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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건국절 논란
현재 지금 뉴라이트와 그외 몇몇 꼴통들이 1945년 8.15일을 건국절이라고 지껄이고 있다왜 그들은 건국절이라고 하는가?2015년 1919년 수립한 임시정부와 1948년 구성된 제헌국회나 정부수립의 문건 어디에도 건국이라는 단어는 찾기 어렵다. 임시정부와 대한민국정부수립에 참여한 분들이 감히 '건국' 이라는 용어를 쓸 만큼 역사에 무지하거나 오만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임시정부의 자료에는 가끔 '건국 4천년' 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것은 단군의 건국을 의미한다. 따라서 1948년의 정부수립에 '건국'을 붙인다면 단군을 부정하거나 모독하는 일이 된다. 일본은 "황조(皇祖) 아마떼라스 오미까이(天昭大神)의 건국 2600년 만세(萬世一系)"를 내세우면서, 우리의 단군건국을 신화 또는 무당으로 격하하고, 한국사에서 단군조선을 잘라내어 일본 연대(年代)와 비슷하게 조작했다. 중국은 서북공정에 이어 동북공정으로 한국고대사를 자국의 지방정권에 편입시키려고 역사왜곡을 서슴지 않는다. 건국절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이런 참에 정부가 '건국60돌' 행사를 서두른 배경이 궁금하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나라를 '건국60년'밖에 안되는 초라한 신생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고조선시대 이후 고대의 삼국시대, 통일신라와 발해시대, 중세의 고려시대, 근세의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왕조 교체기에 '창업' 또는 '개국' 이란 용어가 사용되었지만 '건국' 이란 용어를 함부로 쓰지는 않았다. 고려 이후에는 왕조가 바뀌어도 단군을 국조로 인식해 왔다. 1910년 일제에 의해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하여 한 때 국맥이 단절되는 듯 했지만, 의병 - 독립군 - 의열투쟁 - 광복군으로 이어지는 항일전쟁과 임시정부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단체의 투쟁으로 국혼과 국맥을 지켜왔다. 세계식민지 역사상 27년 동안 임시정부를 운영하면서 싸운 나라는 우리가 유일했다. 한 때 국권을 빼앗겼어도 민족은 멸망하지 않고 독립을 쟁취한 것이다. 그리하여 36년 만에 광복을 맞았고 민주공화제의 정부를 수립했다. 반만년의 건국사를 복원한 것이다. 애국선열들은 1910년 8월 29일 일제 병탄을 두고도 망국일이라 하지 않고 국치일이라 불렀다. 국민과 국토와 국사가 살아 있으니 반드시 국권을 회복할 것이므로, 망국이란 용어를 함부로 쓰지 않았던 것이다. 1948년의 8·15 정부수립일을 '건국절' 이라 정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나라는 100년도 못되는 신생국가가 된다. 임시정부의 존재가 보잘 것 없는 '망명정부' 신세로 전락한다.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사이에 존재할 미군정 3년이 한국사에서 떨어져 미국사에 편입될지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존재를 배제해 버림으로써 분단체제를 영구화하게 된다. 1910년 8월 29일부터 1948년 8월 14일까지 38년을 스스로 국권상실 또 국맥단절기로 만든다. 매국노 친일파의 죄상을 대한민국에서 제외시키게 된다.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즉 친일파들이 대한민국을 건국했다고 하는 건국공신이 되버린다 우리는 단군의 건국사를 시작으로 임시정부의 항일투쟁에 빛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왜적 36년 식민통치와 미군정 3년을 극복하고 비록 분단상태이지만, 짧은 기간 경제와 민주발전을 이룩했다. 그래서 현재 정부는 文대통령 "2019년이 건국 100년"…건국절 논란 일축시켜버렸다 즉 1919년 임시정부수립이 우리나라 건국일의 탄생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무등 독서회'를 조직해 항일운동에 앞장 섰던 이석규 옹은 "지난해 광복절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건국 68주년을 맞이해 '역사적인 날'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잘못된 것"이라며 "대한민국 건국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에서 대한민국 건국을 세계 방방곡곡에 선포한 1919년을 기점으로 해야한다"고 했다.박유철 광복회장도 문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언급하며 "문 대통령은 1948년이 건국절이라는 주장의 부당성에 대해 논리적으로 말했다"고 지지했다. 문 대통령은 도산 안창호 선생 손자 로버트 안 씨 부부에게 "안창호 선생이 유품으로 남긴 '대동단결선언'을 통해 우린 대한민국 건국의 근원이 되는 임시정부 시작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1945.8.15일을 건국절이라고 지껄이는 자는 100프로 자기 조상이 악질 친일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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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백범 김구 선생 서거 68주기 : 효창원 수난사
교과서에 실린 백범일지를 통해, 삼일절과 광복절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통해, 백범 김구 선생의 정신과 업적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가 우리 역사에 큰 영향을 남긴 위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분께서 돌아가신 이후 70년 가까이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면? 심지어 정부가 나서서 고인의 능묘를 훼손한다면? 믿기 힘들겠지만, 현실이 그러하다. 주석 백범 김구 선생 서거 68주기인 6월 26일, 그 이야기를 써보고자 한다. 효창원의 역사 1786년, 조선 정조 임금의 장자가 5세의 나이로 별세하자 시호를 문효세자라 하여 경기도 고양 율목동에 묘소를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효창원의 기원이다(현 용산구 효창공원). 효창원은 당시 울창한 삼림을 갖춘 것으로 유명했다. 동으로는 용산 청파로, 서로는 마포로, 남으로는 도원동과 도화동에 이른다고 하는데, 지금으로 치면 여의도공원의 3분의 2 정도에 맞먹는다고 할 정도였다고. 그러나 일제의 침략이 가시화되면서 효창원의 수난이 시작된다.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효창원의 울창한 삼림에 눈독을 들여 야영지로 활용한 것에서 시작하여 유곽촌을 비롯한 갖가지 건축물들이 들어섰던 것이다. 이어 1910년 경술국치로 일제의 불법 군사 점령이 시작되면서부터 효창원은 일개 공원으로 전락하여 기존 문효세자의 무덤 또한 경기 고양 서삼릉으로 이장되고 말았다. 그러던 효창원이 지금과 같이 바뀌게 된 것은 해방 이후 김구 선생이 환국하고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묘소를 설치하게 되면서부터다. 1945년 11월, 김구 주석은 미군정 왕실재산관리처에 효창원을 애국지사의 묘소로 활용할 계획을 타진했고, 이듬해인 1946년 7월 6일 삼의사의 유골 봉환식이 국민장으로 이루어졌다. 이후 1948년 이동녕 선생과 차리석 선생의 유골이 추가로 봉환되었고, 안중근 의사의 가묘 또한 설치되었다. 왕가의 무덤이 민족 영웅들의 성지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1949년 백범 김구 선생이 안두희의 흉탄에 피살당함에 따라 선생의 무덤 또한 효창원에 안치되었다. 백범의 비서였던 선우진 선생의 말에 따르면 효창원에 순국 선열들의 묘소를 추가로 더 신설할 계획이었다고. 효창원의 비극 이렇게 민족의 성지로 변모한 효창원에 암운이 드리우게 된 것은 주석 김구 선생의 서거 이후부터였다. 김구 선생의 라이벌이었던 이승만은 당시 국민들이 존경해 마지 않던 백범을 매우 언짢게 여겼다. 그러나 이미 백범은 서거해버린 상태. 이에 이승만은 백범의 뜻을 깔아뭉개고자 여러 조치를 취하게 된다. 