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관한 단상

zifal 작성일 20.07.28 06:27:27 수정일 20.12.12 23:24:44
댓글 1조회 624추천 1

종교에 대한 생물학적 고찰과 비판, 그리고 무신론적 사고에 관한 소고


 1. 프롤로그
"당신이 '나는 계산적으로 유효한 세포 자동장치(cellular automata)를 만들어 내기 위해 유전자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런 종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것을 매우 분명이 이해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당신이 '종교를 설명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흔히 그들은 그 일에서 무었이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파스칼 보이어(*1)


대중들에게서 특별히 메타인지가 낮은 분야가 몇개 있다. 그중에 한가지는 종교다.  종교를 간단하게 한마디로 정의 할 수는 없다.  사실 종교는 매우 복잡하고 다면적 개념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종교를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다. 좀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종교를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위에서 말한 세포자동장치에 대해서는 들어본적도 없고 들어도 알수 없을것이라고 생각할만 하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종교에 대해서는 뭔가 알고있는것만 같다. 주변에 교회나 절도 있고, 종교인도 만난적 있고, 뉴스나 인터넷에서도 수시로 보고 듣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종교인인 경우도 있다보니 뭔가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리고는 "종교란 결국 XXX야."라는 식으로 쉽게 결론을 내리곤 한다. 파스칼 보이어는 그런 마법총알(모든걸 설명해줄 수 있는 간단한 설명)은 없다고 단언한다.(*2)
이자리에서 종교의 모든것을 설명할 필요까지는 없지만(그럴 수 조차 없다) 마법총알까지는 아니여도 종교에 대한 최소한의 개념을 조금이나마 심도 있게 이해해보자는 차원에서 쓴 글이다.


 

 2. 종교학에 대하여
얼핏 종교학이라 하면 인문학의 느낌이난다. 하지만 현대 종교학은 철저한 자연과학이다. 이 글은 종교학 중에서도 종교생물학이라고 하는분야의 글이다.종교 생물학이란 무었인가? 결국 인간도 생물이다. 종교생물학이란 이러한 인간이라고 하는 생물이 '종교'라고 하는 특이한 문화를 가지게 된 배경과 원인을 설명 하는 학문이다.따라서 이를 이해하기전에 짚고 넘어가야할 몇가지 생물학적 개념들을 이해해야만 한다.


(1.적응과 비적응 개념
어떤 생물의 특질을 설명 할때는 그것이 적응적인가 비적응적인가를 늘 염두해두어야 한다. 'A라는 특질이 적응적이냐'라는 질문은 'A라는 특질이 그 개체에게 번식적 이익을 주느냐' 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예를들면 인간의 피부색은 적응적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 이다. 각각의 인종이 '그러한' 피부색을 띠는데는 그만한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3) 그렇다면 인간의 혈액의 색은 적응적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 이다. 혈액의 색이 붉은데에는 붉은색이 특정한 이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철과 산소의 결합에 대한 부산물일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피부색은 '적응적'이다라고 할 수 있고 혈액의 색은 '비적응적'이다 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생물의 특질을 설명 할때는 이것이 적응적인지 비적응적인지를 구분 할 수 있어야 한다.(*4)


(2.궁극인과 근접인의 개념
환원주의적 세계(물리학과같은)에서는 '왜'냐는 질문과 '어떻게'라는 질문은 얼핏같은 답을 내놓을수도 있다.(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가. 중력때문에. 어떻게 지구가 태양주위를 도는가. 중력때문에.)하지만 조금만 복잡계로 넘어가면 이 둘의 답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예를들면 반딧불이에게서는 왜 빛이 나는가 라는 질문에는 "짝을 찾기 위해서!" 라는 답변을 내놓을 수 있다.반면 반딧불이는 어떻게 빛이 나는가 라는 질문에는 "세포내 소기관에서 루시페린이 만들어져 산소와 접촉하면 산화반응이 어쩌구...."  라는 답변을 내 놓을 수 있다.
'왜'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궁극인이라 하고, '어떻게'의 답변을 근접인이라 한다.이처럼 어떤 생물의 특질을 설명 할때는 두가지 관점을 모두 설명 할 수 있어야 한다. (*5)


