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기초 18 - 러셀 <서양철학사> 정리

로오데 작성일 22.11.13 20:14:42 수정일 22.11.13 23: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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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고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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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의 각각 그리스 철학자들에 대해 다루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찾아낸 중요한 주제의 일부가 어떻게 중세 카톨릭 철학에 편입되고, 근현대까지 살아남아 근현대 철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분명하게 보여 준다. 러셀에 따르면 철학은 그리스 문명 속에서 처음 과학과 분리되지 않은 형태로 탄생했고 두 가지 경향이 그리스 문화를 지배했다.  하나는 정념을 중시하고 종교에 몰입하며 신비를 표방하고 내세를 믿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경험을 중시하고 합리주의를 내세우며 다양한 사실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려는 경향이다. 전자의 경향은 오르페우스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피타고라스와 플라톤과 플로티노스를 거쳐 헤브라이즘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한 축으로 편입된다. 후자에는 헤로도토스와 초기 이오니아 자연철학자들을 비롯해 어느 정도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도 포함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경험을 중시하고 합리주의를 내세우는 경향은 중세에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다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 철학에서 되살아난다. 말하자면 그리스 문명은 철학을 처음 탄생시켰고 중세 그리스도교 문명의 출현에도 일조했으며, 중세 말 르네상스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근대 철학의 사상적 원류다. 다만 러셀은 그리스 문명이 근대 철학의 원류라는 해석에 대해, 그리스인의 기여는 수학과 연역 기술을 발명했다는 점에 국한한다. 특히 기하학은 그리스인의 독창적 발명품인데, 기하학이 없었다면 근대 과학은 성립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특정한 사실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하여 귀납적으로 추론하는 과학적 방법은 근대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단서를 붙인다. 근대에 이르러서야 과학적 지식은 사실을 관찰하고 가설을 수립하며, 수립된 가설을 시험하는 과정을 거쳐 형성된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2부 가톨릭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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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톨릭 철학이 중세를 어떻게 지배했는지 보여준다. 러셀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구별에 따르면 카톨릭교회는 세 가지 근원에서 유래한다. 성스러운 역사는 유대교에서, 신학은 그리스 사상에서, 지배 방식과 교회법은 최소한 간접적으로라도 로마법에서 생겨난다. 종교 개혁은 로마적 요소를 거부하고 그리스적 요소를 완화했으며 유대교적 요소를 강화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역사적 한계를 뛰어넘어 각각 중세 교부 철학자들과 스콜라 철학자들에 의해 다시 수용되어 독특한 신학 체계로 발전했다. 중세 카톨릭 제도는 세속 국가와 대립하는 일종의 정치권력으로서 힘을 발휘했는데, 중세 카톨릭 제도는 세속 국가와 대립하는 일종의 정치권력으로서 힘을 발휘했는데, 카톨릭 철학은 신학의 기초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정치철학의 기초도 제공했다. 당시 카톨릭 철학은 유럽 사회를 통합하는 역할을 했으며, 카톨릭교회 내부에서 일어난 정통 신앙과 이단 사상의 충돌은 카톨릭 제도 개혁의 계기인 동시에 개신교 성장의 계기를 만든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었다.

 러셀은 초기 교부들이 어떻게 플라톤의 철학을 카톨릭 교리에 맞춰 편입시켰는지 설명한다. 또한 교회가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굳게 믿은 세속 군주와 평신도는 교황권을 강화시켰고, 중세 교회 제도가 안정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어떻게 교회가 공인한 철학 속에 편입되었는지 명퀘하게 풀어낸다. 무엇보다 카톨릭교회가 외경으로 분류한 자료도 광범위 하게 다루며, 공의회 운동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카톨릭 철학으로 공인한 배경이 되었다는 점도 증명했다. 따라서 중세 교회는 순수한 종교 체계가 아니라 일종의 권력 기구로서 당대의 사회, 정치, 문화를 지배했다. 가톨릭 철학은 바로 중세를 지배한 사고방식이자 지배 이념이었다는 말이다. 

 중세 카톨릭 철학은 일정한 시기 동안 사회 통합에 기여했으나 사회, 정치, 환경이 바뀌면서 영향력이 약해졌다. 그리스 철학이 로마 시대에 적합하지 않아 버려졌듯 카톨릭 철학도 유사한 운명을 맞이했다. 어느 시대든 사회를 통합하는 요소와 해체하는 요소를 둘 다 내포하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은 로마 시대에 더는 효력이 없어져 쇠퇴했고, 로마의 행정 제도를 모방한 중세 카톨릭 제도의 출현과 더불어 카톨릭 철학이 발전했으며, 상업 도시와 속인의 세력이 강해지고 카톨릭교회가 쇠퇴하면서 르네상스 운동과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곧이어 근대 자연과학과 근대 철학이 발전했다.