그 일환이 바로 백범 일지의 금서 지정과 효창원 능욕이었다. 당시 만인의 존경을 받던 백범의 죽음은 그야말로 국가적 비극이었는데, 서거 이후에도 선생의 묘소를 방문하는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자 이승만 정권은 경찰을 동원하여 참배객의 출입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에 새벽 중에 경찰의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몰래 참배를 하고 집에 가는, 이른바 '도둑참배'란 웃지 못할 촌극이 널리 퍼지기도 했다. 이승만 정권 당시 효창원 훼손을 다룬 경향신문의 기사 - 1959.06.10 그래서였을까, 이승만 정권은 군인과 관변 단체를 동원해 효창원 자체를 훼손하기 시작했다. 1956년 이승만 정권은 공병대와 불도저를 동원해 효창원 외원에 있던 연못을 메워 버리고 15만 그루의 나무를 베어냈다. 당시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 비서실에서 지시한 일이라고 한다. 명분은 효창운동장 건설이었으나, 이것이 순수 체육 시설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믿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효창원 훼손이 더욱 심각해진 것은 박정희 정권 때였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이후 서거 11년 만에 추모식이 곳곳에서 거행됨과 동시에 백범암살진상규명 결의가 선언됨으로써 효창원 성역화(정확히 말하자면 정상화)가 이루어질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그런 기회마저 5.16 쿠데타로 완전히 짓뭉개지고 말았다. 박정희는 1962년 효창원 내 선열 묘소들을 이장할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유족들과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자 이를 취소하였다. (박정희는 본인 입으로 김구 선생을 존경한다 말을 했으나, 실제로는 김구 선생의 존엄을 그 누구보다도 짓밟은 사람이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1968년 박정희는 백범 묘소와 삼의사 묘소 사이의 삼림을 모두 파헤치고 골프장 건설을 지시했다. 그 이유는 '미관상 보기 좋다'였다. 물론 선열묘소보존회를 비롯한 시민사회계의 반발이 또 터져 나왔다. 골프장 건설 계획 또한 여론이 나쁘다는 이유로 취소되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면 과연 친일파 박정희라고 할 수 있을까? 박정희는 1969년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에서 북동쪽으로 35m 떨어진 곳에 반공투사위령탑을 설치하였다. 군사정권의 반공 기조를 헌법에도 명시된 국시인 자주독립 정신보다 위에 두겠다는 의도였다. 이후 원효대사상과 놀이터, 노인회 회관, 육영수 송덕비, 운동 시설 등이 효창원 내에 설치되었다. 박정희는 1970년대에 유관순 유적지와 왕실 묘역, 현충사 등을 민족의 성지로 조성하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했고, 또 이를 선전했다. 백범 김구 선생께 보인 그것과는 180도 상반된 것이었다. 그랬던 박정희는 남산에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을 세우고, 친필까지 써넣었다.이 얼마나 파렴치한인가? 효창원 정상화 시도와 무산 이후 2000년대 들어 효창원을 다시 민족의 성지로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였고, 노무현 정부는 광복 6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효창원 성역화를 계획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당시 국가보훈처에서 제시한 성역화 사업은 실제 성역화, 즉, 정상화와는 매우 거리가 있었다. 박정희 정권이 세운 건물들은 그대로 두고, 효창운동장은 철거하고 나서 그 자리에 도로 새로운 잔디밭을 세우는 것이 성역화 사업의 세부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잔디밭 위에는 대규모 공연장과 주차장까지 세우려고 했단다. 결국 이 계획은 백범기념사업회 등을 비롯한 종교계, 역사학계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고, 지금까지도 효창원의 성역화는 진척이 없는 상태라고 한다. 2013년 효창원을 국립현충시설로 승격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을 민주당의 김광진 의원이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효창원이 있는 용산구의회의 답변이 아주 걸작이다. 도시 한가운데 묘지를 만드는 것이 말이 되냐며 비난을 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묘역을 천안 독립기념관 쪽으로 이장하라고까지 하더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건만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면 이런 망발을 할 수가 있는 것일까? 말로는 독립 정신을 기린다고 하지만 정작 독립의 원훈들이 모셔진 효창원을 제대로 가꾸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은 고사하고 되려 묘소를 이장하라고 한다. 화장해서 한강물에 뿌리라고 결의안을 내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정도다. 일부에서는 효창원을 성역화하면 기존 공원은 어찌 되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이는 50년이 넘는 효창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연못과 녹지를 조성하여 생태광장으로 하면 충분히 해결되는 일이다. 국립묘지화도 무덤을 추가 조성한다는 뜻이 아니라 기존의 애국 선열의 묘소를 국립현충시설로 대우한다는 것일 뿐이다. 무엇이 못마땅한 것일까? 효창원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다. 주석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애국선열들께서 누워 계시는 민족의 성지이자 독재 정권에 의해 훼손된 우리나라 건국정신 그 자체이다. 그런데 이를 어찌하나? 이미 이승만 박정희는 죽은 지 오래요, 효창원 성역화는 여전히 진척이 없는 상태인걸. 백범 선생의 기일인 오늘도 선생께서는 시야를 가로막는 콘크리트 운동장을 바라보시며 쓸쓸히 주무시고 계신다. 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리는 것은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에서 오느냐하는 데 달렸다.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국민 중의 한 개인 또는 한 계급에서 나온다.4280년 음력 10월 3일, 백범 김구 선생 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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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목요일]목요일엔 수다다 - 상영영화
6월 5일 현재상영영화 알려드리겠습니다 ^^
1. 엣지 오브 투모로우
죽어야만 더 강해진다
- 줄거리 -
가까운 미래, 미믹이라 불리는 외계 종족의 침략으로 인류는 멸망 위기를 맞는다. 빌 케이지(톰 크루즈)는 자살 작전이나 다름없는 작전에 훈련이나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로 배정되고 전투에 참여하자마자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다. 그가 다시 그 끔찍한 날이 시작된 시간에 다시 깨어나 다시 전투에 참여하게 되고 다시 죽었다가 또 다시 살아나는 것. 외계인과의 접촉으로 같은 시간대를 반복해서 겪게 되는 타임 루프에 갇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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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리으리한 톰크루즈 효고 만빵인 영화
2.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엑스맨 vs 센티넬, 거대한 전쟁이 시작된다!
