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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배달료와 최소주문금액의 관계
코로나로 인해 배달주문 많이 해보셨을텐데요.그 중 배달료에 관한 이야기를 드릴까합니다. (*긴글 주의. 3줄요약 있음) 먼저 배달시장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배민,요기요같은 배달어플 덕에 시장이 많이 커졌다는 언론 보도도 보았고, 배달어플 수수료 때문에 공공배달앱이 생기기도 했죠.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배달대행의 역할도 큽니다.지금은 배달원을 식당직원으로 두지않아도, 업종을 가리지않고 편하게 배달이 가능하니까요.(음식점 영업제한으로 밤9시이후에 포장배달만 해야했던게 가능했던 이유도 배달대행 덕이 크죠)식당입장에서는 배달어플 수수료,광고비 만큼이나 비용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게 '배달료'입니다. 먼저 배달대행사에서 식당에게 받는 배달료의 책정입니다. 1. 기본 직선거리 1.5km 또는 이동거리 2km당 기본요금 3,000원(부가세별도)2. 추가 100m당 100원(부가세별도)*업체나 지역마다 거리,요금 계산에 차이가 있으며, 배민라이더스와 쿠팡이츠는 계산방식이 달라서 아래쪽에 따로 적겠습니다. 다음은 손님들이 주문할때 내는 배달료의 책정입니다. 1. 배민의 경우 식당주인이 행정동별로 배달료를 설정합니다.2. 요기요의 경우 배민과 같이 행정동별 설정이 기본이며, 거리별로도 설정이 가능하지만 시스템오류발생 가능성 때문에 500m단위로 설정을 권장합니다.3. 배달통은 배민과 같습니다. 식당주인이 내는 배달료와 손님에게 받을 수 있는 배달료의 책정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몇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들어 위의 사진처럼 뱅뱅사거리쪽에서 선릉역의 한 식당으로 배달을 시킵니다. 1. 식당은 배달대행에게 2.2km에 해당하는 배달료 3,700원(부가세별도)을 줘야합니다.(예시이며, 실제 강남지역의 배달료 책정은 다를수있습니다.) 2. 같은 역삼1동이라 선정릉역, 역삼역, 뱅뱅사거리 모두 손님에게는 같은배달료로 설정해서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기본배달료 3,000원을 받으면 같은동이어도 멀리 있는 곳의 주문은 가게에서 나머지 배달료를 부담해야 합니다. 최대요금으로 예상되는 3,700원을 받자니 상대적으로 가까운곳에 계신 손님들께 부담이 됩니다. 3. 배달료 3,000원을 배달대행에 줘야 한다고해서 손님에게 3,000원을 다 받으면 주문이 적게 들어옵니다. 배달료가 없거나 우리가게보다 싼 가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3-1)음식가격 10,000원에 배달료를 포함시켜, 어플에는 가격을 12,000원으로 올리고 배달료를 1,000원으로 설정 (배민,요기요에서는 '음식가격은 매장에서 판매되는 가격과 동일해야 한다'는 규정으로 불가)3-2)주문을 많이 받아 매출이라도 늘리자는 생각으로 배달료 차액 2,000원을 가게가 부담3-3)매장에서 판매되는 음식과 배달음식의 구성이나 양을 다르게 해서 배달료 차액으로 발생하는 손해를 줄임 1번의 경우. 배달어플에서 ‘손님이 지불해야 하는 배달료’ 설정을 ‘배달대행사에서 책정하는 방식’과 같게 하면 해결됩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없어보입니다. 문의 결과 변경 계획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그래서 지난 수년간 (같은 행정동이라면)가게와의 거리가 먼 손님은 상대적으로 가까운 손님들의 배달료 일부를 더 내주고 계셨던 겁니다. 가게에서 부담하는 배달료 차액과 상관없이, ‘행정동별’로 배달료를 설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3-2)의 경우 때문에 최소주문금액이 생기게 됩니다.3,000원짜리 샌드위치 1개를 배달하면서 배달료 차액 2,000원까지 가게가 부담하면 오히려 손해가 될테니까, 배달료 차액을 부담하더라도 마진이 남을 수 있는 금액을 최소주문금액으로 설정하게 됩니다.(혹은 3-3처럼 배달료 차액을 부담더라도 마진이 남게 음식을 만들거나 두가지 경우를 모두 적용합니다.) *쿠팡이츠는 조금 다릅니다. 4km반경까지만 배달이 가능하며 배달료는 거리상관없이 5,000원입니다.(식당 바로 옆집에서 주문해도 쿠팡라이더를 이용해야하며 배달료를 쿠팡에 지불해야 합니다.)배달 수수료는 주문금액과 상관없이 건당 1,000원입니다. 모두 부가세는 별도입니다. 손님께 받을 수 있는 배달료는 지역에 따라 현재 최대 3,000~4,000원이라고 합니다.하지만 쿠팡에서는 ‘비슷한 주문량과 평점이라면 배달료가 낮을수록 상위에 노출되니 처음 몇주간은 배달료를 0원으로 설정’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따로 가맹비나 광고비가 없기에 마케팅비용으로 투자하는 개념으로 손님의 배달료 부담을 줄이는 것이죠.) 다른 배달어플을 사용하고 있지 않고 ‘쿠팡이츠로 처음 배달을 시작’하면 가능한 방법으로, 음식가격에 배달료를 녹이라고 추천해줍니다.(위의 3-1) <3줄요약>1. 배달대행이 받아가는 배달료와 손님이 내는 배달료의 책정방식이 다르다.(거리별,동별)2. 위의 이유와 더불어 배달료가 낮아야 주문이 늘어나는 등 여러 이유로 식당에서 배달료를 일부 부담하게 된다.3. 그로인해 최소주문금액이 생기기 된다. 사족으로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가장 간단하지만 실현되기 어려운 방법은 ‘배달료 전액을 주문한 손님이 내는 것’입니다.(미국의 우버이츠나 동남아의 그랩처럼)최소주문금액 없이 껌한통도 배달시킬 수 있을테고,손님들이 배달료를 부담하면, 택시비보다 비싼 현재의 배달대행료에 대한 불만도 잘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그리고 식당의 배달료 부담이 없다면, 배달음식의 퀄리티가 적어도 지금보단 나아질테니까요. 배달료가 적어야 배달주문이 많아질테고, 배달주문이 많아져야 시장이 커지고, 광고비 수수료등으로 수익이 늘어날 것이 예상되기에..이런 방향으로 시장을 키워온게 아닌가 싶습니다.최근 배민에 배달팁 낮은순 정렬도 생겼..배달 빠른순 정렬도 생겨서 몇몇 식당들은 무조건 배달시간 5분으로 안내하더군요.. ..평행우주의 다른 대한민국에서는 배달어플 위주의 시장성장이 아닌, 배달대행 위주의 시장성장이 이뤄지고 있길 바랍니다..? 시간이 된다면 배달음식의 일회용품 사용에 대해서도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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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2CH 새벽의 엘리베이터
바로 며칠 전의 일이다. 그 날 아침, 나는 여느 때처럼 정장을 입고 출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튼을 누르고,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디지털로 표시된 글자가 맨 꼭대기인 8층부터 점점 내려온다. 나는 빛나는 아래쪽 화살표를 바라보며, 덜 깬 아침잠에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왠지 느린데...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엘리베이터의 문자판은 1층을 가리키고 있었다. 도대체 뭘 멍하니 있던거야, 나란 놈은. 나는 나의 멍청함을 탓하며 한 번 더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문자는 1에서 변할 기색이 없었다. 조금 초조해진 나는 몇 번이고 다시 버튼을 눌렀지만, 엘리베이터는 움직일 기색이 없다. 아침부터 고장인가... 여름부터 들어와 살고 있는 이 맨션은, 재개발을 거친 건물이었다. 낡은 건물을 콘크리트 구조만 남기고 내부와 외부를 모두 재개발 한 것이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새로 지은 것 같지만, 건물 자체는 낡은 셈이었다. 원래 건물이 낡다보니 이런 일이 많은 것일까... 나는 약간 불안함을 느끼며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을 포기하고 계단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1층까지 내려와 엘리베이터를 보자, 여전히 문자판의 표시는 1인채 문이 닫혀 있었다. 