOK UP“ 재미 ★★★ 작품성 ★★★ 남자는 오만했고 여자는 편견에 쌓였었다. 하트포드셔의 작은 마을 베넷가는 다섯 자매가 있었습니다. 이웃에 빙리라는 부자가 이사 오고 첫째딸과 빙리는 서로에게 호감이 생겨 가까이 하게 됩니다. 빙리의 친구 다이시는 오만한 인상으로 인해 둘째딸과 티격태격 합니다. 빙리와 제인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사랑에 대한 의문으로 인해 두 청년은 하트포드셔를 떠나게 됩니다. ‘재산 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그 시대는 여자의 성공은 부자와 결혼하는 것 이였습니다(현시대도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스틴 또한 파혼의 아픔으로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첫 문장을 통해 남성들을 비꼬면서 시작 합니다. 결국 결혼으로 귀결되지만 비혼인 오스틴의 입장에서는 참 잘 표현한 문장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번역을 새로이 하여 출간되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번역보다 훨씬 매끄러워진 문장들이였습니다. 민음사는 역시 믿을 수 있는 출판사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재미 ★★★ 작품성 ★★★ 러시아가 낳은 인류 최고의 문학 거장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그가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이유는 바로 인간의 가장 깊숙한 곳을 꿰뚫어보는 통찰에 있습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와 아버지 그리고 연인들, 그리고 돈. 살인 구조는 평범합니다. 하지만 이작품은 인간의 심층 심리에 대해서 탐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심문관 부분에서 다루고 있는 신과 구원의 문제는 이 소설의 가장 핵심 부분입니다. 인류의 점진과정에 대한 깊은 긍정 의식을 함축하고 있는 계시적 소설입니다. 장남 드미트리를 둘러싸고 모든 사건들이 펼쳐집니다. 그는 생활력, 강렬한 정열을 소유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정직한 마음과 순수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모순적인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동요하게 됩니다. 둘째 이반은 교활하고 탐욕스러우면서 이지적인 면을 지닌 무신론자입니다. 그는 극단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설 구조상 가장 복잡한 인물입니다. 셋째 알료샤는 가장 선한 케릭터입니다. 수도원에 몸담고 있으며 동포애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합니다. 알료사의 스승 조시마 장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시마 장로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을 이야기 합니다. 여기에 물욕과 음탕의 상징인 아버지 표도르, 백치의 여자거지에게서 태어난 막내 스메자르코프를 중심으로 부자간 및 형제간의 애욕을 그린 작품입니다. 재미 ★★★ 작품성 ★★ 1920년대 러시아 두 번의 혁명이후 로스토프 백작은 1편의 시로 인해 매트로폴 호텔에 종신 연금이 됩니다. 자신의 스위트룸에서 쫓겨나 창고로 쓰이던 다락방에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백작은 호텔 안에서도 자신의 삶을 잘 이끌어 나갑니다. 나이와 직업을 불문하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자신의 일을 만들고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즐기고, 다른 사람들을 돕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이 책의 장점은 음식에 대한 맛의 묘사입니다. “처음에는 프로방스 지방의 따사로움이 넉넉하게 느껴지는, 생선뼈와 회향과 토마토를 끓이고 달인 수프를 맛본다. 그다음, 부두의 어부에게서 구입한 얇게 저민 해덕의 부드러운 살과 홍합의 짭짤한 탄력을 맛본다. 그리고 스페인산 오렌지와 술집에서 구한 압생트의 당돌한 맛에 놀란다.” 호텔에 오는 손님에게 음식을 추천하고, 식당 지배인, 주방장, 백작 3명은 따로 음식 품평회를 하는 등 우정을 나누며, 다양한 친구들과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스토리가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후반부에는 마치 첩보 스릴러 영화와 같이 진행 됩니다. 제목은 모스크바인데 러시아 문학 특유의 차가움보다는 따뜻한 휴머니즘이 주입니다. 재미 ★★ 작품성 ★★ 1930년대 삼대에 걸친 재물을 향한 인물들의 욕망과 인물의 복합성, 시대의 군상들을 잘 보여 줍니다. 시대에 앞선 다중성적인 갈등 묘사는 문학의 한 개성의 세계를 열었습니다. 부자집 삼대가 한지붕에 살면서, 재산 증식과, 신분 상승에 온 생애를 바치고 가부장제의 맨 윗자리에 앉은 조부(조희관), 2년간 미국 유학을 다녀온 개화기 지식인이며 기독교인, 젊었을때는 신념 있는 자로서 추앙 받았으나 3.1 운동 이후 일본지배 체재가 공고히 되어 허무주의에 감염되어 여자, 술과 노름 마침내 아편에까지 빠져 듭니다(조상훈 부대). 조씨 가문의 새로운 가장이 되는 덕기, 이야기의 중심으로 조씨 집안의 재산을 노리는 수원집 일당의 음모를 물리치며, 보수적 중간계층의 현실주의자입니다. 줄거리는 조부는 본첩이 사망하고 첩(수원집)을 끼고 돌며 신분 상승을 위해 족보를 사고 고향땅에 정자를 짓는 등 집안의 뿌리 유지를 위해 노력 합니다. 부 조상훈은 교회관련 학교를 운영하면서 아들(덕기)반 동기(경애)를 임신시키고 자식을 낳지만 외면하고 쉬쉬하고, 집안에서는 기독교의 교리에 따라 제사 지내는 것을 거부하고 신분 상승에 돈을 쏟아 대는 조부일당 패거리들에 반감을 가집니다. 아들(덕기)는 그나마 가족 중 가장 현실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조부는 상훈의 태도에 불만을 가지고 집안을 일으킬 이는 덕기라 생각하여 재산 열쇠를 덕기에게 넘겨줍니다. 한편 덕기의 친구 병화는 경애와 연애를 하게 되고, 이를 지켜보는 덕기는 애매모호한 상황에 둘을 때어 놓으려 하지만 자신이 오히려 병화의 하숙집 딸에게 호감을 가집니다. 어찌보면 막장 드라마 같이 보일수도 있지만, 나름 시대적 상황이 잘 녹아들어서 초반에는 분노하였지만 후반에 가서는 부대가 불쌍하였습니다. 책은 방언(서울)과 구어체 표현으로 쓰여 있어 읽기 힘들었습니다. 3/1정도 읽고 나니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글에 리듬감이 느껴져서 친숙해 지기도 하였습니다. 재미 ★★★ 작품성 ★★ 밀레니엄 언론사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미스테리한 여인 리스베트 살란데르 두 인물의 우연한 만남과 사건이 3부작으로 이어지면서 처음은 대기업 총수의 조카 실종사건(1부)을 시작으로 살인사건이 연루(2부)되어져 국가의 비밀조직(3부) 으로 이어지는 정말 엄청난 스케일의 작품입니다. 책 표지에 유럽에서 1억부가 판매 되었다는 광고를 보고 그냥 책팔이 위한 상술문구라고 의심하고 읽기 시작하였더니 단숨에 3권이 읽혀집니다. 어떻게 이렇게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게 만들 수 있는지 정말 놀랍기만 합니다. 다 읽고나서도 이후 이야기가 궁금해지지만 총 10부작으로 기획하고 쓰여 졌지만 아쉽게 작가는 3편만을 출판하고 사고로 인해 사망하여 이후 작품을 출간 못된 것이 너무나도 아쉽게만 느껴집니다. 재미 ★★ 작품성 ★★ 크레타 섬 광산 채굴을 위해 떠나던 중 조르바라는 의문 인물을 고용하게 되고, 그의 자유로운 모습에서 자신이 찾는 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서양인이 바라본 붓다의 깨달음이랄까 억압과 억제된 자신을 분출해내라는 조르바, 소리로 표현 할 수 없는 감정은 춤으로, 뜨거운 욕망은 사랑으로, 인간이 신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닌 굳이 신의 모습이 아닌 본능적인 나가 되어 가길 바라는 조르바의 열정적 행동으로 인류애를 실현하는 깨져버린 붓다의 모습, 결국 조르바가 원하는 삶이란 치열하게 현장에서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확신에 가득차서 실천하는 삶을 권장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덤으로 뜨거운 아프리카 바람에 섞인 크레타섬의 풍광이 펼쳐집니다. “열매를 잔뜩 맺은 올리브 나무와, 은빛 잎새 사이로 멀리 평화롭게 잠든 바다, 희끗한 구름이 쉴 새 없이 태양 앞을 지나쳐 그럴 때마다 대지는 숨이라도 쉬는 듯이 슬퍼 보이다, 기뻐 보이다 하는 그곳.” 번외 전문성이 없는 일반 번역가에게 전문 번역을 맡기면 어떻게 명작을 망작으로 만들어 지게 되는가를 보여준 책입니다.내용은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린 모든 것에 소유하려 하고 말 속에서도 소유를 하고 있다는 어찌 보면 불교 서적을 보는 듯 했습니다.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번역가라서 그런지 용어를 직역한 느낌 이였고 구글 번역기를 돌린듯 했습니다. 보는 내내 잘못 읽었나 하고 다시 읽어 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할 정도이니 후반까지 참고 읽어낸 제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였습니다. 다행이 절판 되었습니다. 제발 전문분야는 전문 번역가에게 맡겨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로오데작성일
2023-03-0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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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일반] [인류학] 문화의 수수께끼
빗자루와 악마연회 하나는 사람들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녀가 있다고 믿었던 이유가 무엇인가?또 하나는 이와는 전혀 다른 문제로 16세기와 17세기에 이런 마녀사상이 그토록 널리 일반화된 까닭은 무엇인가? 15세기에서 17세기 사이, 유럽에서 50만명이 마녀 또는 마법사라는 죄목으로 화형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의 죄목은 악마와 계약을 맺은 죄,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 죄, 불법적인 악마연회에 참석한 죄, 악마에게 예배한 죄, 악마의 꽁무니에 입 맞춘 죄, 얼음같이 차디찬 성기를 지닌 남성 악마인 인쿠비(Incubi)와 성교한 죄, 여성 악마인 수쿠비(Succubi)와 성교한 죄 등이다. 악마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공중을 날아다닌 죄, 단 하나만 으로 도 수많은 마녀가 화형 당했다. 마녀에 대한 ‘고백서’는 많지만 자신이 정말 마녀라고 자인한 사례는 실제 역사 속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고백서’와 관련한 불행한 사실은 그 고백서들이 대개는 마녀 피의자들을 고문해 받아썼다는 것이다. 마녀들이 악마와 계약을 맺고 하늘을 날아 악마연회에 참석했다고 고백하기까지 고문은 계속되었다. 또 악마연회에 참석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말할 때까지 고문은 계속되었다. 처음 자백한 것을 번복하려 하면 그 자백을 재확인할 때까지 더욱 악랄한 고문이 가해졌다. 즉 고통을 덜 받고 화형주에서 조용히 죽어갈지 아니면 몇 번이고 고문을 당할지 선택해야 한다. 피의자 대부분은 화형주를 선택했다.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회개한 마녀들은 그 대가로 장작더미에 불이 붙기 전에 교살당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종교재판 사실 지구상의 어느 사회에서나 어떤 형태로든 마법 개념이 존재한다. 그러나 유럽에 있던 마녀광란처럼 그렇게 격렬하고 오랫동안 지속된 것은 없었다. 어느 사회의 마법처형에서도 유럽에서 만큼 그렇게 많은 희생자를 내지 않았다. 원시사회에서는 누가 마귀에 씌었다고 의심받으면 고문이 죄의 유무를 밝히는 수단의 하나로 사용되기는 했어도, 내가 알기로는 고문으로 조작된 마녀의 입에서 다른 마녀의 이름을 끌어내는 사례는 하나도 없었다. 유럽에서도 다른 사람의 이름을 고백하게 하는 데 고문이 이용된 것은 1180년 이후부터였다. 11세기 이전에는 악마와 함께 있었다는 누명을 쓴 사람이 처형되는 경우가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 마법사니 마녀니 또는 마법을 사용하는 초자연적 능력이 있느니 하며 비난했다. 사실 초기에는 가톨릭교회는 하늘을 나는 마녀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기원후 1000년에는 그렇게 날아다니는 존재가 있다고 믿는 것을 금지했다. 1480년 이부터는 날아다니는 존재가 없다고 믿는 것을 금지했다. 기원후 1000년경 교회는 날아다니는 마녀라는 말은 악마가 조작해낸 환영에 불과하다고 공식 발표했다. 500년 후 교회는 날아다니는 마녀는 환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악마와 손잡은 사람들이라고 공식 표명했다. 13세기에 마녀사냥제도는 성숙되었고 완성단계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당시까지만 해도 마녀사냥제도는 마녀와 투쟁하는 단계는 아니었다. 교회는 초기에는 마녀의 고문을 허용하지 않았다. 고문은 유럽 전역에서 새로 일어나는 로마의 십일조와 성례독점권을 위협하기 시작한 불법적인 교회조직 구성원들에 대해서만 허용되었다. 교회는 이런 체제 전복적인 움직임을 제거하기 위해 종교재판소를 설치했다. 이 종교재판소는 이교도를 근절하는 단 한 가지 기능을 하는 준군사적인 특수기관이었다. 이교도들이 비밀단체로 변하자 수사가 여의치 않음을 깨달은 교황의 수사관들은 이교도들에게 자백을 강요하고 연루자들의 이름을 말하도록 고문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했다. 13세기 중엽 교황 알렉산더 4세는 고문권을 인정했다. 악마연회는 이교종파들의 비밀집회와 아주 흡사했다. 다른 이교들에게 한 것처럼 마녀들을 고문하면 그들의 자백으로 광범위하게 비밀 음모집단을 색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로마교황은 굴복했다. 교황 이노센트4세는 1484년 교서를 내려 독일 전역의 마녀들을 근절하기 위해 완전한 종교재판권을 사용하라고 허락했다. 인스티토르와 스프렌거는 그들의 저서 [마녀들의 망치]를 통해 교황을 납득시켰다. 이 책은 그 후 오랫동안 마녀사냥의 지침서가 되었다. 그들은 상상만으로 악마연회에 참석하는 마녀들도 있지만 실제로 많은 마녀가 물리적으로 참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사람이 마녀들의 위해한 일들을 입증해 분명히 감지했다고 주장하는데, 그 마녀들의 모든 마법과 위해한 행동을 환상이라고 주장하고 마녀들을 두둔할 자가 누가 있겠는가? 사람이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불운, 가축과 곡식의 손해, 아이들의 죽음, 질병, 아픔과 고통, 무신앙, 불임, 정신병 등은 마법 때문에 생긴 것이 되었다. [마녀들의 망치]는 마녀 색출방법, 소추방법, 재판방법,고문방법, 유죄판정방법, 선고방법 등을 소상히 설명하며 끝맺고 있다. 이제 마녀사냥제도는 이후 200년 동안 전 유럽을 휩쓸 수 있는 완벽한 제도가 되었다. 카톨릭 마녀사냥꾼 들이나 프로테스탄트 마녀사냥꾼들 모두 사냥제도에 따라 무자비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해마다 투옥되어 화형당한 마녀들의 자리를 충원할 새로운 마녀들을 끊임없이 공급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녀광란 교회가 15세기 전투적 메시아니즘 전통의 대변란들을 진압하기 위해 자원이 밑바닥이 났을 때에 마녀 진압 같은 일에 노력한 까닭은 무엇인가? 체제유지와 이단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에 항거하는 격렬한 메시아니즘적 저항과 더불어 마법신앙이 점점 널리 퍼져나갔던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직전 교황은 마녀들에 대한 고문을 허용했고 이 마녀광란은 통일된 기독교가 종지부를 찍고 전쟁과 혁명이 계속되는 16세기와 17세기에 절정에 달했다. 유럽 대중은 봉건주의가 붕괴하고 강력한 민족국가들이 출현함으로써 가장 억압받는 시기를 맞게 되었다. 무역과 시장경제, 금융제도의 발달로 토지 소유자와 자본가들은 최대 이윤을 얻기 위해 기업을 키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봉건제 장원의 사유지와 성곽도시의 특징이었던 소규모 부권주의적 관계가 붕괴해야만 성취될 수 있었다. 