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기초 9 역사 (역사란 무엇인가?)

로오데 작성일 21.11.07 15:31:52 수정일 21.11.07 16:4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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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H. 카 저/김택현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오늘의 사회와 어제의 사회의 대화

 

‘단지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것’ - 역사가의 고유한 목표에 대해서 그렇게 말한 랑케는 후대의 역사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 일들이 어떠했는가를 누가 말 할 수 있단 말인가? 카 교수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식화하는 가운데 역사의 ‘사실들’은 역사가 들이 ‘선택한’ 것일 뿐임을 보여주고 있다. 가운데 역사의 ‘사실들’은 역사가 들이 ‘선택한’ 것일 뿐임을 보여주고 있다. 수백만 명이 루비콘 강을 건넜지만, 역사가들은 오직 카이사르가 건넌 것만을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역사적 사실들은 그 시대의 규준에 영향을 받은 역사가들의 해석상의 선택의 결과로 등장한다. 

 그러나 비록 절대적 객관성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역사가들의 역할은 결코 고통스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역사는 참으로 매력 있는 학문이다. 카의 사후에 출판된 이 제2판은 R.W. 데이비스의 새로운 자료를 포함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제 2판을 위한 카 교수의 노트의 주요한 결론들과 오늘날 서구의 지식인들 사이에 퍼져 있는 비관주의와 절망의 분위기를 반성하면서 ‘보다 건전하고 보다 균형 잡힌 미래의 전망’을 요구하는 저자의 새로운 서문이 소개되어 있다.

 기념비적인 저서인[소련사]의 저자 E.H. 카는 가장 탁월한 근대사가일 뿐만 아니라 역사이론에 공헌한 가장 소중한 인물들 중 한 명이다. - 서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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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핼릿 카 / E. H. 카 (Edward Hallett Ted Carr, CBE, 1892.6.28~1982.11.3)

 

1.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우리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할 때, 우리의 대답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 자신의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되며,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관해서 우리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더욱 폭넓은 질문에 대한 대답의 일부가 된다.

 

 역사의 사실과 역사의 사실이 아닌 과거의 사실을 구별해주는 기준은 무엇인가?

 역사적 사실(historical)이란 무엇인가? (역사가의 입장)

 

 첫째로, 역사가들이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 역사의 ‘정확성은 의무이지 미덕은 아니다’라는 이야기이다. 어떠한 역사가를 정확하다는 이유로 칭찬하는 것은 어떤 건축가를 잘 말린 목재나 적절히 혼합된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집을 짓는다는 이유로 칭찬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그의 작업의 필요조건이지만 그의 본질적인 기능은 아니다. 모든 역사가에게 똑같은, 이른바 기초적인 사실들은 보통 역사 그 자체의 범주가 아니라 역사가의 원료라는 범주에 속한다.

 

 둘째로, 기초적인 사살들을 확장해야 할 필요성이 사실 자체의 어떤 성질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의 선험적 결정에 좌우 된다는 것이다. 카이사르가 루비콘이라는 저 작은 강을 건넌 것이 역사의 사실이 된 것은 역사가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결정한 일이지만,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 수없이 많은 다른 사람들이 루비콘 강을 건넌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역사가는 필연적으로 선택을 하게 된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딱딱한 속알맹이가 객관적으로 그리고 역사가의 해석과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믿음은 어리석은 오류이지만, 그러나 뿌리 뽑기는 매우 어려운 오류이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해서 그리고 현재의 문제들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요한 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미국의 역사가 칼 베커(1873~1945)는 일부러 도전적인 언사로 ‘역사의 사실들은 역사가가 그것을 창조할 때까지는 그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는 사유의 역사’이며, ‘역사란 사유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역사가가 그 사유를 자신의 정신 속에 재현하는 것’이다. 역사가의 정신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거의 재구성은 경험적인 증거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 재구성 자체는 경험적인 과정이 아니며 또한 사실들의 선택과 해석을 지배한다 . 정말이지 이 재구성의 과정이 사실들을 역사적 사실들로 만드는 것이다. "역사란 역사의 경험이다. 역사는 역사가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는 “만들어지지”않는다.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역사를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오크셔트 교수는 이야기 하였다.

