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우면 부자 아빠한테 태어나던가-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자수성가 신화를 만들어 팔아먹는가

돼지왕 작성일 14.03.24 16: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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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희귀동물 수입 사업을 해서 일 년에 20억대 매출을 벌고 있다는 27세 훈남 사업가의 이야기였다. '창업 성공기'로 시작하는 흥미로운 기사였다. 가장 흥미로운 포인트는 역시 "중학교 때 TV에서 악어를 보고 키우고 싶었어요. 당시 아버지께서 1천만 원짜리 악어를 수입해서 선물로 주셨어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얼마나 흥미로운지 다음 날 수정된 기사에서는 저 천만 원 부분이 삭제되어 있어 이제는 기사의 댓글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십몇 년 전, 서울 변두리의 동네 중학생들도 당시 IMF 총재 미셸 캉드쉬의 이름을 외우던 그 시대에 악어를 키우고 싶다고 천만 원짜리 악어를 사주시는 자상한 부모님 아래서 훌륭하게 자란 청년은 역시 사업 수완이 남다르다.

비꼬는 느낌으로 시작하게 되었으나 사실 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자기 일로 성공한 친구들에 대해 딱히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고도성장기와 부동산 상승기에 부모님이 어렵사리 고생해서 입에 물려준 금수저로 똥이나 퍼먹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살다 불우한 무도회장 경비원과 시비가 붙어 청계산에 오른 사건이라거나. 금수저라고는 구경도 제대로 못 해본 나 같은 천것이 어찌 그것을 물고 태어난 귀족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헤아릴 수 없다고 해서 감정을 가진다면 어른이 아닐 것이다.

다만 역시 이 금수저에 대해 가끔 묘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두 가지 경우가 그러하다. 첫째, 내가 하는 일의 영역에서 그런 상황을 마주쳤을 때. 이런 때는 역시 개인적인 좌절감이 꽤 크다. 나는 먹고살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지금은 바를 열고 바 마스터로 일하고 있다. 저 '이런저런 일'을 하던 시절에나 지금 바를 운영하는 시절이나 때로 반짝반짝 빛나는 수저를 물고 있는 업계 종사자들을 마주치고는 한다. 당신들이 가끔 그런 일을 겪는 것처럼 말이다. 집에서 충분한 돈을 받아 목 좋은 데서 좋은 가게를 하다가 말아먹고 아무 일 없었던 듯 툭툭 털고 다른 일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역시 기분이 묘할 수밖에.