토지 소유권은 분할 되고 농노와 가신 대신에 지주와 소작인이 생겼다. 영주 대신 상품 작물을 경작하는 기업농이 생겼다. 농민들은 거주지와 주택을 잃었고 수많은 무산농민은 도시를 떠돌아다니며 임금노동자로 전락해 일거리를 찾았다. 11세기부터 인간의 생활은 경쟁적이고 비인격적으로 변하면서 상업화되었다. 즉 전통보다는 이윤에 지배되었다. 빈곤과 소외가 늘어나자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은 교회의 죄와 사치, 부의 집중, 굶주림와 질병, 이슬람제국의 확장, 귀족 간의 끊임없는 전쟁등 으로 이 세계의 종말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결국 마녀광의 실제적인 의미는 마녀광란을 통해 중세 후기 사회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교회와 국가에서 인간의 형태를 취한 가상의 괴물에게 전가 시켰다는 데 있다. 이 괴물의 환상적인 행위 때문에 고통 받고 소외되고 영세화된 대중은 부패한 성직자들이나 탐욕스러운 귀족들을 저주하는 대신에 미쳐 날뛰는 악마들을 저주하게 되었다. 교회나 국가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대중과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가 되었다. 성직자와 귀족들은 도처에 흩어져 있지만 간파해내기 힘든 적들에게 인류를 보호해주는 위대한 보호자로 등장했다. 결국 이 때문에 십일조를 바치고 세리들에게 군소리를 말아야할 이유가 생겼다. 소란과 분노, 화염과 연기 속에서 내세보다 현세의 삶을 보존해주기 위한 것들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마녀광란은 저항할 수 있는 모든 잠재 에너지를 분산시켰다. 마녀광란은 가난한 자와 무산자들의 저항운동의 가능성을 박탈하고 이웃끼리 서로 싸우게 하며 모든 사람을 소외 시키고 공포에 몰아넣었으며 불신을 고조 시켰고 무기력하게 했다. 그 결과 지배계급에 의존하게 했으며 단순한 지역적인 문제에 모든 사람이 분노하고 좌절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마녀광란은 가난한 자들에게서 부의 재분배와 사회계급 타파를 요구할 수 있는 능력과 교회 및 사회제도에 대결할 수 있는 능력을 점점 더 박탈했다. 마녀광란은 과격한 전투적 메시아니즘을 거꾸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마녀광란은 사회특권층의 마법적 총탄이었다. 바로 이것이 마녀광란에 감춰진 비밀이었다. 마녀의 복귀 반문화는 원시인들의 삶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삶을 예찬한다. 반문화인들은 염주를 목에 걸고 머리띠를 두르고 문신하고 울긋불긋한 옷을 입는다. 오래전부터 서구 과학기술의 발달과 모순된 것으로 간주되었던 태도와 어른들이 예기치도 않게 다시 나타나게 된 것은 ‘반문화’라는 생활양식의 전개와 관련이 있다. 반문화라는 생활양식에서는 감정, 자발성, 상상력 등이 선한 것이고 과학, 논리, 객관성 등이 악한 것이다. 반문화라는 생활양식을 주장하는 자들은 ‘객관성’에서의 도피를 역병이 창궐하는 지역에서 빠져나오기나 한 것처럼 자랑스럽게 여긴다. 반문화의 주된 모습은 의식이 역사를 지배한다는 신앙의 형태로 나타난다. 인간이란 자신의 마음속 생각대로 행동하는 존재다. 인간을 더 선하게 만들려면 그의 의식 속에서 더 선한 이념을 불어 넣어주면 된다. 객관적 상황이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전 세계는 ‘의식의 혁명’ 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범죄를 증식 시키고 빈곤을 타파하고 도시 환경을 개선하고 전쟁을 없애고 평화를 누리고 인간과 자연을 조화 시키며 살기 위해 인간에게 필요한 단 한가지는 제3의 의식에 마음을 열어 놓는 것이다.“의식은 구조에 우선한다...... 전 국가연합체는 오직 의식에 의존하고 있다.” 반문화운동의 목표는 의식을 표현하고 과시하고 바꾸고 끌어 올리고 확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의식을 객관화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하는 것이다. 즉 이성이란 쓸모없는 ‘쇠부스러기’처럼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다. 제3의 의식에 도달한 사람들은‘사실’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들은 사실을 알 필요가 없다. 사실을 알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출판된 시기가 1975년이라는 것을 어느정도 감안 하셔야 합니다. 히피 문화가 퍼지고 반문화 활동이 활발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현시대도 무시 할수는 없을듯 합니다. 책은 [문화의 수수계끼], [식인문화의 수수께끼],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총 3권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슬람, 유대교 에서는 돼지를, 흰두는 소를, 기독교는 말을 먹지 못하는 이유, 전쟁이 일어나면 인구수가 감소해야 되지만 줄지 않고 폭증하는 이유, 식인 문화와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등 다양한 인류학적 궁금증을 유물론적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오데작성일
2023-02-19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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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일반] 인문학 기초 18 - 러셀 <서양철학사> 정리
1부 고대 철학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의 각각 그리스 철학자들에 대해 다루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찾아낸 중요한 주제의 일부가 어떻게 중세 카톨릭 철학에 편입되고, 근현대까지 살아남아 근현대 철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분명하게 보여 준다. 러셀에 따르면 철학은 그리스 문명 속에서 처음 과학과 분리되지 않은 형태로 탄생했고 두 가지 경향이 그리스 문화를 지배했다. 하나는 정념을 중시하고 종교에 몰입하며 신비를 표방하고 내세를 믿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경험을 중시하고 합리주의를 내세우며 다양한 사실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려는 경향이다. 전자의 경향은 오르페우스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피타고라스와 플라톤과 플로티노스를 거쳐 헤브라이즘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한 축으로 편입된다. 후자에는 헤로도토스와 초기 이오니아 자연철학자들을 비롯해 어느 정도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도 포함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경험을 중시하고 합리주의를 내세우는 경향은 중세에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다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 철학에서 되살아난다. 말하자면 그리스 문명은 철학을 처음 탄생시켰고 중세 그리스도교 문명의 출현에도 일조했으며, 중세 말 르네상스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근대 철학의 사상적 원류다. 다만 러셀은 그리스 문명이 근대 철학의 원류라는 해석에 대해, 그리스인의 기여는 수학과 연역 기술을 발명했다는 점에 국한한다. 특히 기하학은 그리스인의 독창적 발명품인데, 기하학이 없었다면 근대 과학은 성립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특정한 사실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하여 귀납적으로 추론하는 과학적 방법은 근대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단서를 붙인다. 근대에 이르러서야 과학적 지식은 사실을 관찰하고 가설을 수립하며, 수립된 가설을 시험하는 과정을 거쳐 형성된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2부 가톨릭 철학 카톨릭 철학이 중세를 어떻게 지배했는지 보여준다. 러셀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구별에 따르면 카톨릭교회는 세 가지 근원에서 유래한다. 성스러운 역사는 유대교에서, 신학은 그리스 사상에서, 지배 방식과 교회법은 최소한 간접적으로라도 로마법에서 생겨난다. 종교 개혁은 로마적 요소를 거부하고 그리스적 요소를 완화했으며 유대교적 요소를 강화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역사적 한계를 뛰어넘어 각각 중세 교부 철학자들과 스콜라 철학자들에 의해 다시 수용되어 독특한 신학 체계로 발전했다. 중세 카톨릭 제도는 세속 국가와 대립하는 일종의 정치권력으로서 힘을 발휘했는데, 중세 카톨릭 제도는 세속 국가와 대립하는 일종의 정치권력으로서 힘을 발휘했는데, 카톨릭 철학은 신학의 기초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정치철학의 기초도 제공했다. 당시 카톨릭 철학은 유럽 사회를 통합하는 역할을 했으며, 카톨릭교회 내부에서 일어난 정통 신앙과 이단 사상의 충돌은 카톨릭 제도 개혁의 계기인 동시에 개신교 성장의 계기를 만든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었다. 러셀은 초기 교부들이 어떻게 플라톤의 철학을 카톨릭 교리에 맞춰 편입시켰는지 설명한다. 또한 교회가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굳게 믿은 세속 군주와 평신도는 교황권을 강화시켰고, 중세 교회 제도가 안정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어떻게 교회가 공인한 철학 속에 편입되었는지 명퀘하게 풀어낸다. 무엇보다 카톨릭교회가 외경으로 분류한 자료도 광범위 하게 다루며, 공의회 운동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카톨릭 철학으로 공인한 배경이 되었다는 점도 증명했다. 따라서 중세 교회는 순수한 종교 체계가 아니라 일종의 권력 기구로서 당대의 사회, 정치, 문화를 지배했다. 가톨릭 철학은 바로 중세를 지배한 사고방식이자 지배 이념이었다는 말이다. 중세 카톨릭 철학은 일정한 시기 동안 사회 통합에 기여했으나 사회, 정치, 환경이 바뀌면서 영향력이 약해졌다. 그리스 철학이 로마 시대에 적합하지 않아 버려졌듯 카톨릭 철학도 유사한 운명을 맞이했다. 어느 시대든 사회를 통합하는 요소와 해체하는 요소를 둘 다 내포하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은 로마 시대에 더는 효력이 없어져 쇠퇴했고, 로마의 행정 제도를 모방한 중세 카톨릭 제도의 출현과 더불어 카톨릭 철학이 발전했으며, 상업 도시와 속인의 세력이 강해지고 카톨릭교회가 쇠퇴하면서 르네상스 운동과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곧이어 근대 자연과학과 근대 철학이 발전했다. 3부 근현대 철학 근대 철학의 주요 흐름을 명확하게 짚어내고, 현대 철학의 흐름을 미리 보여 준다. 근대 철학은 종교의 권위를 거부하고 과학의 권위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 교회의 권위에서 해방되면서 개인 주의가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무정부주의도 등장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은 스콜라 철학을 지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구속으로 느꼈다.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사회, 정치적 상황은 무정부 상태와 다름이 없었으며, 이를 배경으로 마키아벨리의 정치 학설이 출현했다. 사회는 불안정했으나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천재들의 활동이 왕성한 시대였다. 17세기에 이르러 데카르트를 시작으로 개인주의와 주관주의 경향이 뚜렷한 근대 철학이 등장했다. 이후 근대 철학은 주관주의를 극단까지 밀고 나가거나 주관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근대 철학의 문을 연 데카르트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사유가 존재한다는 근본적 확신에 입각하여 외부 세계를 추론했다. 이것은 버클리와 칸트를 지나 피히테로 발전해 나가는 첫 단계일 뿐이며, 피히테에 이르면 모든 존재가 단지 자아에서 유출될 따름이다. 이러한 주관주의 경향은 분명히 불건전해 보이며, 이후 철학은 이러한 극단적 입장에서 벗어나 상식적 일상 세계로 탈출하려는 시도로 점철된다. 철학에서 근대 합리주의와 경혐주의는 중세의 신중심주의에서 탈출하여 인간중심주의의 길을 열었다. 신중심주의는 인간 밖에 실존하는 절대 존재인 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인간에게 계시를 내리고, 인간이 그것을 객관적 기준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믿는 견해다. 반면에 인간중심주의는 모든 것의 기준이 바로 인간 자신의 주체성이라고 주장한다.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의 합리주의는 객관주의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으나, 결국 인간의 이성이 신의 자리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베이컨과 로크, 버클리, 훔으로 이어진 경혐주의 철학의 끝은 이성으로도, 경험으로도 현실을 객관적으로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이자 완벽한 주관주의로 귀결되었다. 회의주의를 극복하고 이성으로 객관적 지식이 가능함을 보여 주려고 했던 마지막 근대 철학자가 바로 칸트였다. 그러나 이성에 대한 불신은 19세기 이후 점점 깊어졌다. 물론 프랑스에서 합리주의를 여전히 지지한 프랑스 계몽철학자들과 실증주의자가 있었고, 영국에도 여전히 경험과 이성을 신뢰한 공리주의자들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루소 같은 계몽철학자는 이성보다 심정에 따른 감정의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했다. 독일 철학의 합리주의 경향은 관념론으로 발전했고, 비합리주의 경향은 감수성과 의지의 힘을 예찬한 낭만주의로 발전했다. 18세기에 감성을 앞세운 루소는 낭만주의의 선구자였으며, 의지를 형이상학적 근원으로 보았던 쇼펜하우어와 권력의지로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려는 니체는 주의주의(主意主義)를 대표한다. 19세기 말에 낭만주의와 주의주의에 맞서 합리주의를 재건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현대 합리주의자들은 수학과 논리에 근거한 객관적 방법으로 주관주의를 극복하고자 했다. 러셀은 이러한 흐름을 명쾌하고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러셀에 따르면 19세기를 지나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과학기술은 실용성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마음속에 새로운 사고방식을 심어 놓는다. 기술 발전은 힘에 대한 감각을 일깨웠는데, 인간이 자기 환경의 처분에 맡겨져 있지 않고 오히려 환경을 적극적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형성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영감을 받은 철학이 바로 힘을 강조하는 철학이며, 인간이 아닌 모든 존재를 단지 가공되지 않은 재료로 생각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러셀은 이러한 경향이 일종의 광기요 바보짓이라고 단언하고, 건전한 철학이라면 이에 대한 해독제를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셀이 제시한 해독제는 합리적 회의주의자의 태도로 직시하고,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사회를 다듬고 재편해 나가자는 것이다. 철학자, 수학자, 사회운동가, 교육자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 버런트 러셀. 생각만하고 글만적는 여타 철학자들과는 달리 사회에 사회에 참여하며, 아인슈타인과 함께 핵무기의 위험을 알리는 ‘러셀 아인슈타인 성명’을 발표하고 군축 평화 문제를 논의, 베트남 전쟁, 캐네디 암살 조사, 인도 중국 국경 분쟁, 쿠바 미사일 위기 등 당대 많은 현안에도 적극적을 참여했다.
