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지리의 복수

로오데 작성일 22.03.06 15:42:54 수정일 22.03.06 15:4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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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D. 카플란

 

모든 역사는 지리 위에서 완성되었다.21세기 역사는 그 역사의 반복일 뿐이다.

 

 유럽, 러시아, 터키, 이란, 인도, 중국 등 유라시아 주요. 세력들의 한가운데에는 유라시아 심장지대가 있다. 20세기 초엽에 지리학의 기두 헬퍼드 J. 매킨더는 이런 말을 남겼다. “유라시아 심장지대를 차지하는 자가 유라시아전체를 지배하고 나아가 세계를 지배한다. 일찍부터 '지리'의 중요성을 간파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되살려 도구로 삼은 이 책의 지적 여정 끝에, 로버트 카플란이 도달한 결론은 매킨더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가까운 미래에 유라시아의 모든 곳은 하나로 연결되어 점점 좁아질 것이고, 세력들은 공식처럼 유라시아심장지대로 쇄도할 것이다. 세계 육지의 3분의 2는 아프리카를 포함한 유라시아이고, 나머지 3분의 1은 아메리카이다. 유라시아가 특정 패권국의 손에 넘어갈 경우,유라시아 바깥 세력인 미국에게는 묘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국이생각하는 전략은 무엇인가? 또한 우리는 국제정치의 큰 흐름을 어떻게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

 

들어가기에 앞서

 

 이책은 앞서 소개해 드린 ‘지리의 힘’보다는 난이도가 있습니다. 미국의 시선으로 바라본 지정학입니다. 매킨더의 논문 ‘역사의 지리적 추축(The Geographical Pivot of History)’ 논문을 기초로 하여 쓰여 졌습니다.

 

 제1부는 지리학, 혹은 지정학(geopolitics)의 토대를 세운 인물들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제2부는 이론을 통한 실전을 이야기 하며각 지역들이 놓은 지리적 요건의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하고, 역사적으로 

          그 장점과 단점이 어떻게 작용하였는지를 살핍니다.

 제3부는 결론격으로 미국의 입장을 대상으로 적혀져 있습니다.

 

 프롤로그 부분에서 와 닿았던 문장입니다.

 

  모겐소는 세계가 ”인간 본성에 내재한 힘의 결과물" 임을 인식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그리고 투키디데스의 말을 빌리면, 두려움(phobos), 이기심(kerdos), 명예(doxa)가 인간의 본성을 움직이는 요소들이다. 모겐소는 그러므로 “세계를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이 요소들에 맞설 것이 아니라 협력해야 한다”고 썼다.

 

 “모든 나라들은 그들의 열망과 행동을 인류의 도덕적 목적으로 겉꾸림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며, 그 유혹에 오랫동안 저항할 수 있는 나라도 드물다.국가들이 도덕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국제 관계 속에서 선악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것 처럼 가장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개인들보다 도덕적 압박이 심한 세계에서 움직여야 하는 것도 국가가 지닌 한계다. 모겐소의 말을 빌리면 “개인은 스스로에게…… ‘인류가 멸망해도 정의는 실현되어야 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국가는 보호해야 할 국민의 이름으로 그런 말을 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1부

 

선각자들

 

 

 