두 번째 경우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분들이 자수성가 어쩌고 하는 가난에 기반을 둔 자기 서사를 늘어놓을 때다. 거의 한 십 년쯤 전에 어떤 기사를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대학생 재테크의 달인 어쩌고 하는 기사였는데(정확한 금액의 수치와 나이는 조금 다를 수 있다). 기사의 핵심은 이러하다. '중학생 시절 모은 천만 원의 용돈으로 어린 시절부터 재테크를 시작한 김 군은 대학생이 되자 재테크 전문가가 되었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 구두를 닦아주고 10만 원씩 받아 천만 원을 모아서 후에 재테크의 달인이 된 사람들이 없지는 않겠지. 한 달에 88만 원 벌어 버티는 세대도 있고 몇 백억의 세금과 벌금을 내지 않고 해외로 도주했다가 붙잡혀서 하루 노역 일당으로 5억씩 벌어 과징금을 몸으로 때우는 사람도 있는 나라에서 중학생이 천만 원쯤 만지는 게 뭐 그리 특별히 이상한가. 그리고 중학생 때 천만 원의 돈을 만져본 모든 애들이 재테크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니니 저 재테크의 달인은 유능한 친구일 것이다. 금수저로 똥을 말아먹거나 범죄적으로 쓴 애들도 적지 않을 텐데, 이 정도면 양호하다(라고 자위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안 양호한 건 이를테면 이런 거다. 대기업 회장님의 둘째 사위님께서 '취업이 힘든 요즘의 젊은이들을 위해' 페이스북에 자신의 사회 초년병 시절 미국 취업 실패기를 구구절절 올리며 이 시대의 진정한 힐링 멘토로 거듭나려는 시도는 역시 좋게 보아주기 힘들 것이다. 사실 이런 게 한둘인가. 스타강사 힐링 멘토로 활약하시다가 논문표절 의혹으로 가실 뻔하다가 최근 컴백을 준비하신 어떤 분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개천에서 용 못 나는 시대라고? 너희가 봤어? 난 지금도 용 나는 거 보고 있어!" 라고 일갈한 그녀는 연세대 작곡과를 수석으로 들어갔지만, 졸업 후 남은 이십 대를 서울 송파에서 피아노학원 원장으로 보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20대에 돈이 없으면 송파에서 피아노 학원을 열면 된다. "마흔 넘은 학원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를 다루는 것도, 깐깐한 건물주를 상대하는 것도 내게는 무척 버거운 일이었다"는 그녀의 술회를 읽으며 마흔 넘어서 학원 버스 운전을 해야 하는 아저씨의 삶도 버거운 삶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겠지.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자수성가 신화를 만들어 팔아먹는가. 솔직히 이제 자수성가 신화를 까는 글을 쓰는 것마저도 유행이 너무 지나서 구린 시대가 되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미학적으로도 구리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의문이다. 그러니 제발 그런 더러운 꿈을 팔지 말고 솔직한 절망을 제시하면 안 되나. 이게 너무 직설적이라 힘들다면 그냥 금수저 물고 잘 태어나서 자기 일 잘해서 자신의 영역에서 성공하면 되지 않나. 왜 구질구질하게 이상한 자기 서사를 만들어내서 자기도 구려지고 그걸 보는 사람도 구려지고 그걸 비판하는 사람도 구려지는 이런 상황을 만드는 건가. 개천에서 용 난다고? 한때 논술 강사로 일하며 고등학생들에게 고타 강령 비판 독해와 통계표 독해를 가르친 적이 있는 내 생각에는 글쎄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러시아의 멋진 귀족이었고, 민중의 러시아 혁명이 그의 인생과 가족을 말아먹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귀족으로 살며 좋은 글을 썼으며, 러시아 혁명에 대해 구질구질한 코멘트를 별로 달지 않았다(안한 건 아니지만 그의 방식은 매우 세련된 방식이었다). 그냥 집에 돈이 있는 현대적 귀족이면 자기 하고 싶은 거 돈 들여 잘하면 되지 않나. 예술적 고뇌나 사업가적 고뇌는 '가난한 자의 고뇌'에 후행하는 것인가. 그냥 운이 좋아서 성공한 것이라 자신의 '실존적 고뇌'라 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인가. '서재 결혼시키기'의 저자 앤 패디먼은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난 뉴요커 여성'이다. 그녀는 그녀만의 감성으로 사물과 삶에 대한 유쾌한 글을 풀어낸다. 만화 '페르세폴리스'의 마르잔 사트라피는 어떤가. 그녀의 자전적 만화에 따르면 그녀의 집안에 유력한 정치인이 있었고, 그 엄혹한 시대에 어린 시절 프랑스 유학을 떠날 수 있을 정도로 유복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는 이란의 격변기를 멋지게 그려낸다. 그들이 질질 짜거나 '가난'을 극복하는 자기 서사를 풀었더라면 아마 참을 수 없이 역겨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영역-예술-으로 자신의 삶을 말했다. 사업에는 관심이 별로 없어 잘 모르겠지만, 사업으로 자신의 삶을 멋지게 말하는 방식도 없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대학 시절 상당히 부자였던 친구가 있었다. 건물주 아들도 아니고 그 자신이 아버지가 사준 건물의 건물주였던 명랑하고 쾌활한 친구였다. 한 달에 월세를 천쯤 받는다고 했나. 그야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친구였다. 어느 날엔가 나와 그와 다른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만두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쟈니스 덤플링이 맛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건물주급은 아니지만 나보다 두 배는 더 잘 살던 다른 한 친구가 말했다. 야, 그거 비싸지 않냐. 역시 부자는 다르구나. 그리고 건물주 친구가 그에게 농담을 던졌다.

그래? 꼬우면 너도 부자 아빠한테 태어나던가.

심지어 차라리 이게 낫지 않냐.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힘들게 살았네 어쩌네 하는 구질구질한 자기 서사들을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처참하게 구리며, 모욕적이다. 차라리 명랑하고 쾌활하게 살고 웃으며 모욕적인 농담을 던져라. 진심이다. 나는 저 농담을 던진 건물주 친구를 미워하지 않으며, 저 농담을 딱히 모욕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아니, 요즘 같은 시대에 저 말은 농담이 아니라 진언일지도 모른다. 처연하고 서글픈 자기 서사는 금수저가 의미를 잃는 어떤 특정한 시대에서나 이야기할 만한 무엇이 아닌가. 그 시대가 '정말로' 존재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언젠가 오게 될 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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