로오데작성일
2022-11-13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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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이태원 참사에 대한 느낀점과 시청으로 가기 위한 가옥.
소록도 100주년을 맞아 고흥군이 40여 년간 한센인들을 돌보았던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를 노벨평화상에 추천한다고 한다. 한센 병력으로 인해 격리된 사람들의 섬 소록도는 오랜 세월 차별과 폭력, 단종과 학살이 자행된 인권의 사각지대이자 침묵의 땅이었다. 수녀님과 같은 이들이 있어 갇힌 사람들은 고통을 덜었을 것이나, 덕분에 그 고통은 100년이나 지속되었다. -알라딘 eBook <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중에서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지 일주일이 되었다. 두 아이의 아빠로서 느껴지는 마음의 폭풍이 상당하였다. 내 아이들이 저 현장에 있었다면… 이런 생각이 드니 더욱 견디기 어려운 마음이 지속되고 있다. 서울 이랜드의 지지자 톡방에서 지난 이태원 참사 시간대 한 분이 이태원에 계신 분들 조심하라고 이야기가 올라왔는데 한 참 잘 시간이라 큰 신경 안쓰고 일어났는데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거기다 그 분은 그후로(평상시도 채팅이 거의 없었지만) 조용하셔서 어떤 불행한 일이 있었나 아니면 괜찮은가 걱정이 컸는데 어제 용기를 내서 물었다. 다행이 괜찮다고 전하여와서 어찌나 가슴을 쓸어 내렸는지. 이번 이태원 참사로 말들이 많다. 그러나 기독인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외쳐야 하는 정의가 세상법 테두리 안에 정의만 공의만 외친다면 그것은 반대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와 반대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할 것이다. 서두에 홍은전 선생님이 지은 ‘그냥, 사람’에 한부분을 올린 이유가 이것이다.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나 교회 공동체적으로나 그들은 단절된 상태에서 보호를 받고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단절과 차별의 고통은 지금도 지속된다.노예 제도가 사회법으로서 당연하던 시절 노예 제도를 반대하면 불법적이며 불의한 것이고 심지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까지 이야기가 되었다. 테드 제닝 ‘무법적정의(Outlaw Justice)’에서는 이같은 내용에 대하여 소상히 나온다. 또한 김근주 교수님이 쓴 ‘구약의 숲’, ‘오늘을 위한 레위기’에도 마찬가지다. 정치적인 진영 논리는 개들에게나 줘버리고, 위로 받아야 할 자들과 함께 그야말로 울부짖으며, 원통함에 가슴 칠 때 같이 가슴치는 자가 되려고 한다.놀러갔니 뭐니 그리고 종교적으로 할로윈이 무슨 귀신놀음이니 개같은 소리하는 자들이 많아 마음이 격동된다. 내가 젊은 시절은 명동, 대학로, 신촌이었고 거기가 바글바글 거렸고 거기가 젊은이들의 성지였다. 이제 노는 장소마저 정치적인 진영, 그리고 노는 문화의 장소적 규정을 하며 분리하고 또 분리하려 드는지. 종교적으로는 마치 그곳이 ‘소돔과 고모라’의 현현처럼 이야기 하기도 한다. 젊은이들의 잘못은 없다. 그리고 요번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등지신 그 누구도 잘못이 없다. 두 아이의 아빠로서 아이의 훈육의 과정에서 ’배타지 마라‘, ’이태원 가지마라‘, ’어떤 직업 갖지 마라(우리 나라는 산재로 거의 매일 5-6명이 죽는다)‘ 이런 방향이 과연 맞을까?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마라라고 한다면 100명 넘어가는 곳을 말하는지 200명 넘어가는 곳을 말하는지..무슨 바리새적 율법 규정보다 많아지고 그 안에서 허덕이려고 하는지..전적으로 행정적으로나 어떤 부분이든 책임은 어른들에게 있고 더 정확히는 현 정부의 전적인 책임이다. 명예와 권위 앞에 노블레스 오블리쥬는 사라지고 그것들을 지키기 위한 엉뚱한 분노만이 가득할 뿐이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오늘 토요일 시청으로 나가서 설명도 해주고 불의에 대하여 설명하고 요번 이태원 참사에 대하여 그 희생자들에 대하여 추모하며 울고 저항하는 자리로서 나가려 한다. 그것이 무법적 정의(Outlaw Justice)의 길일 것이다. 추신 : 기독교 이야기가 나와서 불편하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gae독이 맞습니다. 불편하신 분들께 사죄드립니다. 그동안은 사실 촛불 집회를 이런 저런 이유로 불참하였는데 이제는 안되겠습니다. 그래도 함께 하실 분들 모여서 외치셨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광화문이 불허가 되서 시청이라고 합니다 5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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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일반] 인문학 기초 17 - 러셀 서양철학사 (서론)
철학이란? ‘철학’은 넓든 좁든 여러 방식으로 써온 말이다.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 철학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지식으로 규정하거나 확정하기 힘든 문제와 씨름하는 사변적 측면을 포함한다. 그러나 철학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전통을 따르든 계시를 따르든 권위보다 인간의 이성에 호소한다. 명확한 지식은 무엇이든 과학에 속하는 반면, 명확한 지식을 초월한 교리는 모두 신학에 속한다. 신학과 과학 사이에 자리 잡고 양측의 공격에 노출된 채,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영역이 있다. 이 무인지다(No Man’s Land)가 바로 철학의 세계다. 사변적 정신의 소유자가 대체로 흥미를 느낄 만한 문제에 대해 과학은 거의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며, 신학자의 확신에 찬 대답도 이전 세기와 달리 확신을 주지 못하는 듯하다. 세계는 정신과 물질로 나뉘는가? 만일 그렇다면 정신은 무엇이고 물질은 무엇인가? 정신은 물질에 의존하는가, 아니면 독립된 힘을 가지는가? 우주는 통일성 혹은 목적을 가지는가? 우주는 어떤 목표를 향해 서서히 진화하는가? 자연 법칙은 정말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오직 질서에 대한 선천적 사랑 때문에 자연 법칙을 믿게 되는가? 인간이란 천문학자의 눈에 보이듯 작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 행성 위로 무력하게 기어 다니는, 불순물이 섞인 탄소와 물로 구성된 조그마한 덩어리에 불과한가? 그렇지 않으면 [햄릿]에 등장하는 고뇌에 찬 존재인가? 혹시 인간은 두가지 면을 다 지닌 존재인가? 고귀한 삶의 방식과 비천한 삶의 방식이 따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모든 삶의 방식이 다 헛된 것에 불과한가? 만일 고귀한 삶의 방식이 있다면 무엇이 그러한 삶을 이루며, 우리는 어떻게 고귀한 삶을 성취하는가? 선은 진가를 드러내려면 영원해야 하는가, 아니면 우주가 엄연히 종말을 향해 가도 선이란 추구할 만한 것인가? 지혜란 존재하는가, 아니면 지혜란 최고로 세련되게 포장된 어리석음에 불과한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실험실을 뒤져 봐야 소용없는 노릇이다. 신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모든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주겠다고 공언했으나, 바로 명확성이야 말로 근대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이 의혹을 품게 된 원인이었다. 정답이 없더라도, 앞서 열거한 질문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철학의 일이다. 한 시대와 한 민족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각각에 속한 철학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철학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어느 정도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인간과 환경의 상호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철학을 거의 결정하며, 거꾸로 사람들이 형성한 철학이 환경을 거의 결정한다. 수 세기이 걸친 철학과 환경의 상호작용이 앞으로 우리가 다룰 주제다. 과학은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말해 주지만, 우리는 아주 조금만 알 따름이다. 또 만일 우리가 얼마나 많이 모르는지 망각한다면, 엄청나게 중요한 많은 일에 무감각해지고 만다. 다른 한편 신학은 사실상 무지의 영역까지도 안다는 독단적 믿음을 이끌어 냄으로써, 우주를 향한 일종의 주제넘고 오만한 태도를 양산한다. 생생한 희망과 공포 앞에서 맞닥뜨린 불확실성은 고통스럽지만, 위안을 주는 동화에 의지해 살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그러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철학이 제기하는 질문을 망각해서도 안 되고, 철학적 질문에 대해 의심할 수 없는 답변을 찾았다고 자신을 설득해서도 안 된다. 확실한 진리는 없다고 주저하며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지 않고 의연히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철학이 지금도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철학의 변화 신학과 구별되는 철학은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제 1기 철학은 고대에 철학의 길로 들어선 후 그리스도교가 발전하고 로마가 몰락했을 때 신학의 영향으로 수면 아래 가라앉았다. 11세기부터 14세기에 걸친 제 2기 철학의 위대한 시기는 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비롯한 몇몇 위대한 반항아를 제외하면 카톨릭교화의 지배를 받았다. 이 시기는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나 절정에 이른 혼란 속에서 파국을 맞았다. 17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제3기 철학은 선대 철학자들이 활동한 이전 어느 시기보다 과학의 지배를 많이 받는 형국이다. 전통으로 자리 잡은 종교적 믿음은 계속 중요한 가치로 수용되지만, 정당화가 필요하다고 느껴지거나 과학이 정당화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면 교정되거나 수정되어 왔다. 근현대 철학자 가운데 카톨릭교회의 관점에서 정통 신앙을 대변한 철학자는 거의 없으며, 철학자들의 세속화 경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중요한 역할을 한 쪽은 교회보다 세속 국가였다. 철학의 역사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는 시기까지 그리스 사상은 도시국가에 대한 거의 종교에 가까운 애국적 헌신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리스 사상의 특징인 윤리 체계는 시민들의 생활에 알맞았으며, 대부분 정치 활동과 관계가 있었다. 그러다 더 개인적이고 덜 사회적인 윤리 경향이 출현했다.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유덕한 삶을 시민과 도시국가의 관계가 아니라 영혼과 신의 관계로 생각했다. 이로써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삶을 위한 길을 미리 준비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스토아학파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정치적 성향이 없었기 때문에 초창기 3세기 동안 정치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 긴 시기 동안 자유 시대로부터 전해진 그리스 사상은 점차 변형되었다. 옛 시대의 사상 가운데 몇몇은, 특히 종교적 색채를 띤 사상은 상대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획득했다. 합리적인 사상은 시대정신에 더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제되었다. 이 과정에서 로마 후기에 등장한 이교도는 그리스의 전통을 그리스도교 교리 속에 편입하려고 적정 수준까지 다듬고 수정해 나갔다. 5세기 말부터 11세기 중엽에 이르는 암흑기 동안, 서로마 세계는 꽤 흥미로운 변화를 겪었다. 그리스도교 때문에 발생한 신에 대한 의무와 국가에 대한 의무의 갈등은 교회와 왕이 벌이는 갈등 형태로 변모했다. 서유럽 전역에서 성직자 계급은 로마의 지시를 받는 단일 조직을 형성했다. 교회는 과거의 전통을 계승한 곳이자 당대의 가장 뛰어난 문명을 대표하는 조직이 되었다. 반대로 세속 권력은 튜턴족의 혈통을 이어받은 왕과 귀족이 장악했지만, 모든 군대가 왕들 편에 섰는데도 교회는 마침내 승리했다. 교회가 승리한 이유는, 일부는 교회 성직자들이 교육을 거의 독점했기 때문이고, 일부는 왕들이 끊임없이 서로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된 이유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지배자와 민중이 다 같이 교회가 바로 천국의 문을 여는 힘을 가졌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왕이 영원한 시간을 천국에서 보내야 할지, 지옥에서 보내야 할지를 결정하기도 했다. 신하가 군주에게 충성할 의무를 면제해 주는 동시에 반기를 들도록 선동하기도 했다. 게다가 교회는 무정부 상태의 혼란 속에서 질서를 상징하는 대표 조직이었으므로, 떠오르는 신흥 상인 계급의 지지를 얻어 승리를 거두었다. 중세의 공인된 철학은 시대를 비추는 정확한 거울이 아니라 한쪽의 생각만을 비추었을 뿐이다. 