5장 나치의 지정학적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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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지세력을 계승한 독일과 러시아는 해양세력을 계승한 미국과 영국보다 지리를 한층 의식하며 살아왔다. 그 세월이 수백 년에 달한다. 특히 러시아는 몽골족의 금장한국에 유린당했던 기억 때문인지 지리를 단순히 확장하지 않으면 타국에 침탈당할 위험이 있는 존대로만 이해했다. 따라서 영토에 대한 욕심을 거둘 줄 몰랐다. 냉전기에 소련이 동유럽 위성국가들의 제국을 수립하고, 군사력을 사용하며, 파괴 행위를 일삼고, 송유관 및 가스관로를 배치한 것 모두 근외 지역을 확보해 자국의 고질적인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듯 지금의 러시아가 옛 소련을 복원할 필요성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독일도 그와 다를 바 없이 최소한 20세기 중엽까지는 러시아보다 더 지리를 의식하고 있었다. 중세부터 근대까지 유럽 지도에서 독일어권 지역의 모양이 같았던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것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다 1860년에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주도 아래 통일이 이루어지면서 독일도 마침내 육지세력 겸 해양세력으로 유럽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어, 해양세력인 서유럽 및 러시아-동유럽 심징지대와 연결되었다는 연대감을 갖게 되었다. 독일이 덴마크, 오스트리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프랑스(프로이센-프랑스 전쟁)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도 궁극적으로는 예리한 지리적 감각을 지닌 비스마르크의 탁월한 전략, 독일의 한계를 인식해 동쪽과 남동쪽의 슬라브 지역에는 손을 대지 않았던 그의 탁월한 전략이 빚어낸 결과였다. 이랬던 독일이 1차 대전 때는 비스마르크의 신중함을 버리고 육심을 부리다 결국 패전국이 됨으로써 전보다 더욱 통렬하게 지리적 위착성을 갖게 되었고, 그와 더불어 지리에 대한 가능성도 함께 의식하게 되었다. 독일은 침략당할 개연성과 확장의 개연성을 동시에 지닌 동서쪽의 평지와 더불어, 북쪽의 바다와 남쪽의 알프스산맥 사이에도 위치해 있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늘 지도의 모양이 들쭉날쭉했다. 지리가 독일인들에게 삶이 되다시피 한 것도 그래서였다. 정치, 군사적으로 지배된 지리적 공간의 개념을 지닌 지정학이 생겨나 정교하게 발달한 곳이 독일인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았다. 이랬던 독일이 2차 대전 이후 수 세대 동안 지리와 지정학을 다시금 불신하게 된 것도, 매킨더에 많은 빚을 진 20세게 초의 지리학 이론에 원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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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카를 하우스호퍼의해 왜곡된 매킨더의 저정학을 히틀러가 [나의 투쟁] 14장에 받아 들인 정황이 있고, 히틀러의 유럽 침공을 지정학을 통해 정당화 되고, 패망 후 슈트라우스 휴페에 의해서 

 

 “나치의 전쟁 기계가 정복의 도구라면, 지정학은 그 도구를 사용할 사람에게 정복의 대상과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고안된 마스터 플랜이다. 지금도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지정학이 주는 교훈이 혜택을 누려야 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나치 지정학을 경고하였습니다.

 

 

 

 

 

 

2부 

 

21세기 초엽의 지도

 

 

 

 

10장 러시아와 독립된 심장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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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대전을 무대로 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대하소설 [1914년 8월]은 캅카스산맥에 대한 이런 서정적 묘사로 시작된다. “뾰족뾰족한 봉우리 하나하나가…… 짙푸른 골짜기들에 대비되어 새하얗게 빛나는…… (캅카스산맥의 전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인간의 왜소한 창조물 위로 너무도 장대하게 솟아오르고, 인간이 만든 세계 속에서 너무도 태연자약한 그 모습에 지난 수천 년을 살다. 간 인간들 모두 있는 힘껏 팔을 벌려 자신들이 만든 모든 것들을 그 안에 끌어모아…… 산더미처럼 쌓아올려도 그처럼 멋진 산맥을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 같았다.” 솔제니친은 이어 “눈 덮인 대지”, “벌거벗은 험한 바위산”, (계곡의) 갈라진 틈과 산마루”, “진짜 구름과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자욱한 안개 파편” 등 시시각각 변해가는 산맥의 모습도 기록했다

 

 캅카스산맥은 역사기 내내 러시아인들, 특히 솔제니친과 같은 맹렬한 민족주의자들에게 경외감과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최고봉의 경우에는 높이가 5,480미터에 이르고 둘레도 960킬로미터나 되는, 흑해와 카스피해를 잇는 육지다리, 북쪽으로 끝없이 이어진 초원지대를 지난 뒤에는 더욱더 사람을 매료시키는 그곳을 기점으로유럽은 점차 모습을 감추고 러시아의 이른바 와일드 웨스트가 시작되는 것이다. 17세기 이래 러시아 식민주의자들이 체첸인, 잉구슈인, 오세티야인, 다게스탄인, 아브하즈인, 카르트벨리아인, 카헤티아인, 아르메니아인, 아제리인 등 자부심 강한 종족들을 복속시키려 했던 곳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남쪽에 위치한 바로 그캅카스산맥이었으며, 온건함과 무자비함의 양면성을 동시에 지닌이슬람을 러시아가 마주친 곳 또한 캅카스산맥이었다. 캅카스산맥은 이처럼 러시아인들에게 이로운 존재인가 하면 또 위험한 존재였고, 그 점에서 산맥의 적나라한 현실에 나타낸 러시아인들의 착잡한 감정적 반응이야말로 러시아 역사 전반을 이해하는 창이 될 만하다.

