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단순 해프닝이 아니다. -시사인 기사 퍼옴-

린눈 작성일 21.01.22 10: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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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195

 

 

 

트럼프 시대의 출현이 단순 우연이 아니라는 내용을 펴는 기사입니다.

 

일부 발췌 붙여넣기식으론 내용이 좀 방대합니다. 괜찮은 기사 같으니 관심 있으시면 링크 클릭.

 

핵심만 조금 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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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4년은 반짝 해프닝이 아니라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정치가 소유의 문제를 다루는 데 실패하면서 나타난 거대한 흐름이다.

피케티를 통해 트럼프 시대의 진정한 의미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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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피케티가 ‘포퓰리즘’이란 설명을 거부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피케티의 사분면에서 보면, 버니 샌더스와 마린 르펜과 도널드 트럼프는 모두 노선이 다른 정치인입니다. 특히 샌더스와 트럼프는 아예 정반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들 모두가 ‘포퓰리스트’로 불렸습니다. 국제주의적이면서 재분배에는 소극적인 태도(‘국제주의·불평등주의’)가 서구 정치의 주류였기 때문에, 주류의 눈으로 보면 전혀 다른 정치노선들이 모두 ‘포퓰리스트’로 뭉뚱그려 불렸다는 겁니다.

 

이 사분면에서 진정으로 흥미로운 대목은, 서구 정치의 좌파와 우파가 모두 ‘국제주의·불평등주의’ 블록에 모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파는 여기가 원래 자리여서 그렇다지만, 좌파는 왜 이 자리에 와 있을까요? 피케티는 좌파 정치가 원래 자리인 ‘국제주의·평등주의’에서 ‘국제주의·불평등주의’로 서서히 미끄러졌으며, 이것이 1970년대 이후 정치가 고장 난 근본 이유라고 주장합니다. 정치가 재분배를 다루는 데 실패하면서, 즉 소유 문제를 중심축으로 끌고 가지 못하면서, 좌절한 유권자들이 경계 문제로 몰려갔습니다. 21세기 들어 정체성 정치가 분출한 것은 인간 본성 같은 이유가 아니라 정치가 고장 났기 때문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좌파가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1970년대 이후 선진국 좌파 정당들은 불평등 문제를 다룰 역량을 갈수록 잃어갔습니다. 거대한 두 조류, 세계화와 고학력화 때문입니다. 세계화는 국가 차원에서 재분배 정책을 펼 공간을 좁혔습니다. 이제 기업이나 부자에게 세율을 높이려 하면 이들은 더 연결된 세계를 타고 조세를 회피합니다. 역으로 정부가 세율 덤핑 경쟁을 펼치는 처지로 몰렸습니다. 이러면 재분배의 도구가 사라집니다. 좌파 정당이 세계화 시대에도 작동하는 자원 재분배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하자 저학력·저소득 노동계층이 좌파 정당에서 이탈했습니다.

 

사람들이 갈수록 많이 대학에 가는 고학력화 문제도 좌파 정당에는 큰 도전입니다. 초중고 교육은 국가가 투자해서 국민 모두에게 제공하면 몇 배의 이득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대학 교육은 기본적으로 이런 전략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국민 모두가 대학 교육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고, 대학 교육을 받을 지적 역량을 모두가 균질하게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초중고 교육을 확대하면 매우 뚜렷하게 평등화 효과가 나타납니다. 하지만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는 고학력화는 아직까지는 불평등의 동력입니다. 좌파 정당이 대졸자의 당이 되는 경향은 ‘먹고살 만한 사람들’의 관심사로 좌파 정당을 끌어당겼습니다. 저학력 유권자는 이탈하고 고학력 유권자가 유입되는 두 힘이 맞물린 결과가 〈그림 2〉입니다. 출구조사에서 대졸자의 바이든 지지율은 55%, 비(非)대졸자는 49%입니다.

 

그러니까, 20세기 후반부터 좌파 정당은 세계화와 고학력화로 대표되는 새 시대의 도전에 답을 내는 데 실패했습니다. 세계화에 맞서 국제적인 재분배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려면 초국가적인 정치 역량이 필요한데, 그런 건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초국가 정치단위인 유럽연합은 재분배 질서를 만들기보다는, 재정지출 자율성을 옥죄는 등 각국의 재분배 역량을 제약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소유 문제는 시장의 ‘자연법칙’이라 정치가 건드릴 수 없다는 합의가 정치의 공간을 대체했습니다. 사분면의 좁은 한구석에 좌우 주류 정치가 모여든 결과는 주류 정치 자체의 위기로 나타납니다. 샌더스 현상, 트럼프의 승리, 북서유럽의 극우파 약진을 한데 묶을 말이 있다면 ‘포퓰리즘’이 아니라 ‘주류 정치의 실패’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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