(3.굴절적응 개념
굴절적응이란 이전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기관이나 성질이 어떠한 원인 때문에 부득이하게 생활 양식의 변경이 필요하여 적응하는 가치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새의 깃털은 원래 비행의 용도로 진화한것은 아니였다. 그저 다른 동물들처럼 체온 유지와 위장의 목적이였다. 하지만 깃털은 발달하게 됨에 따라 다른 기능, 즉 비행의 기능을 돕게 되었다. 마우스를 잡고 펜을 쥐며 악수를 하는 인간의 손은 태초에는 물을 뒤로 밀어 동체를 전진시키기 위한 지느러미나 가지를 움켜쥐고 나무를 건너는(brachiation)목적이였던 것이다. 이처럼 지금의 모든 적응적 특질(그것이 소프트웨어적인것이던 하드웨어적인것이던)은 처음부터 그런 기능을 하기 위해 시작된것이 아닐수 도 있다. (*6)
이 세가지만이 종교에 대한 이해의 모든 준비과정이라 할 수는 없으나 앞으로의 설명에서는 이정도만 알고있어도 충분 하리라.

 

3.종교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종교탄생의 근인적 접근
"예전에는 신비였고 이제는 문제로 변모하고 있다." -노암 촘스키
종교는 인간의 산물이다. 그리고 인간 역시 생물이다. 따라서 종교라는 문화 역시 인간이라는 생물의 소산이라고 봐야 한다.한때 종교는 초자연적인 영역(신비)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종교라는 개념 역시 인간의 산물(문제)로 이해되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의 탄생은 어찌 설명 해야 하는가. 질병을 이해하려면 질병에 대한 이해 이전에 인간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 하듯 종교를 이해하려면 종교 이전에 인간, 특히 인간 뇌의 인지능력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뇌가 발달하면서 인간은 수많은 인지능력을 발달 시켰다. 그러한 능력은 명백히 적응적인것이리라. 하지만 그 적응능력 뒤에는 의도치 않는 부산물이 발생되었다. 종교가 만들어지기 위해 필요한 4가지 인지능력들, 그리고 그 부산물들을 알아보자.

 

(1. 멘탈라이징, 마음이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과거의 거친 자연에서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집단으로 뭉쳐서 협동을 추구했다. 그룹을 이루어 다니다보니 개체간의 심리적 이해관계를 이해할 수 있음은 분명 도움이 되었다.마음이론이란 다른 개체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다른 개체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개체일수록 마키아벨리적능력은 뛰어났을것이고 그런 개체들은 그렇지못한 개체들이 비해 성공적으로 번식 할 수 있었을것이다.(*7)우리 인류는 성공적으로 번식한 개체들의 후손이다.

 

(2. 이원론적 사고
인간은 두뇌가 발달하면서 상상력이라는 능력 또한 발달하게 된다. 이러한 능력은 탈 현실적 자아를 만들어 낼 수있기에 이른다.점심을 먹지못해 굶주린 한 개체는 이러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른다."그때 점심을 먹었더라면 이렇게 배가 고프지는 않을텐데."그 개체는 지금의 현실적인 자아(점심을 못먹어 배고픈 나)와 현실과 다른, 다시말해 탈 현실적 자아(점심을 먹어 배가 고프지 않은 나)를 분리해서 상상할 수 있게 된다.이러한 능력은 분명 적응적 결과일것이다. 잘못된 상태를 이해하고 잘못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하면서 반성("점심을 먹었어야해!") 할 수 있는 능력은 다시 그런 상황에 처했을때 똑같은 실수를 반복 하지 않을 수 있게 만들어준다.이런 이원론적 사고능력은 결국 현실과 다른 또다른 '나'를 만들어 내게 된다. 이세상 종교중에서 이원론적 사고를 가정하지 않는 종교는 단 하나도 없다. 심지어 종교가 아니라도 수많은 문화는 이원론적 사고를 가정 하곤 한다.영화 '빅'을 보면 마음은 어리지만 몸은 어른이 된 톰 행크스가 나온다.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도 주인공은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경험을 한다. 우리는 막연하게 '내가 만일 과거로 돌아간다면'이라는 말을 할때는 '모든것(나의 육체를 포함한)은 과거지만 나의 정신,지식 체계는 지금과 같은'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 이 역시 이원론적 사고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타고난 이원론자이다.(*8)

 

(3. 목적론적 사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목적론적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제 막 말을 할 수 있는 아기들에게 나무 옹이를 보여주면서 이게 왜 있나교 물으면(이유를 상상하더니) 곰이 등을 긁기 위해 존재한다고 답변 한다.아기들은 나무옹이의 존재를 곰이 등을 긁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한다고 이해한다. 지금도 우리는 목적론적 사고본능이 매우 강하다. 가기싫은 모임에 가려다 차를 놓치기라도 하면 "가지 말라는 계시인가!" 라고 상상하곤 한다.놓쳐버린 차는 우리를 모임에 보내지 않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상상하곤 한다.


