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로오데 작성일 22.03.27 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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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 알마 

 

 

우리 시대의 위대한 의사, 별이 되다

 

가장 영향력 있는 신경학자이자 저술가였던 올리버 색스의 대표작

 

그는 환자를 편견과 지식으로만 대하지 않았으며 신중한 접근으로 그들의 삶을 먼저 생각했다.

환자를 정상과 비정상으로 섣부르게 나누지 않고, 동정 대신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뇌과학, 신경의학 분야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단단한 주춧돌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날 P가 나를 찾아왔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는 교양이 넘치는 매력적인 사람이었고, 말도 또박또박 잘하는 데다 상상력과 유머감각도 풍부했다. 그가 왜 나를 찾아왔는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정도였다.

“어디가 안 좋아서 오셨나요?” 하고 묻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 눈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아무런 시각적인 문제도 못 못느끼신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럼요,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하지만 가끔씩 실수를 해요.”

 

 P선생은 오랫동안 뛰어난 성악가로 명성을 날렸던 지방의 음악교사였다. 그에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음악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무렵이었다. 학생들이 자기 앞으로 다가와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학생이 말을 걸면 목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누구인지를 알았다. 상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눈앞에 아무도 없는데도, 사람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거리를 거닐다가 소화전이나 주차요금 자동징수기를 보면 마치 아이들의 머리라도 본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구의 장식을 향해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가 아무런 대답이 없어 깜짝 놀라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도 처음 한동안은 그가 착각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웃어넘겼다. P자신도 웃었다. 그에게는 남다른 유머감각이 잇었고 선문답처럼 들리는 역설과 과장이 그의 장기이기도 했기 때무니다. 안과를 방문 검사를 받았다.

 “선생님의 눈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하지만 시각을 담당하는 뇌 부분에 문제가 있네요. 저보다는 신경전문의에게 가보세요.” 하고 말했다. P선생이 나를 찾아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P선생은 창가에서 평온하게 창밖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바라보고 있다기보다는 듣고 있었다.

“차 다니는 소리가 들리네요. 저기 멀리서 기차 소리도 들리고요. 마치 교향곡처럼 들리지 않나요? 혹시 오네게르의 <퍼시픽231>이라는 곡을 아시나요?”

 정말로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이런 멀쩡한 사람에게 어떻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걸까?

 

 늘 하던 일상적인 검사인 근육 강도, 팔다리 협조 기능, 반사 반응, 피로도 검사 등을 하는 사이에 불안감은 조금 가라앉았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처음으로 이상한 점이 눈에 띈 것은 반사 반응을 검사할 때였다. 왼쪽 구두를 벗기고 열쇠로 발바닥을 긁자 작은 이상 징후가 나타난 것이다. 시시해 보일지 몰라도 이것은 반사 반응을 검사할 때 반드시 해야 하는 과정 중 하나이다. 그런 다음 그에게 신을 신어도 좋다고 말하고 검안경을 준비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1분이 지나도록 신을 신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좀 도와드릴까요?”

“뭘요? 누구를 도와주신다는 말씀이지요?”

선생님이 신을 신는 것 말입니다."

“아차, 신을 깜빡했군요.”

 그는 마치 독백이라도 하듯 “신?신?”하며 난감해했다.

 나는 다시 말했다. 

“선생님의 신 말이에요. 조금 전에 벗어놓았던 신 말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아래쪽을 찾았지만, 엉뚱한 곳만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의 시선이 자기 발에 가서 딱 멈추었다.

“이게 내 신 맞죠?”

 내가 잘못 들은 것일까? 아니면 그가 잘못 본 것일까?

 손을 자신의 발에 갖다대며 이렇게 말한 것이다.

“제 눈이… 이게 제 신 맞죠? 아닌가요?”

“아닙니다. 그건 선생님의 발이에요. 신은 저쪽에 있어요.”

“그런가, 어쩐지 발인 것 같더라니.”

