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를 자꾸 폭동이라고 지껄이는 분에게 ..

피빛망투 작성일 13.01.25 19: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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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평어체로 쓰겠습니다.)


내가 5.18를 처음 접하게 된 사건은 시내버스안이였다. 


누가 뜯다가 말아버린 스티커에 시체사진이 있었고 광주라는 단어가 얼핏 적혀있었다.


아주 어린 나이에 (당시 9살이였나...) 끔찍한 시체 사진은 충격이였다.


그날 집에 가족들하고 저녁 먹을때 부모님에게 버스에서 광주 사진을 봤다고 말했는데 


부모님은 광주 그 때 사람 많이 죽었다고 하더라면서 입을 다물어버리셨다. 


그 때는 땡전뉴스 시절이였다. 나는 부모님이  광주에 대한 언급을 하기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가 문득 정색을 하고 고개를 돌리면서 다른 이야기를 하신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세월은 흘러 노태우 정권 시절 청문회가 열리고 TV에서 광주 특집을 보여주던 시대가 왔었다.


고향은 경북이고 부산에 이사와서 살던 우리 가족은 광주에 어떤 상황이 벌어진 영상을 보는게 


궁금했었는지 온 식구들이 모여 티비에 보여주던 광주 특집을 봤었다.


MBC에서 보여준 광주 특집에서 많은 군중들이 모여서 시위를 보여주는 장면이 많았었다. 


아버지는 혀를 끌끌차시고는 저리 시위를 하니 군인들이 내려갔지..라고 말을 하시는 것이 기억이 난다.


솔직히 그 때는 그 영상을 보고 나도 아버지 말씀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시위영상이 많았고 광주 MBC가 불에 타고 있는 장면도 있었으니 폭도로 보였던 것 같기도 했다.


그 뒤로 광주항쟁은 잊혀졌다. 


세월은 더 흘러 대학에서 광주에 관한 서적을 볼 기회가 생겼다.


감정으로 접근한 서적이 아니고 당시 광주항쟁이 벌어진 이유와 시간대별로 벌어진 사건을 자세히 묘사했던 


서적인 걸로 기억이 난다. 


그 책을 읽고 나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었다.


광주는 과격한 폭도때문에 자초했던 어쩔 수 없는 사건이 아니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너무나 잔인했던 계엄군의 진압과 무력사용...


믿지 못할 중고등학생들의 죽음과 시위에 참여하지도 못할 임산부의 죽음까지...


공수부대에게 집단 성폭행당한 여고생의 이야기...


한국 현대사에서 벌어진 가장 끔찍한 사건이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멘붕은 정말 컸다.


나도 그 상황에 처해지면 총을 들어 시민군이 되어서 대항했을 것이라고  분노까지 느꼈던 것 같다.


그 때의 분노를 잊고 지내다가 요즘와서  정경사에 광주를 폭동이라고 부르고 폭도들이라고 부르는 글이 보여질 때마다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전땅크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개그코드처럼 쓰여지고 


폭도들은 밀어버려야제 라는 말이 보여질때 분노를 넘어서 암담함마저 느껴질때도 한 두번이 아니였다.


광주를 욕 보이지는 말자.


나는 당시 광주 시민들의 저항에서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너희들이 쉽게 폭도들은 저렇게 진압해야제 라고 지껄이기에는 


광주의 상처가 너무 크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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