 

 하지만 위의 주장에도 간과되고 있는 몇 가지 진리들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 역사의 사실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결코 ‘순수한’ 것으로 다가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들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과하면서 항상 굴절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역사책을 집어들 때, 우리의 최초의 관심사는 그 책에 포함되어 있는 사실들이 아니라 그 책을 쓴 역사가에게 관한 것이 되어야 한다.

 

 둘째, 역사가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의 행위의 배후에 있는 생각을 상상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공감(sympathy)’이 아니라 상상력인 이해(imaginative understanding)라고 말하는 이유는 공감이 동의(agreement)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19세기 중세사 연구가 빈약했던 이유는 중세의 미신적 신앙들과 거기에서 비롯된 야만행위들이 중세 인에 대한 상상적인 이해를 너무나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가령 30년전 쟁에서 자신의 나라를 수호하려고 살인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칭송받는 일이지만, 자신의 종교를 수호하려고 살인하는 것은 사악하고, 미련한 짓이라 믿도록 교육받아온 19세기의 자유주의 역사가가 30년 전쟁에서 싸운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셋째, 우리는 오로지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과거를 조망할 수 있고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가는 그가 살고 있는 시대에 속하는 사람이며, 인간의 실존조건 때문에 자신의 시대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역사가는 사실의 잠정적인 선택에서, 그리고 동시에 그 선택을 이끌어준 잠정적인 해석 (그 해석이 그 자신의 것이건 다른 사람의 것이건 간에) 에서 출발한다. 역사가는 현실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하기 때문에, 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에게 필수적이다. 자신의 사실을 가지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쓸모없는 존재이다. 자신의 역사가를 가지지 못한 사실은 죽은 것이며 무의미하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끓임 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2. 사회와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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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또는 개인 중에서 어느 것이 우선인가 하는 문제는 암탉과 달걀에 관한 문제와 같다. 이것을 논리적인 문제로 다루는 역사적인 문제로 다루든, 여러분은 그 문제에 관해서 어느 한 편에 서서 의견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편에 서든 똑같이 일방적인 그 반대편의 의견에 의해서 틀림없이 수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와 개인은 분리될 수 없다. 그것들은 서로에게 필수적이고 보완적인 것이지 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도 그 자신만으로 전체가 되는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부분이며, 본토의 일부이다’

 역사의 혹은 역사 이전의 모든 단계에서 인간은 누구나 사회 속에서 태어나고, 아주 어렸을 적부터 그 사회에 의해서 형성된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개인적인 상속물이 아니라 그가 성장해온 집단에서 사회적으로 취득된 것이다. 언어뿐만 아니라 환경 도 인간의 사유의 성격을 설정하는 데에 기여한다.(아주 어렸을 적의인간의 관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개인이 사회로부터 분리된다면 말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은 병행하며, 서로를 조건 짓는다. 사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복잡한 사회 혹은 선진적인 사회란 개인들 상호 간의 의존관계가 선진적이고 복잡한 형태를 취해온 사회이다. 개별 구성원들의 성격과 사유를 형성시키며 그들 사이에 일정한 정도의 통합성과 균일성을 만드는 근대적인 민족공동체의 힘이 원시적인 부족공동체의 그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약하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위험스러운 일일 것이다. 생물학적차이에 기초하여 민족성을 이해하는 낡은 관념은 오래 전에 타파되었다. 

 그러나 사회와 교육의 민족적 배경이 다른 데에서 비롯되는 민족성의 차이는 부정하기 어렵다. 저 파악하기 어려운 실재인 ‘인간성(humannature)’은 나라마다 그리고 세기마다 무척 달랐으므로, 그것을 어렵지 않게 지배적인 사회 조건과 관심에 의해서 형성되는 역사적 현상으로 간주할 수 있다. 말하자면 미국인, 러시아인, 인도인 사이에는 많은 차이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차이들 중에서 어떤 것은,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혹은 말을 달리하자면 사회가 구성되는 방식에 대한 태도에서의 차이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전체로서의 미국 사회, 러시아 사회, 인도 사회 간이 차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미국 사회, 러시아 사회, 인도 사회 간의 차이를 연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원시인과 마찬가지로 문명인도, 실제로 사회가 그들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과 똑같이 실제로 사회에 의해서 형성된다. 여러분은 달걀 없이 암탉을 얻을 수 없듯이, 암탉 없이 달걀을 얻을 수 없다.

