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하며 연애하던 이야기 - 1

진짜킹카 작성일 24.08.04 22:51:10 수정일 24.08.05 23: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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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대구에서 있었던 연애 이야기입니다.

 

 

 

 

먼저 군대를 갔던 고등학교 친구가 언제 전역을 했는지 뜬금없이 연락이 왔다.

 

“더운데 집에 있지 말고 나와. 시원한 맥주 한잔하자.”

 

“아씨, 귀찮아. 그리고 나 돈 없다. 완전 거지다.”

 

“너야 돈 없는 거 늘 알지. 난 아닌 거 알잖아. 세상의 모든 바닷물이 말라버릴지언정 내 주머니에 돈 안 마르는 거 알지?”

 

친구의 말에 한참을 웃다가, 웬만해선 술 같은 거 혹은 밥 같은 것을 잘 사지 않던 친구였기에 갑자기 보자는 말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같았다.

 

“갑자기 연락 오는 거 수상한데? 나 참고로 돈도 없고 보험도 들 생각 없고 다단계 이런 거 경멸...”

 

“할 얘기도 있고 소주단란에서 한 잔 어때?”

 

이 당시에는 소주단란이라는 장소가 대유행이었다.

 

소주를 파는 술집에 무대가 마련되어있고 그 무대에 노래방 기기가 한대 있으며 테이블마다 노래책과 리모컨이 있어서 

 

노래를 예약하고 자기 순서가 되면 노래를 뽐내고 하는 그런 술집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을 평소에 좋아했기에 일단 승재를 만나보고 무슨 얘기를 하는 지도 들어보려 했다.

 

에어컨의 냉기가 빵빵한 술집에서 승재와 단 둘이 앉아 술도 마시고 무대에 나가서 노래도 부르고 

 

내 노래를 턱을 괴고 감상하던 아줌마들에게 손가락으로 총도 쏘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자리로 돌아와 승재와 연거푸 같이 건배를 하고 술을 들이켜는 중에 승재에게 물었다.

 

“할 얘기가 뭐냐?”

 

“아, 그거? 너 방학인데 아르바이트 안 할래?”

 

“알바? 이렇게 부탁할 정도면 말로만 듣던 시체 닦기 그런 거냐?”

 

승재는 크게 한바탕 웃고는 말했다.

 

“일하는 곳에 너 좋아하는 여자도 있고, 돈도 벌고, 그리고 비밀인데 부수입도 있어.”

 

“그러니깐 그 여자가 시체냐고.”

 

“아 겁나 웃겨. 너 군대 가면 관심 좀 받겠다. 요즘 관심 병사 그런 거 핫하거든. 하여튼 험한 일은 아니야.” 

 

친구의 말 중에 여자라는 말에 홀려 답했다.

 

“콜!”

 

“이 새끼 여전하네. 그래도 예의상 어떤 일인지는 물어봐야 할 거 아냐.”

 

"어떤 일인데?"

 

“주유소 알바인데 돈이 제법 돼”

 

여자가 많다는 말에 유통 쪽 알바나 유흥 쪽 알바로 상상 했는데 주유소라는 말에 약간 실망했다.

 

“주유소 총잡이가 거기서 거기 아니가?”

 

“우리 주유소에서 일하면... ”

 

자초지종은 대략 이러했다.

아르바이트 할 주유소는 마당을 같이 쓰는 운송회사가 있다고 한다.

 

그 회사의 기사들은 회사전용으로 전표에 숫자를 기입해서 기름을 넣는데 실제 주유되는 기름양보다 

 

더 많은 양을 전표에 적어준다는 것이었다.

 

그 초과 되는 양을 기사랑 알바가 8대2로 나누어 먹는 것이었다.

 

2인1조로 알바를 하는데 한명이 퇴사를 했고 또 자기도 복학 준비한다고 조금만 더 일하다가 그만 두기에 대체 인원으로 내게 전화를 했던 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는 친구가 던져 본 말 같아서 신경도 안 썼고 부수입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비록 몇 달도 일하지는 못하겠지만 부탁처럼 들리는 꼬임에 넘어가 다음날부터 간단한 면접 후에 일을 하기로 약속했다.

 

“혹시 나 면접 떨어지는 거 아니가?”

 

“두 팔 움직이면 합격임. 아, 맞다. 말 안했구나. 출근은 저녁 6시야.”

 

 

주유소 확장 공사 때문에 근무시간이 상당히 독특했다.

 

오후 6시부터 근무를 시작해서 밤 11시까지 일을 하고 

 

이후에는 주유소 컨테이너로 만든 간이 사무실에서 스티로폼 깔고 잤다가 아침에 잠시 일하고 

 

8시 30분에 주간 조와 교대를 하는 형태였다.