 

(4. 지향적 행위자성
우리의 직관은 뭔가 없기 보다는 뭔가 의도를 가진 존재를 상상하길 좋아한다. 이는 사실 자연스러운 결과다 지향적 행위자가 있다고 가정 하는것이 없다고 가정 하는것보다 이익이기 때문이다.무언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없을 경우에는 사실 잃을건 별로 없다. 하지만 없다고 생각 했지만 있으면 결과는 치명적일 수 있다.덤불에서 무언가 부스럭 거렸을때 그냥 바람이였지만 뭔가 있다고 반응하면 그저 뻘쭘할 뿐이지만, (나를 잡아먹기 위한 지향성을 가진)사자가 있었는데 바람일거라고 가정 했다면 그 개체는 그걸로 끝일것이다.(*9)
이 4가지만으로 종교의 탄생에 필요한 인지적능력을 모두 설명 했다고 하긴 힘들다 하지만 최소한의 이 4가지 개념은 종교 탄생의 얼개를 그릴 수 있게 도와준다.
누군가 사람을 찌르고 도망가다 번개를 맞았다고 해보자. 그는 왜 번개에 맞았는가? 하늘위의 구름에서의 입자간 전하차이로 인한 마찰전기가 발생해 지상으로 내리 꽂는데 '하필' 그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라는 설명과나쁜짓을 하니 벌을 받았다라는 설명중 어떤내용이 더 와닿는가?
관찰자의 관점에서(1. 마음 이론) 사람을 찌르고 도망가는건 나쁜짓이고 이를(번개를 다룰 수 있을정도의 힘을 가진) 누군가 나쁘다고 생각하여(4. 지향적 행위자성) 그를 벌을 주기위한 목적(3. 목정론적 사고)으로 번개를 내렸다.또한 죽게 되면 죽은 후의 나의 영혼은 육체로부터 분리되어진다.(3. 이원론적 사고)
이러한 마음의 적응적능력의 부산물로써의 종교를 해석하는 과정은 종교를 비적응적 관점으로 바라보게된다.따라서 태초의 종교는 인간 마음의 부산물에서 시작 했다.(*10)

 

4. 종교는 왜 태어났는가? 종교 탄생의 궁극적 접근
인간은 야생에서 나약한 존재였다. 빠른발이나 강한힘, 무시무시한 이빨이나 발톱이 있는것도 아니고 독을 가지고 있는것도 아니다.약한 개체들이 늘 그렇듯 우리 인간은 집단 생활을 했다.  초기에 우리는 다른동물들이 늘 그렇듯 우리와 유전자를 조금이라도 더 공유하는 개체들과 그룹을 형성 했다.그리고 그 그룹안에서 서로를 지키고 보호해줬다. 나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개체들에게는 이타적으로 대해왔다는 뜻이다. 유전자는 유전자 자신을 공유하는 집단에게 '질서'를 부과했다.(*11) 그렇게 집단의 크기는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인간의 대뇌피질은 서로 구분하고 인지할 수 있는 개체의 크기를 늘려왔지만 기계적 제한으로 150명이 한계였다.(*12)인간은 인지능력의 부산물로 만들어진 상상의 존재를 질서의 중심에 세우기 시작했다. 가상의 신은 그 신을 믿는 개체들을 하나로 묶어주기 시작했다.이로인해 인간의 집단은 150명을 훨씬 넘어서기 시작했고 그들은 '유전자'의 공유를 넘어서 '신 개념'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성장 하기 시작 한다. 집단 구성원은 그 집단 내부인에게는 이타적으로 행동하라는 지침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러한 집단이 '더 성공적으로' 생존 했을것이기 때문이다.집단이 위기에 처하면 목숨걸고 동료를 지키는 스파르탄 같은 개체들로 구성된 집단과, 자기 살겟다고 남들뒤에 숨으려는 개체들로 구성된 집단중 어디가 더 높은 생존가를 보여주었을지는 불보듯 뻔하다.(*13)
서로에게 이타적인 개체들로 구성된 집단은 이기적인 개체들로 구성된 집단에 비해 훨씬 생존율이 높았으리라. 결국 종교를 가진 개체들은 종교가 없는 개체들에 비해 높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고 따라서 결국 살아남은 모든 문명조직은 종교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14)결국 종교는 종교를 가진 개체들의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진화했다. 따라서 종교는 적응적이다. 