나는 버튼을 눌러 보았지만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출근하며 관리실에 들러서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다는 것을 알렸다. [바로 정비 회사에 연락해서 고치겠습니다.] 라고 관리인은 미안한 듯 말했다. 전철에 올라탈 무렵, 이미 나는 그 사건을 잊어가고 있었다. 그 날은 제출 자료의 핵심인 수치 산출을 하는 날이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꽤 걸리다보니 새벽까지 야근을 해야 했다. 회사를 나와 택시를 타고 맨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벽 2시 반이 넘었을 때였다. 지친 발걸음으로 맨션의 입구에 들어섰을 때, 나는 아침의 사건을 떠올렸다. 아직 엘리베이터가 안 고쳐졌으면 6층까지 걸어가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의 앞으로 간다. 조심스레 버튼을 누르자, 화살표 버튼이 빛나며 문이 열린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서 6층 버튼을 누른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옷 갈아입고 바로 자자. 그렇게 생각하며, 6층으로 올라가는 문자판을 보고 있었다. ...3...4...5...6... 예상과는 다르게, 엘리베이터는 6층을 넘어서도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6층 버튼은 여전히 빛난 채 그대로다. 7... 그 상황에서 내가 먼저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방금 전까지 안도하고 있는 것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내일 아침 관리인에게 잔뜩 화를 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이 엘리베이터가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이 떠올라 조금 무서워졌다. 8... 맨 꼭대기인 8층에 도착하고 몇 초 후, 문자판에 숫자가 사라지고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6층 버튼의 빛도, 문자판과 함께 꺼져버렸다. 나는 열림 버튼을 계속 눌렀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그래서 모든 층의 버튼을 하나 하나 다 눌러 보았다. 엘리베이터는 어떠한 반응도 나타내지 않았다. 심지어 버튼에 불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혼자 힘으로 탈출하는 것은 포기하고, 비상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지지직거리는 스피커의 잡음 같은 것이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어딘가에 연결이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응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3분 정도 지났는데도 대답이 없다. 나는 조금 초조해져서 그 버튼을 마구 눌렀다. [...네.] 스피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는 마음을 놓았다. [미안합니다만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아서 안에 갇혀버렸습니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까요?] 나는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소리는 나지 않고, 희미한 잡음만이 들려올 뿐이다. [저기요,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 한 번 더 물어봤지만 역시 응답은 없다. 지지직거리는 소리만 엘리베이터 안에 울려퍼진다. 그리고 30초 정도 지났을까. 그 잡음 사이에 무엇인가 이상한 소리가 섞여 들리기 시작했다. 몇 초마다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 나는 그것을 알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기묘한 소리였다. 끅끅거린달까, 꽥꽥거린달까. 소리라고 하기도 힘든 것이었다. 그것이 몇 초 간격으로 희미하게 들려온다. 그 소리는 마치 어릴 적에 장난으로 개구리를 밟았을 때 나던 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그 소리가 몇 번 정도 계속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소리는 끊겼다. 회선이 끊어진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버튼을 눌렀지만,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나는 엘리베이터 문을 밀거나 열어 젖히려 했지만,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휴대폰을 꺼냈지만 엘리베이터 안이어서인지 전파가 잡히지를 않았다. 야근 때문에 피곤했던 나는 탈출하기 위해 힘을 쓰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결국 나는 아침에는 누군가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것을 눈치챌 것이라 생각하고 바닥에 주저 앉았다. 가방에서 마시다 넣어뒀던 생수병을 꺼내 한 입 마신다. 손목시계를 보니 시간은 이미 새벽 3시였다. 아침에 사람들이 출근하려면 적어도 3시간은 기다려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일단 조금 쉬기로 했다. 복잡한 생각은 그만두고 눈을 감으려 하는데, 또 희미하게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마음 깊이 안도했다. 그리고 내가 했던 온갖 헛수고를 떠올리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다시 고장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나는 허둥대며 가방을 어깨에 메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나온 직후, 나는 내가 이상해진 것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현기증 때문에 넘어질 뻔 했다. 등 뒤에서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것이 느껴진다. 내 눈 앞의 풍경은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왼편에 안쪽까지 늘어선 방문과 창문들. 오른편에 보이는 야경. 이것 자체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왼편에 늘어선 문들은 평상시 보아오던 새 것이 아니라, 매우 오래된 것 같은 낡고 무거운 철제 문이었다. 깨끗한 타일이 붙여져 있던 외벽은, 군데군데 금이 가고 페인트가 벗겨져 무너질 것 같은 회색의 시멘트 벽으로 변해 있다. 그리고 멋진 조명으로 비추고 있던 전구는 사라지고, 몇 개의 낡은 형광등이 당장이라도 꺼질 것 같이 불규칙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자 등에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한기가 서려왔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이 곳에서 도망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마구 눌렀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은 포기하고, 계단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하지만 계단 앞에는 두꺼운 방화문으로 막혀 있어, 밀고 당겨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휴대 전화로 도움을 구하려 했지만, 화면에는 본 적 없는 에러 표시만 나오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 곳에서 도망가기 위해 나에게 남은 유일한 수단은, 엘리베이터 반대쪽에 있는 또 하나의 계단 뿐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그 기분 나쁘게 이어진 낡은 방들 앞을 지나가야만 한다. 나는 그것이 너무 싫었다. 