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 - 74

갑과을 작성일 18.10.01 0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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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1. 로키

 

리겔이 건물로 들어간 뒤에, 나는 알기에바의 촉수 두 개를 꺼내, 하나는 내 귀에 가져다 대고, 나머지 하나는 길게 쭉 늘렸다. 이렇게 한다면 그쪽에 직접 가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엿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꽤나 참신한 생각이었다고 자평하고, 실제로도 그 안에 벌어지는 일들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기왕 촉수를 꺼낸다면 하나를 더 꺼내서, 그걸 눈에다가 연결을 한다면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실행에 옮기면 되지 않겠냐고? 그런 요구대로 이루어질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청각적인 감각과 시각적인 감각이 동기화를 이루기에는 귀에 연결된 촉수가 너무 멀리 가버렸다. 상상력으로 가동되는 이 얄미운 피조물을 시각 · 청각의 괴리상태를 무릅쓰고 다루기엔, 내 상상력의 폭은 너무나도 좁았다.

 

어쨌거나 귀를 최대한 쫑긋 세우면서 나는 촉수를 최대한 길게 뻗었다. 보이지 않는 곳을 오로지 청각을 활용해 더듬어가는건 고역이었다. 그나마 리겔이 아지트 내부를 걸어가면서 내는 발소리 덕분에 이쯤엔 무엇이 있겠다고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을 뿐 인거지 녀석이 만약 발소리를 죽였다면...... 로트 클라우드의 꿈속에서 경험했던 피 말리는 참극을 다시 한 번 경험할 뻔 한 셈이었다.

 

녀석의 발걸음이 너무 크지도 않게, 그렇다고 아예 들리지도 않을 정도는 아닌 그 사이의 회색지대를 넘나들며 촉수를 펼쳐야 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도 마침내 끝이 났다. 리겔이 누군가를 만난 것이다. 나는 촉수를 좀더 길게 늘여 어떤 대화가 오고가는지 엿들었다.

 

성님, 돌아오셨소?”

잉 그려. 식구덜은 그간 잘 있었는가?”

아따 잘 지냈겄소? 성이 학교 들어간 뒤로 짭새 새끼덜이 여그를 덮쳤당께요. 큰성님은 다행이 아슬아슬허게 피혔는디, 딴 식구덜이 죄다 잡혀갔어라.”

오매 그러냐? 몇이나 잡혀 갔는디?”

...... 오륙십? 그정도 된 거 같으요,”

 

그 말을 끝으로 공기가 허위허위 저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뜻밖의 악재에 녀석의 다리가 풀려버린 모양이다. 나는 귀를 좀 더 기울여보았다. 일단 리겔을 포함한 두 명 말고는 별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내가 어느 타이밍에 개입을 해서 녀석을 데리고 와야 할 지를 결정지어야 하는데, 지금의 정보로서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거든. 나는 함부로 행동하는 대신, 좀 더 정보를 수집하기로 했다.

 

흐미...... 젖같은 년 하나 잘못 건드려가지구 개박살이 나브렀네잉. 남은 식구덜은 어쩌기로 혔냐?”

암만혀두 시절이 허버 빡센께로 일단은 잠수 타기로 혔소.”

그런가...... 근디 니는 어쩌자고 여그에 남아있는거여?”

지는......큰 성님헌티 명령을 받았어라.”

 

리겔의 수하가 말을 하려는 차에, 내 귓가에 분명 존재하지 않던 인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현장에 직접 있지 않아서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변명을 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작정하고 자신의 기색을 숨긴 것이 분명했다. 왜냐면...... 리겔은 그것의 주인들이 자신을 덮치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주변에 누군가가 있다는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Channel 2. 아이리스

 

노동자들이 칭했던 이곳의 대장과 만나는 순간, 저와 주설씨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로 자신의 의견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만약에 그럴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나 주설씨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이 사람을 여기에서 만난다고?’라고 놀라워했을 것 같아요. 이곳의 노동자들의 대표, 그 사람은 다름이 아닌......

 

워매 이게 뉘기여? 댁덜이 나를 찾는다고 혔소?”

...... 당신이 이곳의 대장이라고요?”