 

5. 종교의 적응과 비적응, 궁극인과 근접인 그리고 굴절적응
앞서 말한 세가지 관점을 환기 하면서 종교를 다시한번 이해해보자.
종교라는 인간의 소프트웨어적 특질 역시 궁극인과 근접인으로 나누어 설명 할 수 있어야 한다. 궁극인은 결국 적응적 산물이다. 다시말해 종교는 종교를 가진 개체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에 존재 할 수 있었다. 반면 근접인은 비 적응적 산물이다. 다시말해 인간의 인지능력의 부산물로써 탄생했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 둘을 분리시켜 다루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를 분리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간극에는 굴절적응의 시각이 필요하다. 태초의 종교는 그저 부산물로서 태어났지만 그 부산물은 반대로 인간 생존에 필요한 하나의 장치가 되었다.(*15) 생존에 도움을 주었던 인지능력은 부산물을 만들어냈고 그 부산물은 이제 부산물의 지위를 뛰어넘어 생존에 필수 장치가 되었다.(*16)

 

6.비판
(1. 원시의학과 현대의학
인간은 늘 고통, 질병과 싸워왔다. 근대적 의학이 발달하기 전 인간은 경험을 통해 우리가 고통과 싸울 무기를 자연 속에서 찾아낼 수 밖에 없었다. 원시 의학은 이렇게 시작했다. 하지만 생리학이나 화학의 부재로 인해 피상적인 의술에만 의지 할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자연에서 얻은 '약'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 정제 되지 않은 '자연약'은 부작용이 있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약에서 오는 혜택이 약으로 인한 문제점을 넘어선다면 사용하는것이 이익이였으리라.기원전400년경 히포크라테스의 저서에 언급된바에 따르면 진통제로 버드나무껍질을 씹었다고 한다. 버드나무껍질의 수피에 존재하는 살리실산은 진통제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살리실산은 극도로 신맛이 나며 흡수율도 떨어진다. 흡수율이 떨어지기에 많은 양의 껍질을 씹어야 했으며 맛 또한 고약하다.현대의학은 그러한 버드나무껍질에서 약성분을 추출해 아세틸살리실산을 합성해 냈으니 이것이 아스피린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진통제가 필요할때 버드나무를 찾지 않는다. 그저 약국으로 달려갈뿐. 이렇게 자연약에서 부정적인 부분을 제거하고 긍정적인 부분만을 추출해 사용하는것이 근대 약학일것이다.

 

(2. 종교와 복지
원시 자연에서 인간은 나약한 존재였다. 너무나 나약해 옆의 동료가 없으면 그 누구도 살아 남을 수 없었다. 집단생활을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따라서 우리를 하나로 묶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 했다. 앞서 말했듯 일반적으로 사회성 생물은 자신의 유전적 근친도를 기반으로 사회생활을 한다. 하지만 대뇌피질이 발달한 인간은 그 이상 무엇인가를 기반으로도 할 수 있었다. 인간은 우리의 상상물을 통해 우리를 묶는 재주가 있었다. '초사회성'동물이 되기 시작한것이다.(*17) 그중에는 종교가 있었다. 종교는 그 규범으로 인해 같은 종교를 가진 이들에게 이타적일것을 강요한다. 종교가 '근대적 복지'의 개념을 실행한 것이다. 결과 그러한 집단은 살아남았고 자연스럽게 그러한 집단은 종교를 가질수 밖에 없었다. 좋든 싫든 성공한 인류 문명은 모두 종교를 가지고 있다.