- 줄거리 -
천재 과학자 ‘트라스크’가 발명한 로봇 ‘센티넬’로 인해 사상 최악의 위기에 직면한 미래. 오랜 시간 적으로 맞섰던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는 돌연변이는 물론 인류를 위협하는
‘센티넬’과의 전쟁을 막기 위해 ‘울버린’을 과거로 보낸다. 과거로 돌아간 ‘울버린’은 뿔뿔이 흩어졌던 엑스맨들을 모두 불러모아
인류의 미래를 구원할 거대한 전쟁을 시작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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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봤던 엑스맨 시리즈 중에서 가장 재밌었다!
3. 말레피센트
16세가 되는 날, 날카로운 물레 바늘에 찔려 깊은 잠에 빠지리라!
- 줄거리 -
가장 강력한 마법을 가진 숲의 수호자 말레피센트는 인간왕국과의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왕국을 다스리는 스테판 왕의 딸 ‘오로라 공주’의 세례식 날,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저주를 내리는데…. 디즈니 역사상 가장 사악한 마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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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나 졸리랑 마녀랑 잘 어울린다 ㅋㅋ
4. 끝까지 간다
완벽하게 숨긴 줄 알았다...!
- 줄거리 -
어머니의 장례식 날, 급한 연락을 받고 경찰서로 향하던 형사 ‘고건수’(이선균). 아내의 이혼 통보, 갑작스런 내사 소식까지, 스트레스 폭발 직전의 건수는 실수로 사람을 치는 사고를 일으키고 만다. 되돌릴 수 없는 상황! 어떻게든 모면해야 하는 건수는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 바로 어머니의 관 속에 시체를 숨긴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놈이 나타났다! 하지만 곧 경찰 내부에서 실종 및 뺑소니 사건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고 범인이 다름아닌 자기 자신인 건수는 이를 은폐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정체불명의 목격자 ‘박창민’(조진웅)이 등장하고, 목적을 감춘 채 건수를 조여오는 창민의 협박 속 건수의 상황은 예측할 수 없는 위기로 치달아 가는데…! 절체절명 형사의 마지막 반격 되돌릴 수 없다면, 끝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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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끝까지 가던데요??
5. 우는남자
그 날의 총알 한 발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 줄거리 -
"진실을 원해?" 낯선 미국 땅에 홀로 남겨져 냉혈한 킬러로 살아온 곤. 조직의 명령으로 타겟을 제거하던 중 예상치 못한 실수를 저지르고, 그는 자신의 삶에 깊은 회의를 느낀다. 그런 그에게 조직은 또 다른 명령을 내리고, 곤은 마지막 임무가 될 타겟을 찾아 자신을 버린 엄마의 나라, 한국을 찾는다. "당신 이름이 뭐야?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남편과 딸을 잃고,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보며 하루하루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자, 모경. 엄청난 사건에 연루된 것도 모른 채 일만 파고들며 술과 약이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녀 앞에 딸의 죽음 뒤에 감춰진 진실을 알려주겠다는 한 남자가 다가온다. 잃을 것이 없는 남자와 남은 게 없는 여자, 그들이 절벽의 끝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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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귀환!!!
6. 하이힐
“이건 내 선택이 아니야… 신이 날 잊은 거야…”
- 줄거리 - 완벽한 남자의 조건을 모두 갖춘 강력계 형사 ‘지욱’은 범인을 단숨에 제압하는 타고난 능력을 발휘해 경찰은 물론 거대 범죄 조직 사이에서도 전설적인 존재로 불린다. 내면에 깊숙이 자리한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감추기 위해서 더욱 거친 남자의 모습으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진짜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위한 새로운 삶을 준비하려고 하는데… 잔인하게 슬프고, 눈부시게 강렬한 감성 느와르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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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원의 드라마틱한 변신 기대되네..
6월6일 현충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마친 애국 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충절을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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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노통의 국기 게양 문제!?