 

리겔의 동생이었거든요. 그녀도 우리와 이런 식으로 마주치리라곤 생각도 못했는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트렸습니다. 뜻밖의 만남에 그녀는 반가움과 난감함이 뒤섞인 얼굴로 우리와 어떤 식으로 인사를 해야 할 지 몰라 버벅거리고 있었습니다. 그건 저도...... 그리고 주설씨도 마찬가지였어요. 한참동안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에, 먼저 정신을 차린 그녀는 주머니를 뒤져 새 담배를 꺼내 물었습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일단 한 대 피면서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했어요.

 

흡연을 하지 않는 주설씨는 손사래를 치는 바람에 엉겁결에 제가 대신 그녀와 맞담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설씨는 얼떨떨한 얼굴로 담뱃불을 주고받는 우리를 지켜보았지요.

 

소문의 인물들이 댁덜이었구마잉.”

소문이요?”

, 마피아 새끼덜이 잡혀가는 날, 웬 천둥벌거지 셋이서 카르텔 본거지루 쳐들어갔다고 소문이 짜허게 났어라. 거기서 노인장들 멱살잡이 혀가꼬 이 고장에서 쫓가냈다던디?”

...... 소문이 어디까지 뻥튀기가 되는지는 알도리가 없긴 한데요. 얼추 사실에 입각한 거긴 하네요.”

 

제 대답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는 킬킬거리며 웃다가 가래침을 탁 뱉었습니다. 하긴, 프로하기온 사람들로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을 해낸 주인공을 눈앞에서 만난 것이 퍽 인상 깊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 일을 라스알게티에 치환한다면...... 뜨네기 셋이서 로스차일드 타워에 들어가서 그곳의 총수를 상대로 담판을 벌인 것 만큼이나 허황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우리 집구석 양아치새끼를 사람새끼로 맹근다드만...... 실지루 그랬을 지도 모르겄소잉.”

 

이 대목에서는 그 뻔뻔했던 주설씨도 차마 자신의 입으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는지,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자신의 거짓에 거짓을 보태기로 했답니다.

 

사람은 자고로 말보다는 행동이제. 일단 댁덜은 그거를 실지루 보여줬으니께, 우덜도 한번 믿어보겄소, 우덜헌티 제안할 것이 뭐시오?”

일단...... , 최근에 일루 카르텔이고 마피아고 죄다 쫓가내긴 혔지마는...... 암만해두 그것 때문에 일거리가 없어지지 않았어유? 지가 댁덜헌티 온 거는...... 이제 더 풍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제안을 할라고 혀유.”

더 풍요로운 일상이라...... 믿는 구석이 있는 갑소?”

잉 그류. 아마 들어보믄 꽤 그럴 듯 할거라 생각혀유.”

 

 

 

 

 

 

 

Channel 1. 로키

 

리겔은 잠복해있던 마피아 대원들의 습격을 받았고, 몇 차례의 난투 끝에 결박을 당한 것으로 추정이 되었다. 이제 슬슬 움직일 때가 된 모양이다. 나는 늘여두었던 촉수를 서서히 줄이면서 녀석들의 아지트로 잠입해 들어갔다. 다행스럽게도 마피아 대원들의 모든 관심이 리겔에게 집중이 되어있는 나머지, 내가 녀석들 몰래 이곳으로 들어온 것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여기에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겠지. 만약에 우리였다면, 이 녀석이 꼬리를 달고 왔을 것을 대비해서 초병을 따로 두었을 것이다.

그들에 대해 조금 고평가를 하자면, 이런 안일한 대처가 단순한 방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이 도시의 어느 누구도 자신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었기에, 한 차례의 매타작 정도로는 자신들이 유지해오던 헤게모니의 관성에서 곧바로 벗어나기는 무리일 것이다. ‘인식의 발전은 물질의 발전에 항상 후행한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자연은 그것에 깃들이는 생명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것이 피조물들에게 요구한 규칙은 단 하나, ‘적자생존이었다. 자연은 고체와 같이 고정불변이 아닌, 오히려 액체, 기체와 같은 유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그것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생명은 언제나 도태되어왔다. 마피아라고 해서 자연의 데드 풀에 예외가 될 수는 없는 셈이었던 것이지.

나는 이들이 자연의 선택을 받을지 말지를 결정짓는 일종의 시금석인 셈이다.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그들은 자연의 선택을 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청각의 인도를 따라 아지트의 구불구불한 통로를 통과하니, 그곳에는 다른 건물과 통하는 거대한 창고가 있었다. 그들이 시민들로부터 갈취해온 것으로 보이는 각종 재화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고, 그 한가운데에 놓인 의자에 리겔이 결박당한 채로 앉아있었다.

