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 분노 주의) 시골의사 블로그 - 억울한 죽음

미뿔 작성일 21.02.21 15: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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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의 일이다.

 

어느날 검찰에서 검시 요청이와서 검안을 나갔다.

 

사실 검찰이나 경찰의 검안 요청은 내키지 않는 일이다, 

아무리 내가 칼을 드는 외과의사지만 그래도 한밤중에 누군가의 시신을 살피고 만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어차피 소임을 가지고 있는 이상, 내가 그일을 함으로서

혹시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기위로라도 하지 않는다면 정말 내키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가끔 사망한지 한 달도 넘는 시신을 가매장한 묘소에 가서 부검을 하거나,

혹은 어딘가에 방치되었던 오래된 시신을 살펴야 하는날에는, 최소 일주일은 음식을 제대로 넘기기 어려울 만큼 힘들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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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연락하는 폼이 심상치 않았다.

 

검안실에 도착하니 담당 경찰관과 검사가 먼저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산전수전 다겪은 그분들이 잔뜩 찌푸린 인상을 하고 있는것을 봐서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임이 틀림없었다. 

 

내가 도착해서 담당 형사 두분과 검사 한분 그리고 부검을 도와줄 아저씨 한분,

사진을 담당하는 분 한분 대개 이렇게 도합 여섯명이 한 팀이 되서 부검실로 들어섰다.

 

부검실 테이블 위에는 검은색 비닐팩에 담겨진 시신이 얹혀 있었고,

관리인 아저씨가 지퍼를 열자 그 안에서는 얼굴 형체를 도저히 알아 볼 수 없는 여자로 보이는 시신이 한 구 들어있었다. 

사실 돌아가신 분의 몸은 겉으로는 성별이나 나이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멀리서 일핏 보기에도 참혹한 모습이라 내심 주춤했지만, 도리 없는 일..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서둘러 하는 것이 여러사람이 편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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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잡아 먹고 수술용 장갑을 손에 낀채로 테이블에 다가섰다.

 

사인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망자의 얼굴을 비롯한 두경부의 손상을 살피고 몸을 살피는 것이 순서인데. 

예의 순서대로 시진하려던 내 눈에 들어 온 끔찍한 장면들은 나를 그자리에서 얼어 붙게 했다,

 

나름대로 산전 수전을 다 겪은 부검팀들의 입에서도 낮은 신음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돌아가신 분은 윗입술이 코에서부터 길이 방향으로 찢어지고 양 관자놀이의 뼈가 골절이 되어있었으며,

가슴과 등,배,다리와 심지어 말로 표현하기도 힘든 다른곳까지 

무려 30 군데가 넘게 칼에 찔린 자상으로 온 몸이 한군데도 성한데가 없었다.

 

부검 서류에 외상흔을 기록하는 내 손이 덜덜 떨렸다,

 

등과 배,가슴에 칼이 파고들었던 흔적들을 확인하면서

상처의 길이,깊이,모양을 기록해야 하는 내 자신이 평정심을 유지 할 수가 없었다,

일일이 상처에 프로브를 넣어 깊이를 확인하고, 줄자로 길이를 재고, 다시 상처의 모양으로 흉기의 형태를 짐작해야 한다,

 

내가 이자리에서 결론을 내려준다면 일초라도 빨리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망자의 한맺힌 시신은 다시 국립과학 수사연구소로 이송되어 시간을 끌게 될 것이다.

 

나는 그때마다 인간의 야수성에 치를 떨었지만,  

그날 정말 평생에 다시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경험을 그자리에서 또 한번 더하게 된 것이다.

 

부검결과는 무려 9군데의 골절상과 30여군데의 자상, 그리고 목의 교상과 전신 타박상,그리고 익사 였다,

이것은 사람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구타하고 칼로 찌르고 그것도 모자라 그나마 아직 생명이 남아있는 순간에 강물에 던져 버린것을 의미한다,

 

망자는 인근 하천의 하류에서 3일만에 발견된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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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전 그때 내가 있던 도시의 지역방송에는 어떤 여자분의 실종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은행에 근무하시던 젊은 애기 엄마가 밤길에 간선도로변에 시동이 걸린 차만 남겨두고 실종되었는데.

차안에는 두살배기 어린 애기만 남겨져 있었다고 했다. 

