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에게 업혀 온 아버지.

갓서른둥이 작성일 14.10.17 23:01:12
댓글 21조회 12,579추천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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힛힝!!!~~~~~~

 

잠시 애교질!~~~~~~~ 뿌잉,뿌잉!!!  ^^

 

훌라 훌라 )) ))  ((*

 

 

어제 쓰던걸 마저 완성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서요.

 

 

 

생각 해 보니 발등에 불이 떨어 졌어요.

 

 

잘못하다간 평생 한번 있는 소중한 결혼식에 민폐라도 끼친다면....

 

 

 

 

하긴,

 

요즘은 여러번 하는 사람도 많터라만.

 

 

망치면 떡만이 보고 담에 할땐 잘해 줄께 라고 할까요 ?^^

 

 

 

 

일단 사회 연습에 올인하고 그 얘긴 결혼식 끝나고 다음 주에 완성 하는거로.

 

 

 

대신 대충 적어 뒀던 이 얘길 급히 손봐서 올려 드립니다.

 

 

 

뭐......짜장 대신 짬뽕이나 탕슉 먹을수도 있지 .....안 그래요?

 

 

 

 

 

 

 

이 얘기는 지금도 자주 보는 한 불쌍한 영혼과 그 가족의 슬픈 가족사에 얽힌 얘기야.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만난건 우리 동네에 있는 어느 식당에서 였어.

 

다들 아시다 시피 요즘 식당들은 거의 써빙을 조선족 아주머니 들이 해.

 

 

이젠 홀 써빙 뿐만 아니라

 

주방 안에서 요리 하는거 까지 거의 조선족 아주머니들 이더군.

 

 

 

요즘 식당에 계신 아줌마는 10명이면 9명 이상이 조선족이라고 하더라고.

 

 

 

우리 동네도 식당이 참 많은데 일하는 분들은 다른데랑 크게 다를께 없지.

 

 

내가 자주가는 식당 한곳도 조선족 아주머니 한분이 홀 서빙을 하셔.

 

 

 

아니,

 

조선족인줄 알았어.

 

 

 

일도 야무지게 열심히 하시고 정도 많으신 분인데,

 

 

자주 보다보니 보면 웃으며 인사도 하고 안부도 묻고 하는 사이가 되었어.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좀 특이한 영이 따라 다니더라구.

 

 

그 아주머니랑 떨어지지 않고 따라 다니던 남자 영혼이 하나 있었는데

 

모습이 정말 비참 했어.

 

 

 

내가 첨 봤을 때 저게 말로만 듣던 그 아귀인가 싶을 만큼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때 본 모습은 내가 살면서 티비에서만 여러번 본 모습이었어.

 

 

 

바로 2차 세계대전 다큐멘타리에서 보던

 

유태인 포로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돌아다니던 해골 같은 유태인들,

 

그 모습과 꼭 닮아 있었어.

 

 

처음엔 악귀인가 했지만 그 영혼의 행동은

 

그 아주머니를 해치려는게 아니고 보호 하려고 하는거 같더라고.

 

 

난 해는 안 끼치겠다는 생각에 그냥 못본 척 하기로 했어.

 

 

 

그러던 어느날 이었는데,

 

우리 동네도 혼자 사는 사람이 주민들의 70%는 되는 동네야.

 

 

그러니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도 많아.

 

 

 

내가 얘기 했잖아?

 

혼자 살면 남자나 여자나 거의 사먹고 살아.

 

 

 

화학 조미료의 노예들이 되어가지.

 

 

식당을 자주 이용 하다보니 오는 손님들도 대충 낯이 익거든.

 

 

그래서 혼자가서 자리가 없을 경우 양해를 구하고 같이 한상에서 먹기도 해.

 

 

어느 날 밥을 먹으러 갔더니 마침 점심때라 자리가 없더라구.

 

 

 

혼자 온 손님이 있었는데 자주 보던 사람이었어.

 

 

자기랑 합석 하라고 해서 그 자리를 앉았어.

 

 

그 남자는 한국에서 노동 일을 하시는 조선족 아저씨 였어.

