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검색 결과(579);
-

[스포츠] 김하성 '악마의 에이전트'와 손잡았다, 사라져가던 1억$ 대형계약 가능성 다시 '스멀스멀'
김하성(29·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이 눈앞으로 다가온 FA(프리에이전트)를 위한 대비를 하고 있다. 메이저리그(MLB) 최고의 에이전트와 손잡고 몸값 올리기에 나선다.미국 매체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의 케빈 에이시는 4일(한국시간) "김하성이 비시즌을 앞두고 흥미로운 움직임을 보였다"며 "김하성은 보라스 코퍼레이션을 새로운 에이전트로 계약했다"고 전했다.김하성은 올 시즌이 끝나면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높다. 2021시즌을 앞두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4년 2800만 달러 계약을 맺은 그는 2025년 800만 달러의 상호 옵션을 실행하면 한 시즌 더 팀에 남게 된다. 하지만 미국 현지에서는 옵션 발동 가능성을 매우 낮게 잡고 있다.이는 김하성이 지난 4년 동안 보여준 성과 덕분이다. 그는 메이저리그 4시즌 동안 540경기에 출전, 타율 0.242(1725타수 418안타) 47홈런 200타점 229득점 78도루(17실패) OPS 0.706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지만, 주전으로 뛰었던 3년으로만 보면 wRC+(조정 득점 창출력) 106이다. 리그 평균이 100인 점을 감안하면 그는 보통의 선수보다 6% 정도 뛰어난 셈이다.특히 2023시즌에는 2루수로 주로 뛰면서 타율 0.260 17홈런 60타점 38도루 OPS 0.749를 기록했다. 한국인 빅리거 최초로 30도루를 넘겼고, 20-20도 달성할 뻔했다. 수비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 내셔널리그 유틸리티 부문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이는 아시아 내야수 최초 기록이다. 올해는 다소 부진했지만, 타석당 12.3%의 볼넷과 16.44%의 삼진 비율로 훌륭한 수치를 보여줬다. 또다른 매체 MLB트레이드루머스는 "김하성이 미국 진출 후 꾸준히 타격에서 발전이 있었지만, 세일즈 포인트는 역시 뛰어난 수비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최신 수비지표인 OAA(Outs Above Average)에서 지난 3년 동안 +21을 기록, 전체 내야수 중 17위를 차지했다. 유격수뿐만 아니라 2루수, 3루수에서도 모두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다는 점도 포인트다.이런 김하성이 '악마의 대리인'이라 불리는 스캇 보라스와 손을 잡은 건 대형 계약을 위한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보라스는 그동안 박찬호(5년 6500만 달러), 추신수(7년 1억 3000만 달러), 류현진(4년 8000만 달러), 이정후(6년 1억 1300만 달러) 등 여러 한국 선수들의 에이전트를 맡아 그들에게 거액을 안겨줬다.현재 김하성은 어깨 수술을 앞두고 있다. 그는 지난 8월 19일 콜로라도전에서 견제구에 귀루하던 도중 오른쪽 어깨에 통증을 느꼈다. 이후 검사 결과 어깨 염증 진단을 받고 처음으로 부상자 명단(IL)에 올랐다. 중간중간 복귀를 시도했지만 결국 수술을 받게 됐다.FA를 앞두고 부상은 치명적일 수 있다. 하지만 보라스는 최근 'FA 재수'라는 선택지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앞서 맷 채프먼, 블레이크 스넬, 카를로스 코레아 등이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단년 계약을 맺고 후일을 도모했다. 채프먼과 코레아는 이미 다년 계약을 했고, 스넬 역시 올 시즌 후 대형 계약이 유력하다.김하성 역시 다음 시즌 부상 회복 후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다음 FA에서 거액을 손에 쥘 수도 있다. 보라스가 이런 전략도 사용할 수 있다. 올 시즌 부진과 부상으로 희미해져가던 1억 달러(약 1320억원)의 꿈이 살아나고 있다.