 

...... 미안허게 됬소.”

 

리겔을 둘러싼 마피아들의 리더로 보이는 이는 피곤에 찌든 얼굴로 단검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따 판때기 좆같이 돌아가네잉. 그니께 이게 큰 성님 명령이다 이것이냐?”

“......”

 

리겔의 질문에 리더는 물론이고 어느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나머지 사람들은 리겔의 앞에서 칼을 들고있는 사내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그가 어떻게 처신을 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행동양식을 결정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각자의 이성과 판단을 접고 군중심리에 기대려는 기질, 그것은 몇 년 전, 신은 죽었다고 주장하며, 뭇 사라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다가 길거리에서 객사한 어느 광인이 지적했던 노예근성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마피아들은...... 약자를 억누르며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강자행세를 해왔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노예였던 것이다.

 

노예의 리더, 마름은 리겔이 몇 차례 채근을 받은 끝에 간신히 입술을 떼었다.

 

큰 성님이......”

큰 성이 뭐?”

울 식구덜을 풍비박산을 내놓은 새끼를 담그라고 혀서.......”

하 씨벌, 좆같네. 그게 나라 이거여? 나라고? 나가 씨벌 지 밑닦아 준 것이 몇 년인디. 요로코롬 헌신짝처럼 내팽개쳐버린다고?”

“.......”

 

그 수많은 대원들에게 둘러 쌓이고도 주눅 들지 않는 그 기백은 높이 사고 싶다. 기백 자체를 높이 사는 것이 아니라 그의 태도는 확실히 실질적인 이득도 가져다주고 있거든. 자신의 항변에 일단 리더가 주눅이 들었고, 나아가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부여했다. 두 가지 감정의 칵테일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명줄을 몇 초라도 더 연장시켜주고 있는 셈이다. 행인의 발에 밟힌 개미도, 단 몇 초라도 연명하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그의 행동은 이러한 본능에서 기인한 것일 가능성이 크지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일단 내가 녀석의 목숨을 구해주기위해 요구되는 준비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해준 셈이니까.

 

“아, 담배 있으면 한 대만 줘봐라.”

“......”

 

리더는 자신의 수하에게 눈짓을 하려다가,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그의 입에 물려주었다. 그래, 이 또한 영리한 처사다. 모르긴 몰라도 녀석은 운이든 머리든 둘 중 하나가 기가 막히게 좋은 녀석이 분명하다. 끊어질 듯 말 듯 한 자신의 명줄을 다시 한 번 연장한 셈이니까. 녀석이 담배를 피우는 동안, 나는 은밀하게 마피아들에게 섞여 들어갔다. 나는 녀석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알기에바의 촉수를 전개했고, 그것은 천천히 마피아들의 목에 올가미를 씌웠다. 이 멍청한 작자들은 자신들이 몇 초 뒤면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걸 모른 채, 의자에 묶여있는 남자가 담배를 태우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나는 촉수에 감각을 집중해, 소리 없이 한 명, 한 명 목을 매달았다. 물론 한꺼번에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방심을 하고 있는 리더격의 인물이 상황의 급변을 알아차릴 경우, 당황한 나머지 돌발 상황을 일으키게 되면 리겔 녀석의 안전을 보장하기가 어려웠거든,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이 니할이라는 녀석은 내가 일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데에 큰 흥미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의 딴에는 한 명씩 한 명씩 목을 매다는 것이 더 재미있다.’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가 한 모금을 빨 때 마다 마피아 대원 하나의 목이 매달렸다. 녀석은 발버둥을 쳤지만, 내가 순식간에 높이 매달아버리는 통에 다른 녀석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나, , 다섯, 그리고 마지막 열 명째....... 열 명째 대원의 마지막 경련이 그친 뒤에, 나는 천천히 리더에게 다가갔고, 그가 칼을 들어 올리는 순간, 녀석의 목에 칼을 그었다.

 

녀석은 아주 어리석고, 부주의했다. 그래서 죽었다.

