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5-노동자? 근로자?(첫 번째)

l죠리퐁l 작성일 22.03.27 13:02:11 수정일 22.03.27 13: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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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동자인가? 근로자인가?


지난 네 번의 게시물을 통해 <노동>의 근본적인 본질과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노동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워낙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노동의 본질적인 문제도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면서 처음과 다르게 변할 수도 있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습니다. 지난 게시물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노동을 이해함은 물론이고 현재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이야기를 풀어 나갈까 합니다. 먼저 낯설게 느껴지는 몇몇 용어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방법을 통해서 더 깊이 있는 이야기로 접근해보겠습니다.

1. 노동자는 노동으로 먹고 사는가?

첫 번째 이야기는 <노동>과 <노동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자본주의>의 폐단인 <착취>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잉여 가치설>을 설명합니다. 노동과 노동력은 고용주와 계약을 하는 노동자는 임금을 받는 대가로 무엇을 제공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설명입니다. 노동자가 받는 임금(혹은 급여)은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생존에 필요한 재화를 획득하는데 노동자는 <노동을 제공하는 것인가? 아니면 노동력을 제공 하는 것인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과 <노동력>. 서로 다를 바 없이 같아 보이는 두 단어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결론을 말씀드리면 <노동력>이 <노동>보다는 더 포괄적인 개념의 단어입니다.


<노동>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들어가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흥부가 밭 가는 일을 한다면 흥부의 노동은 <밭을 가는 행위나 능력>입니다. 놀부가 소를 키우고 있다면 놀부의 노동은 <소 키우는 행위와 능력>이 되겠습니다. 흥부가 밭을 가는 데 있어 소를 키우는 능력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놀부 역시 자신이 하는 일에 밭을 가는 능력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노동은 대가로 나타나는 현물이나 재화를 얻는데 반드시 필요한 능력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노동력은 좀 더 포괄적인 범위를 갖습니다. 위의 예처럼 흥부가 밭을 갈지만 소를 키우는 능력도 갖고 있다면 흥부의 노동력은 <밭을 가는 능력과 소를 키우는 능력을 모두 포함합니다.> 놀부 역시 밭을 갈 줄 안다면 그 능력은 놀부의 노동력에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노동력은 현재 나타난 노동에 더해서 보이지 않는 노동의 능력까지 모두 포괄한 개념입니다.


자. 이번에는 다른 예를 통해서 <잉여 가치설>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A라는 자본가가 노동자 B를 고용하여 어떤 상품을 만드는 일을 시켰습니다. 상품 제조에는 재료비로 100원이 필요합니다. 전기세와 세금 등 다른 추가 비용으로 100원이 듭니다. 여기에 B의 급여로 100원이 들어갑니다. 물론 사장인 A도 투자한 돈이 있으니 100원의 이윤을 남겨야 합니다. 간단하게 이 정도로 따졌을 때 시장에서 팔리는 물건 값은 400원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상품을 400원에 팔면 자본가는 무엇으로 새로운 기계를 더 들여 공장을 늘리거나 다른 사업에 투자를 할 수 있을까요? 상품 가격 400원으로는 그냥 현상유지 밖에 안됩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이유 없이 물건 값을 마구 올릴 수도 없습니다. 이런 가격 책정은 봉건주의 시대의 장인이나 가내 수공업 형태에서 나타나는 방식입니다. 구두 수선공은 구두 수선만 하면 됩니다. 제단사는 제단만 하면 됩니다. <노동>의 의미가 매우 단순합니다. 그리고, <노동>의 대가로 적정 임금을 지급받으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가 시작되고 대규모 공장 노동자가 나타나는 시기에서는 고용의 형태가 바뀝니다.


