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인 척

백도씨끓는물 작성일 19.03.12 22: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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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5년을 엄마와 단 둘이 살았다여자 둘이 살았지만외로움을 느끼거나 슬프지 않았다엄마와 난 매우 잘 지냈으니까.

엄마는 동네 마트에서 일을 했다그러던 어느 날일을 그만두고 공방 같은 것을 차리고 싶다고 했다워낙 손재주가 좋았던 엄마인지라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어린 시절손수 곰인형이나봉제인형 같은 걸 만들어줬는데또래의 친구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여느 때처럼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왔을 무렵엄마가 커다란 봉제 인형을 만들고 있었다실제 사람 크기의 인형이었다공방을 차리기 전에 실력을 되찾겠다며집에서 못 쓰는 이불과 솜으로 그것을 만들었다원래 엉뚱한 성격의 엄마는 그것이 완성되자 자신의 옷을 입히고사람처럼 이름도 지었다.

!”

엄마 본인의 이름이었다엄마는 자신의 분신이라며 앞으로 우리 집을 지켜줄 것이라고 했다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보면 볼수록 매우 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징그러웠다단지 헝겊으로 기워 만든 인형치고는 디테일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것을 거실 소파에 앉혀 뒀는데가끔 화장실을 갈 때나 물을 먹으러 갈 때눈이라도 마주 치면 기분이 찜찜한 것이 매우 신경이 쓰였다.

엄마인형 좀 치우면 안 돼아니면 공방에 들고 가던가...”

엄마도 그러고 싶었지만인형이 꽤 무게가 나가는지라 어느 정도는 이해를 했다부산 중앙동에서 문현동까지 그것을 들고 길을 오르내리기가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엄마 역시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어느 날부터 인형을 엄마 방에 두었다.

그날 이후로 좀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아직 엄마가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엄마의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하고가끔 엄마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그럴 때마다 엄마의 방에 갈 때면엄마가 만든 봉제 인형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사실 자존심이 상해서 무서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속마음은 소름이 온 몸에 돋아 소리치고 싶었다.

엄마저 인형 좀 버려... 진짜 기분 나쁘다니까아니면 내일이라도 공방에 가져가던지?”

하지만 엄마는 웃기만 할 뿐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가끔 엄마가 정신없이 나가고 나면 그것이 문 앞에 머리만 빼꼼 내밀고 있는데마치 훔쳐보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그것이 그런 나의 기분을 아는 듯 조롱하기 시작했다피곤해서 침대에 누워 있을 때면 엄마의 방에서 노랫소리가 들릴 때도 있고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빈번하게 들렸다놀라서 벌컥 문을 열고 나가면엄마는 없고 인형만 덩그러니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 진짜엄마가 없을 때... 계속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니까인형이 움직이는 것 같아왜 내 말을 믿지 않는 거야엄마가 공방에 들고 가지 않으면 내가 버릴 거야.”

공방에서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 있었는지엄마는 나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놔둬라애초에 네가 내 방에 안 들어가면 되잖아내가 한두 번 웃고 넘겼는데너무 이기적인 것 아니니?”

사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면내가 미친년이지어떤 사람이 인형이 절로 움직인다고 말하면 믿을까?

그날 이후일부로 회사에 마치면 늦게 들어가곤 했다인형과 마주치기 싫었기 때문이다회사에서 퇴근을 하면 일부러 저녁을 먹고 들어가거나영화를 보고 집에 왔다꼭 그런 날은 엄마가 일찍 들어와서 혼자 집안일을 하는데딸이 되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유독 엄마는 인형에 집착을 했다매일 바비 인형처럼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혔다외로워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다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그래서 인형의 존재를 이해 해보려고 했다하지만 이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엄마가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가게 되었다. 2 3일간 혼자 지내야 했는데문득 엄마가 없을 때인형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친구 일행과 차를 타고 떠나가는 모습을 확인하고당장 엄마의 방으로 가서 인형의 머리를 잡고 분리수거 하는 곳으로 갔다그런데 도통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알 수 없었다그러면 안 되겠지만 적당한 곳에 못 쓰는 가구나소파를 버리는 곳에 엄마의 인형을 버렸다그리고 홀가분하게 집에 들어왔다.