이후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카톨릭교회의 철학을 해설되어지고, 50년 후 단테는 두 극단의 문화를 종합하여 완벽한 의미에서 중세 사상계를 포괄하는 유일하게 균형 잡힌 해설을 내놓았다. 단테 이후 정치적 이유와 지적인 이유 때문에 중세 철학은 더는 종합되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의 대분열과 공의회 운동, 르네상스기의 교황 제도는 종교개혁 운동을 초래했고, 이는 전 그리스도교의 통일과 교황 중심의 스콜라식 통치 이론을 훼손했다. 르네상스가 예술은 여전히 질서와 규칙을 추구했지만, 사상은 오히려 무질서와 혼란을 추구함으로써 상대적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16세기 이후 유럽 사상사는 종교개혁이 좌우한다. 종교는 유럽 세계를 복종시킨 힘이었지만, 정작 이탈리아에서는(교황) 종교가 붕괴되었다. 군주들은 영토 내 교회가 민족적 색채를 띠게 되면 교회를 지배하기 쉬워져, 교황과 지배권을 나눠 가질 때보다 자기 영토 내에서 힘이 훨씬 강력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러한 이유로 루터의 혁신적 신학 사상은 북유럽의 광대한 지역에 걸쳐 지배자와 민중에게 두루 환영을 받았다. 카톨릭교회는 세 가지 근원에서 유래한다. 성스러운 역사는 유대교에서, 신학은 그리스 사상에서, 지배 방식과 교회법은 최소한 간접적으로라도 로마 법제에서 유래한다. 종교개혁은 로마적 요소를 거부하고 그리스적 요소를 완화했으며 유대교적 요소를 강화했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처음에 로마제국이, 다음으로 로마 교회가 만들어 낸 사회 결속을 원상태로 돌려버린 민족국가 세력과 협력했다. 카톨릭 교리에 따르면 신의 계시는 성서에서 끝나지 않고 교회를 매개로 대대손손 이어지며, 교회의 가르침에 복종할 의무를 개인에게 부여했다. 반대로 개신교도는 교회가 계시의 매개자라는 설을 거부했다. 진리는 오로지 성서 속에서 찾아야 하며, 저마다 단독으로 성서를 해석해도 되었다. 사람들이 성서를 해석할 때 서로 차이가 나더라도 이러한 논쟁을 해결하도록 지명된 신성한 권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실생활에 서는 국가가 이전에 교회에 속했던 권리를 주장했지만, 이것은 권리의 침해이자 남용에 불과했다. 개신교 이론에서 영혼과 신 사이에 어떤 매개자도 존재해서는 안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심상치 않은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다. 진리는 더는 권위자에게 묻지 않고 내면을 성찰함으로써 확인했다. 더불어 정치계에서는 무정부주의로, 종교계에서는 신비주의로 빠르게 발전하는 경향이 생겨났지만, 이러한 경향은 언제나 카톨릭교회의 정통 체계 속에 편입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또한 개신교는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여러 종파로 갈라졌다. 사상 면에서도 주관주의가 계속 심화되어, 주관주의는 초창기 다방면으로 정신적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 자유를 부여했지만, 결국 건전한 사회생활에 적대적이고 해로웠으며 개인을 사회에서 분리하는 데까지 거침없이 나아갔다. 근대 철학의 문을 연 데카르트는 그 자신과 그의 사유가 실존한다는 근본적 확신에 입각하여 외부 세계를 추론했다. 이것은 버클리와 칸트를 지나 피히테로 발전해 나가는 첫 단계일 뿐이며, 피히테에 이르면 모든 것이 단지 자아에서 유출될 따름이다. 이러한 경향은 분명히 불건전해 보이며, 이후 철학은 이러한 극단적 입장에서 벗어나 상식적 일상 세계로 탈출하려는 시도로 점철된다. 현대에 이르러 제정신을 잃어버린 극단적 형태의 주관주의에 반대하는 다양한 반동이 일어났다. 첫째, 중도적 타협 철학인 자유주의 학설은 정부와 개인에게 각각 영역을 정해 주려 했다. 현대적 형태의 자유주의는 로크와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로크는 절대적 권위와 전통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배격했을 뿐만 아니라 ‘광신’, 다시 말해 재침례교의 개인주의도 거부한 인물이다. 더욱 철저한 저항은 국가 숭배 학설을 탄생시켜 카톨릭교가 교회에, 혹은 때에 따라 신에게 부여한 지위를 국가에 돌렸다. 홉스와 루소, 헤겔은 국가 숭배 이론의 상이한 국면을 각각 보여 주며, 그들의 학설은 실제로 크롬웰과 나폴레온, 현대 독일의 상황 속에 구현되었다. 공산주의는 이론상 국가 숭배 이론과 거리가 멀지만, 실제로는 국가 숭배에서 비롯된 유사한 공동 사회로 빠져버린다. 자율과 규율 기원전 600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발전을 거듭하면서 철학자들은 사회 결속을 강화하려는 자와 풀려는 자로 나뉘었다. 규율주의자는 구식이든 신식이든 상관없이 특정한 교의 체계를 지지하고 따라서 정도가 크든 작든 과학에 적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규율주의자들이 받아들인 교의가 어쨌든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의 변함없이 행복은 선이 아니며 ‘고결함’과 ‘영웅적 행동’을 선호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인간 본성의 비합리적 측면에 공감하면서 이성이 오히려 사회 결속을 해친다고도 생각했다. 다른 한편 자유주의자들은 극단적 무정부주의자를 제외하면 과학과 공리주의, 합리주의로 기울었으며, 격렬한 정념에 냉담하고 심오한 종교라면 전부 반대했다. 이러한 갈등은 우리가 인정한 철학이 출현하기 전 그리스에서 생겨났으며, 그리스의 초기 사상 속에 벌써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규율주의와 자유주의의 갈등은 모습을 달리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졌고, 수세대에 걸쳐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용이 방대하여 1편으로는 부족할듯 싶습니다. 인문학 기초에 차근 차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책이 훌륭한 작품인것도 있겠지만 번역 또한 만족 스럽습니다. 저도 아직 정독중에 있는 책이여서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제가 읽어본 철학 관련 서적중 가독성이 좋은 책입니다. 이전에 올린 철학 관련 인물들만 대충 보시고 이 책을 보셔도 어려움은 없을듯 합니다.
로오데작성일
2022-08-22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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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일반] 인문학 기초 인류학 11 (GUNS,GERMS,STEEL)
재레드 다이아몬드 저/김진준 역 인류 문명의 불균형은 총,균,쇠 때문이다! 인종, 민족에 기반을 둔 인류발전의 기존개념을 뒤집는 새로운 문명 생성보고서! “왜 흑인들은 백인처럼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1972년 7월에 내가 열대의 섬 뉴기니의 해변을 거닐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생태학자인 나는 지금도 그곳에서 조류의 진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나는 그곳의 남다른 정치가로 알려진 얄리에 대한 이야기를 진작부터 들어 알고 있었는데, 때마침 그가 그 부근을 지나가는 중이었다. 그는 뉴기니를 벗어난본 적도 없었고 교육도 고등학교까지밖에 못 받았지만 그의 호기심은 끝이 없었다. 유럽의 백인들은 어떻게 지난 200년 사이에 뉴기니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었느냐고 질문했다. 대부분의 백인 이주민들은 ‘원시적’이라는 이유로 뉴기니인을 노골적으로 경멸했다. 그들은 1972년에 여전히 백인 ‘나리’로 지칭되고 있었으며 그들 중에서 가장 무능한 백인이라도 뉴기니인들보다 훨씬 더 높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었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얄리와 그런 대화를 나눈 이후 나는 인류의 진화, 역사, 언어 등의 다른 여러 측면들에 대해 연구하고 집필해왔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얄리의 질문에 대답해보려고 한다. 1부 - 인간 사회의 다양한 운명의 갈림길 03 유럽이 세계를 정복한 힘의 원천 신대륙과 유럽의 접촉은 A. D 986 ~ 약 1500년경까지 극소수의 스칸디나비아인들이 그린란드에 들어왔던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밀집해 살고 있던 카리브 해의 여러 섬을 ‘발견’하면서 갑작스럽게 시작된 것이다. 그 이후 전개된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관계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1532년 11월 16일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와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페루의 고지대 도시인 카하마르카에서 최초로 마주친 사건이었다. 아타우알파는 신대륙에서 가장 크고 발전된 국가의 절대군주였고 피사로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던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또는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를 대신하고 있었다. 168명의 스페인 오합지졸을 거느린 피사로는 낯선 땅에 들어왔다. 그는 그 지역 주민들을 잘 몰랐고 가장 가까운 곳(북쪽으로 1600km나 떨어진 파나마)에 있던 스페인들과도 연락이 완전히 끊어졌으므로 때맞춰 원병이 도착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반면에 아타우알파는 수백만의 백성이 있는 자기 제국에 버티고 있었으며, 더구나 다른 인디언과의 전쟁에서 막 승리를 거둔 8만 대군이 그를 둘러싼 형국이었다. 그런데도 두 지도자가 얼굴을 맞대고 미처 몇 분이 지나기도 전에 피사로가 대뜸 아타우알파를 사로잡아버렸던 것이다. 파사로는 그로부터 8개월 동안이나 이 인질을 붙잡아놓고 나중에 풀어 준다는 약속하에 역사상 가장 많은 몸값을 뜯어냈다. 파사로는 가로 6.7m, 세로 5.2m에 높이 2.4m가 넘는 방을 가득 채울 만큼의 황금을 몸값으로 받은 후에 약속을 저버리고 아타우알파를 처형하고 말았다. 아타우알파를 생포한 것은 유럽이 잉카제국을 정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대가 패하여 포로가 된 것을 모욕으로 생각하지 마시오” 아우 에르난도 피사로 피사로 대장은 우선 정보를 얻기 위해 카하마르카에서 온 인디언들을고문했다. 인디언 병력이 8만이 넘는 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타우알파의 사자가 도착하자 “주인에게 가서 아무 때나 원하는 방식으로 오시되 어떻게 오시든 나는 친구이며 형제로서 삼가 맞이하겠다고 전하시오. 어서 뵙고 싶으니 되도록이면 빨리 오셨으면 좋겠구려. 그분을 모욕하거나 해를 끼치는 일은 없을 것이오.” 대장은 카하마르카의 광장 주변에 병력을 감춰놓았다. 기병대를 둘로 나누어 하나는 아우 에르난도 피사로에게, 또 하나는 에르난도 데소토에게 지휘를 맡겼다. 정오 무렵이 되자 아타우알파가 신하들을 정렬시켜 다가오기 시작했다. 들판은 인디언들로 가득 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타우알파의 전면에는 2000명의 인디언이 앞장서서 길바닥을 쓸었다. 그 다음은 전사들이었는데 절반은 아타우알파의 좌측, 절반은 그 우측에서 들판을 따라 행진했다. 그들은 많은 금붙이와 은붙이가 햇빛에 일제히 반짝이는 광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아타우알파도 대단히 화려한 차림이었다. 80여 명의 고관들이 그 가마를 어깨에 매었으며 모두 화려하고 푸른 제복을 입고 있었다. 파사로 대장은 베센테 데 발베르데 수사를 아타우알파에게 보내어 하느님과 스페인 국왕의 이름으로 주 예수그리스도의 율법에 복종하고 스페인의 국왕 전하를 받들 것을 요구하도록 했다. “나는 하느님의 사제로서 기독교인들에게 하느님의 일들을 가르치나니 그대 또한 가르치러 왔고, 내가 가르치는 것은 하느님께서 이 책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들이오. 그러므로 하느님과 기독교인들을 대신하여 그대가 그들과 벗이 되기를 청하는 바,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요 또한 그대에게도 유익하기 때문이오.” 그러자 아타우알파는 성경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으며 수사는 성경을 건네주었다. 그러나 아타우알파는 성경을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 몰랐다. 수사가 대신 해주려고 손을 내밀자 아타우알파는 성경을 펼치기 싫다는 듯이 갑자기 격노하여 수사의 팔을 때렸다. 그러더니 자기가 손수 펼쳤는데, 글자나 종이를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고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대여섯 걸음 저쪽으로 휙 내던졌다. 수사는 피사로에게로 돌아오면서 이렇게 외쳤다. “나오시오! 나와요. 기독교인들이여! 하느님의 일들을 거부하는 개 같은 적들을 물리치시오. 저 폭군이 내 성스러운 율법의 책을 땅에 던졌소! 그걸 보지 못하였소? 제 아무리 들판에 인디언들이 가득한들 저 자만심 가득한 개에게까지 굳이 공손하고 비굴하게 굴 필요가 있겠소? 내가 죄를 사하나니 어서 나와서 저자들을 치시오!” 그러자 대장은 칸디아에게 신호를 보냈고 칸디아는 당장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자 갑옷을 입은 스페인 군대가 기병과 보병을 막론하고 각자 숨어 있던 곳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광장에 가득 모여 있던 무장하지 않은 인디언들을 덮치며 스페인의 전투 함성을 외쳤다. “산티아고!” 우리는 인디언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말에 딸랑이를 달고 있었다. 우렁찬 총소리와 요란한 나팔 소리, 딸랑이 소리 때문에 인디언들은 크게 놀라 갈팡질팡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그들에게 덤벼들어 가차없이 베어버리기 시작했다. 