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6-노동자? 근로자? (두 번째)

l죠리퐁l 작성일 22.03.28 09: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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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동자인가? 근로자인가?


2. 우리는 노동자인가? 근로자인가?

우리는 노동자일까요? 아니면 근로자일까요? 노동자나 근로자나 마찬가지 아냐? 얼핏 보면 같아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회사라고 하는 곳에 속한 사람은 대체로 <근로 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당사자입니다. 그리고 회사(사용자)를 상대로 <근로 계약서>를쓰니 근로자라는 말이 타당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노동자라는 말은 왜 있을까요? 그냥 통칭해서 근로자라고 하면 그만 일 텐데요. 또한, <노동조합>은 왜 존재할까요? 근로자라는 단어를 선택하면, <근로자 조합>이나 <근로자 협의체> 같은 단체명이 되어야겠죠. 어떤 때는 노동자라는 말을 어떤 때는 근로자라는 말을 혼용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요?

<근로자>에 대해서 법률적 용어를 확인 해 보겠습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 · 급료 ·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2조 1호). 이론(이론)에서는 이를 노동법상 종속노동관계(노동법상 종속노동관계)에 있는 자라고 한다. [법률용어사전]

법률 용어사전에 근로자는 <사용자의 지휘 명령 아래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명시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노동법상 종속 노동관계라는 부분입니다. 즉 산업 노동자가 등장한 시기에 노동자는 자유 의지로 사업주와 노동과 관계된 계약을 체결합니다. 이는 엄연히 노동자와 사업주와 동등한 관계의 노동 계약입니다. 근로자라는 개념은 동등한 입장에서 노동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닌 종속관계에 묶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종속관계. 즉 봉건시대 주인과 노예 사이의 관계 개념이 근로자라는 말속에 들어있습니다. 너무 비약적이라고요? 그렇다면 법리적으로 근로자를 판단하는 근거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법률적으로 근로자로 판단하는 근거는 아래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1) 전속성(專屬性)의 유무,
(2) 도구와 생산수단의 소유관계,
(3) 작업에서 장소, 시간 및 방법 등에 감독을 받는가의 여부,
(4) 근로를 대체할 수 있는가의 여부,
(5) 근로와 임금의 상관관계가 있는가의 여부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

위에서 눈 여겨 봐야 할 부분은 전속성(專屬性)의 유무입니다. 전속성(專屬性)에 대한 법률적 해석은 <권리나 의무가 오직 특정한 사람이나 기관 딸려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종속관계를 말합니다. 권리와 의무 모두 특정한 사람이나 특정한 기관에 딸려있어 개인 자유 의지가 제한되니 봉건시대와 비교했을 때 귀족과 노예의 관계와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또한, 작업 장소, 시간, 방법의 관리 감독을 받는다 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관리와 감독은 이를 행하는 주체의 자유의사에 달려있습니다. 그것을 당하는 객체는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따라야 할 의무가 있는 셈입니다.

중세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의 전환을 한마디로 나타낸 말이 있습니다. 영국의 법제사이자 비교 법학자인 <헨리 메인>은 <신분에서 계약으로-from status to contract>라는 말로 계급에 의해 종속되는 중세 신분 사회가 동등한 입장의 근대 계약 사회로 전환되었음을 알렸습니다. 봉건시대 종속관계의 노동이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동등한 관계의 노동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왜 다시 종속관계로 변했을까요? 노동의 본질과 개념을 적용해 본다면 <노동자>는 분명히 동등한 관계에 있어야 하지만 지금 우리는 종속관계로써의 근로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는 근대 이후 나타난 대한민국 사회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노동자>라는 용어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단서가 보이지 않지만 붙어 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등 외국에는 <근로자>라는 용어가 없습니다. 모두 <노동자>입니다. 사용자와 평등한 입장입니다. 간혹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사장과 직원이 평등한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임원이 나타나더라도 노동자는 자신이 질 하는 자리에서 불쑥 일어나서 인사를 하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임원이나 팀장도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월급 받고 사는 처지니 동등한 입장인 거죠. 단지 노동자와 상급자는 업무를 하는 데 있어 명령을 내리고 이를 수행하는 관계일 뿐이지 인간적인 계급관계에 속하지 않기에 동등한 입장입니다. 회사 사장도 마찬가지죠. 상호 계약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는 것에 따른 관계일 뿐입니다. 인간적인 계급 관계로 종속되어 있지 않으므로 사장이 나타나더라도 자신이 하던 일에 충실하면 그만입니다. <서양의 독특한 문화>나 <예의가 실종된 서양>이라는 해석은 상황을 왜곡하는 해석입니다. 외국은 <시민혁명>과 더불어 치열한 <노동운동>을 통해 노동자의 지위를 현재 수준까지 끌어올렸습니다. 근로자는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존재하는 말입니다. 일제 식민시대를 거친 우리나라는 일방적으로 일본의 노동 개념을 그대로 따라 한 결과인 거죠.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제국주의 사회로 접어듭니다. 일본의 자본주의 사회는 메이지 유신 이후 폭발적인 산업화를 거치면서 1차 식민지 쟁탈에 뛰어듭니다. 우리나라는 그 식민지의 하나였지요.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독점 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듭니다. 이 시기에 일본은 군국화. 다시 말해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합니다. 일반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군부가 지배하는 국가가 된 거죠. 당시 일본은 완전한 시민사회라기보다는 봉건주의 색체가 강한 나라였습니다. 영국과 같이 왕은 존재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는 논리에 따라 시민사회가 정치를 주도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왕의 영향력이 매우 높았습니다. 일본이 제국주의로 접어들면서 가장 우려한 것이 시민에 의해 기존 질서가 무너지는 <시민혁명>이었습니다. 군부가 정치, 사회, 경제를 모두 통제하는 강력한 국가는 혁명을 통한 질서의 붕괴를 경계합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나 옆에서 옆으로 이루어지는 질서의 변화보다 아래에서 위로 거꾸로 이루어지는 변화를 가장 싫어합니다. 그래서 <노동자>를 <근로자> 개념으로 묶어두었습니다. 군부 조직의 상명 하복식 문화를 개인의 회사에까지 침투시켰던 거죠. 물론 그 밑바탕에는 집단 교육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상명하복식 서열문화를 교육받았으니 사회 전체에 그런 문화가 형성된 것이죠.

