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진 이미 혼을 걸었다

호도주 작성일 11.06.13 16: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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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사설


어떤 일이 옳은지 그른지 헷갈릴 때는 누가 그 일에 앞장서는지 보는 게 판단에 도움이 된다. 경력이나 능력만 말고, 살아온 내력으로 봐 사심 없는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군대를 안 갔다 온 탓인지 요즘 제일 헷갈리는 게 국방개혁안이다. 작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사태가 터졌을 때만 해도 당장 군이 뼈를 깎겠다고 나서고, 정치권도 뒷받침할 줄 알았다. 그런데도 어영부영 보내다 11월 23일 연평도가 북에 맥없이 포격을 당했다. 사흘 뒤 새로 내정된 국방부 장관이 눈빛도 레이저 광선 같은 김관진이었다.

위장전입과 세금 탈루가 보통인 이 내각에서 장성 출신이 그런 기록 하나 없이 1995년식 중형차 크레도스를 타고 다니면 청렴의 화신으로 봐야 한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국민은 속이 뒤집어졌는데, 그는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우리 군의 대응이 허술했다는 데 100% 동의한다” “북이 추가 도발한다면 자위권 차원에서 항공기를 이용해 폭격할 것이다”라고 분명히 말해 속을 풀어줬다. “작전 시행 시 현장에서 ‘쏠까요, 말까요’ 묻지 말고 선(先)조치, 후(後)보고하라”고 지시한 대목에선 모처럼 무인(武人)다운 무인, 남자다운 남자를 보는 것 같았다.

그가 말을 너무 잘해 겁난다거나, 야당까지 칭찬해 외려 꺼림칙하다는 반응도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말실수나 거짓말로 국민들 가슴에 못을 박는 것보다는 낫지 싶다. ‘카리스마 김관진’이 포털 주요 검색어로 뜰 만큼 기대와 지지를 받는 정부쪽 사람은 지금까지, 그리고 아직은 김관진이 유일하다. 그런 장관이 앞장선 국방개혁이니 틀림없을 것으로 믿고 싶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국방개혁안이 또 물 건너가게 생겼다. 13일 국방위 상임위가 열리지만 한나라당조차 이번 국회에선 힘들겠다고 하는 판이다.

22년 전과 똑같은 “국방개혁 반대”

“현재의 합참의장 제도로는 육해공군의 통합전력 발휘가 미흡하다. 합동성 강화를 위한 개혁이 꼭 필요하다.”(국방장관)
“합동사령관의 권한이 너무 커져 문민통제를 위협한다.”(정치권과 예비역)

“육군 중심이어서 해·공군의 전문성이 침해된다.”(해·공군과 예비역)

지금 ‘김관진 국방개혁안’을 놓고 벌어지는 논란은 1989년 노태우 대통령 때 8·18 군구조개편안을 놓고 벌어진 논란과 놀랍게도 흡사하다. 육해공군 삼군병립의 군 구조를 국방참모총장이 단일 지휘하는 통합군으로 개편하는 것이 당시 골격이고, 새 개혁안은 합참에 합동군사령부 기능을 추가해 합동성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그때와는 상황도 내용도 차이가 있는데 반대논리는 같다는 게 희한할 정도다.

22년 전 야당과 해·공군, 예비역의 격렬한 반대에 군 출신 대통령은 물러섰다. 당시 8·18기획단 법규과장이던 김관진 대령은 참담한 심정으로 후속작업의 명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군령(軍令)은 합참의장에게, 군정(軍政)은 각 군 참모총장에게 억지로 갈라주는 개악(改惡)이었다고 그는 기억했다. 천안함 사태 때 침몰 원인이 피격이면 군령 계통(합참)으로, 좌초면 군정 계통(해군본부)으로 처리해야 하는 바람에 한동안 혼선과 혼란이 벌어진 것도 이런 물개혁과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이대로 가면 2015년 12월 1일 전시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에서 우리 쪽으로 넘어온 뒤에도 비슷한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만에 하나, 육해공군 통합군으로 편성된 북한군이 서해5도를 집중포격하면서 특수부대를 침투시킬 경우 합참의장은 작전권을 갖고서도 당장 병력과 군수물자를 동원해 응전하기 어렵다. 한 예비역 육군 장성은 “현재의 방어개념으론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국이 개입하기까지 ‘인간방패’인 육군이 초기 일주일 새 10만∼20만 명은 죽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파국을 막으려는 게 새 개혁안이라며 김 장관은 “선진국에서는 진작 이렇게 가고 있다”고 했다.

누가 국민과 국군의 편인가

마흔 살 때 좌절됐던 국방개혁의 소신을 20여 년 만에 장관이 돼 되살릴 기회를 만났을 때, 그러나 그때와 똑같은 반대에 부닥쳤을 때 심정이 어떨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제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장관에게 “국방개혁안이 그리 중요한 것이면 직(職)을 걸 수도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옳은 일이므로 이미 혼(魂)을 걸었다”고 말했다.

국방개혁이 중요한 만큼 더 많은 전문가를 만나고, 더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의미는 있다. 하지만 전문가집단이 국민의 편에 서기보다 자신들 이해관계에 골몰하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봤다. 국회의 대화와 타협을 기다리다간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처럼 발목잡기와 뒤집기로 시간만 끌 공산도 크다.

그러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정권의 향방이 바뀌면 정치적 군사적 상황까지 변할지 모른다. 천안함 연평도 사태를 겪고도 우리 국군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제2의 6·25를 맞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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