인디언들은 겁에 질린 나머지 서로 짓밟고 올라가다가 산더미처럼 쌓여 질식해 죽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가마가 너무 높아서 아타우알파를 끌어내릴 수는 없었다. 가마를 메고 있던 인디언들과 아타우알파를 호위하고 있던 자들은 끝까지 그를 저버리지 않고 모두 그 곁에서 죽어갔다. 겁에 질린 채 아직 광장에 남아 있던 인디언들은 총소리와 말 때문에 몸시 놀라서(둘 다 그들이 일찍이 보지 못한 것들이었기 때문)길게 뻗은 담벼락을 무너뜨리고 광장을 벗어나 그 바깥 들판으로 도망치려 했다. 우리 기병대는 무너진 담을 뛰어넘어 들판으로 돌진하여 이렇게 외쳤다. “화려한 옷을 입은 자들을 쫓아라!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창에 꿰어버리자!” 아타우알파가 데려온 나머지 인디언 병사들은 카하마르카에서 1.6km쯤 떨어진 곳에서 싸울 준비를 갖추고 있었지만 한 명도 움직이지 않았고 그때까지 스페인 사람에게 무기를 겨눈 인디언은 한 명도 없었다. 숙영지로 돌아온 스페인 군대는 아타우알파를 가까이 앉힌 후 추락한 데 대한 분노와 흥분을 달래주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패하여 포로가 된 것을 모욕으로 생각하지 마시오. 여기 있는이 기독교인들은 비록 수는 적지만 나는 이들과 더불어 그대의 왕국을 황제 폐하깨 복속시켰소. 폐하는 스페인과 전 세계의 왕이시며 나는 폐하의 신하요. 우리는 폐하의 명에 따라 이 나라를 정복하러 왔으며, 이는 하느님과 그의 성스러운 카톨릭 신앙을 만민에게 알리기 위함이었소. 우리의 임무는 선한 것이므로 하늘과 땅과 그 속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이 일을 허락하셨고 이는 그대가 하느님을 알고 지금까지의 야만스럽고 사악한 삶에서 벗어나게 하려 하심이오. 우리가 이토록 수가 적은데도 그 많은 사람들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까닭이었소. 그대가 지금까지의 삶에서 잘못을 발견할 때, 우리가 이렇게 스페인 국왕 전하의 명에 따라 그대의 나라에 들어옴으로써 오히려 그대에게 선행을 베풀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오. 하느님도 그대의 자만심을 꺾고 그 어떤 인디언도 기독교인을 거스르지 못하도록 이 일을 허락하셨기 때문이오.” 어째서 스페인인은 원주민들을 참패시킬 수 있었을까? 파사로에게는 말을 탄 62명의 병사와 106명의 보병이 전부였고, 아타우알파는 약 8만 명에 이르는 대군을 지휘하고 있었다. 피사로의 군사적 이점은 스페인의 쇠칼을 비롯한 무기들, 갑옷, 총, 말 따위였다. 그러한 무기에 대항하여 싸움터에 타고 갈 동물도 갖지 못한 아타우알파의 군대는 겨우 돌, 청동기, 나무 곤봉, 갈고리 막대, 손도끼 그리고 물매(원심력을 이용하여 돌을 던지는 기구, 보통 가죽 조각에 끈 두 개를 이어 만들지만 남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돌 세 개를 끈으로 연결한 ‘볼라’라는 무기를 던져 짐승 등을 잡았음)와 헝겊 갑옷 등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장비의 불균형은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및 기타 민족들 사이의 수 많은 대결에서도 역시 결정적이었다. 아타우알파는 어쩌다가 카하마르카로 오게 되었을까? 아타우알파의 군대는 잉카족을 분열시키고 약화시킨 결정적인 내전에 막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그 당시 카하마르카에 있었던 것이다. 피사로는 그러한 분열의 이용 가치를 재빨리 파악하고 십분 활용했다. 내전의 원인은 천연두의 유행 때문이었다. 그 전영병은 스페인 이주민들이 파나마와 콜럼비아에 도착한 후부터 남아메리카 인디언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하여 1526년에 잉카 황제 우아이나 카파크과 대부분의 신하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으며, 곧이어 그의 후계자로 정해져 있던 니난 쿠유치까지 죽게 했던 것이다. 그들이 죽어버리자 아타우알파와 그의 이복형제인 우아스카르의 제위 다툼이 시작되었다. 만약 그러한 유행병이 없었다면 스페인인들은 하나로 단합된 제국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발진티푸스, 선페스트(흑사병)를 비롯한 유럽 고유의 전염병들은 다른 대륙의 많은 민족을 말살시킴으로써 유럽인들의 정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예를 들면 1520년 스페인들의 첫 번째 공격이 실패로 끝난 후 천연두가 유행하는 바람에 몬테수마의 뒤를 이은 지 얼마 안 되었던 아즈텍의 황제 쿠이틀라우악이 죽었다. 유럽인들이 가져온 각종 질병은 남북아메리카 전역에서 유럽인 사이에서 보다 훨씬 더 빠르게 각 부족으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죽어간 아메리카 원주민 수는 콜럼버스 이전 인구의 95% 수준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질병의 역할이 유럽인의 팽창을 도와주는 일에만 국한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열대 아프라카, 인도, 동남아시아, 뉴기니 등지의 말라리아와 황열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들은 유럽인들이 그와 같은 열대 지방으로 이주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치명적인 계산착오의 함정 속으로 뛰어든 원주민 지도자들 아타우알파는 왜 함정 속으로 걸어들어갔을까? 직접적 원인은 아타우알파가 스페인인이나 그들의 군사력 또는 의도에 대한 정보를 거의 갖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가 가진 빈약한 정보는 입으로 전해진 것이었다. 그것도 피사로의 부대가 해안에서 내륙으로 들어오고 있을 때 그들을 방문했던 칙사에게 들은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신대륙에서 글을 쓰는 일은 근대의 멕시코와 당시 잉카제국으로부터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멕시코 인근 지역에 살던 몇몇 민족의 소수 엘리트 계급에 국한되어 있다. 스페인들은 이미 1510년부터 잉카족의 북쪽 변경에서 1000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파나마를 정복하기 시작했지만 1527년 피사로가 페루의 해안에 처음 상륙할 때까지 잉카족들은 스페인인들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던 듯하다. 아타우알파는 스페인이 이미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강력하고 인구가 많은 인디언 사회를을 차례차례 정복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타우알파는 스스로 사로잡힐 짓을 했지만 오늘날의 우리에게 그 행동에 못지않게 놀라운 것은 그 이후의 행동이다. 그는 스페인인들이 몸값만 받으면 자기를 풀어주고 가버릴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에서 그 유명한 몸값을 제안했다. 그는 피사로의 부대가 독자적으로 침략을 자행한 것이 아니라 영구적인 정복을 노리고 있는 세력의 선봉이었다는 시실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문자 덕분에 스페인인들은 인간의 행동과 역사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아타우알파는 스페인인들에 대해 전혀 몰랐다. 또한 바다 건너에서 쳐들어온 침략자들을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역사적으로 앞선 다른 시대에 무수히 일어났던 유사한 침략 위협에 대해서도 전혀 듣지도, 읽지도 못했다. 그러한 경험의 격차 때문에 피사로는 함정을 파게 되었고 아타우알파는 그 속으로 걸어들어갔던 것이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식민지로 만든 직접적 요인들 피사로가 성공을 거두게 한 직접적 원인에는 총기, 쇠 무기, 말 등을 중심으로 한 군사기술, 유라시아 고유의 전영병, 유럽의 해양 기술, 유럽 국가들의 중앙집권적 정치조직, 문자 등이 있다. 이 책의 제목인 <<총,균,쇠>>는 그러한 직접적 요인들을 함축하고 있다. 그 요인들 덕분에 근대의 유럽인들의 다른 대륙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확인하겠지만, 그러한 요인들은 인류가 총기나 철을 만들기 훨씬 전부터 이미 일부 비유럽계 민족들이 팽창한 배경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어째서 그와 같은 직접적 이점들이 신대륙보다 유럽에 더 편중되었을까? 어째서 잉카족은 총과 쇠칼을 발명하거나, 말 못지않게 무시무시한 짐승을 타고 다니거나, 유럽인들에게 저항력이 없는 질병을 지니거나,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배와 발전된 정치조직을 만들어내거나 수천 년에 걸쳐 기록된 역사로부터 경험을 얻거나 하지 못했을까? 그와 같은 의문들은 이 장에서 살펴보았던 직접적 인과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이 책의 2부와 3부에서 다루게 될 궁극적 인과관계에 대한 문제다. 이상 1부의 내용을 간추려서 소개 드렸습니다. 2부 3부에서는 초승달 삼각주에서 발전된 농업으로 식량이 늘어 인구가 증가하고, 사회로 발전 집단화, 정치화, 고도화 되어, 식민지를 향하는 과정을 이야기 합니다. 식량 경도는 농업에 유리 하며, 가축화된 동물중 호랑이나 늑대는 왜 가축이 될수 없는가, 집단화 과정에서 가축에 의한 전염병 발생, 내성이 쌓여 신대륙보다 빠른 문물(?) 을 획득 등 다양한 인류사의 궁금증을 풀어 나갑니다. 책이 두껍습니다. 일반인은 잘 모르는 학술적 해석이 많습니다. 3부 까지는 반정도 읽으시다 4부는 그냥 건너 뛰셔도 책 읽으시는데 크게 문제는 없을듯 싶습니다. 확장판에서는 한국에 대한이야기가 에필로그에 추가되었습니다. 한국의 문화가 일본에 전파되어 일본 문화가 번창하게 되었다고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백인이 세계를 정복할수 있었던 이유는 운이 좋았고, 환경적으로 유리 했을 뿐이지 백인이 우월한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로오데작성일
2021-12-19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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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일반] [과학] 이기적 유전자
책 제목은 어디서 들어 본듯한 책이지만, 선뜻 손이 가는 책은 아닙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렇게 참신한 느낌은 없습니다. ‘이기적 유전자’의 이론이 보편화 되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리처드 도킨스 저/홍영남, 이상임 역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은 과학 교양서의 바이블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는 생존 기계다” [이기적 유전자]는 1976년 처음 출간되었을 당시 과학계와 일반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생명에 대한 유전자의 관점을 알기 쉬운 문체로 생생하게 설명하면서, 자연선택의 속성에 관한 여러개의 사상을 하나의 개념 체계로 묶였고 진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40년이라는 세월동안 그 중요성과 깊이를 인정받았다. 학술적으로 엄격하면서도 일상적인 언어로 쓰인 [이기적 유전자]는 세계적인 명작의 반열에 올랐으며, 그 통찰은 첫 출간일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 들어가는 말 책 전체를 소개 하기에는 어려운점이 있어, 흥미로운 챕터를 소개 드릴려고 합니다..밈(Meme)이라는 단어는 요즘 대중화 유행하는 단어중 하나입니다. 문화가 다변화되고, 복제 생산되는 과정에서 파생 되어져 나온 단어 "밈" 이 단어를 처음 제시한 이가 바로 ‘리처드 도킨스’입니다. 이전 챕터는 유전자를 ‘이기적 유전자’로 규정하고, 도덕, 양심 등 이타적과는 무관한, 오직 생존하여 번식하는 ‘생존 기계’라고 합니다. 다윈의 이론을 기초로 과학과, 게임의 법칙을 통해서 유전자가 생존 방식을 규명해 갑니다. 이책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털 없는 원숭이] - 데즈먼드 모리스 - 를 먼저 읽어 보시는게 좋습니다. [털 없는 원숭이]가 출간되고 거기에 힘입어 [이기적 유전자]가 발간하게 됩니다(과학도서도 대중화 될수 있구나는 전환점). 주제는 다르지만 과학 도서 형식이 좀 낯설수도 있기에 좀 더 쉬운 [털 없는 원숭이]를 읽고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시면 조금 편하게 읽으실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독서 초보이신분들에게 솔직히 권장 드리지 않습니다. 1장 반쯤 읽으시다가 덮어 버릴수도 있고, 이 책을 계기로 독서에 흥미가 사라져 버릴수도 있기 때문에, 조금 난이도가 있는 책입니다. 11장 Memes : the new replicators 밈 - 새로운 복제자 [문화, 문화적 돌연변이] 인간의 특성은 대개 ‘문화’라고 하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문화적 전달은 유전적 전달과 유사하다. 기본적으로 유전적 전달이 더 보수적이자만 일종의 진화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유사하다는 것이다. 영국의 시인 제프리 초서와 현대의 영국인은 대화를 나눌 수 없을 것이다. 비록 그 두사람 사이에 20세대가량의 영국인이라는 사슬이 계속 이어졌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 사슬에서 가까이 놓인 세대의 사람들만이 자식이 아버지와 대화할 때처럼 서로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는 유전자가 아닌 수단에 의해 ‘진화’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게다가 그 속도는 유전적 진화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또다른 자기 복제자] 도대체 유전자는 무엇이 그리 특별할까? 