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내가 이 직업을 갖게 된 계기

한잔_ 작성일 20.12.10 05: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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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살 때 부터 조리관련 알바를 시작하여

군 전역 후

안산 소재의 모 대학에 조리학과를 졸업하여

서울과 부산, 두 대도시에서 경력을 쌓았고,

 

지금은 지방에서 엄니랑 함께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하게 될 이야기는

군대에 입대 전, 당시 유행하던 퓨전포차에서 일을 할 때의 이야기임.

 

 

  1.  1.
  2. 고등핵교 2학년 ~ 3학년 때 알바를 했던 동네 횟집의 경험으로
  3.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았던 나는 바로 일을 구하기로 마음을 먹음.
  4.  
  5.  
  6. 그 때만 해도 지역 신문지를 보고 구인구직을 하던게 보통이었는데

당시 핫플레이스 였던 동네에 처음으로 퓨전포차 라는게 생겼었고

주방보조를 구한다는 글을 보고 바로 전화를 걸고 여차저차 출근을 하게 되었음.

 

주방에는 주방실장님. 담배 오지게 태우던 노란머리 돼지형.

홀에는 키가 한 이메다오륙십은 되어 보였던 매니저형.

거짓말 조금 보태서 화장 한개도 안한 박보영 닮은 누나.

머리 올린게 꽤나 샤프해 보였던 형.

 

이렇게가 멤바였음.

 

 

 

 2.

말이 주방보조 였지

거진 설거지맨이였음. 

식기 세척기 같은건 없었고

오로지 손으로 쓱싹쓱싹 이었음.

 

홀에서 나오는 반찬그릇 오뎅그릇

술잔 물컵 음료컵 맥주잔

안주접시 등등등

 

처음에는 새벽녘 까지 계속 서있을라니

다리가 너무 아팠었고, 졸려서 비몽사몽으로 하다

잔이 깨져 손을 꽤나 크게 다쳤던 적도 있었음.

 

조리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눈은 항상 주방 실장님 조리하는 모습이나 칼질 하는 모습 등을

눈 여겨 보고 있었음.

 

그렇게 일을 하며 지내다

추석이 지나고 회식을 하게 됬었는데,

주방 실장님이 조리 배워보고 싶냐고 물어봤었음.

 

그 전만 해도 조리 배우지 말라고,

공부해서 남들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하는 직업을 가지라고 하셨었음.

 

당연히 나는 배우고 싶다고 말 했었고,

‘그래? 알겠으니까 주방팀 빠이팅!!' 하면서 쨘 하고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 조금 낯설었었음.

 

알바이긴 했지만,

나도 사회의 한 구성원인가?

회사(?)에서 사람들과 회식이라니..

라는 생각에 괜스레 나 스스로 뿌듯하면서 어른스러운 느낌이었음.

 

당시만 해도

친구들은 게임방 (워3 카오스, 서든어택, 피파) 죽돌이가 많았었음

게임방에서 만나고 새벽되면 나와서 술 퍼묵고 다시 게임방 가서 카오스 하던지

아니면 아침까지 퍼 먹고 해장하고 집에가 디비 자고 다시 오후 늦게 일어나 나와서 게임방가고

반복이었으니까

 

나도 쉬는 날이면 똑같았지만

열심히 일한 내 돈으로

친구들과 쪼들리지 않고 2만원이나 넘는 푸짐한 안주 시키고

마음껏 먹고 놀던게 진짜진짜 좋았었음.

걔중엔 미안해서 몇 천원씩 주머니에 찔러주던 친구들도 있었고.

이 때 놀았던 친구들은 아직도 연락 꾸준히 하며 지냄.

 

 

 3.