 

 캅카스산맥 역시 러시아가 대중동의 정치, 종교적 격변을 피하기 위한 방벽으로 삼기 위해 반드시 지배해야 하는 곳이었다.

러시아가 직면한 또 다른 지리적 현실은 혹한이었다. 실제로 러시아의 기후와 지형 조건은 러시아인들의 기질과 러시아 역사를 결정짓는 열쇠가 될 만큼 가혹하기 이를 데 없다.

 

 맥길대학교 교수를 지낸 러시아 역사 전문가 필립 롱워스도 러시아인들이 “고통을 감내하는 능력, 모종의 공동체주의, 공익을 위해 개인을 기꺼이 희생시키려는 태도”를 갖게 된 것이 강추위 때문이라고 보았다. 고위도 지방이어서 식물의 생장기가 짧다보니 “농부들 간에 상호 의존성”이 필요했고, 파종과 추수도 서둘러야 했기 때문에 “들에서 장기간 힘들게 일하는 것도 모자라 아이들까지 동원할” 수밖에 없어 초래된 결과였다는 것이다. 롱워스는 추위로 인한 잉여 농산물의 부족 또한 신흥국 러시아 엘리트층의 광대한 토지 보유를 부추겨, 농부들의 자발적 근로 의욕을 꺾음으로써 일상에서도 “폭력성”이 나타나게 하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했다. 근대까지도 계속된 개인의 자유에 대한 모종의 경멸적 태도와 더불어 러시아 공산주의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혹한의 지형에 원인이 있음을 알게 된다. 토지 개간, 동토에 세워진 교회 건물과 요새, 정교회의 기도문을 읊조리는 행위 모두 가슴 미어지는 공동체주의를 나타내는 상징이 된 것도 그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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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천연가스 보유국, 세계2위의 석탄 보유국, 세계 8위의 석유 보유국이다. 그리고 이 자원의 대부분은 우랄산맥과 중앙 시베리아고원 사이, 서부 시베리아에 묻혀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러시아는 많은 나라들, 특히 중국의 물 부족이 심화되고 있는 역사상의 이 시점에 산, 강 그리고 동부 시베리아 호수들에 막대한 양의 수력 전기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많은 에너지를 푸틴은 대통령 재임 첫 7년 동안 국방 예산을 4배로 늘리는 데, 특히 공군력을 증강하는 데 사용한 것이다. 이후에도 러시아의 국방비는 계속 늘어났다. 러시아인들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극권과 태평양을 제외하면 변변한 지형적 경계가 없다는 러시아의 지리적 현실을 인식하고, 러시아 사회 내에 “깊숙이 뿌리박힌 군국화”“육지 제국의 창설을 통한 안정의 추구”라는 현실을 받아들인 듯하다. 그리고 푸틴은 러시아가 지닌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해 그것을 이루어준 것이다. 이렇듯 그는 러시아를 개방하여 연성 권력이 지닌 잠재력을 구 소련과 주변의 유라시아 주변지대에 투사하기보다는, 풍부한 천연자원 덕에 단기간은 가능할 신제국주의적 세력 팽창에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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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푸틴이 러시아 지리에 내재된 유럽의 중요성을 전적으로 단념한 것은 아니다. 단념은 커녕 러시아 근외 지역에서 세력권을 부활시키기 위한 대규모 노력의 일환으로 비민주적 방식이기는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유럽에서 러시아의 입지를 공고히 다지고자 하는 욕망을 분명히 드러냈다. 우크라이나야 말로 러시아를 본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추 국가인 까닭이다. 러시아의 유럽 접근이 가로막힌 것도 알고 보면 남쪽으로는 흑해와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구 동유럽 위성국가들과 이웃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인 것과 관련이 깊다. 우크라이나는 그리스 카톨릭과 로마 카톨릭을 신봉하는 서부 동방정교회를 신봉하는 동부로 갈라져 있다. 따라서 서부 지역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온상이 되고 있는 반면 동부 지역은 러시아 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보인다. 이 종교 지도가 말해주는 것은 결국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온상이 되고 있는 반면 동부 지역은 러시아 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보인다. 이 종교 지도가 말해주는 것은 결국 우크라이나가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 간의 경계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없이도 제국이 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캅카스 지역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분쟁에 말려들기 십상인 “거의 전적으로 아시아”제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를 재지배하게 되면 러시아는 서구 지향적 인구 4,600만 명을 새롭게 얻게 되어 유럽에 결합될 뿐 아니라 도전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못지않게 탐을 내는 폴란드가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의 운명뿐 아니라 유럽연합의 운명까지도 결정지을 “지리적 중추”가 될것이라는 게 브레진스키의 견하다. 