마크42작성일
2024-10-05추천
0
-

[스포츠] '7년 동행' 클리블랜드, 추신수 은퇴에 찬사 메시지..."모든 추억에 감사드립니다"
메이저리그(MLB) 클리블랜드 가디언스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은퇴한 추신수(42)를 기념했다. 역대 가장 성공한 메이저리거로 평가받는 추신수(는 지난 1일 열린 소속팀 SSG 랜더스KBO리그 5위 결정전 9회 초 대타 타석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쳤다.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은퇴를 예고했고, 팀 주장을 맡아 이숭용 신임 감독 체제로 새 출발한 SSG를 이끌었다.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린 탓에 화려한 마무리는 할 수 없었지만, 아들뻘 젊은 선수들과 호흡하며 한국 야구 대표 선수로서 역할을 다했다. 부산 야구 넘버원 플레이어였던 추신수는 2001년 MLB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하며 미국 무대에 진출했다. 4년 동안 마이너리그에서 뛴 그는 2005년 빅리그 무대에 데뷔했고, 2006년 클리블랜드로 이적해 전성기를 열었다. 첫 풀타임 시즌이었던 2009년, 타율 0.300·20홈런·21도루를 해내며 '호타준족'으로 평가받았고, 시즌을 거듭할수록 빼어난 수비 능력까지 보여주며 '5툴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2013년, 자유계약선수(FA) 자격 취득을 앞두고 7년 동안 동행했던 클리블랜드를 떠나 신시내티 레즈 유니폼을 입은 그는 그해 12월,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1억3000만 달러 빅딜에 사인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추신수는 텍사스에서 2020시즌까지 뛰며 팀 리더로 거듭났다. 그는 빅리그에서만 16시즌을 뛰며 1652경기에 출전했고, 1671안타·218홈런·782타점·961득점을 남겼다. 추신수는 텍사스와의 계약이 끝난 뒤 KBO리그행을 선택했다. SK 와이번스를 인수한 SSG의 1호 선수가 됐다. MLB 잔류도 가능했지만, 그동안 받은 야구팬 응원에 보답하고자 했다. 추신수는 2021 정규시즌 21홈런-25도루를 해내며 최고령 20-20클럽 가입을 해냈고, 이듬해(2022년)은 SSG의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1982년생 '황금 세대' 대표 선수였던 추신수. MLB에서 아시아 타자의 위상을 높였고, 국내 무대로 돌아와 KBO리그 흥행에 기여했다. 추신수의 은퇴식은 내년 열린다. 포스트시즌(PS) 진출을 위해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했던 소속팀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추신수의 선택이었다. 추신수는 지난달 30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대타로 나서 KBO리그 공식전 마지막 타석을 소화했고, 가족·동료·팬들 앞에서 작별 인사를 전했다. MLB에도 추신수의 은퇴 소식이 전해진 것 같다. 추신수가 빅리그 정상급 선수로 올라서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은 클리블랜드 구단은 공식 SNS 채널에 클리블랜드 시절 추신수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Congratulations to Shin-Soo Choo on an amazing career, and thanks for all the memories here(추신수 선수의 놀라운 경력을 축하하며, 이곳의 모든 추억에 감사드립니다)라는 문구를 게재했다. 오랜만에 클리블랜드맨으로 돌아온 추신수를 미국 야구팬들도 반겼다. KBO리그에서 마흔, 마흔한 살에 뛴 시즌 호성적에 감탄했고, 그의 성 추(Choo)를 외치며 응원했던 추억도 공유했다. MLB에서도 화려한 은퇴식을 가졌을 추신수. 친정팀은 그를 잊지 않았다.