 

 개인주의 숭배는 근대의 역사적 신화 중에서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신화이다. 개인숭배는 르네상스와 더불어 시작되었고, 이전까지 ‘오직 어느 한 종족, 주민, 집단, 가족 혹은 단체의 구성원으로서만 자신을 의식해왔던’ 인간은 그 시기에 비로소 ‘정신적으로 개인이 되었으며 또한 스스로를 그렇게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 후의 자본주의와 프로테스탄티즘의 발흥, 산업혁명의 발달 그리고 자유방임의 교리 등도 개인숭배와 연관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이 선언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는 개인의 권리였다.

 

 역사가는 알다시피 한 사람의 개인이다. 다른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역시 하나의 사회적 현상, 즉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그 사회의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대변자이다.(역사가는 바로 이러한 자격으로 역사적 과거의 사실을 연구한다.)

 사회 안에서 연구하고 있는 역사가가 그 사회를 자신의 연구에 얼마나 면밀하게 반영하는가를 보여주는 데에 있다. 여러분이 어떤 역사책을 집어들 때, 책 표지에 있는 저자의 이름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출간일자나 집필일자 (그것은 때때로 훨씬 더 많은 것을 누설한다)도 살펴보아야 한다. 똑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한 철학자의 말이 옳다면, 한 역사가가 똑같은 책을 두 권 쓸 수 없다는 말도 어쩌면 마찬가지로, 그리고 똑같은 이유에서, 진리일 것이다. 

 

 첫 장에서“여러분은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역사가를 연구하라"이야기 하였다. 이제 나는 이렇게 덧붙이려고 한다. 여러분은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라, 역사가는 개인이면서 또한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바로 이 두 가지의 관점에서 역사가를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제 역사가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나의 등식의 다른 항(역사의 사실)을 동일한 문제 틀에 비추어 고찰해보도록 하자. 

 역사이론은 유구한 족보를 가지고 있다. 개인의 천재성을 역사의 창조력으로 간주하려는 욕망은 역사의식의 원시적인 단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과거의 업적물 에다 그것을 이룩했다고 생각되는 으뜸가는 영웅의 이름을 붙이기 좋아한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서사시를 호메로스라고 불리는 어느 음유시인의 업적으로 만들었다.

 우리 모두는 이전의 역사이론을, 말하자면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배웠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거기에 무엇인가 유치한, 아니면 어쨌든 어린아이다운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그 이론은 사회가 보다 단순했던, 그리고 공적인 일들을 소수의 유명한 개인들이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던 시절에는 어느 정도 그럴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시대의 더욱 복잡한 사회에 대해서는 분명 들어맞지 않는다. 그리고 19세기에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탄생한 것은 이 중대하는 복잡성에대한 하나의 응답이었다. 그러나 오래된 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도 ‘역사란 위인들의 전기이다’ 라는 말은 여전히 존중받는 금언이었다. 

 

 20세기 의 두 세계대전을 국제관계 체제에서의 어떤 근원적인 붕괴가 빚어낸 것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빌헬름 2세와 히틀러의 개인적인 사악함이 빚어낸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인전식 역사관의 문제점으로.

 첫 번째 문제는, 인간을 개인으로 보는 견해가 인간을 집단의 성원으로 보는 견해보다 다소간 잘못된 것이라는 데에 있지 않다. 잘못된 것은 그 둘 사이를 구별하려는 시도이다. 개인은 당연히 한 사회의 혹은 하나 이상의 사회의 성원이다. 

 인간을 개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전기이며 인간을 전체의 일부로 취급하는 것은 역사라고 하면서 그 둘을 구별하는 것은, 그리고 훌륭한 전기는 나쁜 역사를 만든다고 주장하는 것은 솔깃한 이야기다. 언젠가 액턴은 ‘인간의 역사관에서 개별적인 인물들이 유발시키는 관심보다 더 많은 오류와 불공정을 가져다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두 번째, 역사는 개인들이 어째서 ‘그들 자신의 판단에 따라서 그렇게 행동했는지’에 관해서 연구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얼핏 보더라도 몹시 기묘한 것 같다.

