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기초 철학 5 (헬레니즘,로마시대)

로오데 작성일 21.08.14 15:04:50
댓글 2조회 2,400추천 5
0c5718deed837ff23acda9e45e13e9ac_814813.jpg

 

 아리스토텔레스가 죽은 뒤 부터 그리스 문명은 역사가들이 헬레니즘 시대라고 부르는 단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정치적 통일을 이루지 못한데다 페르시아 전쟁으로 힘이 약화되고 페스트의 습격까지 받았습니다. 그리스는 처음에는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받았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뒤부터는 새로 로마 제국 속으로 서서히 흡수되기 시작 합니다. 이 쇠퇴기의 철학자들은 그리스에서 활동했으나 로마에서 더 큰 각광을 받았습니다. 이 시대의 두 가지 주요한 철학 학파였던 에피쿠로스 학파스토아 학파가 바로 그랬습니다.

 

90168c30d0cd2d950b0dd868e54bb518_118962.jpg
헬레니즘의 멸망

 

에피쿠로스 학파

 

 에피쿠로스Epicuros(기원전 341~270)의 철학은 오늘날 이말은 흔히 쾌락주의, 미식주의, 식도락, 향락주의 등의 뜻으로 사용되는데, 이렇게 의미가 왜곡된 이유는 에피쿠로스의 탓이 아니라 일부 로마인이 그 사상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에피쿠로스는 자신은 오히려 절제되고 소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빵과 치즈, 올리브를 먹고, 포도주를 조금 마시고, 해먹에서 잠을 자고, 정원을 산책하면서 친구들과 대화를 즐기는 생활을 했습니다. 만년에, 그는 기나긴 투병 생활을 해야 했으나 죽을 때까지 위엄과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aaef33d7eb3368d0deed827eccbf9b63_476406.jpg
미친 소크라테스(디오게네스)

 

 

로마 제국에 사는 개인

 

 에피쿠로스 철학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f2c4b0e0847ca1fa7dccb5cf60bd1405_418303.jpg
원자론

 포스트 알렉산드리아 철학자들이 모두 그렇듯이, 과학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고 선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주로 탐구 했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 이후에 ‘선한 삶’이라는 개념은 오히려 크게 퇴보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고 정치에 관심과 책임을 가지는 것을 자기 개발의 일환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창의성으로는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고, 로마 제국의 거대하고 비인간적인 관료제 속으로 흡수되면서 각각의 개인들은 무기력감을 느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에피쿠로스도 삶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믿었으나, 그는 행복을 단지 쾌락과 같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쾌락을 낳지 않는 것이라면 어떤 행동도 할 필요가 없고, 고통을 낳지 않는 것이라면 어떤 행동도 반대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렇다면 쾌락의 여러 종류를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e789e7b83c59b02ca7a2763dfd42bf43_670534.png
로마시대

 

 

 

쾌락과 욕구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욕구에는 두 가지가 있으므로, 그 욕구를 충족함으로써 얻어지는 쾌락에도 두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자연스러운 욕구(이것은 다시 둘로 나뉩니다)와 헛된 욕구 입니다.

 

0bb7f1191c29b2ace66c4c8707c503c9_809055.jpg

 

  1.  1. 자연스러운 욕구
  2.  
  3.     1) 필요한 욕구 (식욕이나 자고 싶은 욕구)
  4.     2) 불필요한 욕구 (성욕)
  5.  
  6. 2. 헛된 욕구 (화려한 옷을 입고 싶든지 색다른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

 

 자연스럽고 필요한 욕구는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며, 또 쉽게 충족될 수 있습니다. 그런 욕구는 선하고 이성적인 쾌락을 낳으며, 고통스런 결과를 낳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헛된 욕구는 충족될 필요도 없고, 충족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 욕구에는 자연스러운 제한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자칫하면 도를 지나치고 고통스러운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성욕은 자연스러운 것이자만 대개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극복할 수 있다면 성욕은 극복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성욕의 충족은 지나치게 격렬한 쾌락을 낳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욕이 주는 쾌락은 대개 궁극적으로 쾌락이기보다는 고통에 가까우며 때로는 극단적인 고통까지 수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24ab0ab41ca0cfb34d59581d22af7b37_445161.jpg
극단적인 고통

자연스럽고 필요한 욕구들 중에서 에피쿠로스가 특히 중시하는 것은 휴식의 욕구 입니다.