원래 내가 살던 맨션과 같은 구조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계속 서 있을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안 쪽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대로 서 있느니 한시라도 빨리 이 곳을 떠나고 싶었다. 창문, 문, 창문. 창문, 문, 창문...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창문이 두 개. 이 구조는 내가 사는 맨션과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계단까지 가기 위해서는 8개의 문을 지나가야 한다. 흐릿하게 명멸하는 형광등 때문에 안 쪽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같은 구조라는 예측이 맞을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걷는다. 점멸하는 형광등의 빛이 금이 간 벽이나 녹슨 문을 기분 나쁘게 비춘다. 창문은 닫혀 있고, 창의 격자는 잔뜩 녹슬어 있다. 첫번째 문을 지날 무렵, 나는 오른편에 보이는 야경의 변화를 눈치챘다. 수도권인 이 곳은 아무리 새벽이라고 해도 불이 켜진 곳이 많을 터였다. 이 맨션 주변만 해도 가로등이나 아직 자지 않는 사람의 집에서 빛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오른편에 보이는 것은 완전한 어둠 뿐이었다. 빛은 하나도 안 보인다. 새벽 3시라고는 해도 등불 하나 켜져 있지 않을리가 없다. 나는 더욱 겁에 질렸다. 이상한 세계에 혼자 떨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나는 근거도 없이 이 앞에 있는 계단이 출구라고 믿었다. 2번째 문을 통과할 때, 나는 앞에서 무엇인가의 낌새를 눈치챘다. 그것은 소리였다. 규칙적인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들어본 적 있는 소리다. 그것은 엘리베이터의 스피커에서 들려왔던 그 소리다. 정적 속에 그 개구리를 밟는 것 같은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그 소리는 아무래도 3번째 방 근처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그 소리는 조금씩이지만 분명히 들려왔다. 나는 3번째 문 근처에 멈춰 섰다. 그 문 끝에 있는 창문이 열려 있는 것 같다. 소리는 거기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조금씩 창문에 가까워졌다. 창문은 반쯤 열려 있다. 나는 격자 너머로 살그머니 창을 들여다 보았다. 들여다 본 방은 깜깜했지만, 안 쪽 방의 문은 열려 있었고 그 앞의 방에서는 희미한 빛이 보였다. 안쪽 방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머리가 긴 여자가, 등을 돌리고 앉아서 양손을 높이 들었다 흔들며 내리고 있었다. 일심불란하게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며, 여자는 몇번이고 양 손을 흔들며 올렸다 내리고 있었다. 손을 내릴 때마다 들려오는 개구리의 단말마. 자세히 보니 여자는 사람을 올려놓고 있는 것 같았다. 여자의 것이 아닌 다리가 이 쪽 방향으로 보이고 있다. 그리고 높이 치켜올린 양 손에는 부엌칼 같은 것이 들려 있다. 마음껏 내려 찍히는 부엌칼. 켁켁거리는 소리는 폐가 찍혀서 충격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일 것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은 미동조차 없다. 하지만 여자는 신경 쓰지 않고 부엌칼을 계속 내리 찍는다. 그것을 알아차린 나는 무심코 뒤로 물러났다. 끼익하고 바닥에 구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가리고 몸을 숨겼다. 귀를 기울여서 방 안의 소리에 정신을 집중했다. 심장은 미친 듯 뛰어서 박동이 들려올 정도다. 마음을 안정시키려 노력하며,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내 심장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안정을 되찾은 나는, 자세를 낮추고 신중히 그 곳을 빠져 나가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지금,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 순간 안 쪽에서 다다다닥하고 현관을 향해 엄청난 기세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계단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4번째 문을 지나갈 무렵, 뒤에서 쾅하고 무거운 문을 거칠게 연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나는 필사적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죽을 힘을 다해 뛰고 있는데도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져만 온다. 6번째 문쯤 오자 이미 발소리는 내 바로 뒤에서 들리고 있었다. 심장과 폐가 터질 것만 같다. 7번째의 문을 지나치자, 계단이 보였다. 저기까지만 가면 살 수 있어. 계단으로 가면 안전하다는 보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렇게 믿으며 달렸다. 마지막 문을 통과할 무렵,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는 바로 내 옆에서 들려 오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부엌칼이 등에 꽂힐 것 같은 공포에, 나는 아무 소리나 지르며 달렸다. 그리고 계단을 한 번에 뛰어 내리려고 한 순간, 나는 뒤에서 무엇인가가 나를 잡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어떻게든 계단으로 온 힘을 다해 뛰어 내린다. 몸의 밸런스가 무너져 이상한 자세로 공중으로 날아 오른다. 그리고 등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계단 위에서 끔찍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는 여자가 보였지만, 나의 의식은 곧바로 희미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아침이었다. 당황해서 주변을 살폈지만, 평상시와 똑같았다. 몸이 여기저기 아팠지만, 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나는 천천히 계단으로 내려갔다. 아무래도 나는 8층과 7층 사이의 계단에서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 같았다. 시계를 보자 아침 6시였다. 집에 겨우 도착하자 집에 들어오지 않은 나를 걱정했던 것인지 바로 아내가 나왔다. 몸을 겨우 움직이는 나를 보고 놀라서 소리를 지른다. 아내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도저히 그 사건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술에 취해 계단에서 떨어진 채 자버렸다고 했다. 아내는 의아한 얼굴이었지만, 곧바로 타박상을 응급처치해 주었다. 그 날은 도저히 회사에 나갈 몸 상태가 아니었기에 나는 회사를 쉬었다. 만약을 위해 병원에 가자고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에 의지하면서 엘리베이터의 앞에 왔을 때, 나는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엘리베이터는 평범하게 도착해서 평범하게 우리를 옮겨다 주었다. 그 사이, 나는 고통조차 잊을만큼 긴장하고 있었다. 입구에는 관리인이 있었다. 관리인은 아내에게 부축받고 있는 나를 보고 걱정하며 말을 걸어 온다. 나는 엘리베이터에 관해 물었다. 어제 정비 회사에서 사람이 왔었지만, 고장은 없었다고 관리인은 말했다. 나는 그 사건이 정말 있던 것인지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피로 때문에 꿈이라도 꾼 것이었을까. 회사를 이틀 쉰 나는, 아직 여기저기 쑤시는 몸으로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장을 입기 위해 윗도리를 옷걸이에서 꺼냈을 때, 나는 그것을 발견했다. 그 이후 나는 계단으로만 다니고 있다. 최대한 빨리 이 맨션은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갈 생각이다. 역시 그 사건은 모두 현실이었던 것이다. 내 정장 윗도리에는, 거무스름하게 갈라진 손톱이 매달려 있었다.