 

(3. 분리의 문제
자연약은 좋은점과 나쁜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둘을 분리 시킬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취해야만 했다.현대 의학은 자연약에서 좋은점과 나쁜점을 분리시켜 좋은점만을 취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종교 역시 우리를 살아남게 만들어 주었지만 그러한 종교에는 해악 역시 포함되어있었다. 다만 종교로부터 오는 이익이 종교의 해악을 넘어서던 시절이였을뿐. 지금의 종교는 집단 구성원들에게 좋은점과 나쁜점을 모두 '삼키라'고 강요한다.(*18) 이는 버드나무 껍질을 씹으라는것과 마찬가지의 문제다. 이제 우리는 나무껍질과 아스피린처럼 종교의 장점과 단점을 분리 할 수 있다. 종교가 제공해주던 복지와 조직내 이타성은 세속적 법과 제도,규제,자선 단체가 행하고 있다. 복지수준이 놓은 국가일수록, 국가 공권력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국가일 수록 종교에 대한 영향력은 낮다고 한다.(*19) 
대한민국의 지적, 문화적 수준이 아직도 종교에 의지해야만 할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거짓 지식(아직도 창조론이 활개 치는게 종교와 과연 무관할까?)(*20)과 위선을 가려주는 조악한 앙시앙 레짐은 이제 그만 벗어 던지자.

 

7. 무신론
감정적인 대중들은 종교의 부패상이나 종교인들의 범죄를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되면 이성을 잃고 급진적이 처벌의 목소리를 낸다. 누구를 죽여야 한다는니 종교를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느니... 하지만 과연 그러면 종교가 사라지게 될까? 사실 이러한 강제적인 절차를 집행한 사회가 없었던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모두 실패 했다. 오히려 음지로 숨어들고 더더욱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종교는 박힌 못과 같아서 때리면 때릴수록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반면 종교가 가장 자연스럽게(그리고 합법적으로)소멸하고 있는곳도 있다. 그런 국가들은 무었이 다르기에 이렇게 되었는가? 종교적 색채가 약한 국가들의 특징들이 몇가지 있다.

 

(1. 복지국가
종교의 원시적 기능중 한가지는 그 개념을 공유한 사람들(또는 잠재적 공유자들)에게 '복지'를 제공 한다는점에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그 개념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배타적이다.
또한 종교적 교리는 그 구성원이 되려면 종교의 좋은점과 나쁜점을 모두 수용해야 한다고 한다.(*21) 복지국가는 종교의 이런한 복지기능을 대신한다. 실제로 세속적 복지수준과 종교적 인구비는 반비례한다는것이 밝혀 졌다.  세속적 근대복지의 발달은 종교의 기능을 약화시킨다. (*22)


 

(2. 교육
종교적 본능은 우리의 뇌속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종교적 능력,유신론적 능력은 언어와 같다. 인간은 타고난 언어술사들로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나이가 차면 말(언어)을 할 줄 안다. 마찬가지로 유신론적 사상은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발현 된다.
반면 과학적 능력,무신론적 능력은 문자와 같다. 문자는 타고난 능력이 아니다. 수고스럽게 익히고 배워야 할 수 있는 능력이다.(*23) 따라서 '신을 믿지 않는' 능력은 수고스럽게 배우고 훈련해야 가질 수 있다. 높은 수준이 교육은 신과 종교를 약화 시킨다. 당연하게도 국가별 과학적 고등교육수준과 비종교적, 무신론적사고를 하는 사람과의 비율에는 매우 높은 음의 인과관계가 있다.(*24)

 

(3. 경제적 부유함
애석하게도 가난은 종교를 부채질 한다. 앞선 두 경우에서 유추 할 수있듯이 가난하다는것 자체가 복지혜택과는 거리가 멀다는것을 의미하며 국민들이 교육에 힘쓸 시간이 없다는것을 의미 한다. 복지를 담당할 세속적 기구가 약하다면 당연히 원시적 복지기능인 종교가 그 역할을 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또한 교육받을 시간의 부족은 과학과 무신론적 사고를 배울 기회가 부족하다는뜻이다.

