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남자 / 사랑하는 여자 (3)

진짜킹카 작성일 22.04.10 22: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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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이야기 - 

 

 

 

 

내 마음을 안다는 듯 그녀가 팔짱을 끼자마자 그녀의 손에서 전류가 흘러나오는 것처럼 기분 좋은 짜릿함이 온몸으로 퍼져갔다.

 

흠칫하며 그녀의 옆모습을 쳐다보았지만, 내 시선을 못 본 척 빙긋 웃고만 있었다.

 

내 몸을 이끄는 그녀의 가벼운 걸음에 내 발걸음을 완전히 맡겨버린 채 한참을 따라 걸었다.

 

내 팔에 끼워 넣은 손을 빼 버릴까 팔꿈치를 허리 쪽으로 나도 모르게 힘을 잔득 주며 신경을 쓰고 있었기에 그녀가 재잘거리는 몇 마디 말을 듣지 못했다.  

 

그렇게 잠시 동안 아득한 기분으로 이끌려 간 곳은 3초 삼겹살 식당이었다.

 

   ‘아, 이 여자애도 삼겹살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그녀를 너무 어렵게만 생각했던 내 자신이 쑥스러워 고개 숙여 슬쩍 웃었다.

 

문이 열린 식당 입구에 들어서자 토요일 저녁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그녀가 운동화를 벗고 먼저 식당 안으로 올라섰고, 나 역시 덩달아 신발을 벗어 그녀의 운동화와 내 신발을 입구 오른쪽에 배치된 신발장에 나란히 넣었다.

 

그녀는 자기 신발까지 챙겨 신발장에 넣는 내 모습을 곁눈으로 보며 빙긋 웃었다.

 

앞서 들어선 그녀는 여러 번 왔던 것처럼 왁자지껄한 사람들 사이를 지나 빈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초승달 같은 눈으로 깜찍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우리 여기 앉아요.”

 

앞으로 그녀를 떠올리면 눈에 선명해질 것 같은 눈웃음에 호감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그녀는 바로 종업원을 불러 너무 자연스럽게 삼겹살 2인분을 시켰다.

 

   ‘2인분 적지 않을까? 그냥 4인분 시켜도 되는데. 내 눈치를 보는 건가?’

 

주문한 고기를 기다리며 오가는 대화 없이 서먹서먹하던 중, 그녀가 또다시 귀여운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오빠는 술 한 잔 하셔야 되죠?”

 

“그쪽은요?”

 

“저는 술이 안 맞아서 못 마셔요.”

 

그런 쪽에서 일하면 다 술을 잘 마시는 줄 알았지만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리고 혼자 술을 마시기가 껄끄러울 것 같아 슬쩍 미소를 보이며 나 역시 사양을 했다.

 

“그럼 저도 술은 됐어요.”

 

“아뇨, 저는 괜찮으니깐 드세요.”

 

그녀는 다시 한 번 사양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종업원을 불러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기와 밑반찬 그리고 소주가 나왔고 습관처럼 소주병 뚜껑을 따려고 했다.

 

그 때 그녀는 들릴 듯 말 듯 희미한 웃음소리를 내며 소주병을 낚아챘다.

 

“제가 따라 드릴게요.”

 

“네.”

 

그녀가 따라주는 소주를 두 손으로 받으며 건너다보자 얼굴이 빨갛게 변한 모습이 꼭 수줍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고기를 구우려고 집게를 들어 고기 몇 점을 불판에 올려 굽는 중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집게 주세요. 제가 구워 드릴게요.”

 

“아뇨, 괜찮아요. 제가 구울게요.”

 

“어서 줘요. 오빠.”

 

그녀의 귀여운 애교에 취해 집게를 넘겨주며 처음 만날 때를 떠올려 보았다.

 

그 때 내게 말을 걸었었던 입에 붙어있는 상투적인 말투와는 다르게 지금 들려오는 오빠라는 말은 너무나 설레기만 했다.

 

고기가 점점 익어가던 중에 시선조차 주지 않고 고기를 굽던 그녀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수줍게 물었다.