 

 

난 밥을 먹다가 무심코 아저씨에게

 

아줌마가 같은 조선족 이시라 더 잘 해주겠다고 했는데,

 

 

아저씬 그게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지으며 아주머닌 조선족이 아니란 거야.

 

 

 

난 그럴리가 있냐? 말이 그쪽 말이던데 했는데,

 

아저씬 웃으시며 그러시더라고,

 

 

 

남한 사람들은 북조선 말이랑 조선족 말을 잘 구분을 못한다고.

 

하지만 자기들으 딱 한마디만 들으면 알수 있대.

 

 

같은 조선족 말도 연변말이랑 하얼삔 조선족 말은 들으면 차이가 난대.

 

 

 

하물며 조선족어랑 북한 말은 우리가 전라도 사투리 쓰는 사람이랑 경상도 사투리 쓰는 사람이 만나서

 

 대화 하는 만큼 확연하게 틀리다더군.

 

 

 

그때 난 처음 알았어.

 

그 아주머니는 중국을 거쳐서 우리나라로 탈출한 탈북자 셨어.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일이 좀 늕게 끝나서 집에 밥도 없고 ,

 

하기도 귀찮아서 사먹고 들어가기로 하고는 그 집엘 갔어.

 

 

 

근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일찍 끝냈던지,

 

아니면 쉬는 날이던지 가게에 간판 불이 꺼져 있더라고.

 

 

 

아!!!   또 어딜가나 ? 하고 속으로 고민을 하며 지나가고 있었는데,

 

홀안에 사람이 있던거야.

 

 

 

불 하나를 켜두고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어.

 

 

난 누군가 하고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아줌마랑 처음 보는 젊은 남자 하나가 앉아 있더라구.

 

 

 

아주머니는 가게를 기웃 거리는 날 발견하고는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더라.

 

 

난 그냥 갈까 하다가 가게 문을 밀며 들어갔어.

 

 

아주머니가 밥 먹으러 온거냐기에 그렇타고 하니

 

그날이 한달에 두번 쉬는 휴일 이었던거야.

 

 

 

난 죄송 하다며 그냥 나오려 했는데,

 

남자를 소개해 주더라고.

 

 

 

자기 친 남동생이라고 하며

 

서울에서 일을 하는데 그날 누나 만나러 온거라며 같이 술 한잔 중이었대.

 

 

 

그러시면서 돈은 안 받을테니 배 고플텐데

 

그냥 있는 반찬에 밥 한술 뜨고 가라고 하시는 거였어.

 

 

 

딴데 또 가기도 귀찮았던 나는 그럼 실례한다고 하고는 합석을 했지.

 

 

아줌마가 가져다 주시는 공기밥을 안주를 반찬 삼아 먹고 있었는데

 

두 남매는 하던 얘길 이어 나갔어.

 

 

 

그러다가 동생이 그런거야.

 

"누나, 이제 잊어 버리자!!!  아마 아바지는 돌아가신게 틀림 없어...."

 

 

 

그 소리를 들은 아주머니가 갑자기 흥분을 해서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집어 던지시고는

 

동생이라는 남자의 귓싸대기를 힘껏 날리셨어.

 

 

 

"종간나!!! 어따 아바지가 돌아가셨단 얘길 하니? 니 오늘 내손에 죽어 보갔어? "

 

 

 

걸쭉한 이북 사투리와 함께 성질 폭발 시키신 아주머니는 한참이나 씩씩 대신거야.

 

 

난 옆에서 밥 먹다가 날벼락을 맞고는 얼음 땡 되어서 또르르르 눈치만 보고 있었어.

 

 

 

그제야 내가 있던걸 알아차린 아주머니는 급히 내게 사과를 하셨어.

 

 

그리곤 아무래도 설명을 해야 하신단 생각을 하셨는지

 

 내게 자신의 얘기를 들려 주신거야.

 

 

 

아주머니는 북한의 평범한 노동계급인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나선

 

밑으로 4명의 동생을 두고 있었던 평범한 가정의 장녀였대.

 

 

그날 같이 있었던 남자가 아줌마의 막내 동생이라고 하더군.

