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시 명예훼손에 관하여

소크라데쓰 작성일 21.02.26 07:05:18 수정일 21.02.26 07:4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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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 문제를 생각하는데 헌재에서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더군요. 

 

우선 저는 명예훼손이라는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제 생각은 이제부터 차차 설명드릴 것입니다. 

 

법에서 다루는 명예는 개인에 대한 외부적 평가입니다. 

 

평가에는 평가를 하는 쪽과 평가를 받는 쪽이  존재합니다. 

 

명예훼손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의 논의는 평가를 받는 쪽 시각에 치우쳐 있습니다. 

 

따라서 평가를 하는 쪽의 시각으로도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평가를 하는 주체는, 평가를 왜 하는 것일까요?

단순히 남의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일까요?

 

’남의일’이 아니기 때문에 평가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남의일’이라면 평가 자체가 부적절하고, 따라서 그런 부분에서는 명예 자체도 부여되거나 회수되어서도  안됩니다. 가령 부부인 A와 B가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마을 사람들이 그 부부를 높이 평가하거나 낮게 평가할 이유도 없고, 평가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평가는 공동체가 구성원을 규율하는 수단입니다. 

공동체에서 규율할 필요가 있는 문제에 대하여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를 평가하고, 그 평가에 따라 높은 평가를 얻은 개인은 높은 명예를 지니게 되는 것이고, 낮은 평가를 얻은 개인은 낮은 명예를 지니게 되는 것이죠. 명예가 실추된다고 표현하죠.  이에 따라 개개인은 높은 평가를 받고 싶은 사회적 욕구에 의하여 스스로의 행동을 조절하고, 이런 메카니즘에 의해 공동체는 법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도 일정 수준으로 개인을 규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명예의 사회적 기능입니다. 이러한 시각에 따른다면 명예는 공동체 구성원에 의해 각 개인에게 부여되거나 회수되는 것이지, 한 개인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향유하며 명예의 변동으로부터 절대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성격의 개념은 아닙니다. 명예 자체가 구성원 각 개인의 평가가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평가하는 각 개인의 사상의 자유에 의해 애초에 평가를 받는 쪽은 자신에게 내려지는 평가에 대해 개입할 수 조차 없습니다. 그러므로 명예는 ‘훼손된다’고 표현하기 보다는 ‘부여’되거나 ‘회수’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명예에 관한 사회생활관계에 있어서 법이 어떻게 개입하거나 개입하지 않아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선, 명예 메커니즘의 긍정적인 기능인 사회질서 유지기능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입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음, 명예에 의한 규율이 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영역을 침범할 때는 법이 그 침범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첫째로, 명예 메커니즘이 올바로 작동하기 위한 정보의 유통은 원칙적으로는 금지되어서는 안됩니다. 반면 허위정보의 유통은 명예 메커니즘의 오작동을 초래하므로 법이 이를 금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진실된 정보의 유통이더라도 그것이 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에 속할 수록 엄격히 금지되어야 하고, 그 정보가 공적인 영역에 속할 수록 금지되어선 안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때 현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적시되는 정보가 개인의 자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오로지 공익에 관한 것일 때’에만 처벌을 하지 않음으로써 정보의 유통에 대하여 지나치게 엄격한 금지를 하고 있어서 첫번째 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공적인 영역이 관련되어 있다면 그 정보는 유통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 높은 사회적 평가를 누리도록 법이 보호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타인에게 해를 끼쳤다는 정보는 유통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 즉 합당한 명예가 부여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명예 메커니즘이 올바로 작용하여 사회질서유지의 기능을 올바로 수행합니다. 

 

사실의 적시는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그것이 개인의 자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일 수록 점차 강하게 규제를 하여서, 온전히 개인의 자유의 영역에 속하는 정보, 가령 누구 가슴은 짝짝이다 하는 식의 정보에 대해서는 엄격한 금지를 하도록 하는 방법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허위사실 적시가 처벌되는 이유는, 개인의 명예가 ’훼손’되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그릇된 정보를 유통시킴으로써 마땅히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사람이 낮은 평가를 받거나, 낮은 평가를 받아야 할 사람이 높은 평가를 받는 등, 명예 메커니즘의 오작동을 초래하여 사회질서를 어지럽혔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명예에 관한 죄의 보호 법익에는 개인의 사익 뿐만 아니라 공익도 포함될 것입니다. 

 

또한 명예를 부여되거나 회수하는 주체가 공동체라고 한다면, ‘사자의 명예’ 라는 개념도 설명하기 쉬워질 것입니다. 사자의 명예는 죽은자의 권리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죽은자에 대해서도 생전의 업적을 평가함으로써 구성원의 행동을 규율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공공의 이익으로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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