??행자부, 현충일 '조기 게양 말라' 공문"노대통령 방일 경축에 방해된다" 공문 띄워2003.06.07 (토) 21:53:10 최천균 (eye2580@ewincom.com) 행자부 김두관 장관이 노대통령 방일전 대한민국의 모든 자치단체장들에게 현충일 '조기 게양금지' 공문을 띄운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행자부 공문의 영향 탓인 듯, 노대통령이 방일하는 현충일 날에는 제정이후 처음으로 조기를 거리에서 볼 수 없었다.현충일인 6일 7만여 명이 몰린 대전국립묘지는 하루종일 참배객으로 붐볐다.(연합뉴스 6.6)이번 현충일 날에는 길거리에서는 현충일 제정이후 처음으로 조기를 볼 수 없었다. 행자부가 의정문서 12630-508호(행자부 5월16일자) 공문을 전국 지자체에 띄워 '조기게양을 하자 말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안양 항일애국지사우해기념사업회 이형진 회장은 이에 대해 행자부가 현충일에 가로기와 차량 기를 게양하지 않도록 한 이유는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는 현충일에 경축의 의미를 뜻하는 가로기를 게양하는 것은 부적절하기 때문이지 대통령의 일본방문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공문을 없앤 후 변명했다고 전했다.그러나 애국단등 독립유공자들의 반론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독립유공자 후손인 애국단 등은 이에 대해 "현충일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애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수백만의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대한민국 최대의 국가행사다"면서 "현충일을 무시한다면 3.1절, 6.25, 8.15광복절, 8.29 구치일, 11월17일 순국 선열의 날 등으로 추모하고 있는 모든 영혼들을 무시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자체를 무시하는 행정이다"고 비판했다.애국단은 또 "지금까지의 모든 대통령이 설사 권위적인 행동으로 일관하였다 하더라도 노 대통령만은 국민의 정서를 어루만져야 했다"면서 "대로변의 조기로 게양된 태극기를 보며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굳은 결의를 다짐하며 일본으로 담판을 지으러 갔어야 했다"면서 "노대통령이 방미에 이어 방일에서도 어떠한 성과도 거두지 못한 것은 나라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무시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안양 항일애국지사우해기념사업회 회장이며, 비 장애시민 모임 상임대표인 이형진씨도 "노대통령의 방일 날짜가 대한민국을 존속케 하고 한민족의 정신적 지주이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고 추모하는 거룩한 날인 현충일에 이루어졌다"면서 "이 땅에 있을 수도 있어서도 상상할 수도 없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짓밟고 방일한 결과"라고 지적했다.이어 이회장은 "정부 출범 48년만에 이 정부 들어와서 장관 명의로 공문을 보내 '조기 게양 금지'라는 용어를 써가며 지방자치 단체에 공문을 하달한 것은 처음"이라면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국민적 행사로 전국거리에 조기로 게양돼 왔던 태극기를 현정부가 공문으로 조기 게양을 금지시켜 전국의 거리에서 추모의 태극기를 볼 수 없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사건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을 국빈 방문하는 6일 환송행사가 열리는 서울공항 주변 도로에 조기를 게양하지 않았다. 이회장은 이에 대해 "정부가 관례를 깬 것은 6일이 현충일이어서 조기(弔旗)를 걸어야 하는데, 대통령의 외국방문을 축하하는 뜻에서 거는 태극기를 조기로 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는 환송행사 주무 부처인 행정자치부 의정담당관실 관계자와 직접 통화를 했고, 청와대와 외교부로부터 현충일은 일본의 우리나라 침탈보다 한국전쟁과 관계가 많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말했다.이회장은 또 "안양시에 확인 결과 경기도지사 명의로 2003년 5월28일자로 가로기(대로변의 태극기)와 차량에 부착함을 금지한다라는 공문이 접수되어 현충일이 제정된 이후 처음으로 조기를 거리에서 볼 수 없었다. 백방으로 이유를 수소문한 결과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는데 조기를 게양 할 수 없다라는 충견들의 과잉 충성이 그 이유였다. 청와대에서의 비공식 답변은 대통령이 비행장으로 가는 길에 만이라도 조기를 걸지 않았으면 하여 상의 해본 적이 있다는 답변이었다. 또한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공문을 보냈다는 말을 얻어냈다"며 확인된 사실임을 강변했다.이회장은 이어 "현충일 하루만 국민들에게 눈 가리고 '아웅' 하면 아무 탈 없이 지나갈 것이라는 매국적 사고가 빗은 참여정부의 경륜 없는 단순 무식한 강아지들의 미친 짓이었다"고 강하게 비판한 뒤, "온 몸에 흐르는 피눈물과 분노에 선열과 호국영령을 뵈올 수가 없다. 현충일 조기 말살사건의 범인을 색출하여 형사처벌 해야 한다"면서 "조기 말살사건의 주범 색출을 통한 형사 처벌과 공개 사죄를 촉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사실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과 정부는 지난 방미기간 첫날부터 경호팀과 홍보팀의 옥신각신 부분에 대해 해명하지 않았었다. 지난 5월11일 청와대 경호팀과 홍보팀간에는 방미 도착지인 미 앤드루 공군기지에 도착하여 옥신각신 했고, 미국 경호측과 '시비'가 벌어진 여파로 경호팀은 노 대통령 도착장면을 취재하려는 보도진을 제지하려 했고 홍보팀은 이 장면을 놓칠 수는 없다는 논리로 맞섰던 적이 있다. 그러나 방미 후 청와대는 이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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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현충일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애국 선열과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정한 기념일.제57회 현충일을 맞아 강원도내 곳곳에서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나라사랑의 뜻을 기리기 위한 추념식이 일제히 거행된다.강원도는 6일 오전 10시 춘천시 우두동 충렬탑에서 추념식을 열고 호국영령의 명복을 기를 예정이다. 이날 추념식은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한 묵념과 헌화·분향·헌작·추념사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원주와 강릉 등 도내 17개 시·군에서도 지방자치단체장 주관으로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념식이 일제히 거행, 애국정신 함양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1군사령부는 6일 원주시 태장동 현충공원에서 박성규 1군사령관과 예하 지휘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념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며 육군 2군단도 박선우 2군단장 주관 하에 춘천 우두산 충렬탑을 찾아 추념식을 거행할 계획이다. 강원지방경찰청도 6일 오전 춘천시 서면 강원경찰충혼탑에서 조길형 청장 등 강원경찰청 지휘부, 경우회원, 참전경찰유공자 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57회 현충일 추념식을 갖고 순국선열의 넋을 기린다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571557오늘은 제 57회를 맞는 현충일이다. 각종 언론에선 요란스러울 정도로 현충일에 대한 기사가 흘러넘친다. 내일이면 조용히 사라질 내용과 기사들이지만 유독 오늘만큼은 아침부터 밤까지 우리의 눈과 귀를 번쩍 뜨게 만든다. 그냥 안타까울 뿐이다. 애국 애족하는 사람도 흘러넘치는 세상이 되었지만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그것조차도 궁금하기만 하다.어느 한 젊은 청춘이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국가관 및 내 조국 수호라는 굳은 각오로 전쟁터의 맨 앞자리에 서서 적과 마주하며 목숨을 던졌던 수많은 영혼들 그들의 충성스러운 죽음은 과연 오늘날 대접을 받고 잠들어 계신지 의구심이 든다. 현충일 하루만 대접을 받고 추앙을 받아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내가 들은 바로는 미국같은 나라에서는 참전용사를 영웅시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면 그 마을에선 대대적인 환영식을 하며 위로해준다고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까진 못하더라도 조국을 위해 전사한 영령들을 추모하고 그 가족들을 돌봐줘야 할 것이다. 그것이 기본적인 국민의 도리이고 의무일 것이다.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571433현충일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애국 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정한 날입니다.현충일을 기념하여 아이들에게 역사에 대한 의식도 심어주고,즐거운 나들이를 보낼 수 있는 곳을 알아보았습니다.◈ 전쟁 기념관 ◈전쟁기념관에서는 현충일을 맞이하여 6일, 현충일 당일과 25일에 상설 전시관을 무료로 개방합니다.