양파까기, 마늘 편 썰기,

파프리카 손질, 양파 깍둑썰기 등등

기초 재료들 손질하며 재료준비 하고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배우는 자세로 묵묵히 수행해 나아가던 때,

 

당시 주방 직원이었던 노란머리 형이

전날 사장님 와이프랑 둘이 꽐라가 될 때 까지 술을 먹고 실수를 했는지

(사장님 와이프가 사장에 비해 굉장히 젊었었고 그 노란머리 형 동창인가 그랬었음)

다음 날 부터 영영 사라졌음.

 

연말을 앞두고 있던터라

굉장히 바빴었는데,

새로 사람은 구하긴 구해야겠는데

연말이라 사람도 잘 구해지지 않았을 뿐더러,

후에 들은 이야기였지만

주방실장님이 나를 좋게 봐주셔서 그랬는지

나를 키워보겠다며 밑에 보조알바를 구해달라고 했었나봄.

 

그렇게 며칠 뒤 부터 주방 스탠바이가 끝나고

오픈 전 직원식사 때면 주방 실장님이 알려주는대로

전 메뉴들을 한두어가지씩 연습 하면서 내가 한걸 다 같이 먹었었음.

 

어차피 소스, 재료들은 정해져 있으니

타지 않게 잘 볶고, 튀기고, 썰어서 내기만 하면 되는 거였음.

 

주문이 계속 들어오고 밀리거나 할 때,

오래 걸리는 것을 우선순위로, 스무스 하고 빠르게 쳐내는 것이 테크닉이었지만.

 

 

 4.

그렇게 정신없이 연말연시를 보내고 나니

어느정도 숙달이 되어서 주방실장님은 관리/감독만 하고

서브만 해주면서 나를 진짜 많이 키워주셨었음.

 

어느 날은 사장님이 불러서

너를 직원으로 고용하려고 하는데

군대 입대 계획이 어찌 되느냐, 라고도 물어보고

아직 계획이 없다 하자 시급으로 쳤을 때 보다 한 20만원돈?

더 올려서 주셨었음

 

 

 5.

몇날 며칠인지 기억은 안나도

굉장히 추운 날이었는데, 눈이 쌓여있진 않았지만 살랑살랑 내리던 날이었음

주방 실장님은 일찍 들어가시고

 

새벽 한 두시쯤 됬을려나

주문이 없어서 홀 쪽을 쳐다보면서

말 많은 알바 누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중에

 

꽤 얼큰하게 취한 아재 한명이 들어왔음.

 

매니져 형은 친구들이 놀러와서

테이블이랑 왔다갔다 하고 있었고,

 

나도 주방에 일 없으면 나가서 서빙 도와주고도 했었는데,

내가 마침 그 아저씨한테 기본안주를 가져다 주며 주문을 받으러 갔었음.

 

 

갈색 코트에 진회색 양복

올백한 머리인데 희끗희끘 흰머리가 있었음.

나이대는 한 좋게봐야 30대 후반이나 40대 초중반?

술 냄새가 좀 나긴 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취해 보인게 아니라

조금 울먹이고 추워서 볼이 발개져서 그래 보였나 싶었음.

 

 

주문을 하는데

소주를 먼저 시키고 가져다주니

여기서 제일 매운걸로 하나 달라고 했음

 

그래서 매니져 형한테 물어보고

 

당시 스타메뉴 였던 새우튀김 칠리볶음에

매운 것좀 넣어주라셔서 그렇게 했었음

 

어떻게 줄까 하다가

칠리소스 두국자, 고춧가루 반국자에 캡사이신 다섯바퀴

아몬드 후레이크, 무순, 양파슬라이스, 청량고추 찹, 간마늘 약간,

후추를 후추후추, 

 

이렇게 소스를 끓이고 전분만 묻혀서 튀긴 새우를 

볶아서 내어줬음

 

이게 가격이 9천원이었나 

 

안주도 내가 가져다 줬는데

괜히 먹는걸 멀리서 지켜보게 되었음.

 

괜히 울먹거리는 그 아저씨 표정이 좀 안쓰러웠는가봄.

