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갈라치기와 과제들

레딛고 작성일 23.09.23 12:00:06 수정일 23.09.23 15:5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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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 모든 비극의 시작이자, 최초의 갈라치기 성공사례는

 

남북한 분단이었다. 

 

반공 이데올로기로 같은 민족끼리 남북으로 갈라치기를 했고, 

 

리승만은 이걸 빌미로 수십만 자국민 양민학살을 자행했으며, 

 

후대엔 건국 대통령으로 까지 추대해 지금은 광화문에 동상까지 세우자고 한다. 

 

당연히, 평화 통일을 주장하던 정적이었던 김구 선생은 리승만에게 살해되는

 

안타까운 갈라치기 희생자로 남게 되었는데, 

 

이후 보수정권의 갈라치기 기술은 더욱 집요하게 한반도의 운명 깊숙히 파고 들게 된다. 

 

정당성 없던 박정희 정권은 경상도 중심의 중공업 부흥정책으로 철저히 전라도 지역을 소외 시켰으며, 

 

경제적으로 동과 서가 심하게 벌어지니... 거기다 영구집권을 위해 우리가 남이가 스킬로

 

철저히 전라도 지역을 배척시켰으며, 본인의 고향 텃밭으로 고속도로까지 연결 시켰으니 

 

나중 전두환의 무자비한 광주 학살도 이런 지역간 인프라 부족과 낙후함이 크게 작용했으며, 

 

정치적으로 어려워질 때마다 약자를 밟아도 된다는 메세지가 공고해 진 계기가 되었다.

 

김영삼 이후 군사정권은 막을 내렸기에 이때부턴 대놓고 전라도 박해를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이미 경제적으로 전라도vs경상도의 소득간 격차가 상당히 벌어졌기에 

 

한국사회 지역간 갈라치기의 대표 상징이자 불평등 사례로 지금껏 유효하게 되었다. 

 

이후 보수정권은 남북한 색깔론으로 손쉽게 진보세력을 공격하게 되었고, 

 

남북, 동서로 철저히 갈라치기에 성공한 보수당은 근자에 와선 이제 남녀간 갈라치기, 소득간 갈라치기,

 

세대간 갈라치기..같은 다양한 변종 갈라치기로  남한 사회를 나노 단위로 까지 쪼개고 있겠다. 

 

이로 인해 더 이상 과거처럼 광장으로 쉽사리 사람들이 모이기 힘들게 되었고, 서로 미워하고, 적대시하는

 

무한 각자도생 경쟁 사회가 되버렸다. 

 

그리고, 이 정점은 최근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처럼, 같은 편(?)끼리도 서로 믿지 못하고

 

언제든 뒷통수 깰 수 있다는 불안감이 사회 전반에 확산하게 된다. 

 

국뽕에 매일 찾던 주모도 이제 이민을 준비할 만큼, 한국 사회는 삽시간에 전부 닌자 사무라이가 된 듯

 

불특정 다수를 향한 칼춤이 일상이 되었고, 

 

문정권 시절 0.00@% 코로나 백신 부작용에도 그렇게나 인권을 강조하며, 정부의 무한 책임을 주장하던

 

수많은 메이저 언론사들과 개념 sns 인플루언서들 전부 자취를 감추고 

 

오직 지들 경제적 이득 챙기기에 여념들이 없겠다. 

 

당연히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대상들이 전부 남탓하며 휘발됐으니..

 

그 빈 자리를 침묵의 대량 희생자들이 조롱 받으며 사라질 뿐이다. 

 

이제는 보수정권이 굳이 큰돈 써서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아도 

 

알아서 바람이 불기 전부터 기어서 빨아대는 극우화된 사회 풍토가

 

자력발전하며 사회 전분야의 새로운 조리돌림 대상을 찾고 있겠다. 

 

이런 대책없는 무한 갈라치기로 초토화된 한국 사회를 다시 본드칠, 풀칠 할 수 있을까?

 

하는 극심한 노답사회를 우린 기약없이 살고 있는데, 

 

이 모든 게..저들은 건국이었다고 주장하는 갈라치기의 시초이자

 

친일의 그림자를 가리려던 매국 1세대 틀딱들의 부산물을 지금껏 방기한 결과이다. 

 

이젠 이러한 갈라치기 후폭풍이 우리들 삶의 터전이자 안방까지 쪼개려 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선 끝까지 존버하며, 흑화하지 않고, 때가 올때까지 기다려 작살낼 수 밖에 없겠다. 

 

청소는 더 이상 사람좋은 빗자루 질이 아닌 

 

화산같은 불덩이로 싹다 태워 다시 시작하는 길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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