미뿔작성일 2021-02-28추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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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최악 성노예 수용소" 위구르서 드러난 '중국몽'의 민낯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9&aid=0004755661 中 최대 '에너지 보고' 인데…위구르인 "금사발 들고 굶주려" 중국 북서부에 위치한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삼장법사로 알려진 당나라 승려 현장이 인도를 가기 위해 거쳐간 '서역'의 일부다. 청나라는 18세기 이 지역을 정복하고 '새로운 강토'라는 뜻이라며 신장(新疆)이라는 지명을 붙였다. 그래서인지 많은 위구르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신장 대신 '동(東)투르키스탄'이라고 부른다.신장은 중국 34개 성과 5개 자치구를 포함해 가장 면적이 크고(한국 17배) 국경선이 길며 인접한 나라도 8개나 된다. 과거 '실크로드'가 지나가던 이 지역은 현재 시진핑 정부가 핵심 대외정책인 '일대(一帶·One belt)'를 추진하는 교두보로서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중국이 이 지역에 목을 매는 건 정치적 이유 이상으로 경제적 이유도 크다. 신장에 매장돼 있는 자원은 중국 3대 유전을 비롯해 석탄 등 중국 전체 육지 에너지의 34%가량을 차지한다. 2017년에는 이곳에서 10억t급 세계 최대 유전이 발견되기도 했다. 중국으로 오는 송유 파이프라인 대부분이 집결하는 곳이기도 한 만큼, 사활적 에너지 공급망이자 최대 '에너지 보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움직임이 현실화된다면 그 시발점으로 항상 지목되는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중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신장을 안정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신장은 중국 다른 지역에 비해 낙후돼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당국은 신장의 자원을 열매 따먹듯 속속 중국 동부로 옮기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를 서기동수(西氣東輸·서쪽의 천연가스를 동쪽으로 운송한다)라는 말로 포장해왔지만, 위구르인들에게 남은 건 빈곤뿐이었다. 방대한 천연자원과 엄청난 이익이 나는 고향에서 착취받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 사이에선 "금사발을 들고도 굶주려야 한다"는 자조까지 나오곤 했다.중국 당국이 개혁개방 이후 이 문제를 완화하려 노력했다고 하나, 수십 년이 지난 2012년에도 위구르족의 평균 개인 소득은 한족의 50%가량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이후 '서부 대개발' 전략에 따라 한족이 많은 도시 지역인 신장 북부는 많이 발전했다지만, 위구르족이 주로 사는 남부와의 격차가 현저해 경제적 과실이 고르게 공유되고 있지 않다는 평가다. 왜 유독 위구르에서 분리·독립 의식이 강할까? 중국은 위구르의 분리의식을 약화시키려 여러 정책을 써왔다. 그럼에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이들의 분리 욕구는 역사와 문화 차이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 이상으로 정치와 종교 문제에 기인한다. 중국이 자치제를 하고 있다곤 하나, 실질적으로 진정한 민족자치는 부재하고 공산당 1당에 의해 통치된다. 위구르족이 명목상 행정권을 가져도 최고 권력은 언제나 한족 차지다. 이런 허울뿐인 자치권으로는 위구르인들이 자원 배분과 개발, 인구, 환경 문제 등에 있어 전혀 개입할 수가 없다. 특히 위구르는 소수민족 중에서 간부 등용, 승진 등에 있어서도 가장 차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또한 위구르는 이슬람인 만큼 종교적 정체성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인지 중국과 갈등을 빚는 중심에 항상 종교 문제가 있다. 위구르 주민들의 분리·독립 운동 배경에는 종교적 차이가 가장 크게 자리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문화대혁명(문혁) 시기 종교말살정책은 위구르족에게 큰 치욕을 안겼으며, 어떤 정책보다 큰 불만을 야기했다.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종교를 폭넓게 용인하는 정책을 추진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모스크 폐쇄와 출입 봉쇄 등의 조치가 취해지는가 하면, 역사 관련 저술에 있어서도 이슬람 입장에서 쓰인 것들은 철저히 검열·차단되고 있다. 설령 위구르족의 경제 수준이 동등해진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차별과 종교적 억압이 계속되는 한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유화→탄압→동화…中이 구사해온 '한화형 제국주의' 역사적으로 한족들은 중국 땅에 살던 많은 민족들을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한화(漢化)', 즉 동화시키는 방법으로 흡수해왔다. 점령지에 한족들을 이주시키고 현지 경제를 장악하는 한편, 한족의 언어 등 문화를 주입시키는 식이다.현대 이후 한족의 집단 이주가 가장 많이 이뤄진 곳이 바로 신장 지역이다. 단적으로 중국 당국은 위구르 분리 운동을 억제하고 신장을 개발한다며 한족들로 구성된 건설병단(建设兵团)을 대량 이주시켰다. 개혁개방 이후에는 한족 이주민들로 하여금 이탈을 막는 정책을 썼다.중국 공산당은 수립 초기 소수민족들을 당 간부에 대거 임명하는 등 유화책을 폈다. 하지만 1960년대 대약진운동과 문혁 이후 소수민족 간부들이 대거 숙청됐고, 그들의 풍습과 관습은 미신, 봉건주의로 취급됐다. 