 

 

 

 

 

 

 

Channel 2. 아이리스

 

주설씨가 제안한 사안은 이러했습니다. 선적장의 노동자들을 자신의 회사, 아니 우리의 회사라고 하는 게 맞겠네요. ‘우리의 회사 삼민상단에 들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제안은 안타깝게도 리겔의 동생, 아니 이젠 이름으로 불러야겠네요. 민티카씨의 구미에는 썩 당기지 않은 눈치였어요. 그녀는 제안을 듣고 나선 가타부타 말이 없이 담배를 빨았습니다. 그녀의 태도는 어디 일단 들어나 보자.’라는 투에 가까웠어요.

 

나가 어디서 댁의 아부지 야그를 듣기는 혔는디......”

아부지 야그는 여기서 왜 꺼내는거여?”

일단 들어나 봐유. 댁의 아부지 베텔기오라는 양반이 실패를 헌 것은....... 노동조합이라는 형태로 뭉치기는 혔지만, 노동자들이 개인사업자라는 본질 때문에 지대로 뭉치덜 못해서 그런거라구 판단혔어유.”

개인사업자?”

잉 그러유. 개인사업자. 듣자허니, 여그 노동자덜은 일감이 올 때마담 발주자허구 따로 따로 계약을 맺는담서유?”

그라제. 암만해두 각자 기량이 달르니께......”

나넌.”

 

민티카씨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주설씨는 그녀의 말을 잘라먹었습니다. 주설씨의 눈이 번뜩였어요. 그녀와 함께한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녀가 이런 눈빛을 했을 때 그녀의 심리상태를 충분히 짐작할 수는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그녀는 일이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는 양상을 보이면, 혹은 그러한 순간이 왔을 때 저런 눈빛을 보여왔거든요.

 

갠적인 생각이지만,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구 생각허는 사람이유.”

옴마, 여기서 인간의 본성까지 나오는것이여? 대체 뭔 야그를 할라구 그란데?”

 

민티카씨는 별 생각 없이 웃었지만, 주설씨의 본론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생각을 혀봐유. 나만혀두, 나가 하루죙일 일혀서 서푼 받는 것이 억울헌 것 보담, 옆집 칠복이가 너푼 반을 받는 것이 더 억울헌거 아녀유? 그런게 인간이다 이거유.”

“...... 그라믄, 개별적으로 계약을 헌 것은.”

인자 알겄슈? 개별적인 계약은, 서로가 서로를 질투허게 만드는 장치였던거유. 그래야......”

노동자덜이 뭉치지를 못하게 쓸 것이다.”

그렇쥬.”

 

민티카씨의 얼굴은 아까에 비해서는 한층 밝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얼굴이 완전히 환해진 것은 아니었어요. 이리를 피하니 호랑이를 만난다고, 그녀는 주설씨의 말을 듣고나니 새로운 의문점이 생긴 모양입니다. 지역드립을 치는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프로하기온 치들의 급한 성격을 온전히 체화하고 있었기에, 민티카씨는 자신이 가진 의문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그런 야그를 우덜한티 허는 이유는 뭐요? 따지고 보믄...... 댁도 카르텔 넘덜하구 다를게 없어 보이는디.”

마지막 카르텔을 보내믄서.......지는 이 샥시하구 약속을 혔슈. ‘적어도 저놈덜 보다는 나은 년이 되겄슈.’라구 말여유.”

그런 감상적인 야그를 허기엔, 그간 뱉은 말이 너무 많지 않는가?”

“.......”

 

민티카씨의 지적에 주설씨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가...... 심호흡을 몇 차례 한 뒤에야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빈데미아트릭스에서 바나나를 찾는 것 보다 더 어렵다는 라스알하게 치들의 속마음을 드러내려는 모양이었나봐요.

 

일이 있고 난 뒤에, 지는 프로하기온 시민덜이 카르텔 잔당들을 잡아 족치려고 드는걸 똑똑히 지켜봤어유. 그리구 그보다 며칠 앞서서는...... 지두 카르텔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적두 있었구유. 그때 지는 많은걸 생각혔어유. 이전에 지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고, 입이 많다면...... 적은 수의 사람덜과 나눠야 내 몫이 많지 않을까?’라구 생각혔었쥬. 근디, 시상이 한 순간에 뒤바뀌는걸 보믄서....... 생각이 쪼깐 달라지더라구유? ‘많은 사람들과 나누면...... 내 몫은 줄어들지는 몰라두, 오래는 가겄다.’라고 말여유.”