 

그냥 잘 살진 못해도 배급 받아 밥은 안 굶을 정도의 생활은 하셨다는데,

 

내 또래인 막내 동생이 아직 입학도 하기 전인 어린 시절에 동구권 공산국가들이 무너지면서

 

북한의 그 유명한 고난의 행군 시기가 찾아 왔다고 해.

 

 

 

사실 우리나라도 간혹 혼자 사는 분이 굶어서 죽었다는 고독사 소식이

 

간간히 사회면을 장식하지만,

 

 

특별한 지병이 없는 사람이 굶어 죽는 일은 없어. 그치?

 

 

 

어딜 가도, 하다 못해 역전만 나가도 무료로 밥 한끼 주는덴 널렸어.

 

 

 

굶어 죽어 가는 사람에게 밥 한끼 사주는 걸 마다할 사람도 없을테고 말야.

 

 

 

그런데,

 

정말 사람이 먹을게 없어서 굶어 죽더란다.

 

 

 

자고 일어나면 누가 굶어죽었단 소식은 일상 다반사 이고,

 

굶주림에 못 견뎌 죽은 사람을 먹었다는 흉한 소문도 끝이 없더래.

 

 

 

 

눈물을 흘리며 하시는 아주머니의 얘긴 정말 우리가 힘들다 힘들다 하는 투정이

 

얼마나 사치스런 일인가를 일깨워 주더라구.

 

 

먹을께 없어서 굶어 죽어가는걸 본 사람들에게 우리가 하는 투정은 얼마나 사치스럽겠어?

 

 

밥이 맛 없다.........그 맛 없는 밥 한끼가 없어 굶어 죽는데 말야.

 

 

 

아주머니는 5남매 였던 형제중에 3명을 굶주려 잃었다고 해.

 

 

겨우 자기랑 막내 동생만 살아 남았는데 성장기를 그리 보낸

 

그 남동생은 지금 내 또래 인데도 한국 요즘 남자키로

 

평균보다 약간 큰 둥이랑도 한뼘 이상 차이가 나더라구.

 

 

 

이 친구 얘기가 자기 또래 북한 남자중엔

 

자기는 보통 이상은 되는 키라고해.

 

 

겨우 155 될까 말까하는 우리 눈엔 정말 난장이 똥자루 인데......

 

 

 

솔직히 우리 나라가 북한이랑 전쟁하면 지네 마네 말들이 많은데

 

전쟁나면 1주일 안에 북한 정도는 다 밀어 버릴꺼라고 생각해.

 

 

 

해군, 공군은 아예 께임 조차 안되고 그나마 좀 나은 육군도 솔직히 주먹으로도 때려 죽일수......

 

아마 북한군은 완전 군장 메고 뛰어 올 힘도 없을꺼야. ^^ㅋㅋㅋ

 

 

 

 

어머니도 굶어서 돌아가셨대.

 

 

자식들을 굶주림에 다 잃은 어머니는 남은 자식들을 더 잃을순 없다는 생각에

 

자신이 먹어야할 음식까지 다 자식들에게 먹이시고는 어느 추운 겨울날

 

불기 하나 없는 방에서 굶어서 동사를 하셨던 거야. ㅠㅠ

 

 

 

어머니 마져 돌아 가시자 어린 아주머닌 학교고 뭐고 안 나가고

 

오직 살아남기 위해 뭐든 다 하셨다고 해.

 

 

 

온갖 힘 쓰는 일에서 부터 도둑질까지 안 해본게 없다고 하셔.

 

 

그 도둑질 누가 감히 잘못이라 얘기 하겠어?

 

 

그러시다가 나중에 강을 넘어 중국으로 가셨다고 해.

 

 

 

중국에 가면 최소한 굶지는 안아도 되었다니 말야.

 

 

 

아버지는 어른이라 감시가 심해 못 가시고

 

어린 동생만 데리고 중국에 가셨는데

 

그곳에서 얼마 안가 동생이랑도 헤어지셨다고해.