그 해답은 이들이 복제자라는 데 있다. 물리학의 법칙은 우리가 이를 수 있는 전 우주에 적용된다고 생각되고 있다. 생물학에도 이에 상응하는 보편타당성을 가지는 원리가 있는 것일까? 만약 미지의 생물이 발견되었다면 그 생물의 생존율은 자기 복제를 통해 생존했을 확률이 더욱 높다 [‘밈’과 그 진화] 새로이 등장한 수프는 인간의 문화라는 수프다. 새로이 등장한 자기 복제자에게도 이름이 필요한데, 그 이름으로는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을 담고 있는 명사가 적당할 것이다. 이에 알맞은 그리스어 어근으로부터 ‘미멤mimeme’이라는 말을 만들 수 있는데, 내가 원하는 것은 ‘진gene(유전자)’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유사한 단음절의 단어다. 그러기 위해서 위의 담어를 밈meme으로 줄이고자 하는데, 이를 고전학자들이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밈의 예에는 곡조, 사상, 표어, 의복의 유행, 단지 만드는법, 아치 건조법 등이 있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 정자나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이 몸에서 저 몸으로 뛰어다니는 것과 같이, 밈도 밈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 “당신이 내 머리에 번식력 있는 밈을 심어 놓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당신이 내 뇌에 기생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기생하면서 그 유전 기구를 이용하는 것과 같이 나의 뇌는 그 밈의 번식을 위한 운반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예컨대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라는 밈은 수백만 전 세계 사람들의 신경계 속에 하나의 구조로서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신이라는 밈] 신이라는 관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것이 어떻게 밈 풀 속에 생겨 났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 독립된 ‘돌연변이’를 여러 번 거쳐 발생했을지 모른다. 어쨌든 아주 오래된 것만은 사실이다. 신의 관념이 안정성과 침투력을 갖는 것이 도대체 어떤 성질 때문일까? 신의 밈이 나타내는 생존 가치는 그것이 갖는 강력한 심리적 매력의 결과다. 실존을 둘러싼 심원하고 마음을 괴롭히는 여러 의문에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한 해답을 준다. 그것은 현세의 불공정에 내세에서는 고쳐진다고 말한다. 우리는 불완전함을 ‘영원한 신의 팔’이 구원해 준다고 한다. 이는 마치 의사가 처방하는 가짜 약과 같이 상상을 통해 그 효력을 갖는다. 이것이 신의 관념이 세대를 거쳐 사람의 뇌에 그렇게 쉽게 복사되는 이유 중 하나다. 인간의 문화가 만들어 내는 환경 속에서, 신은 높은 생존 가치 또는 감연력을 가진 밈의 형태로만 실재한다. [밈의 특성] 넓은 의미에서 모방은 밈이 자기 복제를 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자기 복제를 할 수 있는 모든 유전자가 성공적이지 않은 것처럼, 어떤 밈은 밈 풀 속에서 다른 밈보다 성공적이다. 이것은 자연선택과 유사하다. 밈의 생존 가치를 높여 주는 밈의 특성은 누군가의 지식이 혼자만의 지식이 아닌 인쇄된 산태의 책의 형태로 남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 된다면 수백 년이라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유전자의 경우와 같이 여기서도 특정의 사본의 수명보다 다산성이 훨씬 중요하다. 유전자의 경우와 같이 밈 중에도 급격하게 퍼져 나가 단기적으로는 성공하지만 밈 풀 속에 오랫동안 머물지 못한 것들이 있다. 유행가나 뾰족한 스파이크힐 등이 그에 해당된다. 한편 유대교의 율법과 같이 수천 년에 걸쳐 계속 퍼져 나가는 것도 있는데 이는 보통 기록된 언어가 가지는 특출한 영속성 때문이다. [밈의 단위] 지금까지 밈의 구성 단위가 마치 분명한 것처럼 말해 왔다. 그러나 사실 분명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하나의 노래를 하나의 밈이라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하나의 교향곡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몇개의 밈으로 되어 있는가? 각각의 악장이 밈에 해당하는가, 한 멜로디에 해당하는 악구가 밈에 해당하는가, 각각의 마디가 하나의 밈인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아마 다윈의 저작을 읽어 보았다면, 읽은 사람마다 각자 생각이 달라 의견이 일치할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 이론을 표현하는 방법의 차이는 정의상 다윈 이론의 밈의 일부가 될수 없지만, 유전학 용어로는 이 둘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면, 이 경우에는 양쪽을 합하여 하나의 밈으로 보는 것이 편리하다. [경쟁하는 밈] 경쟁의 성질에 관해 문제가 하나 있다. 유성생식의 경우, 개개의 유전자는 염색체상에서 같은 장소를 차지하려는 대립 유전자와 경쟁한다. 밈에는 염색체에 상응하는 것이 없으며, 대립 유전자에 상응할 만한 것도 없는 듯 보인다. 다수의 아이디어에는 그에 ‘대립하는 아이디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해도 그다지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대체로 밈은 염색체상에 적절하게 짝을 이룬 형태로 존재하는 오늘날의 유전자와는 별로 닮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원시 수프 속에 무질서하게 제멋대로 떠 있던 초기의 자기 복제 분자를 닮았다. 그렇다면 밈이 서로 경쟁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대립하는 밈이 없는데도 밈이 ‘이기적’이라거나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마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나의 견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밈들이 서로 일종의 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용량보다 시간이 중요한 제한 요인이며, 심한 경쟁이 대상일 것이다. 인간의 뇌와 그 제어를 받는 몸이 동시에 하나의 또는 몇 종류 이상의 일을 해치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밈이 어떤 사람의 뇌의 집중력을 독점하고 있다면 ‘경쟁자’의 밈이 희생되는 것은 틀림없다. 밈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방송 시간, 광고 게시판의 공간, 신문 기사의 길이, 그리고 도서관의 서가 공간 등과 같은 상품에서도 경쟁하고 있다. [밈 복합체의 예 - 종교, 맹신, 독신주의] 사람들에게 종교의식을 강요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던 교의의 하나는 지옥불의 협박이다. 많은 아이들, 그리고 일부 어른들까지도 종교 율법을 따르지 않으면 사후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고 믿는다. 이것은 매우 간악한 설득 기술로, 중세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고통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은 매우 효과적이다. 아마도 심층 심리학적인 교화 기술을 배운 성직자가 의도적으로 그러한 기술을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성직자들이 그렇게 까지 똑똑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식을 갖지 않은 밈들이, 성공한 유전자가 나타내준 준 잔인성이라는 성질을 가진 덕분에 스스로의 생존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가설이 더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지옥불이라는 아이더이는 단순히 그 자체가 갖는 강렬한 심리적 충격때문에 불멸의 존재가 된다. 그것이 신의 밈과 연관되어 버린 것은, 이 둘이 밈 풀 속에서 서로의 생존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도 종교라는 밈 복합체의 또 다른 구성 요소이다. 이것은 증거가 없어도 (증거를 무시하고라도) 맹신함을 의미한다.맹신이라는 밈은 이성적인 물음을 꺾어 버리는 단순한 무의식적수단을 행사하여 불명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맹신의 밈은 특유의 잔인한 방법을 통해 스스로 번식해 간다. 애국적 맹신이든 정치적 맹신이든 종교적 맹신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나는 공적응된 유전자 복합체가 진화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밈의 복합체가 진화한다고 추측한다. 선택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문화적 환경을 이용하는 밈에게 유리하게 적용한다. 이 문화적 환경은 함깨 선택되는 밈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밈 풀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세트의 속성을 가지게 되며, 여기에 새로운 밈은 쉽게 침입할수 없다. [밈의 긍정적인 면] 우리가 사후에 남길 수 있는 것은 유전자와 밈 두가지다. 우리는 유전자를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전자 기계다. 그러나 유전자 기계로서의 우리는 세 세대만 지나도 잊히고 말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세계 문화에 무언가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들은 우리의 유전자가 공통의 유전자 풀 속에 용해되어 버린 후에도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른다. 윌리엄스의 말마따나 소크라테스의 유전자 중에서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이 과연 하나라도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누가 그런 것에 관심이 있는가, 하지만 소크라테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코페르니쿠스, 마르코니의 밈 복합체는 아직도 건재하지 않은가. 종교, 음악, 제식 춤 등에 생물학적인 생존 가치가 있는지 몰라도 이들에게 전통적인 생물학적 생존 가치를 찾을 필요는 없다. 일단 유전자가 재빠른 모방 능력을 가진 뇌를 그 생존 기계에게 만들어 주면, 밈은 자동적으로 세력을 얻을 것이다. 모방이 유전자에게 이득을 준다고 가정할 필요조차 없다. 만약 그렇다면 확실히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 뇌가 모발할 수 있어야된다는 것뿐이다. 그러기만 하면 밈은 그 능력을 십분 이용하면서 진화해 나갈 것이다. [인간의 선견지명] 밈에 의해 진화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인간에게는 의식적인 선견지명이라는 독특한 특성이 있다. 이기적 존재인 유전자는 선견 능력이 없다. 이들은 의식이 없는, 맹목적인 자기 복제자이다. 유전자든 밈이든, 단순한 자기 복제자는 당장 눈앞의 이기적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결국에는 이롭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공격 행동을 다루면서 살펴보았다.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보다는 ‘비둘기파의 공동 행위’ 전략을 택하는 것이 모두에게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자연선택은 ESS를 선호하게 된다. 우리는 ‘비둘기파의 공동 행위’에 가담하는 것이 장기적 이익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할 능력이 있으며, 이 공동 행위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서로 논의할 능력이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낳아 준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하거나, 더 필요하다면 우리를 교화시킨 이기적 밈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순수하고 사욕이 업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자연계에는 안주할 여지도 없고 전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존재한 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가르칠 방법도 논할 수 있다.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이상 11장 밈의 이야기를 간추려 보았습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면서 물론 다윈의 이론을 바탕으로 쓰여 지긴 하였지만, 한편으로 인문학 기초에서 소개드린 철학자 ‘니체’를 보는듯 하였습니다. 니체의 전략중 ‘힘의 의지’란 개념에서 힘(의지)의 충돌을 설명하는 “자고 싶은 의지, 먹고 싶은 의지, 놀고 싶은 의지, 쉬고 싶은 의지 등 여러 의지(힘)등이 서로 전투를 벌여 결국 의지는 발전 상승하려고 한다” 는 ‘힘의 의지’에 이 의지(힘)을 생존이라는 걸로 대체시켜 보면 ‘이기적 유전자’의 유전자의 속성이 니체의 다원론적 상승 의지랑 비슷해 집니다. ‘밈’소개 부분에서도 니체의 명제 ‘신은 죽었다’, 여기서 말하는 신이 죽은 이유가 서로 아주 유사 합니다. 니체는 성당을 ‘그리스도의 무덤’이라고 말하고, 신 자신이 죽은것이 아닌, 인간 사제들이 신을 죽였다고 말하며, 그리스도교를 비판합니다. ‘밈’의 종교 부분에서 니체가 말한 사제의 타락, 공포를 심어 권력을 착취하는, 예수의 인간적인 부분보다 신적인 부분만을 맹신하는 안티크라이시스에서 일맥상통 하는것 같습니다.