 

“저, 오빠 이름이…… 어떻게 되죠?”

 

그녀가 내 이름을 묻는 순간 잔잔하던 심장은 정신없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그 떨림을 달래기 위해 소주 한 잔을 얌전히 입에 물었다.

 

“제 이름은 강 승훈입니다.”

 

“아, 그래요? 이름 예쁘네요.”

 

이 분위기에 나도 이름을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일하는 환경 때문에 나도 모르게 또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이름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도…… 그 쪽을 부를 때 “저기요” 라고 부르기가 어색한데 이름이 어떻게 돼요?”

 

이름을 묻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점점 번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은주예요. 김은주.”

 

“아, 이름 예쁘시네요.”

 

“정말요? 이름 예쁘다는 거 그런 말 처음 들어요. 그리고 제 본명을 가르쳐 주는 건 승훈이 오빠가 처음이에요.”

 

그녀가 이름까지 붙여서 오빠라고 말할 땐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에 쿵쾅거리는 듯 했다.

 

“저도 오빠라고 불리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네요.”

 

그녀는 얕게 팬 보조개와 고른 치아를 살짝 보이며 이유 없이 빙긋 웃었다.

 

고기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면서 내 술잔이 비어지면 그녀는 어김없이 두 손으로 술을 따라 주었다.

 

“술은 제가 따라 마셔도 되는데. 고기 드세요. 부족하시면 더 시키시고요.”

 

“그래도 술은 제가 따라 드릴게요.”

 

그녀가 따라주는 술을 받아 마시다 보니 어느 순간 아리아리한 취기에 기분이 좋아지고 긴장감은 느슨해졌다. 

 

술이 들어갔지만 유난히 더 예뻐 보이는 그녀가 오직 술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오빠, 그냥 말 편히 해요. 저보다 나이 많으신 거 같은데.”

 

“저는 존댓말이 습관이 돼서.”

 

“오빠가 말을 편히 해야 저도 편히 하죠.”

 

그녀의 애교 섞인 콧소리에 피씩 웃음이 터져버렸다. 

 

내 웃는 모습이 보기 좋은 듯 초승달 같은 눈웃음으로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래, 그럼 은주는 나이가 몇 살이야?”

 

“저 22살이에요.”

 

“아, 그렇구나.”

 

“그렇구나는 뭐예요. 치, 아저씨 같이.”

 

그녀의 장난치려는 귀여운 핀잔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 미안…….”

 

내가 당황하는 것이 재미있는지 자연스러운 눈웃음으로 배시시 웃었다.

 

“미안까지는 아니고요. 오빠는 나이가 어떻게 돼요?” 

 

“응, 28살.”

 

“아하, 오빠도 20대구나. 난 30대 초반일 줄 알았어요.”

 

입에 손을 가져다 대며 귀엽게 까르르 웃는 모습에 웃음이 전염이 된 듯 나 역시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나이가 있어 보인다는 말이 너무 신경이 쓰여 내 옷차림을 다시 훑어보았다.

 

‘일부러 나이가 많아 보일까 봐 청바지도 입고 남방도 예쁜 거 입고 왔는데.’

 

입고 온 옷을 살피는 행동을 봤는지 삼겹살 한 점을 집어서 내 입에 넣어주며 빙긋 웃었다. 

 

“농담이에요. 오빠.”

 

“아, 난 또 진짜인 줄…….”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그녀의 귀여운 농담에 조금 당황을 했다. 

 

순간 그녀는 얼굴에 남아있던 장난기를 지우며 무언가 진지한 이야기를 꺼낼 것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오빠, 만약에요. 진짜 만약인데…… 제가 그런 쪽에 일을 안 하면 저랑 만나 주실 수 있는가요?”

 

생각지도 못한 말을 불안한 목소리로 꺼내는 순간 너무 놀라서 그녀가 입에 넣어준 삼겹살이 사레가 들려 캑캑거리고 말았다.

 

“헉, 쿨럭쿨럭…… 뭐?”

 

기침을 하면서 나와 사귀자고 운을 띄우는 건지, 내가 취기가 올라와서 잘못 들은 건지, 판단을 하려고 은주를 슬쩍 쳐다봤다.