“.......”

지는 이곳에서 오래가는 상인이 되고 싶다 이거유. 그리구 지 제안을 자세히 들어보믄...... 딱히 손해날 일은 없을거란걸 잘 알게될거유.”

 

주설씨의 진심이 통했던 걸까요? 민티카씨는 사람을 시켜 다른 노동자들을 모두 데리고 오라고 일렀습니다. 그리곤 우리에게 자리를 옮길 것을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민티카씨가 이끄는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은....... 불과 몇 달전, 그녀가 마피아들에게서 물건들을 빼앗길뻔했던 바로 그 차적장이었습니다.

 

어차피 나 혼자선 결정하덜 못하는 일이요. 대신에, 댁헌티 기회를 주겄소. 잘 알려져있는 바 대루, 우리 프로하기온 치덜은 성격이 제법 급허기도 허구, 날씨도 요로코롬 지랄 맞으니께, 한 장소에 5분 이상은 있도 못한께로...... 알아서 잘 설득혀 보씨요.”

“.......알겄슈.”

 

민티카씨는 말을 마친 뒤에 박수를 치며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좌중이 집중을 하자, 그녀는 노동자들에게 우리를 소개시켜주었어요. 그들은 우리를 아 저치들이 소문의 그 뜨네기 들이구먼.’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호기심어린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습니다. 저는...... 이 광경을 보며 문득 작년 11월의 그날이 떠올랐습니다. 이상한 노릇이죠? 모인 사람들이 다르고, 모인 장소 또한 다르며, 모인 이유 또한 그때와는 전혀 다른데, 왜 저는 지금 이 상황에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던 걸까요? 그리고 왜 저는...... 이 모습에 남몰래 전율하고 있는 걸까요?

 

...... 안녕들 하셔유? 지는............ 삼민 상단의 주설이라구 헙니다. 식사덜 하셨쥬?”

 

 

 

 

 

 

 

Channel 1. 로키

 

마지막 마피아의 목을 잘라낸 뒤에 녀석을 살펴보니....... 아이고 저런, 꼴사나운 모습으로 기절해 있었다. 명령은 명령이니, 그닥 내키지는 않았지만 녀석의 맥을 짚어보는 등, 생명활동에 지장이 있는지를 체크해 보았는데, 녀석의 하반신에 오줌냄새만 날 뿐, 그 외에는 특징적인 이상사항은 보이지 않았다. 리겔 이 녀석은 입만 좀 거칠다 뿐이지,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흔한 유기체의 일종이었을 뿐이었다.

 

가장 좋기로는 그대로 두고 가는 것이겠지만....... 일단 이곳도 마피아의 아지트이니 만큼, 그들의 이 잘 해결 되었는지 확인하러 마피아나 그 끄나풀이 드나들지 말라는 보장도 없었기에, 나는 찝찝함을 무릅쓰고, 리겔 녀석에게 매여진 결박을 풀고....... 업쳐맸다. 하아...... 덩치에 걸맞지 않게 소심한 녀석의 아랫도리 때문에 내 등허리가 찝찝한 따스함에 물들어갔다....... 나중에 일이 주설의 기준으로잘 풀린다면, 녀석에게 지금의 원한은 이자까지 쳐서 확실하게 받아내야겠군.

 

축 늘어진 거구를 들쳐매고 마피아 아지트를 나섰다. 어디로 가야할까...... 어디로 가야, 이 녀석의 안전을 도모함과 동시에,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리고 어디로 가야 이 더러운 마피아를 내려놓은 뒤에 내 몸에 아로새겨진 찝찝한 따스함을 씻어내릴 수 있을까?

 