재서엉작성일
2024-10-03추천
0
-
-
-
-
-

[스포츠] 7만원짜리 글러브로 골든글러브를 10번이나…일본 역대 최고 중견수의 ‘이유’
특이한 외야수다. 공격력은 대단치 않다. 대신 수비가 발군이다. 빠른 발, 탁월한 판단력, 특급 어깨…. 그걸로 프로에서 자리를 잡았다. 주전 정도가 아니다. 골든글러브를 10번이나 수상했다. 후에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했다. 거기서도 클래스를 과시했다.그런 외야수가 뜻밖의 이력을 밝혔다. 프로 17년 동안을 글러브 하나로 버텼다는 고백이다. 그것도 고가의 명품이 아니다. 고작 7만 원짜리다. 그걸 깁고, 덧대고, 꿰매 가면서 은퇴할 때까지 썼다는 얘기다.동호인들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 요즘이다. 몇십만 원짜리 최신형 브랜드 제품을 사용한다. 그런데 프로 선수가, 그것도 메이저리그까지 뛴 수비수(?)가 낡고, 허름한 글러브 하나로 버텼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현재는 니폰햄 화이터즈의 감독인 신조 쓰요시(52)의 얘기다.그는 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진 몇 장을 올렸다. 이런 코멘트와 함께였다.“글러브는 야구 선수에게 심장과 같은 것이다. 나는 이 7500엔 글러브 덕분에 아슬아슬한 플레이에서도 공이 안으로 들어와 줬고, 기억에 남는 플레이가 태어났다.”사연도 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이 있었다. ‘장사는 도구를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씀에 따라 17년간의 프로 생활 동안 수선을 거듭하면서 한 번도 바꾸는 일 없이 현역 마지막까지 계속 사용했다.”후배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지금은 멋진 글러브가 많기 때문에 매년 바꾸는 선수의 기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프로라면 플레이로 (멋진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장비를 소중히 하는 인간은 사람도 소중하게 여기고, 다른 이들도 그를 소중히 여길 것이다.”사실 신조 감독의 캐릭터는 뚜렷하다. 야구인보다는 연예인에 가깝다는 세평이다. 준수한 외모에 스타일이 좋고, 화려함을 즐긴다. 현역 시절에는 아이돌급 인기를 누렸다.은퇴 후에는 아예 그 길로 나가기도 했다. TV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패널이었다. 탤런트, 크리에이터, 패션모델로도 활동했다. 그에게 빠질 수 없는 게 있다. 슈퍼카, 명품 브랜드(특히 옷과 액세서리), 고급 와인에 대한 애착도 유명하다.그런 인물이지만 글러브 얘기가 나오면 딴사람이 된다.프로 첫해(1990년)다. 드래프트 5번으로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했다. 지명 순위가 낮아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때였다. 첫 월급으로 가장 먼저 구입한 게 있다. 바로 그 글러브다. 당시 가격이 7500엔(약 7만 원)이었다. 팀 로고와 등번호(그때는 63번, 후에 5번으로 변경)를 새겼다.그리고 17년이 지났다. 유니폼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한신-뉴욕 메츠-샌프란시스코-다시 메츠). 마지막은 니폰햄 화이터즈에서 마무리했다. 은퇴식 때였다. 짙은 싱글에 멋진 머플러 차림으로 등장했다. 예의 모델 같은 모습이었다. 그 앞에는 낡은 글러브 하나가 놓였다.“이건 무리다. 이제는 한계가 왔다. 그렇게 느꼈을 때도 내 곁을 지켜준 것이 이 친구였다”며 깊은 감회에 젖는 표정이었다.몇 가지 일화도 있다. 사람들과 잘 지내는 타입이지만, 질색하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 글러브에 손을 대려 할 때다. “건드리지 마. 잘못해서 감각이 달라지면 안 돼”라며 펄쩍 뛴다.미국에서는 오죽했겠나. 메츠 시절의 에피소드다. 허름한 글러브가 신기하다. 친한 동료가 끼워보겠다며 나섰다. 