사실 공산당의 이런 입장 변화는 마오쩌둥의 태도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그는 한때 중국의 각 성마다 인민자결주의를 실시하고 전국을 27개 국가로 나눌 것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권력 중심부에 들어서자 이 같은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소수민족의 분리·독립을 억압하고 '하나의 중국'을 내세웠다. 이후 1976년 까지 소수민족의 언어 사용을 막고 중국어를 쓰도록 강요하는 등 그들로 하여금 문화 변경을 강제했다. 이는 제국주의 시절 서구 국가들이 식민지에 행했던 방식과 흡사해 가히 '한화형 제국주의'라고 불릴 만하다. 소수민족 비율 점차 주는데…신장내 한족 비율은 늘어 중국은 소수민족 동화를 위해 당근도 제공해왔다. 예를 들면 2014년 신장자치구 체모현은 소수민족과 한족의 결혼 장려를 위해 의료비, 일자리, 주택 등 다양한 지원을 발표했다. 이들의 2세는 자동으로 한족이 된다. 모두 해당 지역 소수민족인 위구르를 동화시키기 위한 일환이다. 이 때문인지 위구르를 비롯해 중국 내 소수민족 비율은 1978년 중국 전체 인구의 14%에 달했으나 2010년 이후 9% 이하로 감소했다.중국은 현재 소수민족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 다민족 국가임을 천명하고 있다. 당장 엄연히 존재하는 민족 간 차이를 부정할 순 없고, 이것을 인정 안 할 경우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론 소수민족들을 모두 동화시켜 하나의 중화민족으로 통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신장 위구르에서 시행 중인 한족 이주와 결혼 장려 정책은 대표적 예다. 이로 인해 신장에서 한족 주민이 차지하는 비율은 1949년 6%에서 2015년 무렵에는 약 45%로 크게 늘었다.표면적으로 보면 신장의 고질적 불안은 위구르족의 분리·독립 요구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한족의 대량 이주와 강제 동화 정책의 부산물이라는 지적이 있다. 한족의 이주 이후 더 두드러지는 문화적 이질성과 위구르족의 정체성, 그리고 불평등으로 인한 갈등이 더 큰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계속되는 문화 충돌과 빈부 격차의 심화가 위구르족으로 하여금 종교 의존을 심화시켰고, 결과적으로 분리주의 운동도 더 과격해졌다는 것이다.中, 드론·안면인식기술로 신장을 24시간 감시개인 사생활이나 인권에 개의치 않는 중국이 기를 쓰고 발전 시켜온 안면인식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시나닷컴(新浪)]1990년대 이후 국제정치적 변화에 따라 위구르에서 억눌려 있던 독립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본격 발생했고 진압 과정에서 많은 위구르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신장 위구르가 '중국의 화약고'라는 별칭을 갖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이에 따라 신장에 대한 유화와 동화 정책 이면에 감시·통제는 날로 강화돼 왔으며,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더 정교해져 왔다.2018년 영국 로이터는 중국 당국이 안면 인식 기술을 통해 위구르 주민 260만명의 24시간을 추적 감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신장은 각종 드론과 수만 대의 안면 인식 카메라, 모바일 앱 등 첨단 기술이 총동원되는 만큼, 지구에서 단위면적당 감시 도구가 가장 많이 설치된 '세계 최대의 감옥'이라는 말도 나온다.지난해 2월 CNN이 입수한 중국어로 쓰인 700여 쪽의 문건에는 반체제 성향으로 분류된 위구르인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주민들의 일상과 종교생활까지 속속들이 기록돼 있기도 했다. 해당 문건에 적시된 구금 사유는 대부분 이슬람식 복장과 기도를 했다거나, 아이를 너무 많이 낳았다는 등 문명국에서는 죄악시하지 않는 것들이었다.신장 위구르가 암시하는 '중국몽'의 미래 "한족과 위구르족 간 평등한 발전 없이 평화도 없다." 위구르족 경제학자 일함 토흐티 교수의 발언이다. 그는 위구르 분리·독립과는 거리가 먼 '온건파'였지만, 2014년 중국 당국에 의해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위구르족이 한족에게 밀려 경제, 사회적 차별을 받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그의 노력은 '극단주의'로 몰릴 뿐이었다.이합집산의 역사가 반복돼 온 중국은 대내적으로 수많은 민족과 종교를 '하나의 중국'이라는 깃발 아래 붙들어놓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을 언제까지 강압 통치로 계속 복종시킬 것인지 알 순 없지만, 적어도 시진핑 정부의 신장 통치 방식은 과거보다 훨씬 더 억압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외적으로는 중국 눈치를 보며 쉬쉬하는 몇몇 나라들과 선택적 인권 감성에 물든 지식인들, 이런 암담한 환경에서 위구르인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20세기 전체주의의 야만 속에 살아가고 있다.그러거나 말거나 현재 중국인들의 자국에 대한 자부심은 최고조다. 머지않아 경제에 이어 군사적으로도 세계 1위를 차지해 19세기 치욕의 역사를 갚아주고 '중국몽'을 실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분위기다. 시진핑 정권 출범 후 한층 강화된 애국주의, 민족주의 교육은 타오르는 '중화 국뽕'의 불길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위구르 수용소 문제에 대한 지적은 잘나가는 중국이 부러워서 나오는 '괜한 트집' 정도로 치부된다.그러나 수많은 증언과 정황들은 수용소에서 테러 또는 분리주의 혐의로 행해지는 처참한 인권 유린이 실제이자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암시해준다. 국제사회의 비판에 아랑곳없는 공산당의 민낯은 시주석이 늘상 강조해온 '중국몽'과 '책임을 다하는 대국'이 될 거란 주장을 더 공허히 들리게 할 뿐이다 최첨단 인공지능과 기술이 낙후되고 야만스러운 정치 독재 체제를 유지하는데 효과적으로 쓰이는게 바로 '중국몽'이다. 쒸발 중화제일주의 따위 누가 믿겠어. 걍 일당독재 체제 강화에 불과하지.