 

 

다음날 간단하게 이력서를 지참하고 주유소로 찾아갔다.

 

집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였지만 첫 면접과 동시에 첫 출근이기에 1시간 전에 집을 나서서 주유소에 도착을 했다.

 

주유소 앞에서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며 어슬렁거리자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간이 사무실에서 들어서자 그 남자는 소장이라고 적힌 명함을 건네주었다.

 

웃는 인상에 장난기가 많아보이던 소장과의 면접에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어제 승재에게 얘기 들었는데 오늘부터 일할 수 있다고?”

 

“네, 열심히 잘 할 자신이 있습니다.”

 

“주유소 경험은 없다고 했지?”

 

“네.”

 

“인상만 보고 일을 잘 할지 못할지 알 수 없으니깐 한번 해보고 서로서로 판단해보자.”

 

“내가 자를지. 네가 그만둘 지 말야. 그럼 승재 출근할 때까지 좀 기다리자.”

 

면접은 1분 만에 끝나고 주유소 마당에서 승재가 오기만을 기다리다 마당 뒤쪽에 있는 건물의 1층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입구 안쪽에 있는 낮은 수도에서 치마를 모으고 앉아 커피잔을 설거지하는 여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화들짝 놀라 다시 밖을 나와서 확인하니 남녀공용이라는 간판이 그제야 눈에 보였다.

 

그 때 안쪽에서 귀여운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셔도 되요. 공용화장실이에요.”

 

다시 들어선 화장실에서 또다시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쑥스러운지 이내 눈을 피해버렸다.

 

회사 유니폼을 보니 주유소 아르바이트는 아닌 듯 보였고 추측 건데 승재가 말한 주유소랑 붙어있는 그 회사의 경리직원 같았다. 

 

평소에 거울을 보며 늘 연습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네? 네...”

 

“저 오늘부터 주유소에서 일해요 잘 부탁 드려요.”

 

“아..네..”

 

 

그녀를 슬며시 건너다보니 붉게 변한 얼굴로 짓는 여린 미소가 너무 귀여웠다.

 

여태껏 이렇게 마주 서 있는 상황에 놓이면 무슨 범죄자를 본거 마냥 내 앞에서 얼른 자리를 피하는 여자들이 많았는데 

 

그녀는 더 말을 해보라는 듯이 내 앞에 우물쭈물 서 있었다.

 

처음 겪는 상황에 오히려 내가 더 당황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 중에 

 

밖에서 승재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녀에게 빙긋 눈웃음을 지어보이고 소리쳤다.

 

 

“나 여기 있어!”

 

 

내 목소리를 들은 친구가 화장실로 들어왔고 그녀를 발견하고는 살짝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좁은 화장실에 남자 두 명과 같이 있을 그녀가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친구의 팔을 붙잡고 화장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화장실 밖으로 나가는 그 찰나의 타이밍에 습관처럼 한쪽 눈을 감으며 양손으로 손가락 총질을 했다.

 

그 모습을 황당하게 쳐다보던 친구는 토악질하는 제스처를 하고는 비꼬며 말했다.

 

 

“틈만 주면 느끼한 짓 하는 거 예나 지금이나 여전해. 무슨 지가 신애라 앞에 차인표인 줄 아나?”

 

“들켰냐?”

 

 

그리고 방금 내가 했던 그 표정과 손가락 총질을 우스꽝스럽게 흉내 내면서 몸서리를 치는 시늉을 하며 내 어깨를 뚝 밀며 장난을 쳤다.

 

친구의 그 모습을 보며 웃으면서 장난치며 주유소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은 주간 근무자들이 퇴근을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강승훈이라고 합니다.”

 

 

주간 근무자들과 간단하게 인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에는 나와 친구만 있고 다 퇴근을 했다. 

 

사무실 안에 있는 소파에 앉아 친구와 이런 저런 잡담 중에 승용차 한 대가 주유소 안으로 들어왔다.

 

승재가 시범을 보여준다고 해서 옆에서 기름 넣는 것을 구경했다. 옆에서 보는 것은 참으로 쉬워보였다.

 

그 때 저 앞으로 아까 화장실에서 봤던 설거지 그녀가 퇴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주유기를 들고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는 친구를 내팽개치고 한껏 웃으며 그녀에게 달려갔다.

 

 

“지금 퇴근하시나 봐요?”

 

“네...”

 

 

단답형 대답이 너무 순진하게 느껴지고 그것 나름 귀여워서 너무 좋았다

 

부끄러워하는 그녀에게 바람둥이처럼 보일까 싶어서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운 척 말을 건넸다.

 

 

“저.. 자주 볼 것 같은데... 앞으로 친하게 지내도 실례가... 되진 않겠죠?”