서로 상충되는 욕구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때, ‘인간이라면 고뇌를 하게 마련이다. 어느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모든 것을 놓치게 되는 어리석음이 그들에게는 인습처럼 박혀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닥쳤을 때, ‘선택을 하라고 가르쳤고, ‘우리는 그것을 몸에 익히기 위해 오랜기간 동안 훈련을 받아왔다. IATP에서는 이걸 가치명료화라는 이름으로 가르쳤지. 숙고해서 선택하고, 자신의 선택에 자부심을 가지며, 그에 따라 흔들림 없이 행동하라. 나는 그에 따른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녀석의 안전, 명예의 보전, 신체의 위생...... 어찌보면 답은 정해져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녀석의 안전이지 뭐. 하지만 이대로 리겔녀석에게 키다리 아저씨가 된다면, 내가 지독하게 손해를 보는 일이 되는 것은 자명했다. 감정이 없을 때라면 모르겠지만, ‘비정한 마음에 금이 가버린 이상, 나는 이제 나 자신이라는 과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녀석의 몸에서 나오는 더러운 따스함이 내 몸에 스며들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지금의 원한을 이자까지 쳐서 돌려주어야겠다고 다짐했었지. 그렇다면....... 녀석의 생명에 위협이 되지 않는 차원에서 적당히 위험하면서도 교훈까지 줄 수 있는 곳에다 던져준다면 나의 이 개인적인욕구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녀석과 함께 버기스 서지로 향했다.

 

묘지를 관리하던 노인은 반색하며 나를 맞이했다. 나는 그가 끌고있던 빈 리어카에 녀석을 던져놓은 뒤에, 혹시 여기에 씻을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쩌그 창고쪽에 내 전용 목간통이 있기는 헌디......’라고 어물거렸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노인에게 잠시 손수레를 빌리겠다.’고 한 뒤에, 리겔의 아비 무덤으로 녀석을 데리고 갔다.

 

휴우!”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이 버기스 서지의 산비탈과 만나, 거대한 모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소용돌이의 부산물들은 녀석의 이마며 머리카락이며 가리지 않고 엉겨 붙기 시작했다.. 니캅으로 덮지 않는다면 콧구멍에서 땅강아지가 솟아나올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녀석이 죽지는 않을 터이니 이만하면 나의 욕구와 주설의 욕구 모두를 만족시키는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녀석이 깨기 전에 후다닥 언덕 아래로 내려와 노인이 일러준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고맙게도 나를 위해 물을 데우고 있었다.

 

인자 물 끓으니께 조심해서 들어가쇼.”

고맙습니다.”

아 그리구 말이여, 갈아입을 옷은 있는가? 없으믄, 여벌의 작업복이 있으니께 그거라도 입어브러.”

이거 너무 신세를 지는 거 같은데요?”

아녀, 인자 한 식군디 너무 미안해 할 거 없어.”

한식구요?”

잉 그려. 오늘 아칙에 자네 사장이 프로하기온 역서 연설을 혔구먼. 인자 한 식구가 되얐으니 잘 해보드라고 말여.”

“...... . . 그렇군요.”

 

나는 노인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에 욕탕으로 들어갔다. 목욕탕이라고 해 보았자, 지붕도 없이 훵 뚫린 공간에 간신히 바람벽만 세워놓은 터라 모래바람이 이리저리 흩날렸지만, 이만하면 낙원이지 뭐. 심지어 바람벽에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수세미외가 걸려 있었다. 나는 노인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며 수세미외를 꺾어 내 몸을 씻었다.

 

아따 뭔일인지는 모르겄다만, 큰 일이 있었는 갑소? 자네가 리겔을 들쳐업고 여까지 오고 말이여.”

예 뭐...... 그랬죠.”

잘 해결됐는가?”

이만하면...... 해피앤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려.....?”

 

노인은 해피엔딩이라는 말에 껄껄 웃었다.

 

그럼 씻고 있어 보시오. 자네가 씻치는 동안, 나도 나만의 해피엔딩을 찾아봐야 쓰겄구먼.”

 

 

 

 

 

 

 

Channel 2. 아이리스

 

주설씨의 연설이 끝난 뒤에, 청중들의 반응은...... 어땠을거 같나요? 이번에는 조금 통속적이며 뻔한 결말을 가져다 줘야 할 것 같네요. 주설씨의 연설은 제가 이제껏 연설이라고 생각해온 것과는 방향성이 많이 달랐지만, 결과는 대 성공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지역드립을 치는 것이 죄송스럽지만, 그녀의 가식떨지 않고 실리를 제시하는 연설은 성격급한 프로하기온 치들의 마음에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 것이 분명했어요.

 

식구덜이 그렇게 나오믄...... 나도 뭐 별수 있겄소? 싸인 혀야제.”

 

민티카씨도 인정한다는 얼굴로 어께를 으쓱하더니 제일먼저 주머니에서 펜을 꺼냈습니다. 그렇게 그녀를 필두로 그곳에 있던 노동자들 모두 그녀와 고용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제부터 그들은...... ‘삼민상단의 식구가 된 것이지요.