 

은주는 방금 꺼낸 말이 민망하다는 듯 내 시선을 마주하지 못했고 그 행동을 보며 제대로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점점 커져가는 호감에 승낙의 뜻으로 어떤 식으로 전달할까 짧은 고민을 하던 중 그녀는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농담이에요, 오빠. 신경 쓰지 마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은주는 조바심이 섞인 내 말을 딱 끊으며 씁쓸한 미소까지 얼굴에서 지워버렸다.

 

“저 이제 여기에 안 살아요. 내일 대구에 가요.”

 

처량한 눈빛으로 시선을 내리깔며 꺼낸 말에 잠시 동안 또 말을 잘 못들인 건 아닌지 얼떨떨한 기분으로 은주를 건너다봤다.

 

   ‘어, 대구? 우리 집이 대구인데?’

 

 

 

- 여자 이야기 -

 

“저 사실…… 조금 전 고기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어떤 고기를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그 남자의 순진한 말에 갑자기 터진 웃음이 멈추지 않을 것 같아 고개를 숙여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내 모습에 그 남자가 난처할까 봐 웃음을 참으려고 겨우겨우 치아를 딱 깨물며 나도 모르게 그 남자의 팔에 팔을 끼웠다.

 

막상 말없이 팔짱을 낀다면 또 그 사람이 당황할 것 같아 그 남자의 팔을 이끌며 말했다.

 

“제가 잘 아는 삼겹살집이 있어요. 그리로 가요.”

 

지나가는 몇몇 다른 연인들처럼 팔짱을 낀 채 나란히 걷다보니 그 남자에게서 좋은 냄새가 풍겨왔다.

 

어느 순간부터 그 남자가 내 옆모습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부질없는 욕심이 점점 커지고만 있는지 이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싶었다.

 

그리고 머리를 이 남자 어깨에 얹는 순간 분명 이 남자와 만나보고 싶어 질 것이 분명했다.

 

   ‘이 남자라면 여태껏 상처받은 내 마음을 잘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익숙하지 않은 가슴 떨림과 설렘에 마음이 약해지려는 순간, 또다시 언니의 앙칼진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손님이랑은 절대 안 되는 거야! 남자 만나려면 새로 남자를 만나야지!』

 

입가에 묻은 씁쓸한 웃음을 채 지우기도 전에 이 남자는 팔짱을 낀 내 팔을 팔꿈치와 옆구리 사이에 딱 붙이는 느낌이 들었다.

 

행동 하나하나가 다 귀엽게 보이는 남자와 몇 분 정도 걷다보니 예전에 언니들과 왔었던 삼겹살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서 안쪽으로 걸음을 떼자마자 풍겨오는 고기 냄새에 군침이 살짝 돌았다.

 

혹시나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살짝 고개를 숙여 조심스럽게 식당 안을 살피며 구석진 자리로 갔다.

 

   ‘이 남자는 내가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될까 봐 구석 자리에 왔다는 걸 눈치 챘을까?’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살짝 건너다보곤 평소에 시키던 대로 삼겹살을 2인분 시켰다.

 

식당 입구에서 내 신발을 신발장에 넣어주던 모습도 그렇지만 여태껏 나를 대하던 모습이 가식적인 것인지 아니면 몸에 배인 자상함인지 알고 싶었다.

 

이 남자의 술버릇을 알면 대충 파악이 될 것 같아 소주를 한 병 시키려고 그 남자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빠는 술 한 잔 하셔야 되죠?”

 

대답을 머뭇거리는 눈치가 이 남자도 술 한 잔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어떤 말이 입에서 나올까 입술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나 입술로 향해있던 내 시선이 무척이나 민망한지 이 남자는 웃음을 지어보이곤 부드럽고 자상한 목소리로 내게 되물었다.

 

“그 쪽은요?”

 

“저는 술이 안 맞아서 못 마셔요.”

 

그 순간 나를 보는 눈빛이 내숭을 떠는 사람 보는 듯 했고 그 눈빛이 썩 내키지 않아 얼굴이 희미하게 찌푸려졌다.