 

(4. 국교
네번째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대규모 조사에서는 이런 결과가 나온것이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니콜라스웨이드는 이런 분석을 내렸다. 국교가 있다는것은 국가의 공식 종교가 있다는 뜻이고 그말은 성직자들은 공무원 이라는 뜻이다. 어느 국가나 그렇겟지만 공무원들은 사업가들에 비해서 치열하게 살지 않는다. 그저 맡은 일을 조용이 처리만 하면 국가에서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기 때문이다. 
반면 국교가 없는 나라(미국이나 한국같은)에서는 종교는 사업이다. 문화시장에서 치열하게 고객을 유치하는데 매우 큰 힘을 쏟아야한다. 그러다 보니 매우 공격적인 마케팅(전도)을 펼칠 수 밖에 없고 이는 국민의 종교화를 가속화 한다. (*25)  

 

미국의 경우는 부유한 국가이지만 종교적 색채가 매우 강하다. GDP에 비해 복지능력은 형편 없으며 나라가 부유하다고는 하지만 부의 양극화는 상상을 초월하다보니 사실상 가난한 대중들이 너무 많다. 또한 평균적인 교육수준은 바닥을 기고 있다. 그래프에서 보듯 GDP에 비해서 진화를 믿지 않는 비율이 매우 높다. (*26) 국교가 없는것도 한몫한다. 모든 조건이 완벽하다.지금의 미국의 우려스러운 종교인 실태는 매우 자연스런 결과다.

159588496298205.jpg

 

진화에 대한 믿음과 부의 상관 관계

이쯤에서 우리를 돌아봐야 한다. 과연 지금의 한국은 어느정도의 위치에 있는가? 정말 종교에 분노한 대중들의 말대로 법으로 종교를 금지하면 사라지게 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교가 본질적으로 약화되기 위해서는 종교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을 만큼의 세속적 복지기능의 강화, 의식주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될 정도의 부유함, 높은 교육수준이 필요 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8. 선과 악
"종교가 있던 없던 선한 사람은 선한일을 하고 악한사람은 악한일을 한다. 하지만 선한사람이 악한일을 할때는 종교가 필요 하다." -스티븐 와인버그
필자는 브라이트소속이며 무신론 운동가이다. 하지만 20대를 교회에서 보낸탓에 친구들중 대다수는 교인이다. 혹자는 종교와 싸운다며 어떻게 종교인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의사는 질병과 싸우는 사람이지 질병에 걸린사람과 싸우는게 아니듯, 나도 종교와 싸우는 사람이지 종교에 걸린 사람과 싸우는게 아니다.'
때때로 우리는 종교와 종교인의 문제를 혼동해서 뭉뚱그려 이해한다. 하지만 '종교'의 잘못과 '종교인'의 잘못을 냉정하게 구분 할 수 있어야 한다. 스티븐 와인버그가 날카롭게 지적했듯 일반적으로 종교는 사람의 선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때때로 선한사람을 '악'하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바로 이 '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악이 누구의 관점에서 악이냐를 생각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악은 외부인 입장에서만 악일뿐 종교인에게는 여전히 '선'이기 때문이다.

 

"2005년 7월 런던에서 동시 다발적인 자살 폭탄 공격이 일어났다. 지하철 세 군데, 버스 한 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신문마다 젊은이들을 자폭으로 이끎으로써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도록 충동질 하는것이 무엇인지를 놓고 고심하는 기사들이 가득 실렸다. 살인자들은 크리켓을 좋아하고 예의 발랐으며 누구와도 어울릴 만한, 젊은 영국 시민들이였다."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中


