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 이른바 <상품화> 문제에 대하여

짱공계몽위원회 작성일 20.11.02 14: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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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상품화든 정신의 상품화든, ‘상품화’ 문제에 대해 상당수의 지식인들은 대단히 이중적인 반응을 보인다. 철학책을 출간하는 행위나 에로티시즘 소설을 출간하는 행위나, 무언가를 ‘상품화’하여 먹고 살아간다는 점에 있어서는 결국 마찬가지 행위이다. 고도(孤島)의 로빈슨 크루소가 된다면 모르겠으되, ‘상품화’를 피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상품화 행위’ 에 대해서는 그것을 교묘하게 호도하여 고귀한 행위로 격상시키려 한다거나, 어떤 ‘상품화 행위’에 대해서는 그것을 교묘하게 폄하하여 천박한 행위로 몰아붙이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를테면 학교 선생이 지식을 상품화하여 먹고 사는 것은 지식의 상품화가 아니라 ‘교육’이요, 육체 근로자가 몸을 상품화하여 먹고 사는 것은 상품화가 아니라 ‘고귀한 노동’이라는 식이다. 또 이와 반대되는 현상도 일어나는데, 미스 코리아 대회 같은 데서 아름다움을 경쟁하는 행위를 ‘몸의 저열한 상품화’로 보는 관점 같은 것이 그것이다. 에로티시즘 문학의 경우도 같다.

 

 

물론 ‘나쁜 상품화’와 ‘정당한 상품화’의 구별은 있을 수 있다. 여성(또는 남성)을 인신매매하여 매춘행위에 종사케 하는 것은 몸의 ‘나쁜 상품화’이다. 그리고 자신의 체력으로 노동을 하여 돈을 버는 것은 몸의 ‘정당한 상품화’이다. 또한 사이비 교리로 광신도를 모아 종교를 팔아먹는 행위는 정신의 ‘나쁜 상품화’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몸의 상품화’에 있어서만은 나쁜 상품화와 정당한 상품화의 구별이 애매한 것이 많다(모든 시비와 논란은 여기서 나온다). 이를테면 어떤 여성(또는 남성)이 스스로의 자유의사와 당당한 직업정신에 따라 매소(賣笑)행위를 하면서 (다시 말해서 접대부로 일 하면서) 돈을 번다거나, 어떤 작가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성을 소재로 하여 (다시 말해서 성을 문학상품화하여) 책을 써서 수입을 얻는다거나 하는 행위 같은 것이 그렇다. 이런 행위에 대해서는 그것을 ‘나쁜 상품화’라고 봐야 할지 ‘정당한 상품화’라고 봐야 할지 판단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먼저 후자의 경우를 놓고서 생각해 보자. 어떤 작가가 종교사상이나 진보적 이데올로기를 소재로 하여 책을 써서 파는 행위를 두고서, 사람들은 그것을 ‘종교의 상품화’나 ‘이데올로기의 상품화’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몸에 관련된 ‘성’을 소재로 책을 써서 파는 행위를 두고서는 대개 ‘성의 상품화’라는 꼬리표를 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앞뒤가 안 맞는 가치판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런 소설 가운데 혹 나중에 가서 ‘명작’ (이를테면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같은 것) 으로 판정된 작품에 대해서는 `성을 상품화한 소설’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발적 매소(賣笑)나 매춘의 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더 판단이 어려워진다. 지금도 일부 선진국에서는 매춘업에 종사하는 남녀들이 자기네가 하는 일을 떳떳한 ‘직업’으로 인정해 주기를 요구하며 사회운동을 벌이고 있다. 아주 옛날에는 신전(神殿)에 소속된 매춘부들을 ‘신성한 이타심(利他心)을 실천하는 성스러운 직업인’으로 인정한 적도 있었다. 또 기독교의 성자로 불리는 어거스틴조차 매춘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그것을 ‘하수도 역할’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사회의 경제상태가 호전되면 ‘돈 때문에 할 수 없이 몸을 파는 여성들’의 숫자는 확실히 줄어든다. 그러나 그 대신 ‘당당한 직업정신을 가지고 몸을 파는 여성들’의 숫자가 늘어나 매매춘은 여전히 존재하게 된다. 또한 여권이 신장되고 남녀평등 의식이 확산되면 몸을 파는 여성들뿐만 아니라 몸을 파는 남성들 역시 늘어나 매춘의 문제가 단지 여성문제만으로 국한되지 않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몸의 상품화’를 무조건 매도할 수만은 없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 왜냐하면 사회제도에 의한 성의 억압’이 엄존하는 상황에서는 어떤 수단으로든 ‘성의 억압’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시도가 생겨나게 마련이고, 그런 시도 중의 하나가 매매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황금만능주의적인 자본주의 체제가 모든 사태의 원인으로 지적될 수도 있다. 당당하게 몸을 판다 하더라도 그런 행위의 목적은 결국 ‘돈’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도 매매춘을 근절시키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매매춘의 문제는 ‘돈의 문제’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욕망 (즉 성욕)의 문제’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서 개인의 성을 억압하는 여러 사회문화적 요인들이 ‘몸의 상품화’를 초래하게 한다는 얘기다.

 

 

‘몸의 간접적 상품화’라고 할 수 있는 에로티시즘 예술이나 포르노의 경우를 두고 생각해 보더라도, 그런 것들의 배후에는 대중들로 하여금 ‘성욕의 대리배설 (또는 대리만족)’이라도 간절히 바라게끔 만드는 범사회적 성 억압 현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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