 

평소에 건실하고 모범적이던 애기엄마가 그것도 애기를 차안에 남겨두고 시동을 걸어둔 채로 차에서 저절로 사라질리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날 지역 방송에 아이엄마의 얼굴을 담은 사진이 방송되고, 각 관공서나 아파트에는 전단이 만들어져 붙여졌다.

 

나 역시도 그때 방송을 보면서 참 곱게 생긴 사람이 왜 실종 되었을까.. 나쁜일만 아니면 좋을텐데.. 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그날 내가 부검한 망자가 바로 그 아이 엄마의 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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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엄마는 아이를 옆자리에 태우고, 왕복 2 차선 도로를 천천히 지나갔다,

 

옆자리에 애기를 태우고 빨리 달릴 엄마도 없겠지만, 원래 그 도로는 시장변에 있어 빨리 달릴 수 있는 도로가 아니었다.

 

그런데 뒷차가 클랙션을 빵빵 울려댔다.

 

느리게 간다는 것이다, 애기 엄마는 조금 속도를 내 보지만, 주변의 적치물들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도리없이 천천히 혼잡 구간을 벗어나는데, 뒷차가 쌍라이트를 켜면서 클랙션을 울려댔다,, 어쩔수 없었다,

옆자리의 애기를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도로를 빠져나와 우회전하면서 간선도로로 막 접어드는 순간

뒷 차에 탔던 20 살 21 살 의 젊은 아이들이 추월해서 앞을 가로 막았다,

 

그리고 다짜고자 운전석 문을 열고 아이 엄마를 끌어 내렸다.

 

옆자리의 애기는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엄마와, 험악한 표정으로 고함을 질러대는 아저씨들을 쳐다보며 울음을 터뜨렸지만,

엄마는 그렇게 애기를 두고 운전석에서 끌어내려졌다.

그리고 그들의 차로 끌려갔고, 그 악마들은 아이 엄마를 싣고 강변으로 향했다.

 

그 상황이 벌어지는 순간 주변에 사람들이 없진 않았다,

 

도로변에 가게는 곰장어를 구워내는 연기가 자욱했고,

시장으로 오고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그리 드물지 않은 곳이었으며, 시간 역시 그리 늦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 누군가는 두대의 차에서 옥신각신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고, 한대의 차에서 여자가 끌려나오는 모습을,

그리고 그차에 사람이 실려가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아이 엄마를 끌고간 차를 보았다고 신고한 사람은 없었다,

 

아이엄마는 그냥 길가에 차를 세워둔 채 아기를 남겨두고 실종된 상황으로 남겨진 것이다.

 

짐승들은 차안에서 아이 엄마를 폭행했다,

얼마나 사람을 때렸으면 안면골이 전부 골절이 되어 있었고.갈비뼈와 팔뼈까지 골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악마들은 아이 엄마를 인적이 없는 강가로 데려가서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무수하게 온몸을 칼로 찔렀다.

그것도 무려 30 여군데를 말이다,,

 

그들은 아이 엄마에게 어떤 원한도 없었다,

 

그녀의 집안과 그들의 집안이 아무런 원수를 진 일도, 아이 엄마가 그들에게 도둑질은 한 것도 없었다,

단지 아이엄마가 탄 차가 그들이 탄 차보다 늦게 달렸다는 이유로 그 짐승들은 아이에게 엄마를 앗아갔고.

한 사람의 생명을 그렇게 가혹하게 짓밟았다.

 

나는 그녀의 죽음과 이틀후에 붙잡힌 짐승들이,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방송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점퍼를 뒤집어 쓴 채로 

" 그냥 화가 치밀어서 그랬습니다 .." 라는 답변을 하는 모습을 보고 증오를 느꼈다.

 

그래도 용서해야하는 것일까?   

 

그래도 죄를 미워해야지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그날 그녀가 끌려가던 날,

길가에서 목격한 단 한사람이라도 빨리 경찰에 연락을 했더라면, 혹시라도 아이 엄마와 아이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만약 그랬다면 지금 점퍼를 뒤집어쓰고 철면피한 소리를 내뱉는 저 짐승들의 운명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마 지난 토요일에 반사적으로 차를 몰고 따라나선 내 행동의 밑바닥에는

그때의 분노가 잠재의식처럼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글을 쓰면서도 예전의 그 분노를 다스리기가 힘겹게 느껴진다................ 


 

 

출처 - 시골의사 박경철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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