이웃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은 착하고 선량 했다고 한다. 위선이라고 생각할만 한 요소는 없었다. 그런 그들을 자폭을 이끈것은 그들의 종교였다. 이들은 누가 보기에도 악한 행동을 했다. 하지만 그 악은 희생자들의 관점에서만 악일뿐이다. 그들은 여전히(그들이 만일 생각 할 수있다면) 선한 일을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에서 있었던일을 생각해보자. 2007년 7월 13일 분당의 샘물교회에서는 남녀교인 19명이 아프간에 선교활동을 목적으로 출국했다. 이후에 있었던 일은 모두알고 있으리라. 엄청난 국고손실을 일으켯던 이 사건은(인터넷에서 이들에 대한 평가를 보면 알수있듯이) 누가 보기에도 나쁜 행동이였다. 분명 국가의 권고가 있음에도 무시하고 간 행동은 용서받기 힘든 행동이라는 평이 많다.
그렇다면 감정을 추스르고 냉정하게 이들의 행동을 돌이켜보자. 이들이 평소에도 국고 탐내기를 호시탐탐 노리는 기생충 같은 마음의 소유자였을까? 어떻게 하면 국가와 나라에 걱정을 안길까하는 생각에 몰두한 아나키스트들이였을까? 그들은 그저 평범한 국민들이였을뿐이다. 그저 자신의 집단에 충성심이 과했을뿐, 집에서는 좋은 부모와 자녀, 이웃들이였을것이다. 그런 평범한 그들에게 '악'한 행동을 하도록 만든건 다름 아닌 종교다. 영국에서 테러를 일으킨 청년들 처럼 말이다. 남들은 잘못된 행동이라 말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선한 행동을 했다고 믿는다.
평범한 그들을 악하게 이끈것은 결국 종교다.  몇몇 호교론자들은 '그건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과도한 충성심의 문제다.'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충성심 자체가 무슨 문제란 말인가? 국가에 대한 충성심, 가족에 대한 중성심, 부모에 대한 충성심이 문제가 되는가? 만일 부모가 자녀들에게 폭력을 권장 한다면, 그리고 아들은 과도한 충성심으로 그를 그대로 따른다면 그건 충성심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문제 아니겠는가? 
종교는 문제가 없고 사람이 문제다라고 주장하는 호교론자들, 그리고 순진한 중립자(종교에 대한 중립적 관점을 취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틀렸다. 선한 종교인들은 종교가 있어서 선한것이 아니다. 종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한것이다. 인간이 악한것이 아니라 종교가 악한것이다.
도킨스는 모든 악의 근원은 종교라고 했지만(*27) 나는 이에 동의 할 수는 없다. 종교가 사라진다 해서 모든 악이 사라질거라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이다. 하지만 종교가 사라지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악이 줄어들 것 이라는 데에는 동의 할 수 있다. 이정도만 되어도 종교를 철폐시킬 충분한 이유는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선한 행동은 어떨까? 소록도에서 평생을 바친 두명의 수녀가 한국을 떠났을때 많은 이들은 그들의 존경과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종교가 없었다면 선하지 않은 사람이였을까? 선하지 않은 사람을 '종교가' 선하게 만든 것이였을까? 사실 이는 설명하기 어려운 주제다. '종교가 없는 두명의 여성'이라는 대체 역사가 없는 한 비교 할 수는 없을것이다.
하지만 나의 관점은 그 두분은 종교가 없다 할 지라도 선한 사람이였을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 두'인간'의 공로를 '종교'의 공로로 돌리는 것이야 말로 그분들의 순수한 이타심과 박애주의를 훼손하는것이 아닐까?

 

9. 에필로그
내가 처음으로 종교를 공부한건 오히려 내가 믿고있는 종교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자는 다소 '불순한' 생각에서였다.하지만 종교에 대해 공부하는건 마치 번데기가 없는 고치에서 실을 자아내는것과 같았다. 종교에 대한 공부를 할 수록 그 중심에 있어야할, 그 종교라는 고치를 만들어낸 번데기는 존재하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나의 믿음은 그때즈음 기울어가고 있었다. 고치에서 모든 실을 자아냈을 무렵 모든건 명확해졌다. 그 가운데 신과같은 초자연적 존재는 존재하지 않았다.번데기는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의 상상력의 산물이였다. 한때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던 그 상상의 번데기는 썩어 악취를 뿜고 있었다.그럼에도 우리는 그 번데기가 우리를 창조 했다고 믿고 싶어 한다. 댄 바커는 우리가 신이 우리를 창조 했다고 믿는 이유를 "우리는 신을 우릴 만든 신으로서 창조했기 때문이다."(*28)라고 설명 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신이 우리가 신을 우리의 창조주라고 여기기를 바란다고 생각할까? 그것은 마치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를 부모라고 여기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우리가 만든 신은 우리를 본따 만든것이다.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말했듯 신이 자신의 모습대로 우리를 만든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모습대로 신을 만든것이기 때문이다.(*29) 그렇기에 신학은 신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하지 않았던가.(*30) 과연 미래에도 대중들 사이에 신앙심이라는게 남아 있을까?  

과거에는 문맹이 결코 수치가 아니였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는 것은 오히려 기사에게 있어 용맹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왕족이나 귀족들 가운데서도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경우마저 있었다.(*31) 먼 미래에 21세기 초를 되돌아보며 이런 말을 할 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신실하다는것은 결코 수치가 아니였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오히려 충성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심지어 정치인이나 교수들 가운데서도 교회를 다니는 경우마저 있었다." 

