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개인주의

짜장이 작성일 20.10.08 21:4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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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부터 아버지는 가족에게만큼은 자존심이 굉장히 강한사람이었다 물론 그아들인지라 나또한 자존심이강했다

 

전남 광주에서 아는형과 같이 서울로올라와 금형( 어떤 물품에 틀을 짜서 대량생산 쉽게말해 거푸집이라고생각하면된다)

 

으로 콘센트에 앞코 부분을 만드는일을 하셨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1980~90년대 당시에는 전기계통 관련자들은 떼돈을 

 

벌었을 때다 아버지 또한 그러셨다고 들었다. 5남매에 막내로 태어나 항상 의기양양 했던 아버지가 막상 사회에 나와봤더

니 

 

아버지의 형과 누나들이 걱정하는것보다 더 쉽게 사업이 풀려서 얼마나 의기양양해졌을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나같아도 굉장히 자부심과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으리라!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내가 7~8살이 되던해에 누구나 겪어왔던 IMF가왔고 견고할것만 같았던 피라미드가 무너졌다 

 

아버지는 어떤생각이 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많이든다 행복한삶을 꿈꾸어 같이 상경한 아내, 한창 잘커야 하는 나이에 두명의 아들…  그때 당시 아버지의 막중한 책임감에 피라미드는 복구할 생각을 못했다.

 

 

아버지의 일을 끝마친뒤 저녁 늦게쯤 집에 있는 가족들을 불러 소소하게 아버지의 반주와 저녁을 먹던 포장마차가

 

6시 7시쯤 가족을 불러 말도안되는 요구와 폭행을 일삼는 장소가되었었다. 

 

아버지의 신경질은 타오르는 장작처럼 급속도로 어머니와 형에게도 옮겨붙었고,

 

결국 내가 타지않게 형과 어머니가 내 주위를 처왔던 울타리 가장 깊숙한곳에 숨어있던 나에게 불은 집중되었다

 

아버지의 폭행은 어머니에 짜증을 낳았고 어머니의 짜증은 갈곳잃은 형의 폭력을 낳았다 

 

이 모든것들은 어린나이에 내가 감당하기에는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자기보다 비참하고 불쌍한 사람을 본다면 

 

한순간 즐거워진다는 것을 보고 모두를 즐겁게 하고싶었다 그래서 스스로 비참해졌고 스스로 우스꽝스러워졌다 

 

친구들 끼리 오락실이나 PC방(이라고 불리우기도 이상했다 가정집에 컴퓨터가있는느낌)을 가게 된다면 돈이없다는 것보다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자초하여 아이들에 자기자신을 학대하는 광대가 돼서 그들옆에 붙어있을려고했고 가족들에게도 이

 

공간에서 살아남으려면 내가 이쁨받을수 있어야 한다 라는 생각해서 일부러 광대가되었다.

 

그렇게 나는 자학하는 광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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