 농담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님 미쳤을까? 아니면 정말 눈이 안보이는 것일까? 이게 바로 그가 말하는 ‘이상한 실수’라면 그것은 내가 본 중에 가장 이상한 실수일 것이다.

 

 그의 눈은 사물을 보는 데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지를 펼쳐서 그에게 보여준 다음 그 잡지에 어떤 사진이 있는지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반응은 아주 이상했다. 그의 눈은 내 얼굴을 쳐다볼 때처럼 여기저기로 빠르게 옮겨다니며 각각의 세세산 특징을 잡아냈다. 그중에서도 특히 발게 빛나는 것이나 색채, 형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설명을 했다. 그러나 결코 장면 전체를 파악하지는 못했다. 미치 레이더 화면이라도 확인하는 것처럼 사소한 것은 잘 보았지만 전체적인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사진의 전체적인 인상에 대해서도 관심도 두지 않았고 말을 하려 들지도 않았다. 풀경이나 전체적인 장면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모래 언덕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사하라 사막의 사진이 실린 잡지의 표지를 보여주었다.

“이 사진이 뭐로 보이나요?”

“가이군요. 물 위로 테라스가 딸린 작은 집이 있고, 사람들이 테라스에 나와 식사를 하고 있고요. 색색의 파라솔이 여기저기에 보이네요.”

 그는 표지에서 시선을 떼고 허공르 보면서(본다는 말이 맞기나 한걸까?)사진에 있지도 않은 것들을 꾸며대서 말하고 있었다. 사진에 있지도 않은 강, 테라스, 색색의 파라솔을 상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 나타난 미소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는 검사가 다 끝났다고 여겼는지 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뻗어 아내의 머리를 잡고서 자기 머리에 쓰려고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것일까? 그런데도 그의 아내는 늘 있어온 일이라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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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이야기

 

 P선생이 장갑을 장갑으로 보고 판단할 수 없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까? 비록 인지적인 가정은 잘했지만 인지적인 판단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판단이란 것은 직관적이고 개인적인 동시에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다. 우리는 사물을 접할 때 그것을 다른 것들과 관계 속에서 ‘본다’ P선생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이 ‘보는’능력 즉 관계를 짓는 능력이었다(그의 판단력은 그 밖의 역역에서는 정상적이며 동시에 빠르기까지 했다). 시각 정보의 부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데 문제가 있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의 태도에 문제가 있어서 자기가 본 것을 자기 자신과 연관시키기 못했던 것일까?

 

 우스꽝스리운 동시에 무서운 비유일 수도 있지만, 현재 우리의 인지신경과학과 인지심리학은 P선생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P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인지과학 역시 P선생과 마찬가지로 시각인식불능증에 걸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P선생의 사례는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에게 던져진 하나의 경고이자 우화일 수도 있다. 판단이나 구체적인 것, 개밸적인 것을 등한시하고 완전히 추상적이고 계량적으로만 변해가는 과학이 장차 어떻게 될지에 대한 경고 말이다.

 나로서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P선생의 예후를 계속 관찰해 더 실제적인 병리학적 연구를 진행하지 못한 일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로 남았다.

 

 

 이 책은 24편의 ‘기적’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모여 있습니다. 단순히 그러한 사례들을 보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본다거나 흥미 본위로 읽는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며, 저자의 의도나 진심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병마의 도전을 받아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하고 일상생활을 단념해야 하는 환자들은 그 나름대로 병마와 싸우며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비록 이길 수 없는 싸움이고 뇌의 기능은 정상으로 되돌아올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인간이라는 사실까지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혼’은 과학적 용어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현상이 있습니다. 작가는 병 자체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렇게 진한 감동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책리뷰를 시작하게된 계기된 도서입니다. 애인분이 장애에 고통 스러워해서, 용기를 줄수 있는 도서를 추천 해달라는 글에 답글을 쓰다 댓글 자수 제한으로 따로 글을 쓰다보니, 이어져 책 리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읽고 나면 사람에 대한 사랑의 의미를 새롭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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