린눈작성일 2021-02-27추천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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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백신전쟁, 우리가 유럽, 일본의 상황과 다른 이유. (가짜뉴스를 잡자)
미국과 영국이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우리는 뭐하냐)이스라엘은 코로나 백신 접종을 세계에서 1위로 잘하고 있다! (우리는 뭐하냐)이런 표면적인 내용 외에는 국내 뉴스에서 제대로 다루는게 없었음. 미국이나 영국 등 먼저 시작한 나라도 그나라 인구에 비하면 정말 적게 접종했다는건 대충 알았지만읽는 내내, 이랬어? 이랬다고? 하는 반응이 절로 나온다. 각국이 놓인 상황과 그 속사정.우리 당국은 어떤 상황에서 무슨 원칙을 지키려 노력했는지..이런 소식을 모두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방송 뉴스, 포털 메인이 아니라 독립언론 대표 페북으로 봐야 한다니... ▼ 이런 짓이나 하는 놈들에게는, 전혀 들을 수 없었던 소식.지금 보니까 더 웃기네 ㅋㅋㅋㅋ 웃프다 ㅠㅠ (참고. 2020년 마지막 밤, 정은경이 일한 이유) http://todayhumor.com/?bestofbest_435838 앞으로 무슨 돌발 상황이 생길지는 모름.미.친놈들 집회나, 독감백신처럼 본질을 벗어난 사망타령, 혹은 돌발적인 공급 차질 등 방역당국이 목표한만큼 집단면역을 이루려면 전국민의 70%가 접종해야 하고, 세계 각국이 수급을 기다리니, 시간은 오래 걸릴 것이고, 어쨌거나 마스크는 계속 써야 됨.이제 작은 발걸음을 시작했을 뿐이니... 방역체계를 지키고, 집단면역 달성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우리모두에게 감사합니다.최대한 별 일이 없길 바라고, 우리는 가짜뉴스를 때려잡아야죠. 힘냅시다!출처https://www.facebook.com/goandgo1/posts/389250524748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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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밑에 턱스크 당진 공무원 동생글이랍니다
저는 턱스크 공무원 막내 동생 김수진입니다. 마녀사냥의 진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어떻게 한사람의 인생을, 한가정을, 한집안을 이렇게 파탄으로 만드셨나요? 묻고 싶습니다. 방송에 보도된 것처럼 저희 오빠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유튜브, 영상 등에 댓글 많이 달아서제 이름은 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어릴적 부터 같이 자란 저는 오빠는 저에게 아버지 같은 사람이셨고 초등학교 때 부터 늘 모범생으로 자라왔으며 부모님께 효도하고 동생들을 살뜰히 챙기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오빠는 공부를 잘해 상이란 상은 다 받으며 중학교 때 선생님의 권유로 고등학교도 부천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러나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도 학비가 없어서 대학 등록도 포기하고 많이 방황을 하였고, 사촌오빠의(공무원임) 조언으로 오빠 나이 22살 1983년 (나중에 합격증을 보니 82년임)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오빠는 공무원인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습니다. 우리집, 우리집안에서도 오빠를 존경하면서요......네이버 검색어 창에도 당진 김유진이라고 검색해보면 그동안의 선행이 많이 검색됩니다. 또한 공무원으로 재직 중 내무부장관상, 도지지상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오빠는 그 뒤로 4년대 대학도 졸업하고 자기개발을 계속하면서 1급 한자, 컴퓨터관련 자격증, 사회복지사 등 등 수많은 자격증을 취득하셨습니다.■2020년 11월 24일, 26일 YTN방송이 두 번 나가고 오빠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평소의 오빠의 성품을 알기에 이것이 조작된 것임을 저는 한 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 오빠는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진급을 하고 조금 다니다 퇴직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전화로 오빠는 방송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얘기 하셨고 바로 제가 소개한 변호사와 통화를 하였습니다. 변호사가 소송을 할 것을 권했지만 공무원 신분이기에 참고 참고 또 참았습니다. 주위에서 그래야 한다고 말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이렇게 왔고 신경쇠약, 공황장애, 대인기피증에 우울증까지 겹쳐 모든 것을 잃고 저렇게 화병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이상곤 기자님께서는 무엇을 얻고자 우리 오빠를 짜 맞추기 식으로 영상을 조작해 뉴스에 속전속결로(주말 포함 4일)방송에 보도하셨을까요?, 또한 공무원인 것을 모르고 1차로 방송 나가고 카페주인은 “본인이 비염인데 마스크를 착용했다가 죽으면 어쩔 거냐? 나는 강원도에서 왔는데 여기 마스크 지침은 안 따라도 된다”고 인터뷰하고 2차 방송에 “강원도에서 왔는데 알고 보니 당진시청 고위간부급 공무원”이라며 공무원이 아니고 일반인이었으면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일을 이슈화 시켰습니다.네이버 카페 당진부동산에서도 그렇게 울면서 정말 죽을 것 같다고 글을 삭제해 줄 것을 권했는데 안 된다고 하더니 윤ㅇㅇ과장님 이름이 올라 가자 마자 아이런 하게도 모든 글들은 삭제되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여론몰이를 하더니......또한 저는 뉴스, 유튜브 영상 등에 많은 댓글 달았는데 유독 YTN만 처음엔 댓글을 제한 하더니 나중에 YTN기사에 제 댓글을 차단시켜 안보이게 해 놓았습니다. 내 댓글 있는데 댓글이 뉴스 댓글에서는 안보이게요. 무엇 때문에 제 댓글을 안보이게 감추는 것일까요? 진실을 알려야하는데 말이죠.방송이 나가고 오빠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거의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고 이상행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설마 했던 일들이 생기면서 그 일들은 모두가 사실이 되어버렸습니다.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현재 당진경찰서에 CCTV불법유출, 명예훼손, 허위사실유포로 고소장은 접수되었고 변호사가 카페주인아가씨에게 정보공개요청을 했는데 수취인 불명(거주하는 것으로 알고 있음)으로 나왔고 옆집에 사는 외할아버지에게 발송하였습니다. CCTV가 확보되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CCTV 분석해서 당시 영상은 50분가량을 짜깁기 및 조작 한 것으로 확인하였습니다.마스크를 올렸다 내리는 영상(1번함, 하지만 수 차례로 방송 나옴)■11월 20일 5시 54분 커피값 카드결재(영수증 참조)하러 와서 비염이 있으니 하면서 한 영상이고 손을 내미는 영상도 카운터 쪽이 아닌 반대쪽 책장 있는 곳에서 카페주인 아가씨가 지침서를 찾으러가서 그쪽으로 다가가 지침서가 없느냐 하면서 손을 잠깐 내미는 영상입니다. 그때까지는 카페주인과 아무런 일이 발생되지 않고 조용하게 말했다고 소명서에도 나와 있습니다. 아마도 그때부터 마스크를 벗기려 행패 난동부렸으면 그곳에서 커피도 안마시고 그냥 나왔겠지요. 또한 카페주인 아가씨가 112에 신고해서 현행범으로 바로 체포도 되었을 것이고요. 영상을 봐야만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겠지요. 