그러면 러시아와 유럽 간의 투쟁, 특히 나폴레옹 전쟁 이래 계속된 러시아와 독일 - 프랑스 간의 투쟁도 지속될 것이고, 그 여파로 폴란드와 루마니아 같은 나라들의 운명도 불확실해질 것이다. 공산주의는 붕괴했을지 몰라도 유럽이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필요로 한다는 점은 변함이 ㅇ벗고, 그 가스의 80퍼센트가 폴란드 곁에 붙은 우크라이나를 통해 수송되고 있기 때문이다. 냉전의 승리는 많은 것을 변화시켰지만, 지리의 냉혹한 현실까지 완화시키지는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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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서 군사행동을 꺼리는 요인은 그 밖에 또있다. 러시아를 희생시켜 그곳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고, 극동에서 러시아와 긴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의 존재다. 이 상황에서 러시아가 만일 중국과 손잡으면 카자흐스탄을 포함해 대체로 독재적인 일련의 국가들(중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이 미국의 영향력에 맞서기 위해 유라시아 세력들의 통합을 추구해 만든) 상하이협력기구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는 탄력을 받게 될 것이고, 반대로 중국과 반목하면 유라시아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영향력이 더 커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는그 점을 감안해서라도 중앙아시아에서의 행동을 자제해, 매킨더의심장지대에 속하는 지역을 무력으로 되찾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와 관련해 한마디 경고의 말을 덧붙이자면,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가 행사하는 영향력은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한국과 일본처럼 위협적이지 않고 첨단 기술이 발달한 나라들과 더 많은 거래를 하고 싶어하는 바람으로 인해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사적 선택 면에서 제약을 받기는 하겠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다른 나라들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중앙아시아 전역에 군대를 이동시킬 수 있고,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정치적으로불안정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구 소련이 부여해준 평화와 안정에 모종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는 점 또한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모스크바 카네기연구소 소장 드미트리 트레닌의 예측,요컨대 카자흐스탄과 구 소련 공화국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도경제와 정치를 자유화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러시아에는 최고의 진정한 희망일 것이라고 본 예측이 맞아떨어질 공산이 크다. 여타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합친 것의 두 배가 넘는 영토를 지닌 카자흐스탄의 예로도 드러났듯 공산주의 붕괴와 세계화의 공세로 심장지대는 이미 자력으로 권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계가 계급과 이념에 따라 수평으로 분리될 것을 우려했던 매킨더도 힘의 균형에 따라(소집단과 국가들로) 수직으로 분리되는 지역주의가 자유를 보장받는 데는 한층 이로울 것으로 믿었다.

 

 

 

 

 지정학적으로 이전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외교적 대비 로써 완충 할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나와 있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지도자가 무능하면 결국 오답으로 인해 국민이 고통을 받게 됩니다. 한국도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것입니다. 한국도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력 으로써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은 하수입니다. 한국은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가 없기에 타국으로 부터 신뢰받는 나라가 될수 있습니다. 미래 한국은 문화와 기술의 힘으로 강재국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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