 

신의 정체를 알아버린 인류가 과연 미래의 바다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 아니 신의 정체를 모든 인류가 알게 될 날이 과연 올까?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우리는 바로 그 자긍심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인간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올바로 고찰 해야 한다. 설령 활짝 열린 과학의 창문들이, 처음에는 대대로 내려온 인간화한 신화들이라는 안락한 실내 공기에 적응되어 있던 우리를 덜덜 떨게 할지라도, 결국에는 신선한 공기가 우리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드넓은 세상이 우리 앞에 장엄함을 드러낼 것이다."
                                             -버트런트 러셀(내가 믿는 것中. -1925)


참조
1. 종교 설명하기-파스칼 보이어
2. 종교 설명하기-파스칼 보이어
3. https://www.youtube.com/watch?v=dDk2R7eFibg&t=245s
4. 다윈의 식탁-장대익(더 자세한 내용은 스티븐 제이 굴드와 스팬드럴의 비유를 참고 하라)
5. 이것이 생물학이다-에른스트 마이어
6. 스티븐 제이 굴드
7. 과학이 우리에게 말해준 것들-장대익, 뇌의 진화, 신의 출현-E. 풀러 토리, 거대한 신 우리는 무었을 믿는가-아라 노렌자얀, !하나님이 너를 보고 계신다-도미닉 존슨
8. !데카르트의 아기-폴 블룸, 천국의 발명-마이클 셔머
9. 주문을 깨다-데니얼 대닛, 천국의 발명-마이클 셔머, !구름속의 얼굴들: 종교에 대한 새로운 이론-스튜어트 거스리
10. 만들어진 신-리처드 도킨스, 밈-수잔 블랙무어, 다윈의 식탁-장대익, 설명된 종교-파스칼 보이어, !신은 왜 존속하는가-로버트 힌데, !우리가 믿는신들-스콧 애트런, 종교 본능-제시 베링, 뇌의 진화, 신의 출현-E.풀러 토리, 믿음의 엔진,믿음의 탄생-마이클 셔머
11.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이타적 유전자-매트 리들리
12. 던바의 수-로빈 던바
13. 이기적 원숭이와 이타적 인간-마이클 토마셀로
14. 종교는 진화한다-데이비드 윌슨, 거대한 신 우리는 무었을 믿는가, 진화심리학2-아라 노렌자얀,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신의 이름으로-존 티한, 울트라 소셜-장대익, 뇌의 진화,신의 출현-E.풀러 토리, 종교 유전자-니콜라스 웨이드, !진화하는 신-바버라 킹
15. 굴절적응의 정확한 의미는 이전에  '전적응적' 특질이 후에 '다른 적응적'로 바뀌는걸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부산물로써의 종교는 '전적응적' 특질이 아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정확한 의미의 굴절적응은 아닐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다는점을 인정하는 바이다.
16. 친사회성종교에 관해서는 '거대한 신 우리는 무었을 믿는가'-아라 노렌자얀을 참고하라.
17. 거대한 신 우리는 무었을 믿는가-아라 노렌자얀,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이기적 원숭이와 이타적 인간-마이클 토마셀로
18.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알랭 드 보통
19. 종교 유전자-니콜라스 웨이드
20. 화석은 말한다-도널드 R.프로세로
21.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알랭 드 보통
22. 종교 유전자-니콜라스 웨이드, 도덕의 궤적-마이클 셔머
23. 언어본능-스티븐 핑커
24. 스켑틱 15호(한국어판)-찰스 S.라이카트 기고, https://icelandmag.is/article/00-icelanders-25-years-or-younger-believe-god-created-world-poll-reveals?mc_cid=70defb5a63&mc_eid=22979bf1c7, http://www.astronomer.rocks/news/articleView.html?idxno=83828&fbclid=IwAR1T6JnZtyq_lF-hD_SGx0LqNN7kWVQ32do9GpQJN577nb33VRCvzhB4Uz4
25. 종교 유전자-니콜라스 웨이드
26. 화석은 말한다-도널드 R.프로세로
27. https://www.youtube.com/watch?v=8nAos1M-_Ts
28. 신은 없다-댄 바커
29. 신은 위대하지 않다-크리스토퍼 히친스
30.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루드비히 포이어바흐
31. 세 종교 이야기-홍익희
! 직접 참고한 책은 아니라 책에서 다른책을 인용 했음

 

159588499215894.jpg


한때 사람들은 신과 교회의 규율을 믿었다. 그때를 암흑시대라 부른다.

zifal의 최근 게시물

자유·수다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