내일 현충일에는 유치원생부터 중학생 까지 참가하는 '나라사랑 평화사랑 그림그리기 대회'가 열리구요.페이스페인팅, 특공무술, 해병대 의장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됩니다.또 25일에는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편지 쓰기 행사도 이어진다고 하니 참여해 볼 만 하네요 ^^◆ 만해 기념관 ◆만해기념관은 남한산성 정상에 오르면 만날 수 있는 곳인데요.만해 한용운! 하면 생각나는 작품이 있죠? 바로 '님의 침묵'입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우리나라의 독립과 나라의 자유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신만해 한용운 선생의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민족의 등불이라 불리며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저항시인인데요.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 도립공원에 가면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제취를 느낄 수 있겠죠?님의 침묵 초간본은 물론이고 160여 종의 판본이 전시 되어 있는데요.한용운 선생님이 사용하던 책과 저술을 비롯해 독립운동 자료와 일화등 귀중한 자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남한산성의 아름다운 경치도 보고 우리 역사의 숨결도 느낄 수 있는 1석2조의 장소입니다.◆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에는 기적을 만들어낸 민족의 자랑스런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기꺼이 못숨을 바쳤던수많은 선열들의 희생을 느낄 수 있는 곳인데요. 2006년부터 대대적인 활성화 사업을 벌여모든 전시관을 최첨단의 생동감 넘치는 전시물들로 교체했다고 합니다.815개의 태극기가 휘날리는 독립기념관에서우리 민족의 역사와 겨레정신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http://cafe.naver.com/tuntunmommy/95532현충일 국기 게양법 단독주택의 경우에는 집 밖에서 보았을 때 대문의 중앙이나 왼쪽에 국기를 게양해 주세요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 역시 밖에서 보았을 때 베란다의 중앙이나 왼쪽에 게양하 는 것이 옳다고 해요 학교, 회사 등과 같은 건물은 전면지상의 중앙이나 왼쪽, 차양시설의 중앙 또는 출입구 위쪽 벽면의 중앙에 국기를 게양하는 것 현충일에 국기(태극기)를 게양할 때에는 깃봉과 깃면의 사이를 깃면의 너비만큼 내려서 조기로 게양하는 것이 옳은 게양법이랍니다!http://cafe.naver.com/irisflag/893626------------------------------------------------------------------오늘 조기게양 만큼은 꼭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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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현충일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애국 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정한 기념일.제57회 현충일을 맞아 강원도내 곳곳에서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나라사랑의 뜻을 기리기 위한 추념식이 일제히 거행된다.강원도는 6일 오전 10시 춘천시 우두동 충렬탑에서 추념식을 열고 호국영령의 명복을 기를 예정이다. 이날 추념식은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한 묵념과 헌화·분향·헌작·추념사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원주와 강릉 등 도내 17개 시·군에서도 지방자치단체장 주관으로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념식이 일제히 거행, 애국정신 함양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1군사령부는 6일 원주시 태장동 현충공원에서 박성규 1군사령관과 예하 지휘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념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며 육군 2군단도 박선우 2군단장 주관 하에 춘천 우두산 충렬탑을 찾아 추념식을 거행할 계획이다. 강원지방경찰청도 6일 오전 춘천시 서면 강원경찰충혼탑에서 조길형 청장 등 강원경찰청 지휘부, 경우회원, 참전경찰유공자 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57회 현충일 추념식을 갖고 순국선열의 넋을 기린다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571557
오늘은 제 57회를 맞는 현충일이다. 각종 언론에선 요란스러울 정도로 현충일에 대한 기사가 흘러넘친다. 내일이면 조용히 사라질 내용과 기사들이지만 유독 오늘만큼은 아침부터 밤까지 우리의 눈과 귀를 번쩍 뜨게 만든다. 그냥 안타까울 뿐이다. 애국 애족하는 사람도 흘러넘치는 세상이 되었지만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그것조차도 궁금하기만 하다.어느 한 젊은 청춘이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국가관 및 내 조국 수호라는 굳은 각오로 전쟁터의 맨 앞자리에 서서 적과 마주하며 목숨을 던졌던 수많은 영혼들 그들의 충성스러운 죽음은 과연 오늘날 대접을 받고 잠들어 계신지 의구심이 든다. 현충일 하루만 대접을 받고 추앙을 받아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내가 들은 바로는 미국같은 나라에서는 참전용사를 영웅시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면 그 마을에선 대대적인 환영식을 하며 위로해준다고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까진 못하더라도 조국을 위해 전사한 영령들을 추모하고 그 가족들을 돌봐줘야 할 것이다. 그것이 기본적인 국민의 도리이고 의무일 것이다.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571433
현충일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애국 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정한 날입니다.현충일을 기념하여 아이들에게 역사에 대한 의식도 심어주고,즐거운 나들이를 보낼 수 있는 곳을 알아보았습니다.◈ 전쟁 기념관 ◈전쟁기념관에서는 현충일을 맞이하여 6일, 현충일 당일과 25일에 상설 전시관을 무료로 개방합니다.내일 현충일에는 유치원생부터 중학생 까지 참가하는 '나라사랑 평화사랑 그림그리기 대회'가 열리구요.페이스페인팅, 특공무술, 해병대 의장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됩니다.또 25일에는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편지 쓰기 행사도 이어진다고 하니 참여해 볼 만 하네요 ^^◆ 만해 기념관 ◆
만해기념관은 남한산성 정상에 오르면 만날 수 있는 곳인데요.만해 한용운! 하면 생각나는 작품이 있죠? 바로 '님의 침묵'입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우리나라의 독립과 나라의 자유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신만해 한용운 선생의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민족의 등불이라 불리며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저항시인인데요.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 도립공원에 가면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제취를 느낄 수 있겠죠?님의 침묵 초간본은 물론이고 160여 종의 판본이 전시 되어 있는데요.한용운 선생님이 사용하던 책과 저술을 비롯해 독립운동 자료와 일화등 귀중한 자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남한산성의 아름다운 경치도 보고 우리 역사의 숨결도 느낄 수 있는 1석2조의 장소입니다.◆ 독립기념관 ◆
독립기념관에는 기적을 만들어낸 민족의 자랑스런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기꺼이 못숨을 바쳤던수많은 선열들의 희생을 느낄 수 있는 곳인데요. 2006년부터 대대적인 활성화 사업을 벌여모든 전시관을 최첨단의 생동감 넘치는 전시물들로 교체했다고 합니다.815개의 태극기가 휘날리는 독립기념관에서우리 민족의 역사와 겨레정신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http://cafe.naver.com/tuntunmommy/95532
현충일 국기 게양법 단독주택의 경우에는 집 밖에서 보았을 때 대문의 중앙이나 왼쪽에 국기를 게양해 주세요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 역시 밖에서 보았을 때 베란다의 중앙이나 왼쪽에 게양하 는 것이 옳다고 해요 학교, 회사 등과 같은 건물은 전면지상의 중앙이나 왼쪽, 차양시설의 중앙 또는 출입구 위쪽 벽면의 중앙에 국기를 게양하는 것 현충일에 국기(태극기)를 게양할 때에는 깃봉과 깃면의 사이를 깃면의 너비만큼 내려서 조기로 게양하는 것이 옳은 게양법이랍니다!http://cafe.naver.com/irisflag/893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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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시대를 관통하는 혜안을 가진자..