 

 

 

계속 불행은 찾아와 아주머닌 중국의 인신매매 조직에 붙잡혀선

 

탈북자란 약점으로 성 노예로 살으셨다고 해.

 

 

 

꽃다운 처녀의 몸으로 중국 시골의 50이 다된 홀아비의 첩으로

 

팔려 가셔서는 모진 고통의 시간을 보내셨대.

 

 

 

다행인건 동생과 극적으로 만나게 되었던 일이었다고 해.

 

 

 

그리곤 용기를 얻은 아주머니는 북한에 홀로 남으신 아버지를

 

탈북 시키려고 연락할 방법을 찾아 팔방으로 뛰신거야.

 

 

 

 

하늘에 정성이 닿았는지 어느 날 아버지의 편지를 한통 받게 되었대.

 

 

 

그리고는 언제 탈북 하기로 미리 계획을 짜시고는

 

자기는 국경 건너에서 아버지를 마중 하기로 했다고 하더라구.

 

 

 

그리고는 계획 했던 날 약속 장소에서 이제나 저제나 아버지를 기다렸는데,

 

감감 무소식 이었다고 해.

 

 

 

나중엔 아버지의 탈북을 도우러간 브로커만이 돌아 왔는데

 

아버진 약속 장소에 나오질 않으셨고,

 

일이 틀어진걸 알아차인 브로커는 잠시 기다리다 자기만 급히 도망친 거였어.

 

 

 

그리고는 아무리 백방으로 수소문 했는데 소식을 알수 없더란다.

 

 

 

그러시면서 자기 남매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한장 남은 사진이라고 하시면서

 

수첩에 고이 보관해둔 사진 한장을 꺼내 보이셨어.

 

 

 

거기엔 생전에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시절의 한 가족의 모습이 담겨 있었어.

 

 

 

아줌마랑 막내를 포함한 지금은 세상에 없는 남매들이 웃고 있었고.

 

돌아가신 어머니랑 행방 불명이 되신 아버지까지...

 

 

 

 

난 그 사진을 보고서야 일이 어떻게 된건지를 어렴풋이 상상했어.

 

 

 

사진 속의 그 가정의 가장인 아버진 바로...........모습은 많이 상했지만 아줌마를 따라다니는

 

그 영가가 분명 했거든.....

 

 

 

 

 

그날 아버진 약속 장소에 오셨던거야.

 

 

 

다만 살아서가 아니라 죽음을 당하셔선 영혼으로 말이지.

 

 

 

그리고 그 뒤론 쭉 아주머니를 따라 다니신거 같아.

 

그리곤 아주머니를 보호 했던 건가봐.

 

 

 

아주머니가 중국을 탈출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던건

 

아주머니를 돈 주고 샀던 그 중국인

 

늙은 농부 였다고 해.

 

 

 

아주머니가 도망을 갈까봐 감시가 이만 저만이 아니였다고 해.

 

 

 

젊은 조선인 첩의 부탁을 그래도 잘 들어주고

 

동생 찾는데도 아버지 찾는데도 협조를 해 주었었지만,

 

도망 못가게 감시의 눈은 늦추질 않았다고 해.

 

 

 

아주머니가 중국을 거쳐 3국을 거쳐 한국으로 올수 있었던건

 

그 남편구실을 하던 중국인 농부가 갑자기 급사를 한 후였다고해.

 

 

 

나이는 있어도 아무런 지병도 없이 너무 건강하던 사람인데

 

 하룻밤새에 급사를 맞은거야.

 

 

난 그게 그 아주머니를 따라 다니시는 아버지의 영혼이 한 짓이라 확신해.

 

 

 

그 아버지 살아 생전 평범한 노동자 셨다던대.

 

간혹 번뜩이는 광기가 느껴졌거든.

 

 

 

 

사람을 죽여본 살인자는 눈빛부터 틀리다고 하잖아?

 

영혼도 그래.

 

 

 

사람을 죽여 본 영혼은 그 분위기 부터가 틀려.

 

 

평범한 영혼은 사람을 해치면 자신도 거기 상응하는 벌을 꼭 받기에 두려워 하지만,

 

어떤 이유던 사람을 해쳐본 영혼은 또 다시 그런일을 하는걸 마다하지 않아.