로오데작성일
2021-12-12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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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일반] 인문학 기초 철학자 10 (니체)
21세기 니체의 다원론은 현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입니다. 이전 소개 해드렸던 [역사란 무엇인가?] 에서도 니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비스마르크스가 18세가에 태어났다면(그렇게 되었더라면 그는 비스마르크가 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는 어리석은 가정이겠지만)독일을 통일시키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결코 위인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톨스토이처럼 위인을 ‘사건에 이름을 붙여주는 꼬리표’에 불과한 존재로 취급하면서 평가 절하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때때로 위인 숭배는 불행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니체가 말한 ‘초인(超人, übermensch)은 냉혹한 인물이다. 굳이 히틀러의 경우나 소련에서의 ’개인 숭배‘의 잔인한 결과를 되돌아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독일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 - 종교나 도덕 따위는 강자에 대한 약자의 르상티망– 신을 죽인 광기의 초인 니체- 44세일 때 갑자기 광장에 쓰러져 정신이 망가진 후 55세에 죽을 때까지 두 번 다시 제정신을 찾지 못했다. 유명 작곡가 바그너와 친구였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1844~1900) 역시 앞에서 본 키에르케골이나 맑스와 마찬가지로, 칸트 이후의 철학적 위기에 나름대로 대치하고자 한 철학자였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이성 비판'을 주장하는 대신에 새로운 방식의 인간 실존을 부르짖었다. 니체는 대학의 강단보다 알프스 산길을 좋아한 고독한 사상가였다 (30대 중반에 그는 대학 강단을 뛰쳐나왔다). 그는 평생 저술 작업에 매달리면서 어린 시절 그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던 루터교, 독일 민주주의, 어머니, 할머니, 이모, 누이동생에게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다(사실, 그는 다른 분야에서보다 이 분야의 노력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그는 철학사에서 가장 색다른 책들을 펴낼 수 있었다. 우선 제목만 보아도 그렇다. 《비극의 탄생》, 《선악의 피안》, 《도덕의 계보학》,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등 그의 저작들은 기존의 철학서와는 크게 다르다. 게다가, 그는 자서전에조차 《에케 호모》('이 사람을 보라'는 뜻으로, 빌라도가 예수를 대중 앞에 소개할 때 한 말이다)라는 허풍스런 제목을 붙였으며, 그 안의 장 제목들도 '내가 이토록 지혜로운 이유', '내가 이토록 영리한 이유', '내가 그토록 좋은 책들을 쓴 이유' 등등 괴팍하고도 엉뚱하게 지었다. 짧은 기간 동안에 수많은 책을 써냈던 니체는 1888년 매독으로 인한 광기가 발작함으로써 저술을 중단하게 되었다.니체 저서 니체의 인식론을 보면 갑자기 소피스트 시대로 돌아가버린 느낌이다. 그의 인식론는 보통 원근법이라고 부르는데, 젊은 시절 문헌학에 심취했던 경험에서 기인한다. 고대 문헌을 연구하는 문헌학자들은 《성서》, 《베다》, 《우파니샤드》, 《일리아드》 등 이른바 경전이라 불리는 것들이 실은 단일한 문헌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문헌들로부터 다양한 요소를 모아서 만들어진 문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문헌학자들은 그 역사적 고전들의 원본을 찾는 것을 필생의 꿈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헌학자로서 니체가 내린 결론은 그런 원본 따위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 고전들과 경전들은 단지 특정한 해석을 통해 최종적인 산물을 나타내도록 하는 어떤 판단의 소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게다 가 그 '최종적인 산물'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수많은 단편적 문서, 보고서, 역사서, 잡담 등에 존재하는 관계를 상징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니체는 문헌학에서 체득한 통찰력을 존재론과 인식론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문헌학에서 원본이 없듯이, 실재와 앎에서도 '순수한 존재'라든가 '원 자료' 같은 건 없다는 것이다. 신도 없고, 플라톤의 형상도 없다. 실체도, '물 자체'도, 심지어 '사물' 같은 것도 없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혼돈의 흐름뿐이며,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의지를 부여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니체에 따르면, 플라톤적 의미에서의 '앎'이란 없다. 모든 앎은 발명이며, 모든 발명은 거짓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오직 거짓뿐이다. 근거 없는 기짓은 자기 기만이다. 니체에 따르면, “진통적으로 거짓을 말하는 자”, 다시 말해서 기존에 확립되어 있는 전통을 이용하여 사기치는 자가 바로 그런 자기 기만에 빠지 있는 사람이다. 어차피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다면 “창조적으로 하라.” 이게 바로 니체의 권유다. 즉, 창조적으로 발명하고 창조적인 일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을 가리켜, 니체는 쇼펜하워개념을 빌려 '권력(힘)에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부른다. 권력 의지를 표현하는 것은 곧 실재(현실)를 자신의 창조적 힘에 굴종시키는 행위다. 니체는 또한 권력 의지를 '자유를 향한 충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의 모든 생물적 본능은 이 자유를 향한 욕구로서 발현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개의 경우에 그 본능은 표준화의 힘에 의한 제약을 받아왔다(표준화의 힘 역시 권력 의지의 발현이다). 우리의 신체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언어도 모두 권력 의지의 발현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언어와 생각은 자기 기만의 주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니체의 급진적인 유명론(오캄의 유명론을 연상시킨다)에 따르면, 언어의 기능은 바로 거짓말에 있다. 즉, 실제로는 유사하지 않은데도 그것을 거부하고 가공의 유사성을 발명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뭇가지에서 자라나는이파리들을 총칭해서 ‘나뭇잎’이라고 분류하기 위해서는 실상 그 이파리들이 어느 것도 서로 똑같지 않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억눌러야만 한다. 실제로는 이파리들 사이에 동일성이 존재한다고 억지 주장을 펴야하는 것이다. 이렇게 언어는 존재를 물화하고 희석화하는용도로 사용된다. 따라서 언어가 “삶의 조건으로서 우리 위에 군림하는 사태'가 생겨난 것이다.물화하고 희석하는 용도 (거짓말) 그러나 언어가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또한 언어에 창조적인 가능성이 내재한다는 것과도 통한다. 니체는 전통적인 언어관, 즉 시적인 기능에 비해 산문적인 기능이 우선한다는 견해를 거부한다. 그는 이른바 언어의 산문적 기능은 언어가 지닌 시적 본질의 하위 기능에 불하다고 말한다. 니체에 의하면, 언어는 “은유, 환유, 의인화의 기동타격대"이다(은유란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를 대체함으로써 문맥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아킬레우스는 진장의 사자다.”] 환유란 의미가 한 이미지로부터 인접한 다른 이미지로 치한됨으로써 두 이미지가 모두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을 말한다.["그는 황관을 받았다.”] 의인화란 비인간적 세계에 인간의 속성을 투사하는 것을 말한다. [장미가 햇빛을 받기 위해 몸부림친다.] 의인화는 무의식적인 은유와 환유인 경우가 많다.) 은유와 환유를 사슬처럼 엮어 연결하면 실재를 시적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니체는 이것을 권력 의지의 교묘한 표현으로 생각했다. 사실, 니체 자신도 잘 알고 있듯이, 그가 사용한 '권력 의지'라는 용어도 그러한 은유/환유라는 연쇄적 추론의 산물이며, 그밖에 그의 다른 핵심 용어들인 '초인超人', '영겁 회기', ‘신의 죽음’ 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모든 존재는 권력 의지다"라는 그의 주장도 철학적 통찰력으로 존재의 궁극적 본성을 말한 것이라기보다는 존재의 시적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야 할것이다.(이런 비난을 받을 때 니체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게 오히려 더 낫군!") 오직 해석만이 존재하는 게 옳다면, 모든 해석은 똑같이 타당하다고 봐야 할까? 아무리 니체가 상대론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삶을 긍정하는 '거짓'만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거짓이다. 그 밖의 다른 거짓들은 모두 허무주의적이며 죽음의 편에 서 있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 의지는 웃음, 춤, 긍정으로 가득해야 하며, 우리는 플라톤주의('그 공포의 시대')와 그리스도교('대중을 위한 플라톤주의)를 거부해야 하는 것이다. 플라톤주의와 그리스도교는 다른 세계를 동경하며 주어진 현실을 거부한다(즉, 혼돈의 흐름으로 가득한 현실 속에서 개별 의지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거부한다). 또한 그럼으로써 존재를 동경하는 게 아니라 무와 죽음을 동경한다(이 부분에서 어딘지 모르게 헤겔의 냄새가 풍긴다). 니체는 자신의 학설을 ‘초인der Übermensch’'이라는 목표로 구체화시킨다. 초인이란 곧, 권력 의지의 승화를 뜻한다. 초인은 웃음과 춤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 '신의 죽음'과 '영겁 회귀'도 가르친다. 물론, “니체가 말하는 ‘신의 죽음’은 무슨 뜻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단 하나의 정확한 답은 있을 수 없다(이는 마치 “나는 조용한 바다 위를 매끄럽게 스쳐가는 한 쌍의 거친 발톱이 되어야 했다”는 프루푸록[T. S. 엘리엇의 시에 나오는 인물]의 말이 무슨 뜻인가를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신의 죽음'이라는 말을 통해 니체가 역사, 정치, 종교, 도덕, 경전 등등 모든 전통적인 권위의 종식을 의도한 것만은 분명하다.("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말을 다르게 읽어보아도 재미있을 것이다. 예컨대, '신'을 '산타클로스'로 바꿔보자. “산타클로스는 없다"는 말이 산타클로스는 죽었다”는 말보다 덜 비극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뭘까?) '영겁 회귀'란 말 역시 '신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수수께끼 같은 용어를 해석하기 위해 지금까지 숱한 학자가 수많은 책을 써냈다. 그러나 다른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분명한 것은, 니체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충실하고자 했음을 뜻한다는 점이다. 니체는 쇼펜하워의 비관주의에 대해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를테면,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지극히 고결하고 생생하며 세계를 긍정하는 인간 존재의 이상이 있다면, 그는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과 타협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영겁 속에서 반복시키고 싶어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극단적인 형태까지 밀고 가보자. 그럼 아무런 의미나 목적도 없는 존재 그 자체, 무리는 종말이 없이 끊임없이 필연적으로 되풀이되는 영겁 회기가 나온다.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사유 - 영겁 회귀 이 부분에서는 니체의 논리에 내포된 모순과 결함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삶도, 의지도 없고 오직 해석에 대한 해석밖에 없는데, 어떻게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삶을 바랄 수 있을까? 모든 것이 거짓이라면,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그 주장도 역시 거짓이 아닐까?) 그러나 그것은 니체의 핵심이 아니다. 그는 논리적 일관성을 가르치려 한 게 아니라, 기존의 사유와 존재의 모든 형태를 부숴버린 근본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파괴적 주체성을 말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파괴의 댓가는 치루어야 했다. 누구나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제자들을 거느리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니체의 지적 유산을 잇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많이 있었다. 나치도 그랬고, 정신분석학자, 실존주의자들도 그랬다. 현재에는 '해체주의자'라는 집단이 니체의 계승자로 자처하고 있는데, 그들에 대해서는 새로운 해방자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허무주의자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용어 해설 해체 deconstruction.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언어학을 독특하고 도발적으로 독해한 결과로 만들어낸 개념, 해체는 텍스트(철학서, 소설, 법학서, 과학서)에 관한 이론으로서, 그에 따르면 사유와 언어의 본성 때문에 거의 모든 전통적 텍스트는 자신을 '해체'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그 텍스트들은 스스로 그 안에 담긴 테제를 침해하며 논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무주의 nihilism.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 것도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보는 견해. 유명론 nominalism. 보편자가 자연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형상, 본질, 일반적 유사성 따위를 지칭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언어와 정신의 이론, 보편자는 세계와의 상호 작용을 위해 인간이 편의상으로 만들어낸 범주일 뿐이다. 중세 세계에서 유명론(이를테면, 윌리엄 오캄의 이론)은 경험론의 한 형태로 간주되었다. 더 급진적이고 근대적인 유명론(이를테면, 니체와 데리다의 이론)은 인간 정신이 실재하는 자연 세계를 인식하는 게 아니라, 다만 자의적으로 창조된 인습의 세계만을 인식한다고 보는 회의적인 학설이다. 물화 reification 추상적인 것, 일반적인 것, 구체화가 불가능한 것을 잘못 구체화한 결과를 말한다. 라틴어의 res(사물)에서 나왔으므로 사물화라고도 한다. 문헌학 philology 고대의 문자 기록에 대한 연구. 보통은 ‘죽은’언어를 연구한다.