시대를 관통하는 혜안을 가진자.. [팔라딘님 편집]
3.1절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과 이멍박의 연설문 비평.
*** 노무현 3.1절 연설문의 특징
- 먼저, 비교해서 보니, 참으로 깊이가 느껴지는 명문(明文)이요, 바른 지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생각에는 향이 나듯이, 좋은 글에도 향이 나는 것이다.
- 우선, 무엇보다, 독립유공자는 물론, 그 후손들에게도 깊은 경의를 표하고 있다.
- 3.1운동의 세계적 정신과 현재적 계승정신_ 자유, 평등, 평화_을 인류보편의 대의로 승화시키고 있다.
- 3.1운동과 맥을 같이하는 실례들, 국채보상운동, 헤이그특사 파견 등도 거론하고 있다.
- 3.1운동도 당시로써는 실패하였으며, 대의명분이 힘을 얻기 의해서도 국력이 중요함을 실감나게 강조하고 있다.
- 힘을 키우고, 건전한 정신을 키웠기 때문에, 오늘날 국력이 신장되고, 세계가 인정하고 있음을 자축하고 있다.
- 이제 더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 앞장서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 자기힐책과 비난이 아니라, '자신감'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감을 가져라!
- 현재 해결되지 않고 있는, 한일간의 국내의 과거사 이슈들을 예시하고 있고,
이것이 우리만의 문제나,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선진민주국가가 그들의 의회에서 논의할만큼
중차대한 현재의 문제라는 점을 예시하고 있다. 만행은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영구적 이슈라는 것이다.
- 일본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태도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 국내의 경우, 일제 과거사의 제조명과 조사가 역사의 정통성과 양심적인 미래사회 건설을 위해 왜 중요한가 밝히고 있다.
- 이러한 목표는 결국,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자랑스러운 내일을 물려주기 위한 것'임을 당당히 밝히고 있다.
■ 노무현 대통령 3.1절 기념 연설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해외동포 여러분, 오늘은 3·1운동 여든 여덟 돌입니다. 해마다 이날이 오면 우리는 삼천리 방방곡곡에 물결쳤던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을 되새기게 됩니다. 그날 우리 선조들은 지역과 계층, 종교,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어 하나가 되었습니다.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일제의 총칼에 맞서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떨쳤습니다. 자유·평등·평화라는 인류보편의 대의를 밝혀 약소민족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자랑스런 역사입니다.
특히 올해는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일으킨 국채보상운동 100년, 이준 열사가 헤이그에서 일제의 침략상을 알리고 순국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3·1절의 의미가 더욱 뚜렷한 해입니다. 뜻깊은 이날을 맞아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께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국민 여러분, 3·1운동 당시 거국적으로 단결했고 대의명분도 옳았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그 이후로도 선열들은 해방의 그날까지 피땀 어린 투쟁과 눈물겨운 희생을 바쳐야 했습니다. 국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계정세도 말로는 민족자결을 내세웠지만 현실은 힘에 의해 좌우되는 제국주의 질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대한민국의 안전과 자존을 지킬만한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막강한 국군이 있고, 세계 12번째의 경제력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당당한 민주인권국가로서 세계의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 역사도 과거와 같이 제국주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가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은 지금, 국가 간의 분쟁이 있을 수는 있지만, 때로는 전쟁도 있을 수는 있지만 어느 국가가 다른 나라를 정복하거나 지배하는 일은 불가능한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국력과 역사의 대세에 대한 확신을 갖고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앞장서 이끌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누구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는 우리는 동북아의 평화를 주도할 만한 충분한 도덕적 명분과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정학적으로도 우리는 동북아의 평화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우리가 힘이 있을 때 동북아의 평화는 지켜졌고, 힘이 없을 때 동북아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동북아의 질서가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량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국방개혁과 전시작전권 전환을 통해 자주적 방위역량을 키우고, 남북관계도 화해와 협력의 방향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북핵문제 해결의 전기가 된 2·13합의를 성공적으로 이행해서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확고히 정착시키고 협력과 통합의 동북아시대를 주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최근 미국 하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서는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고난과 박해를 받아야 했던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하늘을 손으로 가리려 해도 일제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일본의 일부 자치단체는 러일전쟁 당시 무력으로 독도를 강탈한 날을 기념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지난날의 과오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나아가서는 역사를 그릇되게 가르치는 일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과 사이좋은 이웃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 경제, 문화 등에서 이미 단절하기 어려운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제는 양국관계를 넘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이바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역사적 진실을 존중하는 태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역사교과서, 일본군 위안부,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같은 문제는 성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양심과 국제사회에서 보편성을 인정받고 있는 선례를 따라 성의를 다해주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국제사회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는 길이 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애국선열들께 다소나마 마음의 짐을 덜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 체결과정에서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고 지금껏 방치되어 온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조사 중에 있습니다. 또한 한일협정 관련 문서를 공개하고 청구권자금 지급이 미진했던 데 대해 국가 차원의 지원방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와 재산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실상을 밝히고, 민족과 나라를 팔아 치부한 재산을 그 후손들까지 누리는 역사의 부조리를 해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 일이 마무리되면 과거 식민지 역사에서 고통 받은 분들의 맺힌 한을 풀고, 역사의 정통성을 바로 세워 정의와 양심이 살아있는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의 맥박 속에는 선열들의 드높은 기상과 대동단결의 정신이 고동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힘과 지혜를 모읍시다. 지금 해야 할 일을 책임 있게 해나갑시다. 그래서 우리 아들딸들에게 자랑스런 내일을 물려줍시다. 감사합니다.