마찬가지로 화들짝 놀라는 반응이다. “손가락이 굵고 긴 네가 끼면 큰일 난다”며 정색했다는 후문이다.고비도 몇 차례 있었다. 스파이크에 밟혀 찢어지기도 했다. 4번 정도의 대수술이 있었다는 기억이다. “아껴 두고 실전에서만 썼다. 연습용은 따로 있었다”는 설명이다.장거리 이동이나 원정 때도 신주 모시듯 한다. 호텔 방에서는 항상 TV 위에 올려놓는다. 나름대로 습기, 온도에 조심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다.2006년이었다. 현역 마지막 경기 때다. 중견수 쪽으로 라인드라이브가 날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신조의 글러브에 걸렸다. 그런데 잡으면서 약간 손상이 생겼다. 강한 타구 속도를 이겨내지 못한 탓이다. 그야말로 최후를 함께 한 셈이다.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2011년). 신조의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글러브를 소중히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 인물이다. 야구만이 아니다. 삶의 스승이었다. 평생 힘든 일(조경업)만 했다. 가난을 벗어난 적이 없다. 하지만 아들의 뒷바라지는 멈춘 적이 없다.어느 겨울이었다. 평생 뭘 사달라고 한 적 없는 고교생 아들의 푸념이다. “손이 시려, 훈련을 못하겠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지갑을 연다. 작업용 장갑을 사려고 모아 뒀던 돈이다. 그걸로 털장갑을 마련해, 아들 손에 쥐어 준다.장례 마지막 날이다. 고인을 보내 드릴 시간이다. 아들은 누운 아버지 곁(관)에 뭔가를 살포시 넣어 놓는다. 평생 소중했던 것, 그의 오늘을 있게 한 것, 17년간 고이 간직하던 것, 아버지와 자신의 꿈이 고스란히 깃든 것. 바로 그 7500엔 짜리 낡은 글러브였다.
재서엉작성일
2024-09-10추천
0
-
-
-
-
[스포츠] 추신수 절친 ML 떠난다...보토, 현역 은퇴 발표 "훌륭한 팀 동료 Tokki 1 고마워"
추신수 '절친'으로 유명한 메이저리그(MLB) 조이 보토(41)가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보토는 22일(한국시간) 자신의 SNS에 영상을 게시하며 "이제 끝이다. 공식적으로 야구계에서 은퇴하겠다"고 언급했다. 이어 장문의 글을 통해 프로 선수로 성공하기까지 도움을 줬던 가족, 동료, 지도자와 팬들에게 감사의 말을 남겼다.보토가 언급한 동료 선수 중에는 추신수도 있었다. 두 선수는 2013년 신시내티 레즈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출루 머신'으로 맹활약했다. 당시 보토는 316출루, 추신수는 300출루를 기록할 정도로 절정의 기량을 선보였다.단 1년뿐이었지만 보토는 추신수를 향한 애칭이었던 'Tokki 1'을 표기하며 훌륭한 팀 동료 중 한 명으로 소개했다. 보토는 추신수를 'Tokki 1', 자신을 'Tokki 2'로 지칭하며 '커플 별명'을 이뤘다. 이는 신시내티 동료 시절 보토가 추신수에게 "당신은 토끼처럼 따라잡기 어려운 선수"라며 극찬하자 추신수가 토끼의 한국어 발음을 알려준 데서 유래됐다.2007년 빅리그에 데뷔한 보토는 신시내티에서만 17시즌을 뛴 원클럽맨이다. 통산 2,056경기에 출전해 타율 0.294(7,252타수 2,135안타) 356홈런 1,144타점 1,171득점 80도루 OPS 0.920의 특급 활약을 펼쳤다. 2010년 내셔널리그 MVP, 2011년 골드글러브, 통산 6차례 올스타 선정 등 커리어 내내 탄탄대로를 걸었다.그러나 최정상급 선수였던 보토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었다. 지난해 타율 0.202에 그칠 만큼 기량이 저하되면서 신시내티와 결별하고 FA 시장에 나왔다. 이후 캐나다 출신인 보토는 지난 3월 고향팀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해 재기를 노렸지만, 시범경기에서 배트를 잘못 밟은 뒤 발목 부상을 당해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빅리그 복귀를 포기하면서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