영상을 꼭 주세요. 카페아가씨, 어머니!■잠시 후 주문한 커피가 왔고 동행한 윤ㅇㅇ 과장이 “학교는 다니면서 (카페운영) 하는 거냐” 말을 했고 얼굴에 화가 잔뜩 나서 카운터로 갔다고 합니다. 커피를 마시며 둘이 얘기하고 30분 경과 후 집으로 가려고 입구로 나가는데 화가 잔뜩 났던 카페주인 아가씨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쏘아보고 뒤통수에 대고 “마스크 똑바로 쓰고 다니라고 소리 질러서 발생한 일입니다. 하지만 지역신문 당진시대 인터뷰에서는 카페주인아가씨는 김유진 과장이 말했다고 보도했으나 사실과 다름을 얘기합니다. 전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고 그 카페주인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는지 중학교를 졸업했는지 저희 오빠는 모릅니다. 다만 같이 동행한 모르는 사람 앞에서 면박을 주어서 나라도 화가 났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말은 한사람은 저희 오빠 김유진 과장이 아닌 윤ㅇㅇ과장님 한말인데 왜 어떠한 이유로 오빠가 말했다고 하는지 왜 카페주인 아가씨와 그 엄마는(그 당시 그 자리에 없었음) 왜 윤ㅇㅇ 과장을 감싸고 도는지 턱스크는 두 명인데 왜 혼자만 마녀사냥을 당하는지 정말로 궁금합니다. 진실을 알려면 CCTV영상이 필요합니다.그리고 YTN 이상곤기자님은 왜 오빠를 방송에서 이슈화시켰는지 이 방송이 나가고 최고의 이익을 얻는 사람이 누굴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또다른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당시 11월 19일 예정인 현대노조 대규모 집회 때 방역책임자들 출장 보건소 방역 책임자 등 당진시 관리자급 10여 명도 동행, 19일 충남 당진 현대제철 앞에서 대규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여 대규모 집회를 방역 점검을 위해 공무원 백여 명이 동원 됐는데...... 집회가 진행돼 감염 확산 우려가 커졌는데요 현대제철 앞에서 2천6백 명.....방송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쓰기 위해 턱스크 공무원인 저희 오빠를 타킷으로 삼은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턱스크 공무원으로 연관검색어가 따라옵니다. 그 이후로 오빠에 대해선 방송은 하지 않았고요. .■현재 제가 카페엔 정의사회 구현 차원에서 6건을 제기했고 5건이 수용되었습니다. 규제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열심히 규제해 주려고 찾고 있습니다. 카페 사장님은 CCTV자료를 정보 공개 요청했으니 꼭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2월 23일(화) 홍성 충남도청에서 카페어머니와 따님을 정문에서 봤습니다. 얼굴은 보면서 사건에 있을 때 영상에 나온 주인 아가씨와 인터뷰하는 아가씨가 왠지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징계위원회 왔던 아가씨는 사건 당일 영상과 비슷한데 그사이 많이 변한 것인지 모르겠지만요. 다시 한번 전합니다. CCTV자료 꼭 제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제가 조사한 내용을 이곳에 알립니다.◆11월 19일 ~11월 20일(목~금) 1박2일 강원도 힐링 캠프 참석(보건소 팀장급 6명 포함. 총10명 참석)- 우울증 테스트등에서 고 위험군으로 나온 공무원대상으로 참석◆ 11월 20일 오후 5시 30분경 시간 카페방문◆ 오후 5시 54분 윤ㅇㅇ과장 화장실에 가고 혼자 커피주문하러감. 카드결재(영수증 첨부파일 참조)11월 24일 영상을 보면 휴지로 땀과 콧물을 닦으며 결재 단말기쪽으로 옴. 마스크 똑바로 쓰라고 해서 제대로 쓰면서 마스크를 1번 내렸다 올리며 상황설명을 하고 안경에 김서림이나 나같이 비염이 있는 환자는 따로 지침서나 안내문이 있냐고 물어보니 찾아본다고 하면서 옆쪽 4미터 정도 떨어진 책장 쪽으로 가서 찾고 그쪽으로 이동하면서 안내서가 있냐고 손을 내밀며 달라고 하자 없다고 함.(여기까지는 지역신문 당진시대에도 진술되어있음. 비겁한 변명을 한다고 보도함)◆ 잠시 후 카페주인 아가씨가 커피를 가지고 오는데 윤ㅇㅇ 과장이 “학교는 졸업하고 하는거냐”라고 말하니 얼굴이 화가 잔뜩 나서 커피를 놓고 감.◆ 6시 20분경 가방을 메고 카페를 나가는데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쏘아보면서 “마스크 똑바로 쓰고 다니세요! 고함을 치며 소리 지르니 나가다 화가 나서 쫒아가서 따짐 ”아가씨 커피 마시러 온 손님한테 너무 불친절하시네요. 라며 윤과장 딸 친구이고 바로 위 아랫집 사는 사이라 일부러 팔아주러 갔는데 기분이 나빴음. 윤ㅇㅇ과장은 그냥 고개 숙이고 나가고 밖에서 안 나오자 다시 들어와 데리고 같이 나감◆ 집에 들어온 시간 6시 30분 집에 도착. 카페와의 거리 40미터 정도 집에 와서 가족에게 카페 얘기함. 불친절하다고.◆ 11월 21~22일 주말 휴일◆ 11월 23일 월요일에 출근해서 카페 사장 불친절하다고 말함. 아마도 카페 주인아가씨와 엄마가 제보하고 ytn 이기자가 취재한 걸로 예상 됨.당시 카페주인 엄마는 그 카페에 없었음. 여자 손님 한팀(2명)뿐 과연 공무원 인걸 몰랐다는데 ytn기자가 냉큼 달려와서 촬영에 응했을지 일반인이었어도 그랬을까? 의문 당시 인터뷰한 손님한테 그 상황을 물어보고 싶습니다. 모든 사건이 다 한순간에 진행된것인지를그리고 턱스크는 두 명인데 왜 오빠인 김유진 과장 한명만 이슈화시겼는지도.◆ 11월 24일 YTN 방송 나옴. 동행한 사람은 공무원이고 당진시청에 찾아갔는데 일행이 누군지 알 알려준다며 카페 주인아가씨가 방송에 나와 인터뷰 함. “나는 강원도에서 왔다.당진시 지침은 안 따라도 된다. 공문을 가지러 오겠다고 위협했다”. 보건소에 신고 했는데 과태료 대상이 아니다(수도권은 의무착용에 과태료 대상이었지만 당진시는 확진자 없어서 코로나 1단계 완화기간이라 마스크의무착용 아니었음)는 허망한 답변만 들었다고 당진시는 방역의 사각지대라고 인터뷰 함.◆ 11월 25일 당진시청으로 ytn이상곤 기자 방문. 잘써 줄 테니 인터뷰에 응해라하였고 한시간가량 인터뷰했지만 방송에는 “비염이 있어서.....”한줄만 보도됨. 나가면서 시청직원들에게 방송보고 “난리났쥬” 함.◆ 11월26일 ytn전국 단독 방송방송에서는 나는 강원도에서 왔다 알고보니 당진시청 고위관리자급 공무원이었다. 거짓말하는 공무원, 마스크를 수차례 벗기려 행패, 난동을 부려 봉변을 당했다며 인터뷰하였고, 갑질하는 민폐 고객, 코로나 정국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권위적인 공무원으로 묘사하여 언론 및 온라인에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전 국민이 보았고 저도 친구 , 지인 등에게 수 백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11월 27일 방송 ytn 직위해제 방송 당진시청서 감찰착수 했다(변호사 당진시청에 정보공개 요청했는데 영상자료는 개인정보법에 위배되어 가지고 오지 못했다 함.)◆ 11월 27일 실명이 먼저나감, 지역신문 “당진시대” 실명 방송 신문 페이스 북, 유튜브,◆ 11월 28일 방송현대노조 대규모 집회 때 방역책임자들 출장보건소 방역 책임자 등 당진시 관리자급 10여 명도 동행, 19일 충남 당진 현대제철 앞에서 대규모 집회가 진행돼 감염 확산 우려가 커졌다.당시 이상곤기자님은 보건소 팀장급 공무원 6명이 오빠와 함께 힐림캠프 참석한걸 알고 있었을 것으로 전 생각합니다. 현대제철 앞에서 2천6백 명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여 대규모 집회를 하고 방역 점검을 위해 공무원 백여 명이 동원 됐는데, 보건소에서는 필수 인력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현장에 투입되었고, 같은 시간 워크숍 참석자들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강의와 체험 교육을 받고 있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제한돼 있어 갑작스러운 확진자 발생 등 급한 연락은 불가능했다. [강OO / 충남 당진시 읍내동 : 대규모 집회가 있다고 해서 방역 철저히 한다고 했는데 책임자분들은 그 자리에 계시지 않았던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방송에 나옴◆ 당진진부동산 카페 마녀사냥은 방송이 나가면서 시작하여 계속해서 여론 몰이 하였고 이것이 오빠를 자극하여 21년 1월 29일사건 당일까지 지속되었으며, 오빠는 우울증이 더 악화되면서 사는 집 3층에서 떨어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카페에서 계속되었습니다. 