금요일 밤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지내는 저녁이라 치킨을 주문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주문한지 10분도 되지 않아서 도착하는 것이 이상했지만그래도 빨리 배달이 되는 경우가 있어서 반갑게 문 앞으로 갔다그런데 이게 웬걸문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문 열어.”

엄마가 기분 신경질적인 표정을 지으며 들어왔다마치 싸움이라도 한 듯 식식 거리며 들어왔다.

망할 년감히 나한테?”

아무래도 공황 가는 길에 아줌마들끼리 다투어서 다시 집으로 들어 온 것 같았다엄마가 걱정되기보다왠지 혼자 있는 시간이 사라진 것 같아서 아쉬움이 들었다화가 났는지 방안에서는 엄마가 온갖 투정을 부렸다문득 두려워졌다인형을 버린 걸 안다면괜히 불똥이 나에게 튈 것 같았다무서운 마음에 다시 그것을 다시 가지러가야 하나생각이 들었다.

~

걱정을 하고 있던 터에 요란한 벨소리가 들렸다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이만 천원이요.”

치킨배달이었다계산을 하고 따끈한 치킨을 건네받았다비닐봉지 안에서 따뜻하면서도 달달한그리고 튀김 특유의 고소한 향이 나의 코를 찔렀다순간 모든 걸 잊고 오로지 상자 속에 든 닭 한 마리를 뜯고 싶었다.

엄마이리 와서 치킨 좀 먹어...”

문을 열고 엄마를 불렀지만침대에 누워 잠만 잘 뿐이었다다행스럽게도 인형을 버렸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혼자서 안심을 하며상을 펴고 치킨을 뜯었다새콤달콤한 양념에 뇌를 지배당한 나는 어느새 1 1닭 시대에 맞게 몇 조각 남지 않은 상황을 남겨두었다그런데 뉴스속보라며부산에서 추돌 사고가 났다는 자막이 떴다부상자 7사망자 1... 나도 모르게 채널을 돌려 뉴스를 틀었다.

무언가가 이상했다뉴스에 사고차량을 보여주는데엄마가 타고 갔던 차량과 매우 흡사했다이상한 마음에 자고 있던 엄마를 깨우려는 찰나였다.

하지만 오랜 뒤에나는 혼자 울고 있었어~”

그날따라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이상하게 누군가가 심장을 세게 움켜쥔 것처럼 답답함과 두려움이 몰려왔다엄마였다.

엄마방에서 빨리 나와서 텔레비전 좀 봐지금 엄마 친구들....”

그런데 나는 전화 속 엄마의 말에 총을 맞은 듯 숨이 멈춰버렸다.

혜선아큰 일 났어공항 가다가 사고가 크게 났어엄마는 괜찮은데앞에 탄 은자이모가 크게 다쳤어엄마 지금 병원 가니까크게 걱정은 하지 마.”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렇다면 방에서 자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입맛이 떨어지며헛구역질이 올라왔다뇌가 인형이라고 인지를 하자몸이 석고처럼 굳어졌다온몸에 차가운 기운이 돌았다필히인형 그것이 나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그러는 순간엄마의 방에서 요란한 웃음소리가 났다.

우리 혜선이가 눈치를 챘을까이히히히히...”

마치 들으라는 듯 안방에서 혼잣말을 했다무서웠다당장 지갑을 들고 밖으로 도망을 치려고 자세를 잡았다살금살금 최대한 빠르게 보폭을 넓히며 신발을 신으려고 하는데문이 벌컥 열렸다그 자리에서 고개만 엄마의 방으로 돌렸다엄마의 모습을 한 그것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혜선아어디가니?”

이럴 줄 알았으면인형을 보다 멀리 버렸어야 했다아니갈기갈기 찢어서 태웠어야 했다엄마는 왜 그런 것을 만들어가지고 나를 위험해 빠트리는지미웠다내가 문을 열려고 하자그것이 일부러 발을 쿵쾅쿵쾅 발을 굴리며 달려왔다.

혜선아어디가게이히히히히...”