 

그라믄...... 인자부텀 계약 성립인거여?”

그렇쥬.”

 

주설씨의 대답에 그들의 얼굴은 환해졌습니다. 이쯤되면 대체 그녀가 무슨 수로 그들을 사로잡았는지 궁금해 할텐데요. 그녀의 주장은 간단했어요. 사내에 노동조합을 보장하겠다. 정년을 보장하겠다. 그리고...... 회사의 이익보단 노동자의 이익을 우선시 하겠다. 이 세가지였어요.

 

물론 주장만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좀 더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주말 근무는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희망자에 한해 실시할 것이며, 통상 시급의 180%에 해당되는 액수를 수당을 제공하겠다. 수당을 포함해 급여는 월급제로 제공하겠다. 월급으로 6인 기준 가정이 생활에 부족함이 없도록 보장하겠다. 이로서 가정에 보탬이 된답시고 아이들이 나와서 일을 하지 않도록 만들겠다. 휴가는 연간 25일을 유급으로 준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연가를 쓰지 못할 시에는 돈으로 보상한다. 하루에 8시간의 노동을 한다. 탄력적 근무 시간제를 도입할 것이다. 밤시간대 근무는 희망자에 한해 실시할 것이며, 이 역시 통상 시급의 180%에 해당되는 수당을 지급한다. 회사의 사내 보유금을 확보해 월급이 체납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하청업체를 따로 두지 않는다. 임금의 중간착취는 없다.

 

주설씨의 말을 듣는 순간 그들은 물론이고 저도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 저런 직장이 존재한다고요? 아니 근본적으로 저런 회사가 있다면...... 운영이 될까 의심스러웠어요. 저정도면...... 사실상 자선사업가가 아닐까 의심스럽습니다. 라스알게티에서도 노동시간, 임금문제로 시끌시끌한데 주설씨는 전면적으로 노동자들의 입장을 수용한 셈이니까요.

 

하루에 여덟시간만 근무하면 회사가 제대로 굴러갈까요? 하루의 1/3만 일을 하는 건데......”

대신에 하루의 2/3은 쉬거나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갔쥬. 리겔 넘 아부지가 한 말씀처럼, 사람은 기계가 아녀유. 기계는 쉬지 않고 일을 헐 수 있다지만, 사람은 쉬지 않으믄 지대로 일을 할 수가 없겄쥬.”

그리고 임금은......”

비싸지겄쥬. 대신에......”

 

주설씨는 저만큼이나 걱정스러운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민티카씨를 보며 싱긋 웃었습니다.

 

삼민상단이 대륙 최고의 브랜드가 되면 되겄쥬.”

대륙..... 최고의 브랜드 말여라?”

잉 그려라. 사람덜은 허영심을 기본옵션으로 깔고 있는 동물이라. 아무리 똥밭을 굴러두 황금똥을 찾게 마련이유. 비싼 물건이 있으믄, 비싸다구 안사는게 아니라, 비싼 이유를 만들어 내는게 인간이라 지는 그렇게 크게 신경 안쓰이는구먼유.”

그려두...... 물건이란게.”

물건은 걱정 마셔유. 점차 늘려가겄지만, 가장 확실한 아이템 하나는 있으니께.”

 

주설씨는 그녀에게 천잠사를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모래가 뭍고, 그녀의 살에 부대꼈지만, 천잠사의 광태는 변하지 않았어요.

 

이게 뭐여? 비단 아녀?”

그냥 비단이 아니라, 천잠사라고 혀유. ...... 비단중에서두 최고급 비단이라고 생각하면 될거라.”

아아..... 그런거여?”

이런 비단이 똥값으로 굴러본다구 생각혀봐유. 누가 사겄슈? 모름지기 명품이라는 거는...... 구하기가 어려울 때 그 가치가 더 빛나는거유. 그리고 그 가치를 키워주는 것이 바로, 댁덜의 월급이 되는거구.”

아따 믿는 구석이 있었구마잉. 그란께로 씨게 나왔구만.”

. 그려유. 그리구 이건...... 프로하기온 총독이 전매를 할거유. 기업이 사업을 헐띠 관리들이랑 커넥션이 생기믄, 그 사업은 땅짚고 헤엄치는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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