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우리가 바라는 것은?

l죠리퐁l 작성일 22.05.04 15:59:20 수정일 22.05.04 16: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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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예천 용문사를 찾았다. 대회를 가면 항상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산을 찾는다. 심리 상태가 무엇보다 중요한 운동이기에 마음을 가다듬고 여유를 갖기 위해 대회를 앞두고 늘 산을 찾는다. 다만 등산을 하기에는 다음 날 시합 일정이 부담되어 꾀를 낸 것이 좋은 산에 있는 좋은 절을 찾는 방법을 선택했다. 

  

신라 시대 세워진 천년고찰 용문사 보광명전에서 합장을 했다. 종교관을 떠나서 장소에 맞는 예법을 지켜야 하기에 한동안 합장을 하고 돌아서는데 아내가 말을 건넨다.

 

"이상하죠? 바라는 것이 많은데 이런 장소에 오면 아무 생각이 안나요. 그냥 기도만 하고 마는데 참 이상 합니다. 왜? 생각이 나지 않는 걸까요?"

 

날이 너무 좋아 하늘을 바라보며 아내 물음에 답한다.

 

"사람은 절이든 교회든 어디든 가면 자신이 바라는 것을 기도를 통해 이루려 하죠. 그렇기에 이런 장소에서는 진심으로 기도하곤 합니다. 조금이라도 정성을 더 들이면 왠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것 같아서죠. 그런데 바라는 것을 기도 한다고 다 이루어지진 않죠. 내 기도가 진심이 아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성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아마도 그건 욕심이 아닐까요? 내가 뭔가를 바라는 것이 사실 진심이 아닌 욕심 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착각하는 거죠."

 

내 기도가 진심인지 욕심인지 잘 구분해야 한다는 말에 아내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아내와 대웅전 계단을 나란히 내려오며 덧붙인다.

  "사실 없어도 먹고사는데 별 상관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 바로 욕심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바라는 것이 마치 진심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니 기도를 해도 이루어지지 않죠. 당신이 바라는 많은 것이 알고 보면 진심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 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장소에서는 욕심을 빼면 당연히 내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으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거죠."

 

사람은 누구나 현재 삶 보다 더 행복한 삶을 꿈꾼다. 행복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처한 현실도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행복에 대한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데도 누구나 인정하는 행복을 꿈꾼다. 현재에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자유론을 쓴 밀은 "스스로 행복한지 묻는 순간 행복하지 않게 된다"라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은 목표이자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행복을 느낄 수 없으며 행복을 무한정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바라는 행복이 현실에 나타나는 순간 그 사람은 더없이 행복할 것 같지만, 사실은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미 충분히 행복함을 느끼게 되고 행복한 순간이 도래하면 더 높은 수준의 행복을 꿈꾼다는 말이다. 그래서 많은 종교 지도자나 학자들이 행복을 쫒는 삶을 살기보다는 오히려 절제된 생활을 통해서 작은 행복을 느껴라고 충고한다.   

 

 아내는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다고 동의한다. 용문사 마당을 가로질러 종각에서 잠시 엉덩이를 붙였다.

 

"어쩌면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무 바랄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닐까요? 더 이상 바랄것이 없는 상태가 정말 우리가 원하는 바람 일수도 있습니다. 바랄것이 없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말이니 그냥 하루를 감사히 살면 그만인 게죠."

아내는 제 말이 그럴듯하다면서 다시 기도를 하고 오겠다며 잰걸음으로 사라졌다. 

 

"이번에는 정말 진심으로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 달라는 기도를 했어요"

"그래요. 이 좋은 세상 오래 삽시다." 
 

말을 끝내고 우리는 용문사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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