 

“그럼 저도 술은 됐어요.”

 

내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미소만 보이는 이 남자는 내가 주문을 하지 않는다면 끝까지 주문을 하지 않을 것 같아 고집스럽게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역시나 이 남자는 소주가 나오자마자 뚜껑부터 따려고 했고 또 그 행동이 너무 귀엽게만 보여 피씩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다시 웃음을 참으며 그 남자가 쥐고 있던 소주병을 빼앗듯이 해서 병뚜껑을 따고 술을 따라주었다

 

소주를 양손으로 받는 그 남자의 선하게 미소 띤 표정은 내가 알던 기준의 남자와는 다르게만 보여서 잠시 넋이 나간 듯이 멍하니 쳐다만 보게 되었다.

 

   ‘진짜…… 내 남자친구였으면 좋겠다. 내가 여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면 나한테 쏙 빠지려나? 이제 대구 가는데 아마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언니들과 고기 집에 가더라도 언니들이 고기를 구웠고 집게를 잡은 적도 가위질을 해본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 남자에게는 자꾸만 여성스럽게 보이고 싶은 욕심에 고기를 많이 구워 본 것처럼 보이려고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런 내 행동을 멀뚱히 쳐다보는 남자에게 살짝 미소를 보이며 손에 들려 있는 집게를 빼앗았다. 

 

“어서 줘요. 오빠.”

 

낯간지러운 오빠라는 콧소리가 내 입에서 자연스레 나왔다.

 

평소에 일하면서 그렇게 많이 뱉었던 오빠라는 말이 이 남자에게는 왜 이렇게도 추스르지 못할 정도로 가슴을 뛰게 만드는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 오빠는 몇 살일까? 나보다 나이가 아주 많을 것 같진 않은데.’

 

이 남자에게 관심이 점점 가다보니 나이, 혈액형, 이름, 등등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힐끔힐끔 쳐다만 봐도 자꾸 가슴이 떨려와 심호흡을 한 번 몰아쉬고 용기를 냈다.

 

“저, 오빠 이름이…… 어떻게 되죠?”

 

그 남자의 붙어있는 입술을 안 보는 척 훔쳐보며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소주를 한잔 들이키던 이 남자도 긴장을 제법 했는지 나처럼 숨을 한번 크게 쉬곤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강 승훈입니다.”

 

이 남자도 내 이름을 묻길 바라며 딴청 피우는 척 젓가락으로 애꿎은 반찬만 휘젓고 있었다.

 

   ‘자, 그럼 오빠도 내게 관심 있다면 내 이름을 물어 봐야지? 어서 이름을 물어 봐요.’

 

하지만 이 남자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머뭇거리기만 했다.

 

   ‘내 이름은 궁금하지 않다는 건가? 왜? 한번 보고 말거라서?’

 

이 남자의 짧은 침묵에 식당 안의 왁자지껄한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헤치고 다녔다.

 

자존심상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해도 시선을 아래로 향해버렸고 그저 의미 없이 익어버린 삼겹살만 젓가락으로 휘저었다.

 

“저도…… 그 쪽을 부를 때 “저기요” 라고 부르기가 어색한데 이름이 어떻게 돼요?”

 

그 때 들려오는 이 남자의 목소리는 힘겹게 말을 꺼내는 것처럼 나긋했지만 무척이나 떨렸다.

 

이 남자의 반응과 내가 바라던 물음에 잠시나마 생겨났던 근심은 자취를 감추고 오히려 입가의 미소로 되살아났다.

 

그리고 가명과 본명 중 어떤 것을 말해야 할까 짧은 고민을 하곤 이 남자에게는 안나가 아닌 은주로 인정받고 싶어 본명을 가르쳐주었다

 

“은주예요. 김은주.”

 

“아, 이름 예쁘시네요.”

 

“정말요? 이름 예쁘다는 거 그런 말 처음 들어요. 그리고 제 본명을 가르쳐 주는 건 승훈이 오빠가 처음이에요.”