 오늘날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인간은 반드시 자신들이 완전히 의식하거나 기꺼이 인정하는 동기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으며, 또는 습관적으로라도 그렇게 행동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무의식적인 동기나 본인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동기를 통찰하지 않겠다는 것은 일부러 한쪽 눈을 감고서 일하겠다는 식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역사적 사건이 개인들의 의식적인 행동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고 그들의 무의식적인 의지를 이끄는 외부의 어떤 전지전능한 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점을 주장하는 것이라 하는 이도 있다. 물론 그런 주장은 터무니없다. 사건의 경로를 이끄는 것이라고 인식되어온 또 다른 모든 추상적인 힘들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과 같은 마르크스의 견해에 무조건적 찬성하겠다.

 

 역사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지도 않으며 전투를 벌이지도 않는다.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은, 소유하고 싸우는 것은 오히려 인간, 즉 현실의 살아 있는 인간이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는 대중이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 수천 명이 있는 곳이 아니라 수백만 명이 있는 곳, 그곳이 진정한 정치가 시작되는 곳이다.” 수백만은 수백만의 개인들이었다. 거기에는 비인격적인 것이란 전혀 없었다. 이런 문제에 관한 논의에서는 익명성과 비인격성이 혼동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모른다고 해서 사람이 사람이기를, 또는 개인이 개인이기를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는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라면 불만을 품고 있는 한 사람의 농민이나 하나의 촌락에 관해서 알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천 개의 촌락에서 수백만 명의 농민들이 불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역사가라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된다. 가령 존스라는 사람의 결혼을 가로막고 있는 이유들은, 만을 바로 그 똑같은 이유들이 존스와 같은 세대에 속하는 수천 명의 개인들의 결혼까지도 가로막아 혼인율이 실제적인 저하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면, 역사가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혼인율의 저하를 초래하는 경우라면, 그 이유들은 당연히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이 될 수 있다. 운동이 소수에 의해서 시작된다는 그 진부한 말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모든 효과적인 운동에는 소수의 지도자들과 다수의 추종자들이 있다. 그러나 다수가 운동의 성공에 필수적이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역사에서 수는 중요하다.

 

 위인의 위대함을 폄하하려는 것이 나의 목적은 아니다. 또한 나는 ‘위인은 거의 대부분 악인’이라는 명제를 인정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반대하고 싶은 견해는, 위인을 역사의 밖에 놓아둔 채 그들은 위대하기 때문에 역사에 간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즉 그들을 마치 ‘알 수 없는 곳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와서 역사의 진정한 연속성을 방해하는 요술 상자 속의 소년 잭’ 과 같은 존재인 양 생각하는 그런 견해이다. 나는 지금까지도 다음과 같은 헤겔의 고전적인 정의에 더 고칠 만한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시대의 위인이란 자기 시대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고, 그 의지가 무엇인지를 그 시대에 전달 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행하는 것은 그의 시대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실현한다.

 

 위인을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자 대리인이면서 이와 동시에 세계의 모습과 인간의 사유를 변화시키는 사회세력의 대변자이자 창조자인 탁월한 개인으로 인식하는 일이다.

 그렇게 때문에 역사는 그 말의 두 가지 의미에서(역사가가 수행하는 연구와 그가 연구하는 과거의 사실이라는 두 가지 뜻에서)하나의 사회적인 과정이며, 개인은 그 과정에 사회적인 존재로서 참여한다. 그러므로 사회와 개인의 대립을 가정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게 하여 우리의 사고를 혼란시키려는 미끼에 불과하다. 역사가와 그의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과정, 즉 내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화라고 불렀던 그 과정은 추상적이고 고립적인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와 어제의 사회 사이의 대화이다. 부르크하르트의 말을 빌리면,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 이다.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 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다. 또한 현재도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이 과거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리고 현재의 사회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대시키는 것, 이것이 역사의 이중적인 기능이다.

 

 

 

3.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

 

 

4.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5. 진보로서의 역사

 

 

6. 지평선의 확대

 

 

로 이어 집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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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조셉 토인비 저/조행복

 

토인비의 역작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총 12권)에서 전쟁과 관련된 내용을 발췌하여 1권의 책으로 발간된 책입니다. “전쟁은 정치 폭력의 산물”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카 교수는 토인비의 역사관에 대하여 비판합니다. 

 

 

 

  역사를 읽기 전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읽어야 하는가 정말 심도 깊은 책입니다. 이렇게 조잡하게 정리를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대로 적을려면 책 한권을 다 적어야만 합니다.

 처음 읽으시는 분들은 다소 어려울수 있습니다.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읽어 보니 이전에 이해 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공감 할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여러분의 독해력을 고취 시켜 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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