 

주방 안에 마무리 청소랑 쓰레기 및 짬 청소

등등 하면서 있던 중에

 

홀 누나가 오더니 저 아저씨 운다고 어떡하냐고

그러길레 슬쩍 쳐다봤더니

진짜 무슨 일이 있는가 싶던 와중에

자세히 보니 이 추운 날에 땀까지 흘리고 있었음

 

가게 안이 난방이 좀 빵빵하긴 했지만

땀을 흘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얼큰하게 조리를 했는지,

아저씨는 분명히 울면서 땀을 흘리고 있었음..

 

보통 젊은 사람이 저러면

차였나보다.. 이별했나보다.. 싶지만

점잖아 보이는 아재가 저러니

사연이 있나? 싶은 분위기 였음

 

그렇게 소주 2병에 칠리새우를 호다닥 먹더니

계산 하시면서 주방장님을 보고 싶다고 하셨나봄

안에서 설거지 하다가 불려 나갔는데

아저씨가 땀을 흘려가며 서럽게 울면서

너무 감사히 잘 먹었다고 두손으로 내 왼손을 감쌌음.

 

어안이 벙벙 했지만

‘아, 네. 네. 감사합니다…' 하고 뒤돌아 가시는데

 

 

굉장히 쇼크였음 여러 의미로

내가 조리한 음식을

저렇게나 맛있게 먹고

정확하게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감사 인사를 한게

그 분이 처음이었음.

 

 

주방 안에서 조리하면서

우리 술집을 찾아준 사람들이

각 테이블에서 ‘오~ 이거 맛있다~’ 등의

칭찬이든 비하든 뭐라고든 했겠지만

직접적으로 내 귀로 들은건 처음이기도 했음.

 

 

그 때의 카타르시스? 희열감? 오르가즘? 만족감?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었음.

 

 

 

 6.

이 때의 감동이 진 하게 아주 찐 하게 남아 있어서

군대에서 내 앞 날을 스케치 할 때 참고가 되어 조리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었음.

 

말의 힘이란 참 대단하구나 싶기도 하여

어느 음식점, 술집을 가든 맛이 있으면 맛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게 되었음, 같은 직업이라는 동질감에서도 그렇고

 

 

 

 

 

 

조리사의 장점? 너무 많아서 생각나는거 3가지만 얘기 하자면

 

  1. 1. 뿌듯함? 내가 준비를 잘 해서 조리를 하고 손님에게 내어졌을 때, 
  2. ‘맛있다’ 라고 말해주는걸 내 눈 앞에서 들었을 때 굉장히 뿌듯하고 땀에 저린 조리복일지라도 날아갈 것 같음

 

2. 요즘에서야 유튜브다 뭐다 요리프로그램도 많고 하니, 일반인도 조리에 대한 기회나 여지가 많지만

예전만 하더라도 그런게 없었으니, 친구들이나 여친이랑 놀러갔을 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에 대한 일행들의 만족도가

요즘보단 굉장히 컸다? 라고 해야되나 ㅋㅋ

 

3. 가정적인 남자라고 칭찬을 오지게 들음.

조리 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설거지나 주방일 등 집안 일(집안일은 혼자 자취한 일이 오래되다 보니 익숙해져서)을

하다보니 여자친구가 친구들과의 담소 중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친구들에게 자랑을 쪼끔 하나봄 ㅋㅋ

그렇다보니 처음 만난 여자친구 친구들이 살짝 살갑게 맞아주는게 느껴짐 

 

 

조리사의 단점?

 

남들 일 할 때 쉬고, 남들 쉴 때 일하는거.. 정도

일 때문에 친구 결혼식이다 뭐다 못가고 그랬던게 아쉬움

주말에 쉬던 스쳐 지나가던 연인들과의 시간 맞추는 것도 힘들었고ㅎㅎ

 

 

이상,

오랜만에 옛날 이야기를 해보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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