상품을 생산해도 미쳐 다 팔리지도 않는 시대가 도래합니다. 남아도는 물건인 <잉여 생산품>이 가득 넘쳐나는 고도 성장기에도 생산품을 늘리기 위해 공장은 더 커집니다. 위에 예를 든 400원으로는 절대 공장을 키울 수 없습니다.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물건 값을 더 올려야 하는데 마땅히 올릴 항목이 없습니다. 물건 값을 올리는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상품을 판매하고 추가로 남는 이윤을 이용하여 사업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답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약에 있습니다. 기존 계약이 <노동>의 제공이라면 공장화 된 산업 사회에서는 <노동력>을 대가로 계약을 합니다. 이는 노동의 분업화, 전문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지난 게시물에서 말씀드렸듯이 공장이 분업화 대형화된 이후 노동자는 자신이 만드는 생산품으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이 소외 현상이 노동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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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흥부라는 노동자는 자동차 엔진을 만듭니다. 놀부는 자동차 문짝을 만듭니다. 공장이 원활히 잘 돌아간다면 흥부는 엔진만 만들면 되고 놀부는 문짝만 만들면 됩니다. 그런데 흥부가 하루에 엔진 5개를 만드는데 놀부는 문짝 10개를 만듭니다. 개인의 능력 차이도 있겠지만, 일의 난이도 차이도 있겠죠. 생산 라인의 발란스를 맞추기 위해서는 <노동자>한 명을 더 고용하면 됩니다. 놀부는 하루에 문짝 10개 생산을 하고, 흥부와 새로 고용된 홍길동이라는 사람이 10개의 엔진을 생산하면 됩니다. 하지만, 자본가는 이런 방식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노동자를 추가로 더 뽑는 것을 주저하죠. 어느 날 놀부는 흥부를 돕기 위해 엔진 만드는 일에 투입됩니다. 문짝이 창고에 가득 쌓이면서 상대적으로 하루에 만드는 물량이 적은 엔진을 더 확보해야 재고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놀부는 문짝을 만드는 <노동>을 제공하는 단계에서 추가로 다른 능력을 제공하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단계로 접어듭니다. 다른 사례로도 설명이 가능합니다. 흥부는 엔진을 만든 일에 더해서 엔진의 효율을 높이거나 원가를 절감하는 제안 활동을 합니다. 그 제안의 효과는 크지만 대가는 매우 미비합니다. 분명 흥부와 놀부는 노동을 제공하는 계약을 했습니다. 게다가 공장 노동자는 노동의 난이도나 숙련도 같은 여러 조건을 제외한 순수한 노동을 근로 시간과 따져서 계약을 하게 됩니다. 흥부는 육체적 노동에 정신적 노동을 모두 포함한 노동력을 제공했습니다. 대가는 노동에 따른 대가입니다. 회사는 노동자가 가진 육체적 정신적인 노동의 능력을 모두 사는 계약을 했지만,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노동자는 단순히 자신이 하는 일과 비례한 급여를 받습니다. 당장 쓰이지 않더라도 분명 <노동력>을 제공하기로 계약을 했다면 지금 하는 생산성에 더한 대가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자본가인 A는 B에게는 노동의 대가로 100원을 지불했습니다. 하지만 노동력을 사는 것이므로 <노동력>의 대가로 200원을 줍니다. 왜냐하면 <노동력>은 <노동>으로 나타나기 전 까지는 잠재적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만드는데 필요한 능력이라 할 지라도 아직 쓰이지 않는 노동에 까지 충분한 보상을 하지 않습니다. 이제 물건 값에는 B의 <노동력>인 1000원을 붙입니다. 물건 값이 1300원이 되는 순간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하시지요? 기존의 급여에 <노동력>의 대가로 추가로 100원을 더 주었으면 물건 값은 500원이 되면 그만인데요? 맞습니다. 그렇다면 상황을 거꾸로 바꾸어 보겠습니다. 회사는 물건값에 인건비로 1000원을 먼저 붙입니다. 그리고 노동을 제공한 A에게는 단순 노동비용 200원을 줍니다. 노동자의 미래가치인 <노동력>은 물건 값에 붙이고 현재 가치인 <노동>에 따른 비용만 보상하는 방법입니다. 이제 모든 경비를 제외하더라도 800원의 이윤이 추가로 창출됩니다. 이 800원이 공장을 확충하고 사업을 확장하는데 들어가는 밑천이 됩니다. 물론 자본가가 800원을 모두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이윤을 독식하는 악덕 기업주는 현재도 많이 있습니다. 머리 좋은 자본가는 모든 <잉여가치>를 개인적으로 독차지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공장을 키우거나 새로운 사업을 하는 등의 행위. 즉 자본의 바탕이 되는 규모를 키우면 키울수록 그 이익은 더 크게 불어나기 때문이죠. 이제 자본가 A는 공장을 키워 C와 D도 고용을 합니다. 두 명을 더 고용하여 추가로 얻는 재화는 2400원이 됩니다. 물론 잉여 자본의 규모가 커졌으니 성과급으로 100원씩 더 지출할 수도 있습니다. 오로지 자본가의 결정에 달려있습니다. 이익 규모가 커져 급여나 성과급을 추가로 100원 정도 더 지급해도 2100원의 이익이 남습니다. 여기서 A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합니다. 새로운 사업에 E, F, G를 고용합니다. 이제 B, C, D와 E, F, G가 생산한 생산품에서 벌어 들이는 잉여 자본은 서로 통용되지 못하고 단절됩니다. 하지만 자본가는 서로 다른 사업에서 벌어 들이는 잉여 자본을 모두 독점할 수 있습니다. 즉 노동자 A, B, C가 벌어들인 2100원의 잉여 이익에 더해서 E, F, G가 번 2100원까지 모두 4200원의 추가 이익이 발생해도 노동자는 이익이 발생하는 사업이 서로 다른 사업인 관계로 추가로 급여를 더 받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부터는 회사의 <지배구조>라는 개념이 들어가므로 설명은 여기까지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렇듯 생산품에는 노동자의 노동력에 대한 대가가 붙어있지만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단순 노동의 대가일 뿐입니다. 자본주의에서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원인 중 하나인 <잉여 가치설>은 노동자가 노동을 제공하는 단계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단계로 변했음을 설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노동의 대가로 생존 하지만 사실 고용주에게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잉여 가치설에는 단순 노동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제공하는 각종 교육도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노동자의 업무 향상을 위한 직업 훈련과 같은 각종 교육 역시 더 큰 이윤을 얻기 위한 목적에 있습니다.


근대 이후 현대 사회에서도 노동력과 노동의 상관관계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샀지만 지불하는 비용은 노동에 대한 비용이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 이윤인 잉여가치는 자본가의 더 큰 이익을 위해서 사용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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