그것이 얼굴을 가까이 댔다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어떻게 인형 따위가 반나절 만에 엄마로 완전히 둔갑했을까인형이었단 사실을 모를 정도였다그것의 모습은 이미 사람이었다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그것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내 머리를 쥐어 잡았다나는 안간힘으로 버티며 문고리를 잡았다그러자 요망한 것이 또 다시 나의 손목을 잡고 문에서 나를 때어 내려 했다손이 어찌나 차가운지손목이 시려 울 지경이었다그런데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누군가가 문을 강하게 두드렸다나는 엄마가 생각보다 일찍 온 줄 알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현관문을 열었다.


암전... 

 

현관문이 열리자 기절해 버렸다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버린 인형이었기 때문이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는 누구이며전화 속 여자는 엄마가 맞을까혼란스러운 생각이 몇 초 사이에 빠르게 반복되며 나를 힘들게 했다서서히 눈이 감기면서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고 눈을 떴을 때엄마는 내가 버렸던 인형을 기우고 있었다그제야 나를 쳐다 본 엄마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런정신나간 년아내가 애초에 이거를 만들 때우리 집을 지켜준다고 말했잖아왜 멀쩡한 인형을 버린 것이야아주 네년 초상 치르는 줄 알았잖아?”

엄마의 잔소리가 격해지는 것을 보니정말 화를 내는 것이었다평소에는 교양 있는 엄마이지만한번 화를 내면 딸에게도 험한 말을 쏟아냈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부터 내가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고 했다무려 15년 동안 밤마다 시달렸는데정작 아침에 일어나면 기억이 나지 않아서 몰랐다엄마는 오랫동안 나에게 마가 낀 것이 아닐까생각했지만 무당집에 가자니자신의 성격과 맞지 않았고 그렇다고 나를 병원에 보내자니정신병자 취급을 당할까봐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그렇게 전전긍긍하다보니 15년이 지났다그러던 어느 날지인으로부터 귀신을 잡는 노인이 옆 동네에 산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아파트 경비를 봐줬던 양반이었는데사악한 귀신으로부터 사람들을 몇 차례 구했다고 했다엄마는 나를 위해 당장 노인을 찾았다.

하지만 노인은 지팡이에 의존할 만큼 쇠약해져 있었다노인은 난감해 했다.

이걸 어쩐다제 생각에는 장례식장에서 못 된 귀신이 붙은 것 같습니다. 15년을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지만그것이 사람에게 붙으면 위험해집니다그런데힘들게 찾아 오셨습니다만... 지금은 그것을 잡아드릴 수 없습니다보다 시피 제가 허리가 많이 좋지 않아서요다만 손자 녀석이 해외에서 출장을 다녀오면 꼭 잡아 드리지요콜록콜록....”

노인은 귀신이 꿈속까지 나타나서 사람을 괴롭힌다는 것은 반드시 해를 끼칠 목적이 있다고 했다자신의 말을 믿기 어렵겠지만그것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그리고 자신의 손자가 올 때까지 엄마에게 임시방편을 가르쳐주었다일단 엄마를 닮은 봉제인형을 만들어서 집에 두어라고 했다그리고 그것에 노인이 준 부적을 넣으라고 했다그래야 봉제인형이 내가 자신의 딸인 줄 알고지킨다나어쨌든노인은 그것이 집에 침입하는 귀신들을 쫓아줄 것이라고 했다사실 믿거나 말거나지만인형이 집에 있을 때는 기분은 더럽지만 숙면을 취한 건 사실이었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인형을 버렸다니그런데 엄마가 진작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이런 일은 없을 것 아닌가아니지분명 미신 같은 것을 믿는다며 화를 낼 나였다지랄 같은 성격 탓을 해야지.

그렇다면 엄마인 척을 한 그 여자는 누구였을까그리고 인형은 어떻게 3층까지 올라 온 것일까?

어느 날건장한 사내가 우리 집에 찾아오고 나서야 그것의 정체를 깨달았다아빠의 장례식장에서 붙은 잡귀들이었다내가 너무 슬프게 우는 것을 보고괴롭히기 위해 붙은 귀신들이었다왜냐하면 대부분의 귀신들은 인간의 불행을 먹고 사니까.

당신은 어머니마저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까봐 매일이 두렵군요아버지가 돌아가신 뒤그 누구도 부모님을 대신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깨달아 버렸기 때문에 늘 예민하신 것 같습니다저도 그 기분을 알지요.”

남자가 떠난 뒤이상하게도 몸이 개운했다이후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엄마와 함께 공방을 운영하며 매일을 함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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