*** 이명박 3.1절 연설문의 특징
- 3.1운동의 본래 의미에 할애한 문단은 10문단 중 위의 단 3문단에 불과하다.
- 3.1운동의 구체적 모습과 실례, 오늘날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밝히지 못하고 있다.
- 3.1운동의 정신이 세계사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국제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없다.
- 한, 일관계와 관련하여, 잠정적 과제들에 대한 구체적 언급과 촉구가 없고, 모호한 '실용' 단 한마디로 다 덮어
버렸다.
- 더욱이 마치, 우리가 소위 '편협한 이념'에 빠져 '과거에 천착하고 있으며' 마치 죄짓고 있는 죄인인양 느끼게 하는
참으로 비참한.....느낌과 인상을 주고 있다.
- 주요 용어를 보면.....'과거에 발목잡힌 제자리 걸음', '편협한 민족주의'를 언급하고, 이를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있으며, 우리가 마치 과거에 발목잡혀 제자리 걸음하고 있었으며, 편협한 민족주의에
빠져 있었다고 폄하하고 있다.
- 한편, '생산', '효율', '성공신화'를 3.1절 이 마당에....문단의 주요 핵심 내용으로 줄창 얘기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내용이 매우 가볍고, 국가지도자나 원수로서, 3.1운동의 정신이나 계승에 대해서
스스로 체화(體化)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즉, 설(說)만 풀고 있다는 것이다. 글만 봐도
마음을 안다는데, 왠 3.1절에 생산, 효율, 성공신화, 편협, 발목잡혀!!! 타령을 하고 있으며, 그게 실용이라고 언어도
단을 하고 있다.
** 쉽게 말하면, 이명박은 국민과 역사를 무슨 죄인, 부끄럽게, 열받게 취급하고 있고,
노무현은 국민과 역사를 위대하고 자랑스런, 세계적인 시민으로서 자긍심을 길러주고 있다.
또한, 역사의식이 중요한 이유가, 노무현은 미래세대를 위해서 중요하다고 보는데 반해,
이명박은 과거에 집착하는 치졸한 것으로 보고 있으니, 참으로 아들딸들의 장래가 걱정이다.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16890
우리가 잃어버린것은 단순히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한사람이 아닙니다..
시민 민주주의의 찬란한 시대를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시대의 주인이 될 만한 사람, 지도자는.. 역사의식이 바로 서있고, 또한 보편적인 시민의식과 민주의식을 갖춘 철학을
가진 사람이 바로 지도자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 5년간 마음껏 그 세월을 누렸습니다.
누군가는 그를 실컷 욕했고, 누군가는 그를 열심히 변호했으며, 누군가는 그저 그렇게 관심없는 세월을 보냈을 것입니다.
각기 다른 생각과 주장들이 부딪히고 반목한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오직 실용으로 경도된 천민자본주의 가치관으
로만 점철되는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앞에 다시금 노무현대통령과 같은 시대를 꿰뚫어볼수 있는 사람을 기다리기 위해 여기에 모였습니다.
가자서작성일
2010-03-03추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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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지식체널e - 잃어버린33년, 박정희란 인간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입니다
[박정희가 만들어낸 사악한 ‘사법살인' 인혁당사건]
국제법학자협의회는 이 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정했습니다
이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중앙정보부와
반공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정치적 반대세력들의 민주화 요구를 억합하고
인권을 침해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가 ‘인혁당’으로 알고 있는 이 단체는 대구 지역 교사들이 모여서
시국과 경제와 남북관계를 토론하고 책을 읽던 단순한 학습모임이었다.
‘인민혁명당’이라는 명칭은 이 사건으로 처형당한 이들이 만든 게 아니라
공안기관이 만든 호칭이었다.
1964년 8월 14일, 박정희 정권의 저승사자라 불리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인민혁명당 사건'이라는 이름을 붙여 57명의 청년들을 잡아들인다.
이 중 41명을 구속하고 16명을 지명수배하게 된다.
그해 6월에 있었던 굴욕적인 한일회담으로 인한 민심의 동요와 반정권 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정권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었다.
이것이 ‘1차 인혁당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4명의 검사 중 3명이
‘양심상 도저히 기소할 수 없는 사건'이라는 이유로 사표를 제출했다고 전해진다.
사법부도 기소된 57명의 중 12명에게만 실형을 선고했다.
그들조차도 3년에서 1년의 가벼운 형량을 선고 받았다.
1차 인혁당 사건은 독재 정권의 민심돌리기용으로 적당히 결말을 맺었다.
적어도 사법살인으로까지 가지는 않았다.
1974년은 한국 근대사에서 반유신 독재운동이 한창이던 때로 위기의식을 느낀
박정희 정권이 비상적 헌법조치인 긴급조치 4호를 발령한 시점이었다.
당시 반유신 독재운동을 주도한 학생운동 단체가 바로 ‘민청학련'이다.
민청학련은 조직적인 반유신운동을 전개할 필요성을 느낀 전국의 학생운동 세력이
전국 대학의 일제 시위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직되었다.
나아가 민청학련은 반유신 독재운동을 학생운동과 같은 단순히 특정 집단의 운동이 아닌
종교계, 학계 등의 광범위한 세력과 연계해 추진하게 된다.
따라서 민청학련은 이후 전개될 여러 노동, 재야, 민주, 통일 운동의 토대가 된다.
이러한 조직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던 민청학련에 대해 박정희 정권은
위기 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민청학련을 잠재울 궁리 끝에 10년 전 ‘인혁당'을 기억해 낸다.
민청학련의 배후세력으로 인혁당을 지목했던 것이다.
1974년 4월 3일 교수와 학생 등 무려 254명이 구속되는 대규모 시국공안사건이 터진다.
민청학련이 공산계 불법단체인 인혁당 재건조직과 재일 조총련계 및 일본 공산당,
국내 좌파, 혁신계 인사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정부를 전복하려하고 있다는 것이
당시 사건의 핵심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인혁당 사건의 연루자들은 1974년 5월 27일 비상군법회의를 통해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내란죄, 내란선동 등으로 기소되어 주요 주모자로 지목된
우홍선, 송상진,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도예종, 김용원, 여정남 8명에게 사형이 선고된다.