로오데작성일
2021-11-28추천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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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일반] [인물] 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우리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름만은 널리 알려진 작가입니다. 러시아 하면은 도스토예프스키 아니면 톨스토이를 가장 많이 이야기 합니다. 어떤 분들은 두 사람을 합쳐서 톨스토예프스키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9세기 중반에 활동을 했지만 20세기 그리고 21세기 까지 영향력이 지대한 작가입니다. 실존주의 작가들, 가톨릭 성직자들, 동방 정교회 성직자들 그리고 니체, 카프카 작가, 사상가, 프로이드, 칼 융 게다가 천제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 까지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어디선가에 서는 누군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열정적으로 연구하면서 사랑하고 있을 것입니다. 19세기에 활동했던 러시아 작가가, 아직도 우리에게 울림을 전달하고 있는 것인가?도스토예프스키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 인간 존재의 토대가 되는 질문을 하고 독자들에게 답하도록 초대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영향력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 인간에가 가장 근원적인 존재의 이유 그것은 자유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죄와 벌은 자유의 문제를 재기 합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1821년 11월 11일~ 1881년 2월 9일) 별명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여러 가지 별명이 있습니다. -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잔인한 천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잔인하다‘는 것은 수사적 표현입니다. 너무나도 예리하게 심리를 분석하고, 인간의 가장 깊은 곳까지 접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잔인하다‘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 '인간 영혼의 선견자‘ 이런 표현도 많이 씁니다. 영혼 하면 보이지도 않는 것인데, 보이지 않는 것을 도스토예프스키은 평생 연구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심오한 성찰이 돋보입니다. 다른 리얼리즘 작과들과는 달리 무엇을 먹고 사느냐 관심 보다는 주인공이 어떠한 영적인 상황에 놓여 있느냐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은 조망을 갖고 있습니다. - ‘러시아 문학 사상 가장 종교적인 작가’ 그는 러시아 정교, 동방 정교, 그리스도교 신앙에 몰입해 있던 사람입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이 정교 신앙이 면면히 심어져 있습니다.- 영국의 사상가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은 유명 인사들을 두 가지로 분리 했습니다. 여우형, 고슴도치형 두 가지로 분리 하였습니다. ‘여우형’은 활동적이며, 관심도 많고, 열정적인 사람이지만 한 가지 일에는 몰두 하지 못하는 형 이며, ‘고슴도치 형’은 단일한 목표로 사는 것, 단일한 원칙을 가지고 통일된 사고를 통해서 깊이깊이 들어가는 유형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전형적인 ‘고슴도치 형’ 인간입니다. 그는 평생 동안 자유에 관해서 고슴도치처럼 파고들었습니다. 돈과 자유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하면은 심오한 천재 작가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심오한 작가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돈 때문에 작가가 된 사람입니다. 항상 돈에 쪼들리는 사람 이였습니다. 낭비벽도 있고 도박벽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지나치게 관대했습니다. 돈에 대한 경제관념이 전혀 없던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항상 돈을 헤프게 쓰고, 쪼들리고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 글을 많이 쓰게 된 작가입니다. 그래서 그는 돈을 정확하게 읽었습니다. 인간을 읽고 사회를 읽는데 천재적인 이었던 작가는 돈도 정확하게 읽고 돈을 해부했습니다. 이와 같은 돈에 대한 이해는 그의 작품 속에 면면히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빈곤에 관한 성찰, 분배문제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도 있지만 돈에 대한 문제가 아주 빈번히 나옵니다. 가령 주인공의 월급이 얼마다, 이 물건은 얼마짜리다, 지참금은 얼마다, 방세는 얼마다 이러한 돈에 대한 문제가 아주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심지어는 살인자가 살인을 할 때 쓰인 칼의 가격 까지 아주 시시콜콜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 주인공들은 돈으로 연결됩니다. 돈 때문에 만나고, 헤어지고, 죽이고, 자살도 합니다. 이러한 돈의 관계로 인간이 연결 됩니다. 인간의 가장 속물적이고, 현실적인 돈의 문제를 자유의 문제와 결부 시켜서 가장 흥미롭고, 심오한 소설을 만들어 냈습니다. 돈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서 동시에 같이 생각 했던 것은 자유의 문제였습니다. 이 자유에 관한 생각은 시베리아 감옥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싹트기 시작 합니다. 감옥 만큼 자유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을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수감생활을 하면서 다른 수감자들을 보면서 자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돈은 주조된 자유다(coined liberty). 그래서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돈은 열 배나 더 소중하다.” -죽음의 집의 기록 中 그는 수감자들을 관찰하면서 자유라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욕구라는 것을 이해 합니다.식욕과 같이 없으면 죽는것 이기에 인간은 누구나 자유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 합니다. 돈은 이러한 자유에 대한 욕구를 어느 정도 해결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수감자들은 모든 생필품이 지급되지만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노력 하는 것을 봅니다. 감옥 안에는 고리대금업자도 있고 시장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벌고 쓰고 하는 것에서 대하여 자유를 만끽합니다. 그래서 돈과 자유는 함께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후 돈과 자유를 평생 탐구 하게 됩니다. 일생 상트페테르부르크 공병학교 시절 도스토예프스키 아버지는 군의관 이였습니다. 어머니는 상인가문에 독실한 정교 집안입니다.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사람으로서 근검, 절약을 모토로 삼은 사람으로 자식에게 항상 돈에 대한 절약을 강요 합니다. 그러한 아버지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청소년기부터 반항하기 시작합니다. 아버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병학교에 입학 시킵니다. 이유는 졸업 후 취직이 잘되기 때문이 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의지와는 무관하게 입학하게 됩니다. 학교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항상 사색하고, 과묵한 청년 이였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낭비벽이 싹트기 시작 합니다. 가진 자를 부러워하고, 그와 똑같이 살고 싶어서 이 시기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항상 돈을 청합니다. “아버지 모두들 새 깃털 달린 모자가 유행이니, 저도 모자를 사야하기 때문에 돈 좀 보내 주십시오.” 도스토예프스키 그냥 과시하고 싶어서 남들과 똑같이 부자처럼 보이이기 위해서 돈을 썼습니다. 이러한 과시형 소비는 작가가 되는 원동력이 됩니다. 학교 졸업 후 공병 소위로 임관하게 되고, 아버지가 돌아가십니다. 상당한 유산이 남게 됩니다. 가족 전체에 분배되고 신탁 자금으로 조금씩 지급되었습니다.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도스토예프스키, 유산 집행인에게 부탁하여 유산 전액을 한번에 받게 됩니다. 하지만 돈을 탕진하게 됩니다. 공병 소위 봉급으로는 생활이 유지가 안되었으며 항상 가난에 찌들게 됩니다. 도스토예프스키 항상 자신은 ‘가난한 사람’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작가가 되면 한목에 큰 돈을 벌수 있기 때문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원고 여백을 보면 조그마한 숫자들이 많이 적혀 있습니다. 그건 전부다 돈 계산을 한 것입니다. 원고지 1매당 얼마, 천매를 쓰면 얼마. 집 한 칸의 방세가 얼마 이러한 계산을 적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와중에 첫 작품이 나오게 되고 ‘[가난한 사람들] 1845’ 가난한 사람들 23세 때 최초의 장편 소설을 쓰게 됩니다. 내용은 아주 찢어지게 가난한 하급 관리가 아름다운 소녀와 연애를 하는 이야기이며 서간체 소설(편지형식)입니다. 작품은 호평 속에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당시 가난에 관련된 소설은 많이 출간되었습니다. 주로 가난에 대한 사회학, 경제학 적은 측면만 파고들었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빈곤에 심리학을 탐구합니다. 소설 속에서 가난한 관리는 이야기 합니다.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잘 못 먹고, 잘 못 입는 다는 것은 불편함이다. 나를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타인의 눈초리이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이 나를 힘들게 한다. “ 이러한 부분이 바로 20세기 많이 지적이 되었던 심리적 상대적 빈곤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돈을 벌지만 또다시 탕진하여 가난하게 됩니다. 출판사들은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다음 작품을 부탁하고 그는 선불을 받아쓰는 나쁜 습관이 생기게 됩니다. 이후 도스토예프스키 평생 선불로 살게 됩니다. “나는 선불을 받지 않고 작품을 쓴 적이 없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소설 ‘분신’은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하였습니다. 분신 이시기 러시아 지식인들, 젊은이 들은 반체제 인사들이였습니다. 니콜라이 황제의 전제정치에 젊은이들은 폭정에 반대하는 집회를 자주 가졌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역시 그 모임의 일원 이였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당시‘페트라셰프스키 서클’에 가입하게 됩니다. 이 서클은 차 한 잔 마시며, 공상적 사회주의 이념을 이야기 하는 모임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어느 날 불온서적을 모임에서 낭독하게 되고 당국의 첩자에 의해서 고발당하고 모임 33명은 체포당하게 되고 반란 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 집행 진행 중 황제의 전령이 말을 타고 달려옵니다. 형집행 정지를 명합니다. 대신 내린 선고는 4년 징역, 5년 3개월의 사병 생활이 내려집니다.(시베리아 옴스크) 이 사건이후 도스토예프스키는 간질발작이라는 지병을 얻게 됩니다. 사형 직전의 도스토예프스키 유배(1849 ~ 1859) 시베리아 옴스크로 수감 생활을 하게 된 도스토예프스키는 3가지 일을 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수감된 살인자, 사기꾼들 사회 최하층의 사람들 내면을 관찰 합니다. 두 번째는 유일하게 반입 될 수 있었던 ‘성경책’을 4년 동안 읽게고, 이후 작품 속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세 번째는 자유에 대한 사색을 합니다. 관찰, 사색, 독서 이 3가지가 시베리아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한 일입니다. 이전 낭만적 공산주의를 꿈꾸던 사람이 아닌 지옥을 여행하고 돌아온 단테와 같은 사람으로 새롭게 거듭납니다. 이후 소설은 자유, 신앙에 대한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시베리아 생활 중 마리아 이사예바라는 여인을 만나 첫 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유배지에서 결혼하고 페테르부르크에 돌아 왔지만 여인은 병약했고 폐병에 걸려서 얼마 살지 못합니다. 이후 도스토예프스키는 수슬로바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고 이 여성은 도스토예프스키보다 20살이 어린, 성격, 개성, 지식이 뛰어난 여인 이였습니다. 수슬로바에 빠진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파리로 가던 중 잠깐 비스바덴(도박장)에 들리게 됩니다. 여기서 돈을 딴 이후 도박에 맛이 들어 10년 동안 도박중독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변화 이 와중에도 계속 소설을 쓰게 되고, 글들은 언제나 졸속으로 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듬어진 소설이 한편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잡지에 연재하는 소설도 많았습니다.(연재하고 원고료 받고를 반복) 앞뒤에 일관성이 없는 소설이 꽤 많고 1부에 나왔던 올가가 3부에서는 안나로 바뀌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3천 루블(5천만 원)의 빚이 있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이는 돈을 갚을 능력이 안 되었습니다. 이때 마침 출판업자가 접근하여 3천 루블을 선불로 줄 테니 11월까지 장편소설 1편을 써달라고 합니다. 급해서 쓴 계약서는 악덕 계약서였습니다. 책을 완료하지 못할시 위약금은 물론이고 이후 출간되는 모든 소설의 판권은 그 출판사가 가지게 된다는 계약 조건 이였습니다. 3천 루블을 받은 이후 빚도 갚고 도박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10월 초가 되어 버립니다. 친구들은 걱정이 되어 도스토예프스키를 위해 해결방안을 냅니다. 친구들 끼리 소설을 1챕터씩 각자 쓰고 이를 모아 도스토예프스키가 최종 편집하기로 제안을 합니다. 하지만 작가의 양심을 문제로 거절하게 됩니다. 친구들은 최후의 제안을 하게 됩니다. 속기사를 보내 줄 테니 구술을 하면 속기사가 적어 주는 방식으로 하자고 합니다. 탐탁지 않았던 도스토예프스키는 마지못해 승낙하게 됩니다. 속기사가 도착하고 일주일간은 도스토예프스키는 거의 의욕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속기사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열혈팬 이였습니다. 속기사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일으켜 세워 작품을 쓰게 만듭니다. 이후 받아 적은 속기록을 집에 가져 가서 다시 원고에 적어서 차곡차곡 쌓여 가게 됩니다. 일류 역사상 가장 졸속으로 쓰인 작품이 10월 29일에 나오게 됩니다. [노름꾼] 1866. 25살 연하 속기사 안나 스니트키나와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후 15년 동안 결혼 생활 후 도스토예프스키는 사망하게 됩니다. 그녀는 경제관념이 철저한 여인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제권을 가지게 되고 도스토예프스키는 글만 쓰게 합니다. 이후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작들이, 이 시기에 나오기 시작합니다. 말년에 모든 빚을 갚을 수 있었고, 도박중독증도 치유 되었습니다. 안나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을 하러 나가면 오히려 돈을 더 주고, 도박 좀 더하고 오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후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책감으로 인해 도박을 중단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사망 후 부인은 그를 추모하고 기록하는데 인생을 보내게 됩니다. 어느 날 도스토예프스키는 각혈을 하기 시작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간질병 때문에 술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담배는 많이 피웠습니다. 평상시에도 가끔 각혈을 하기 도 하지만 이날 만은 의심이 들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성경책을 가져 오라고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습관중 하나가 성경책을 가지고 점을 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면 성경책을 아무데나 펼쳐서 거기에 쓰인 것에 따라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날 읽은 것은 “예수계서 요한에게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하고 대답하셨다” -마태오 복음서- 3장 15절 이 구절을 읽은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음을 예감하고 가족을 불러 종부성사를 준비하고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로오데작성일
2021-10-30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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