진실은 언제는 밝혀집니다.-> 관련 방송영상 참조하세요.11월 24일 마스크 착용 과태료대상 아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52/000151806111월 26일 버럭한 손님 알고보니 당진시청 공무원이었다.https://www.ytn.co.kr/_ln/0115_20201126120051277711월 28일 대규모집회 방역담당자들 6명 워크샵(턱스크공무원 포함 10명)https://www.ytn.co.kr/_ln/0115_202011282213037533 그런데 어쨋든 카페에 보복성 단속한건 맞다는건가? 이젠 참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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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관하여
가끔 이 문제를 생각하는데 헌재에서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더군요. 우선 저는 명예훼손이라는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제 생각은 이제부터 차차 설명드릴 것입니다. 법에서 다루는 명예는 개인에 대한 외부적 평가입니다. 평가에는 평가를 하는 쪽과 평가를 받는 쪽이 존재합니다. 명예훼손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의 논의는 평가를 받는 쪽 시각에 치우쳐 있습니다. 따라서 평가를 하는 쪽의 시각으로도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평가를 하는 주체는, 평가를 왜 하는 것일까요?단순히 남의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일까요? ’남의일’이 아니기 때문에 평가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남의일’이라면 평가 자체가 부적절하고, 따라서 그런 부분에서는 명예 자체도 부여되거나 회수되어서도 안됩니다. 가령 부부인 A와 B가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마을 사람들이 그 부부를 높이 평가하거나 낮게 평가할 이유도 없고, 평가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평가는 공동체가 구성원을 규율하는 수단입니다. 공동체에서 규율할 필요가 있는 문제에 대하여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를 평가하고, 그 평가에 따라 높은 평가를 얻은 개인은 높은 명예를 지니게 되는 것이고, 낮은 평가를 얻은 개인은 낮은 명예를 지니게 되는 것이죠. 명예가 실추된다고 표현하죠. 이에 따라 개개인은 높은 평가를 받고 싶은 사회적 욕구에 의하여 스스로의 행동을 조절하고, 이런 메카니즘에 의해 공동체는 법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도 일정 수준으로 개인을 규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명예의 사회적 기능입니다. 이러한 시각에 따른다면 명예는 공동체 구성원에 의해 각 개인에게 부여되거나 회수되는 것이지, 한 개인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향유하며 명예의 변동으로부터 절대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성격의 개념은 아닙니다. 명예 자체가 구성원 각 개인의 평가가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평가하는 각 개인의 사상의 자유에 의해 애초에 평가를 받는 쪽은 자신에게 내려지는 평가에 대해 개입할 수 조차 없습니다. 그러므로 명예는 ‘훼손된다’고 표현하기 보다는 ‘부여’되거나 ‘회수’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명예에 관한 사회생활관계에 있어서 법이 어떻게 개입하거나 개입하지 않아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선, 명예 메커니즘의 긍정적인 기능인 사회질서 유지기능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입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음, 명예에 의한 규율이 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영역을 침범할 때는 법이 그 침범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첫째로, 명예 메커니즘이 올바로 작동하기 위한 정보의 유통은 원칙적으로는 금지되어서는 안됩니다. 반면 허위정보의 유통은 명예 메커니즘의 오작동을 초래하므로 법이 이를 금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진실된 정보의 유통이더라도 그것이 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에 속할 수록 엄격히 금지되어야 하고, 그 정보가 공적인 영역에 속할 수록 금지되어선 안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때 현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적시되는 정보가 개인의 자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오로지 공익에 관한 것일 때’에만 처벌을 하지 않음으로써 정보의 유통에 대하여 지나치게 엄격한 금지를 하고 있어서 첫번째 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공적인 영역이 관련되어 있다면 그 정보는 유통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 높은 사회적 평가를 누리도록 법이 보호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타인에게 해를 끼쳤다는 정보는 유통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 즉 합당한 명예가 부여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명예 메커니즘이 올바로 작용하여 사회질서유지의 기능을 올바로 수행합니다. 사실의 적시는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그것이 개인의 자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일 수록 점차 강하게 규제를 하여서, 온전히 개인의 자유의 영역에 속하는 정보, 가령 누구 가슴은 짝짝이다 하는 식의 정보에 대해서는 엄격한 금지를 하도록 하는 방법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허위사실 적시가 처벌되는 이유는, 개인의 명예가 ’훼손’되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그릇된 정보를 유통시킴으로써 마땅히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사람이 낮은 평가를 받거나, 낮은 평가를 받아야 할 사람이 높은 평가를 받는 등, 명예 메커니즘의 오작동을 초래하여 사회질서를 어지럽혔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명예에 관한 죄의 보호 법익에는 개인의 사익 뿐만 아니라 공익도 포함될 것입니다. 또한 명예를 부여되거나 회수하는 주체가 공동체라고 한다면, ‘사자의 명예’ 라는 개념도 설명하기 쉬워질 것입니다. 사자의 명예는 죽은자의 권리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죽은자에 대해서도 생전의 업적을 평가함으로써 구성원의 행동을 규율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공공의 이익으로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