 

여태 누굴 만나면서 이름을 붙여 오빠라 불러 보긴 처음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름을 부르는 묘한 느낌과 함께 자꾸만 욕심이 커져갔다.

 

   ‘승훈 오빠라고 부르니 진짜 내 남자 같은데…… 이 남자가 정말 내 남자가 될 수도 있는 걸까?’

 

오빠도 그렇게 불리는 게 조금 쑥스러운지 내 눈을 슬쩍 피하며 또 머리를 긁적였다.

 

고기가 바짝 타들어 갈수록 언니들이랑 있을 때 평소에 고기 좀 구워 볼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오빠가 술잔을 비웠고 술잔이 비워질 때마다 술을 신경을 써서 따라 주었다.

 

술을 잘 마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술주정 같은 것이 있을까 행동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봤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이 남자의 얼굴을 살펴보자 기분이 좋은 듯 계속 웃음만 흘리고 있었고 그 모습에 괜히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약간 취한 듯 보이는 오빠가 말끝마다 존대를 해주는 것이 그리 싫지만은 않지만 더 가까이 지내고 싶은 욕심에 넌지시 나이를 물었다.

 

그러면서도 승훈 오빠의 친절한 말투와 몸에 베인 다정함이 다른 여자에게도 똑같이 하지 않을까라는 질투도 은근히 생겼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설마 여자 친구가 있거나 유부남은 아닐까 걱정까지 했다.

 

이제 앞으로 만나지 못할 남자일지도 모르면서 점점 욕심이 생겨나서일까, 평소에 잘하지 않던 애교 섞인 콧소리까지 내었다. 

 

“오빠가 말을 편히 해야 저도 편히 하죠.”

 

“그래, 그럼 은주는 나이가 몇 살이야?”

 

젓가락으로 샐러드를 집으려고 할 때, 오빠가 다정히 내 이름을 불렀다.

 

자상히 들리는 낮은 음성에 심장이 조여 오듯이 떨려와 손가락에 힘이 빠지면서 젓가락을 떨어 트렷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떨어진 젓가락을 다시 주우면서 대답했다.

 

“저 22살이에요.”

 

그 남자의 얼굴을 찬찬히 다시 살피며 서른 살은 넘기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을 하며 몇 살인지 물었다. 

 

“응, 28살.”

 

6년이라는 나이차가 그리 많이 나진 않았지만 머쓱하게 말하는 오빠의 표정을 보니 장난기가 발동해 30대처럼 보인다고 놀렸다.

 

그 말에 제법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 모습이 또 너무 귀여워 내가 먹으려고 구운 고기를 그 사람 입에 넣어 주었다.

 

남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 오빠에게 고기를 먹여주자 이름을 붙여 오빠라고 부를 때처럼 또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이래서 여자들이 이런 묘한 기분 때문에 자기 남자에게 음식을 입에 넣어 주는구나.’

 

나이 많다고 놀린 거보다 더 당황하는 표정으로 입에 넣어준 고기를 먹는 오빠에게 빙긋 미소를 보였다.

 

급하게 콩깍지가 씌어 가는지 보면 볼수록 만날 인연을 만난 것처럼 이 남자가 너무 좋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잘 생기지 않고 유머 감각도 별로지만, 왠지 모를 따뜻함이 있을 것 같은 이 남자가 지난 시린 과거까지도 이해를 해줄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이 남자…… 진짜 만나고 싶다.’

 

소주를 한잔을 들이켜고 취한 척 용기 내어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술을 마시질 못하는 내 체질을 잘 알기에 그저 심호흡만 크게 몰아쉬고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오빠, 만약에요. 진짜 만약인데…… 제가 그런 쪽에 일을 안 하면 저랑 만나 주실 수 있는가요?”

 

이 오빠가 싫다고 해도 속상하겠지만 만약 좋다고 해도 내 과거를 아는 사람이기에 그 것도 속상했다. 

 

내 물음이 의외였는지 오빠는 눈썹이 살짝 올라가며 눈이 커졌고 많이 놀란 듯 기침까지 했다.

 

“헉, 쿨럭쿨럭……. 뭐?”