 

 

 

3부 근현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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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철학의 주요 흐름을 명확하게 짚어내고, 현대 철학의 흐름을 미리 보여 준다. 근대 철학은 종교의 권위를 거부하고 과학의 권위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 교회의 권위에서 해방되면서 개인 주의가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무정부주의도 등장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은 스콜라 철학을 지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구속으로 느꼈다.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사회, 정치적 상황은 무정부 상태와 다름이 없었으며, 이를 배경으로 마키아벨리의 정치 학설이 출현했다. 사회는 불안정했으나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천재들의 활동이 왕성한 시대였다. 17세기에 이르러 데카르트를 시작으로 개인주의와 주관주의 경향이 뚜렷한 근대 철학이 등장했다. 이후 근대 철학은 주관주의를 극단까지 밀고 나가거나 주관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근대 철학의 문을 연 데카르트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사유가 존재한다는 근본적 확신에 입각하여 외부 세계를 추론했다. 이것은 버클리와 칸트를 지나 피히테로 발전해 나가는 첫 단계일 뿐이며, 피히테에 이르면 모든 존재가 단지 자아에서 유출될 따름이다. 이러한 주관주의 경향은 분명히 불건전해 보이며, 이후 철학은 이러한 극단적 입장에서 벗어나 상식적 일상 세계로 탈출하려는 시도로 점철된다.

 철학에서 근대 합리주의와 경혐주의는 중세의 신중심주의에서 탈출하여 인간중심주의의 길을 열었다. 신중심주의는 인간 밖에 실존하는 절대 존재인 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인간에게 계시를 내리고, 인간이 그것을 객관적 기준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믿는 견해다. 반면에 인간중심주의는 모든 것의 기준이 바로 인간 자신의 주체성이라고 주장한다.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의 합리주의는 객관주의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으나, 결국 인간의 이성이 신의 자리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베이컨과 로크, 버클리, 훔으로 이어진 경혐주의 철학의 끝은 이성으로도, 경험으로도 현실을 객관적으로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이자 완벽한 주관주의로 귀결되었다. 회의주의를 극복하고 이성으로 객관적 지식이 가능함을 보여 주려고 했던 마지막 근대 철학자가 바로 칸트였다. 그러나 이성에 대한 불신은 19세기 이후 점점 깊어졌다.

 물론 프랑스에서 합리주의를 여전히 지지한 프랑스 계몽철학자들과 실증주의자가 있었고, 영국에도 여전히 경험과 이성을 신뢰한 공리주의자들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루소 같은 계몽철학자는 이성보다 심정에 따른 감정의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했다. 독일 철학의 합리주의 경향은 관념론으로 발전했고, 비합리주의 경향은 감수성과 의지의 힘을 예찬한 낭만주의로 발전했다. 18세기에 감성을 앞세운 루소는 낭만주의의 선구자였으며, 의지를 형이상학적 근원으로 보았던 쇼펜하우어와 권력의지로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려는 니체는 주의주의(主意主義)를 대표한다. 19세기 말에 낭만주의와 주의주의에 맞서 합리주의를 재건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현대 합리주의자들은 수학과 논리에 근거한 객관적 방법으로 주관주의를 극복하고자 했다. 러셀은 이러한 흐름을 명쾌하고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러셀에 따르면 19세기를 지나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과학기술은 실용성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마음속에 새로운 사고방식을 심어 놓는다. 기술 발전은 힘에 대한 감각을 일깨웠는데, 인간이 자기 환경의 처분에 맡겨져 있지 않고 오히려 환경을 적극적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형성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영감을 받은 철학이 바로 힘을 강조하는 철학이며, 인간이 아닌 모든 존재를 단지 가공되지 않은 재료로 생각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러셀은 이러한 경향이 일종의 광기요 바보짓이라고 단언하고, 건전한 철학이라면 이에 대한 해독제를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셀이 제시한 해독제는 합리적 회의주의자의 태도로 직시하고,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사회를 다듬고 재편해 나가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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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 수학자, 사회운동가, 교육자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 버런트 러셀. 생각만하고 글만적는 여타 철학자들과는 달리 사회에 사회에 참여하며, 아인슈타인과 함께 핵무기의 위험을 알리는 ‘러셀 아인슈타인 성명’을 발표하고 군축 평화 문제를 논의, 베트남 전쟁, 캐네디 암살 조사, 인도 중국 국경 분쟁, 쿠바 미사일 위기 등 당대 많은 현안에도 적극적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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