 

 

 

이판 사판 공사판 인거지.

 

 

어차피 하나 죽이나 10 죽이나 받는 벌은 비슷해.

 

 

 

하나라도 해치면 벌은 맥시멈으로 받게 되어 있으니깐.

 

 

흔히 사람 해치는 맛을 들인 귀신을 통상 악귀라고 부르는 거야.

 

 

 

그 아버지 영가가 그래.

 

평소 아주머니를 항상 측은히 보시고

 

아주머니에게 친절한 사람들에겐 따뜻한 눈길로 대하지만,

 

 

 

식당 같은곳 보면 괜히 그런데 일한다가 무례하게 굴고 막 대하고 하는 사람들 있잖아?

 

 

꼴 같지 않은게 손님은 왕이네 뭐네 해가면서.....

 

 

 

아주머니께 무례하게 굴거나 해 끼치는 사람에겐 대단한 살기를 뿜으시는데

 

그건 내가 볼때 분명 사람을 해쳐본 영가의 기운이야.

 

 

 

 

난 아버지 영혼이 좀 자중 하셨으면 해.

 

 

 

그 불행한 얘길 아니 나도 아주머니가 동정이 가고

 

아버지가 안 잡혀 가셨으면 좋겠는데,

 

 

내가 저승에 꼰지르진 않겠지만,

 

지나가던 특공 저승사자라도 보시면 바로 달려 가실텐데...

 

 

그 분들에겐 이유 따윈 없어.

 

일반 영은 바로 코앞에 지나가도 관심을 안두시는데

 

사람 해친 악귀는...........바로 현장 체포거든.

 

 

아주머니는 남한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여러차례 위기가 있으셨는데,

 

그때 마다 뭔가 알수 없는 힘이 자기를 도운걸 느꼈다고 해.

 

 

 

아주머닌 그게 먼저 돌아가신 어머니나 형제들이 도와줬다고 얘기 하셨지만,

 

난 그게 아버지가 도우신걸 알아.

 

 

아주머니는 아버진 꼭 살아 계실꺼라고

 

언젠간 꼭 찾고 말꺼라고 다짐을 하셨는데,

 

 

 

난 사실을 얘기 할수가 없었어.

 

신념이 그리 강하시니 믿지도 않으시겠지만,

 

 

모진 세상 살아가시면서 그런 희망 하나 가지고 사시는건 너무 좋은 일이니 말야.

 

 

 

아마 아버진 탈북 계획이 발각 되어

 

어느 보위부 지하 고문실에서 돌아 가셨을꺼야.

 

고문을 받으시다가 말야.

 

 

 

끝까지 아주머니의 행방은 안 대셨겠지.

 

그러니 아주머니가 무사 하신 걸테고.

 

 

 

아버지가 고문으로 돌아 가신거란 예상은 영혼에 새겨진 상처로 짐작이 갔어.

 

 

 

내가 총상으로 죽은 사람 영혼도 봤는데

 

그건 총상으로 죽은 상처가 아니였어.

 

 

총살 당하신건 아닌데 상처가 많았거든.

 

 

 

난 꼭 만나실꺼라고 위로를 드리고는 그 사진을 사진관에 가져 가시면

 

요즘 한국 기술이면 바로 어제 찍은것처럼

 

사진을 다시 만들어 준다고 아주머니께 알려줬고

 

그런거도 있냐고 반색을 하시던 아주머니는 다음날 바로 달려가선

 

사진을 보정 하셨어.

 

 

 

나중에 고친게 나왔는데 잘 나왔더군.

 

 

 

난 아버지가 돌아가신걸 알기에

 

아주머니껜 요즘 탈북자들의 그런 안타까운 사연을 이용해서

 

사기치는 사람이 많으니 절대 돈을 요구해도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절대 돈을 주면 안된다고

 

누차 강조 했는데 아마 아주머닌 틀림 없이 몇번 속으실꺼야.

 

 

 

제발 맘이 많이 안다치셨으면 좋겠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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