그리고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상고심이 열린다.
대법원은 관련자 254명 중 36명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도예종 등의 8명에 대해서는
사형을 확정한다.
그리고 이들은 이튿날 가족을 만날 기회조차 없이 새벽 4시부터 시작해 차례로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한다. 죽어서도 이들은 시신조차 가족의 품으로 가지 못하고
정부당국에 의해 경기도 벽제 화장터에서 태워지는 한을 안고 갔다.
이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것은 많은 점에서 지적되어 왔다.
인혁당 사건의 증거로 채택된 것은 고문과 강압의해 작성된 피의자들의 진술서뿐이었다.
또한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피의자들은 가족은 물론 변호사들조차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권은 사건을 완전히 은폐하기 위해 피의자들의 법정진술까지 조작했으며
가족들이 보관한 항소이유서와 공소장까지 압수해 사건의 증거를 모두 인멸하려고
했다는 점이 이 사건이 정권과 정보기관에 의한 날조임을 뒷받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은 중앙정보부의
조작극이었다고 밝혔다.
진실위는 이 사건은 학생들의 유신체제에 대한 거센 저항에 직면한 박정희 정권이
학생시위의 배후에 공산주의자들이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이용한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특히 북한방송을 녹취한 노트를 돌려 본 행위 등은 분명 당시의 실정법 위반이지만,
이를 조작하여 8명을 사형에 처한 조치는 국가형벌권의 남용이며,
이는 정당성을 결여한 독재정권의 유지를 위한 공포분위기 조성을 위한
필요성 때문이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2006년 12월 23일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 법원은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 8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유족들은 회한에 받쳐 오열했다.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겨레와 나라를 사랑한 것밖에 죄가 없다]
소위 인혁당 사건 대책위 출범에 부쳐 -이기형 (시인,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1974년 3월 초 유신 암흑에서도
매화꽃 개나리꽃 진달래는 방긋방긋
방향(芳香) 천지에 뿌렸다.
온 겨레가 새희망을 찾아 부푸는데
무슨놈 날벼락이냐 민청학련사건 배후로 지목
여덟 애국투사를 줄줄이 옭아갔다
조작하여 '인혁당사건'이라고
천하에 둘도 없는 고문 만행 발길질 주먹질
물과 고춧가루와 전기와 불과 몽둥이와 대바늘과 철사로
생사람을 잡아 죄를 남산만큼 쌓았다.
일심에서도 줄줄이 사형 이심에서도 줄줄이 사형
일년쯤 지난 1975년 잔인한 4월 8일 대법원 판결 날
김용원 사형 도예종 사형 서도원 사형 송상진 사형
여정남 사형 우홍선 사형 이수병 사형 하재완 사형
천인 공노할 극형
찰칵 찰칵 수갑을 채운다
여덟 투사는 할 말을 잃었다
서로 멍히 쳐다봤다
한마디씩 분통을 터뜨려 '이따윗 법이 어딨노!'
'생사람을 잡아!'
'망할 놈의 세상!'
'나라와 겨레를 사랑한 것밖에 죄가 없다!'
한 사람 한 사람 독방에 등을 떠밀어 넣는다
그날 밤 투사들은 잠을 못 이뤘다
목이 바삭바삭 탔다
아름다운 고향 산천이 눈앞에 선해
부모 형제, 아내와 자식들의 얼굴
정다운 친구들의 얼굴이 선히 보이고
잠시도 눈을 못 부쳤는데 어느새 날이 훤히 밝는구나
뚜벅 뚜벅 뚜벅 잰 발걸음 소리
앗!
저마다 신경을 곤두세워 집행까지는 꽤 시일이 걸린다던데...
'철컥!'
문 따는 소리
'서도원 나왓!' 수갑찬 팔을 오랏줄로 묶는다
'이놈들 뭔 짓들이냐!'
"동지들! 비겁하지 말자!"
형리는 다급히 입을 틀어막는다
양쪽에 한 사람씩 붙어 팔을 잡고
뒤에는 총든 간수가 노려본다
'민, 민...'
틀어막은 서의 입에서 소리가 새어 나온다
저벅 저벅 멀어지는 발자욱 소리
'철컥!'
'도예종 나왓!'
'군사독재를 타도하자!'
'철컥'
하재완
'민주주의 승리 만세!'
'철컥'
송상진
'남북통일 만세!'
'철컥'
우홍선
'미군은 물러가라!'
'철컥'
이수병
'망국적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
'철컥'
김용원
'야만적 긴급조치법을 파기하라!'
'철컥'
여정남
'자유로운 조국 독립 만세!'
애국투사들은
이렇게 형장으로 끌려갔다
아!
목숨은 하늘인데... 목숨은 하늘인데...
외세를 등에 업고 정권을 찬탈한 독재자
나라와 계레를 끔찍히 사랑한 투사들의 고문 흔적을 지우려고,
억지로 조작된 죄가 탄로날까봐,
언도 다음날 새벽
전례없이 부랴부랴 교수형을 집행
가족들의 항의와 애원도 뿌리치고
시신을 화장하는 만행도 서슴치 않았다
오늘도 산천에 가득찬 부모님들의 한숨소리
자식들의 피울음소리 올봄으로 만산의 진달래는 피꽃으로 피어
님의 넋을 아로새겨 준다
세상이 운다 운다
천추의 한을 품고
슬픔을 가누지 못한 채
오랏줄에 묶여 총칼에 내몰린
그 새벽 그 감옥도
지금은 독립공원으로 바뀌어
형장 앞 미류나무 잎새는
23년전 그날의 사연을 곡하듯
살랑살랑 슬픈 곡조로 운다
꽃나이 애국 선열의 목숨을 단칼에 앗아간
그날의 난폭자도 진작 비명에 갔거니
조국 분단 반백년! 아, 잔인한 세월이여!
그대들의 거룩한 길
우리들 가슴마다에 활활 타올라 중음신으로 떠도는 님들의 명예와 영광을
민주화와 통일의 길에서, 오늘 반드시 되찾아 드리오리다
끝내는 백두산 높이 대통일의 깃발을 올려
님들의 넋도 빛나는 그 이름
남북 온 겨레와 어울려 덩실덩실 춤추려니
아, 남북 대통일의 그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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