 

갑작스러운 기침소리로 대답을 듣자마자 머릿속은 새 하얗게 비어져버렸다.

 

   ‘내 질문이 뜻밖이라는 걸까? 여태까지 그 자상한 미소는 원래 몸에서 베여 나온 것인 거야?’

 

이 오빠는 다 들었으면서도 모르는 척 기침을 섞어 되묻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속상함에 내 얼굴은 굳어버렸다. 

 

이 남자를 회사 앞에서 볼 때부터 느꼈던 거지만 같이 있으면 자꾸만 내 모습이 작아졌다.

 

그리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미흡한 내 처지를 먼저 떠올려야 한다는 현실에 자존심도 많이 상해버렸다.

 

    ‘그래요, 승훈 오빠. 어제 오늘 고마웠어요. 오빠 같은 사람과 잠시나마 즐거운 상상을 했었다는 걸로 만족할게요.’

 

남자의 소소한 행동에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심하고 평소의 내 모습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내 약점을 너무 잘 아는 사람이기에 뜻하지 않은 행동도 결국 나에겐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승훈 오빠는 내 얼굴을 보며 더듬거리며 말을 무슨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어차피 말을 돌릴 거라는 걸 알기에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애써 도도하게 웃어보였다.

 

“저 이제 여기에 안 살아요. 내일 대구에 가요.”

 

대구에 간다는 내 말이 뭐가 그리 놀랄 말인지 오빠는 또다시 눈썹이 살짝 올라가며 눈은 휘둥그레졌다

 

그 놀란 표정을 여전히 얼굴에 남긴 채 무척이나 당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도 사실 집이 대구인데.”

 

“네? 정말요?”

 

불안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응시하던 오빠는 입에 들어있는 음식을 꿀꺽 삼키곤 다짜고짜 앞뒤 없이 말했다.

 

“나 너 보니깐 떨려.”

 

“네?”

 

“사실 회사에 너 다녀간 이 후부터 줄곧 네 생각이 났는데…….”

 

방금 눈치를 챘지만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오빠는 몸까지 부르르 떨며 말하고 있었다.

 

아마도 용기 내어 내게 고백을 하려는 오빠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중간에 끊을까 가슴을 졸였다.

 

“그냥…… 네가 좋아 질 것 같아.”

 

오빠 몸에서 보이는 떨림이 내게 전해진 듯 내 몸마저 떨게 만들었고 그 떨림이 마침내 온몸으로 번져갔다. 

 

잠깐 동안 아련한 현기증이 핑 돌았지만 겨우 정신을 차리고 식탁 위의 찬물을 한 모금 마셨다.

 

조금 전부터 느껴지던 묘한 느낌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그런 감정으로 바뀌어져버렸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내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머물러있었다.

 

“정말요? 정말 제 생각 많이 하셨어요?”

 

“응, 많이 했어.”

 

“아, 그렇구나.”

 

조금 전 나이가 많아 보인다며 놀렸던 오빠 말투를 장난스럽게 흉내를 내자 오빠는 크게 웃으며 오른손으로 내 뺨을 살짝 꼬집었다.

 

그리고 따뜻하게도 보이고 자상하게도 보이는 그런 미소로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어버리고는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진짜 대구 가는 거야?”

 

“예.”

 

“나만 말 놓고 너는 존댓말 하니깐 이상해.”

 

오빠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한쪽 눈을 찡긋하며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앙, 오빠.”

 

평소에 하지 않았던 어설픈 애교가 무척 창피했지만 오빠는 그런 내 모습이 보기 좋은 듯 했다.

 

“그래, 이제 나도 좀 편하네.”

 

오빠는 어설픈 콧소리가 듣기가 좋았었던지 계속 내 눈을 쳐다보고 있었고 그 시선을 마주하며 조금 전 오빠가 하던 말이 사실인지 재차 확인했다.

 

“그런데 오빠 집이 대구라고?”

 

“응, 회사가 포항이라서 여기서 혼자 살아.”

 

이 오빠를 또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잔잔했던 가슴은 또다시 설렘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진짜 잘하면 이 오빠를 대구에서도 볼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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