 

동등한 입장에서 근로 계약관계와 종속된 의미의 계약관계는 엄연히 다릅니다. 이는 노동자가 봉건시대 소작농, 혹은 자유민이라면 근로자는 노예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특히 식민지인 조선에서 산업 노동자에 대한 탄압은 더욱 심했습니다. 식민 시대이니 계약 관계인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가 동등할 이유가 없겠죠. 사용자에 해당하는 일본인과 식민지 노동자의 관계는 귀족과 노예의 관계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근로자>라는 용어의 실체입니다.

해방 후 한국은 반민족 척결에 실패하고 일본에 부역한 관료가 대부분 그대로 정부 요직에 있게 됩니다. 일본 군국주의 잔재가 그대로 남은 상황에서 1961년부터 32년에 걸친 군부 독재 정권 치하로 들어갑니다. 기득권 세력은 자신의 지위와 자본가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의 투쟁을 경계했습니다. 제국주의와 비슷한 상황이죠. 우리는 해방 이후 이런 정치권력에서 무려 45년 이상을 지냈습니다. 시민이 바라보는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매우 부정적으로 만들기 충분한 시간입니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노동자>라 하면 더럽고 무식하며 상식이 통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인식. 마치 노비와 같은 하류계급처럼 인식되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근로자>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각종 미디어에는 노동자보다 근로자라는 용어를 많이 노출시키고 노동절도 근로자의 날로 바꿉니다. 포괄적인 노동법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근로기준법이 자주 사용됩니다. 특히 노동법은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반드시 존재하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입니다. 노동법 중에서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근로 기준을 정하여 사용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벌어지는 착취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노동법은 자본가를 위한 법률로 태어났습니다. 노동법이 탄생한 배경 자체가 친일 반민족 행위자와 자본가가 자신의 사업장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용도입니다.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53년에 제정된 노동법은 말 그대로 이름뿐인 노동법이었죠.

대한민국 독재 정권은 단어의 근본 의미와 법적 지위는 감추고 근로자라는 용어를 노동자보다 세련된 이미지로 부각했습니다. 여기에는 일반 대중의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도 한몫을 했습니다. 혁명을 성공한 사례가 없는 대한민국의 서민이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국가고시 같은 방법이 유일했습니다. 그래서 교육열이 무척 높은 나라가 되었죠. 이런 욕구는 노동자 스스로도 노동자라는 단어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만들고 스스로를 근로자로 부르게 됩니다. 신분 상승의 욕구와 단어가 갖는 이미지에 대한 상관관계는 이미 어린 시절 경험했었죠. 아버지 직업란을 적어야 하는데 아버지 직업을 물으면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회사원>이었습니다. 현재에도 우리는 분명히 노동자인데 노동자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근로자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회사원이라고 하죠. 회사원이라고 하면 왠지 깨끗하고 멋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회사원입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회사를 다니니 회사 원인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노동>이라는 의미가 갖는 무식함 보다는 회사원이 주는 깔끔하고 깨끗함을 선호하죠. 그 이유가 있습니다.. 분명 <회사원>, <근로자>는 <노동자>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냅니다. 정규 대학을 졸업한 사무직 사원을 부르는 용어가 바로 회사원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넥타이 부대라고도 합니다. 노동자는 여기에 같이 동승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습니다. 물론 이런 용어의 정의를 무 자르듯이 정리하지도 않았죠. 노동자라는 의미가 흐려지고 단어가 퇴색되는 것을 바라는 존재가 분명 있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로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랐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자랐지만 어쩌면 우리 스스로 직업에 귀천을 만들고 살았는지 한 번쯤은 돌이켜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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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노동자 인가 근로자 인가?

대답은 분명합니다.

비록 현실은 근로자라 할 지라도 자유의지에 의한 계약 당사자로서 사용자와 동등하고 평등한 존재로써의 <노동자> 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마음이 불편하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올바르게 인식하여 나의 위치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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