 

 

다시 나를 쳐다볼 땐 시선이 또다시 얽혀버렸고 몇 가닥의 머리칼을 귀 위로 조심스레 쓸어 넘기곤 쑥스럽게 웃었다.

 

 

“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녀는 그리 길지 않은 머리칼을 찰랑거리며 은은한 향수냄새와 함께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잠시 동안의 대화였지만 너무 긴장을 해서 심장이 뛰다가 목구멍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았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중 친구가 내 등을 뚝 건들며 여자 목소리를 흉내 냈다.

 

 

“너 때문에 조심히 못 들어가겠어요. 날 꼬실려구요?”

 

나 역시 여자 목소리를 흉내 내며 대답했다.

 

“오빠가 너무 멋져서 내 이상형이거든요.”

 

“아이씨, 재수 없어.”

 

 

날 밀쳐내는 친구에게 엉겨 붙어 서로 뭐가 재미있는지 한껏 웃은 후 승재에게 물었다.

 

 

“쟤 귀여운 게 딱 내 스타일인데 이름이 뭐야?”

 

“몰라.”

 

“누가 찜한 사람 있나?”

 

 

사무실의 주간 근무자나 그 여자가 일하는 사무실의 남직원 등 사귀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했다.

 

 

“글쎄 내가 알기론 없는 것 같은데.. 쟤가 원래 있는 듯 없는 듯 해서.”

 

 

또 주유하러 차 한 대가 들어왔다.

 

지금 일하는 주유소는 확장한다고 작은 공사 중이었고 공사 현장 바로 뒤에는 2층짜리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이 아까 본 설거지 하는 여자애가 일하는 사무실이었다.

 

주유소 사무실은 공사 현장에서 우측으로 1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컨테이너를 임시로 쓰고 있었다.

 

영업 중이라고 표지판을 붙여놔도 공사 중이라 그냥 지나치는 차량들이 많았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만 주유하러 왔기에 손님들이 너무 뜸했다. 

 

우리는 일하는 중에 만화책도 빌려와서 보고 동전 던지기도 하며 밤새 주유소를 지키며 노는 게 일이었다.

 

저녁 8시가 되니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짜장면을 시켜먹고 소화를 시킬 겸해서 주인이 누구인지 모를 자전거를 타며 마당 안을 빙글빙글 돌던 중에 

 

커다란 경유차가 들어왔다.

 

 

큰 차에서 내린 기사는 주위를 살피며 내게 다가와 조용히 내게 물었다.

 

 

“오늘 현금 좀 있나?”

 

“네?”

 

 

놀라서 말한 “네”라는 대답을 긍정의 대답으로 들은 기사가 다시 조용히 말했다.

 

 

“그럼 200리터만 넣어.”

 

 

기사는 전표에 숫자를 적더니 내게 넘겨주었고 전표를 확인하니 400리터라고 적혀 있었다.

 

 

- 아.. 이 상황이 그 때 친구가 말한 그 상황이구나.. - 

 

 

 만원 정도의 돈을 기사에게 현금으로 주고 몇 천원 되는 돈을 빼서 손에 쥐고 있으니 손이 부르르 떨렸다.

 

몇 천원을 손에 쥐고 떨고 있는 내게 기사는 수고하라는 말을 건넨 후 경유차를 타고 주유소를 빠져나갔다.

 

 

2분 정도 지나 승재가 손에 만화책이 든 봉지를 들고 나타났고 그 때까지 돈이 들어 있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덜덜 떨고 있었다.

 

 

“방금 400리터 끊어서 200리터 넣고 6천원 받았어.”

 

“그럼 나한테 3천원 주면 돼.”

 

우리는 부수입을 철저히 반으로 나눠 가졌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여전히 가슴이 쿵쿵 뛰고 있었지만 승재는 여러 번 이런 일이 있었는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다.

 

저녁 11시에 마감을 하고 사무실 안에 스티로폼 매트리스를 깔았다.

 

때가 더럽게 묻어있는 이불을 덮고 빌려온 만화책을 몇 권 베고 누워 있으니 피곤하게 일하지도 않았지만 금세 잠이 왔다.

 

불편한 잠자리에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실에서 세수도 하고 치아도 닦았다.

 

새벽공기를 맡으며 주유소 마당에서 자전거도 타고 어제 친구가 가지고 온 만화책도 보며 

 

빨리 교대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코를 골며 자는 친구를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일부러 내어 깨웠고, 

 

2시간 후에 주간 반 근무자가 출근을 하며 첫날 알바 일정을 마쳤다.

 

승재와 같이 주유소를 나설 때 승재가 내게 물었다.

 

 

“할 만했냐?”

 

“응, 근데 너 코고는 소리 때문에 그데 제일 힘들었어,”

 

“나 코 안 고는데?”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돼지 농장에 알바 하러 온 줄 알았어.”