 

4fdb8ca23224ccab5932b6ad25be3463_786224.jpg

 여기서 휴식이란 몸과 마음 모두의 휴식을 가르킵니다. 진정으로 선한 사람(즉, 가장 큰 쾌락을 경함하는 사람)은 모든 불필요한 욕구를 극복하고, 자신이 필요한 욕구들을 가장 적당한 방식으로 충족시키며, 많은 시간을 몸과 마음의 휴식으로 보내고, 걱정거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쾌감 원칙을 넘어서 

 

 에피쿠로스의 쾌락에 대한 정의가 소극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그에게 쾌락이란 고통이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에피쿠로스가 조잡한 관능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소극적 정의 때문입니다. 이런 정의의 문제점은, 그것을 논리적 극단으로 밀고갈 경우에 차라리 삶의 부재가 삶 자체보다 낫다는 결론에 이른다는 점입니다.(그래서 프로이트는 <쾌감 원칙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쾌감 원칙’의 배후에는 타나토스, 죽음의 본능이 있다고 말함.)

 이러한 추론은 사실 역설적인 면이 있습니다. 에피쿠로스 자신은 그의 철학에서 죽음의 공포를 없앴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에서 영향을 받아 에피쿠로스의 죽음이란 단지 감각과 의식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따라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감각이나 의식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말합니다. “죽음이 있는 곳에는 우리가 없고, 우리가 있는 곳에는 죽음이 없다.”

 

edb0b7a44b6afe328eb12c7cdb3b4010_605687.jpg

 

 에피쿠로스를 추종하던 일부 로마 학자들은 ‘쾌락’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여 적극적인 쾌감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극단론자들 덕분에, 오늘날 에피쿠로스주의 하면 대개 관능적인 쾌락주의를 가리키는 뜻으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해석에 대해 병약했던 에피쿠로스는 아마 해먹을 흔들어서라도 반대의 몸짓을 드러내지 않았을까?(그것도 강력한 반대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논쟁은 흥분을 부르고, 흥분은 고통을 수반하니까) 

 에피쿠로스의 이론은 주요한 철학적 운동으로까지 연결되지 못했지만, 그의 제자들은 그리스와 로마에서 몇 세기 동안이나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추종자는 로마의 루크레티우스Lucretius입니다. 그는 기원전 1세기에 <만물의 본성에 대하여>라는 길다란 철학 시를 통하여 스승의 철학을 설명했습니다. 오늘날 에피쿠로스의 사상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루크레티우스의 시 덕분입니다.

 

acc0493c6c545f758881faaff5cb8436_865311.jpg

 

 

 

 

 

  1. 스토아 학파

 

 로마에 전해진 헬레니즘 철학의 또 다른 중요한 갈래는 스토아주의입니다. 

이 철학은 그리스 철학의 키프로스의 제논Zenon(기원전 334~262)이 처음 주장했습니다. 그는'스토아'라고 부르는 주량으로 된 현관에서 학생을 가르쳤는데, 여기서 스토아 철학이라는 이름이 나왔습니다(그러니까 스토아 철학은 ‘현관 철학’인 셈입니다).

 

be6aaa5569eb0ce4e24b7cb320e6c1d4_199950.jpg

 

 데모크리토스에 기반한 에피쿠로스 철학과 마찬가지로, 스토아 철학도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의 유물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또한 에피쿠로스 철학처럼, 스토아 철학도 물리학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인간 행동의 문제에 주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완벽한 삶

 

 스토아 철학자들은 ‘덕=지식’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방정식을 받아 들였습니다. 일단 앎의 상태에 오른 다음에는 완전한 행복이 보장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자신의 평생 동안 이 지혜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얻는 것과 동시에 인간적 우수성이 달성됩니다.

 

 그러한 완벽한 삶이 지속되면 곧, 초연한 삶이 된다(그렇기 때문에 스토아 철학에서는 특정한 상황에서 자살을 옹호하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행복의 상태에 도달하려면 모든 세속적 욕망, 특히 감정과 쾌락 추구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스토아 철학의 현인은 고행자(금욕주의자)입니다. 그는 영혼의 무질서한 상태를 빚는 열정을 초월합니다. 스토아 철학자는 비탄, 환희, 희망, 공포 등등 평범한 인간의 삶에 존재하는 모든 열정으로부터 초연한 삶을 살아 갑니다.

