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본왕과 두로 이야기

수제생크림 작성일 23.01.22 00:04:09 수정일 23.01.22 05: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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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모본왕 32년 12월 이전 사망 53년 11월(향년 21세 이상)

모본왕은 인간 베개였던 두로가 못 참고 휘두르는 칼에 시해당했으며 이후에 신하들이 불초하다며 태자를 폐하고 종실에서 고궁이라는 아이를 왕으로 세우니 이 사람이 태조대왕이었다.

 

"왕은 날이 갈수록 난폭해지고 학대하니, 사람을 깔고 앉고 누울 땐 사람을 베고 누웠다. 사람이 혹여나 움직이면 바로 죽였다. 신하 중 간언하는 자가 있으면 활을 쏴 죽였다."

 

한때 후한의 동북방 일대를 위협할 만큼 군사적인 능력이 있었으나, 내부적으로는 학정을 일삼다 암살을 겪은 폭군이라고 할 수 있다.

 

 

두로는 모본왕의 인간 베개였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속담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다.

 

두로는 본래 모본 출신으로, 왕을 시중드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두로가 섬기던 모본왕의 성깔이 워낙 더러웠으니 문제였다.

 

모본왕은 늘 사람을 깔고 앉는가 하면 누워서 잘 때에는 시중드는 사람들을 인간 베개로 삼아서 잠을 자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그때 시중드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벌떡 일어나서는 바로 죽였다. 때문에 두로는 언제 왕에게 칼을 맞아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살아야 했다.

 

하루는 두로가 참고 참았던 울분이 터져서 슬피 울었는데, 이때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는 "대장부가 왜 우느냐? 옛 사람이 말하기를 '나를 쓰다듬으면 임금이요, 나를 학대하면 원수로다.'라고 하였다. 지금 왕의 행함이 잔학하여 사람을 죽이니 백성의 원수다. 네가 그를 죽여라."라고 하였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데, 한결의 만화에서는 지인이라고 묘사하였고, 다른 역사책에서는 두로의 어머니라고 한다. 역사학자 김용만은 두로를 사주해 모본왕을 죽이게 한 인물이 부여태후라고 주장한다.

 

이 말에 두로는 칼을 품 속에 숨기고 있다가 서기 53년(모본왕 6년), 모본왕이 두로를 불러서 평소처럼 깔고 앉자 그 틈을 타서 칼을 뽑아 모본왕을 죽였다.

 

이 기록 뒤로는 역사에 안 나오는데, 비슷하게 국왕을 시해하고 국정을 주도한 명림답부와는 달리 역사의 무대에서 완벽히 사라진다. 그렇다고 역적으로 처형시켰다는 기록도 없으니, 어떻게 된 것인지는 불명.

 

채널 A의 천일야사에서는 모본왕이 자신이 죽으면 두로도 같이 묻어달라는 말까지 남겨서 두로는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살았다. 모본왕이 죽게되면 모본왕의 가족인 재사가 왕위에 오를 것이라 생각한 부여부인(재사의 아내인 부여태후)이, 모본왕을 살해하는 대신 생매장을 시키지 아니하고, 또한 곡식이 넘쳐나는 집에서 평생 행복하게 살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두로에게 한다.

 

결국 왕을 살해한 후, 부여부인은 두로와의 약속을 지켰고, 술과 여자에 미친 재사마저 왕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 부여부인이 자신의 7살 아들 어수를 왕좌에 올리기 위해 잠시동안 왕의 직책을 맡는다. 그리고 어수가 청년이 되었을 때, 바로 왕의 자리를 넘겨주었다고 하며, 그 어수가 역대 고구려 왕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던 태조왕이었다. 그렇기에 두로는 아마도 평생을 왕의 시중을 모시며 편히 살았을 것이라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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