 

 

승재와 간단한 농담으로 서로가 크게 웃으며 주유소 앞에서 헤어졌다.

 

 

그리고 왠지 모를 아쉬움에 버스정류장으로 느릿하게 걸어갈 때 저 앞에서 어제 봤던 설거지 그녀가 보였다.

 

어제 봤을 때는 청초한 모습이었는데 오늘 보니 살짝 화장도 한 듯하고 어깨까지 오는 단발머리 뒤로 구불구불한 머리 끈을 했다.

 

입술도 분홍빛이 도는 것이 반들거리는 무언가를 바른 듯 보였다.

 

 

그녀도 나를 발견하고 멀리서 고개를 까딱 숙이며 인사를 하기에 그녀에게 급하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네.”

 

“어제 잘 들어 가셨어요?”

 

 

설거지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며 살짝 웃음을 보였고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따라 웃을 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이 이 부근이라서...”

 

“잘 들어갔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제가 이름도 모르고 삐삐 번호도 몰라서요.”

 

 

이 시기에는 삐삐(호출기)가 지금의 휴대폰처럼 대중적이었고 일부 부자들이 커다랗고 무식하게 생긴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다.

 

 

“근데요... 원래 성격이 그렇게 밝은 거예요? 아니면...”

 

“아니면?”

 

 

그녀의 뒷말을 따라하자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제게 관심이 있는 거예요?”

 

“네, 관심을 주는 거 맞아요. 어제 화장실에서 보는 순간 질식 할 뻔 했어요. 숨이 막혀서.. 예뻐서.. 그리고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라서.”

 

 

그녀가 들으면 기분이 좋아질 말만 골라서 하자 웃음을 참는 듯한 그녀가 새침하게 소리를 내었다.

 

 

“치...”

 

 

눈가에서 입술로 번지는 미소를 보고 이 분위기를 놓치지 않으려 바로 말했다.

 

 

“삐삐 번호 좀 가르쳐 주세요. 이름도 정말 궁금하구요.”

 

 

그녀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오른쪽에 메고 있던 작은 가방에서 메모지를 꺼내 이름과 번호를 적어주었다.

 

『민지연 23살 015-123-4567』

 

성도 독특하고 이름도 예상처럼 예뻐서 별로 신경이 쓰이질 않았는데 23살이라고 적힌 메모를 보고 순간 당황했다.

 

 

- 23살? 음, 그럼 나보다 1살이 많구나..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말하면 이 모든 상황이 없던 걸로 되는 건 아닐까? -

 

 

솔직하게 내 나이를 밝히기보다 무난하게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나이를 속였다.

 

 

평소에 연습한 귀여운 표정과 장난처럼 보이는 그런 제스처를 하면서 말했다. 

 

 

“우와, 이름도 성도 정말 예쁘시네요. 민씨 성은 역사책에서만 봤지 실제로는 처음이에요. 이름도 그 누구냐? 예쁜 가수 있잖아요. 김지연인가? 찬바람이 불면 떠난다고 노래 부르는 가수 알죠? 지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다 예쁘구나 싶네요. 그리고 저는 24살입니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한참을 웃다가 말했다.

 

 

“아, 오빠시구나.”

 

 

오른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그렇죠. 오빠죠. 오빠 맞네요.”

 

 

잘하지 못하는 거짓말을 하게 되었지만 그럴 듯하게 표정마저 꾸미지는 못했다.

 

 

“그런데 정말 나보다 오빠인 거 맞나요?”

 

“네. 아빠 아니고 오빠 맞아요.”

 

 

대답하고 나서 아차 싶은 썰렁한 농담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 여동생만 있어서 오빠 있는 친구들이 정말 부러웠는데 앞으로 오빠라고 부를게요.”

 

“네, 동서남북에서 오빠라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뛰어갈게요.”

 

 

설거지 그녀는 시계를 보면서 시간이 없는 것처럼 말했다.

 

 

“지금 출근이 늦었네요. 먼저 가볼게요”

 

 

이 말을 듣고 유머감각이 있어 보이고 싶어서 말했다.

 

 

“지금 퇴근이 늦었네요. 먼저 들어가세요.”

 

 

그녀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하고는 등 뒤로 지나갔다.

 

 

또다시 코를 자극하는 향긋한 향수 냄새에 뒤돌아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이따가 삐삐 쳐도 되죠?”

 

 

빠른 걸음으로 걷던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뒤돌아서서 내게 외쳤다.

 

 

“그럼 내가 왜 이름이랑 삐삐 번호를 줬겠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날아와 귀를 막아 버렸는지 아니꼬운 눈초리로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그리 많은데도 세상은 너무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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