 

44e7259d0fd50f8669e14fa795c466fc_650081.jpg

 

 

 

스토아적 지혜

 

 그것은 자신의 본성에 부합하는 행위 속에 선이 존재한다고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관념과 비슷합니다. 스토아철학은 그런 관념에 덧붙여, 그렇게 행동하려면 본성 자체, 즉 실재의 총체성(스토아 철학에서는 이것을 신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과 부합하도록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실재는 완벽하고, 인간은 실재의 신적인 계획에 부합하여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완벽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망을 우주의 전체적인 섭리가 일치시키려 합니다. 사실, 인간은 그 거대한 계획에 따르는 것 이외에 달리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스토아적 지혜란 바로 그 진리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바보들은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을 현실에 강제로 끼워 맞추려 애씁니다. 그래서 불행과 부자유를 초래하는 것입니다.자유가 의지와 능력이 통일이라면(즉,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게 자유라면)자유를 얻는 유일한 길은 우주가 원하는 것을 자신도 원하는데 있습니다.

 

dd600b1087ab44118423cf99a4727ded_605755.png
바로 내가 원하던 일이야! 내가 자고 있는대 도둑이 내집을 훔쳐가는 일.

 우리는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얻고자 바라서는 안되고, 우리가 얻는 것을 욕망해야 합니다. 원하는 것과 실제로 얻는 것을 등치시킬수 있게 될 때 우리는 언제나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므로 자유롭고 행복해질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스토아적 지혜입니다.

 

 

 

 자살 옹호

 

 스토아 철학자들은, 설령 이 지고한 상태에 도달한다 해도 현실의 가혹함 때문에 내적 평형이 깨지면서 고통과 고뇌 속으로 되돌아가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6086121bd6fa280c2b6ca2cb83962722_391357.png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또 깨어난 상태에서 지내는 것을 초연한 삶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들은 특정한 상황에서 자살을 옹호 했습니다.

 

“세상이 적당히 혼탁하다면 그냥 살겠지만 지나치게 탁하기 때문에 나는간다” - 에픽테토스

“집안이 너무 어지러워 떠난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현인이 평정을 깨뜨리는 많은 번뇌를 접한다면 죽음을 택할 것이다….” - 세네카

실제로, 네로 황제의 자문 역할을 했던 세네카는 목욕탕에 들어가 정맥을 끊고 자살 했습니다.

 

d4219017bda886054aea84cf754087d5_295189.jpg
좋은 죽음은 나쁜 삶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스토아 철학과 그리스도교의 비슷하면서 틀린점

 

 스토아 철학이 전성기에 달해 있을 무렵에 새로운 사회, 종교적 사유 형식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교입니다. 비록 그리스도교도들은 로마 제국 안에서 아직 소수였지만, 그들이 종교는 사회 각층의 사람들의 욕구에 공명하고 있었으므로 점점 교도의 수가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목수의 아들인 예수라는 인물을 통해 신과 인간의 연결을 맺어주었는가 하면, 사람들에게 로마 제국에 단순히 거주한다는 것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정체성을 주었고, 구원과 영원한 삶을 배풀었습니다. 비록 그리스도교들은 중세의 교도들처럼 체계적인 철학으로 자신들의 새로운 종교를 방어하는 방법을 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들의 교의는 당대의 철학들과 경쟁하면서 사람들의 가슴속에 깊이 파고 들었습니다. 

 

 그 시대의 사유 체계들은 모두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었으므로, 그리스도교와 스토아 철학은 아무래도 닮은 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두 철학 모두 체념의 학설을 주장하고 세속적인 것에 대한 집착을 경멸하며, 신의 섭리에 따르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양자 사이의 차이도 간과혀면 안됩니다. 예컨대, 자살에 대해서는 스토아 철학과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서로 다릅니다. 또한 스토아 철학은 정치적 권위에 대해 무저항으로 묵인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그리스도교는 처음부터 정치적 지배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 했습니다.

 

e353d9c29143d8192e19541f69b0cea7_308708.jpg
그리스도교 저항

 에픽테토스는 “가급적이면 일체의 서약을 하지 말라. 그게 안 된다면 해야 할 만큼만 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자세는 황제의 신적인 권위에 대해 충성 서약을 거부했다가 그 때문에 순교한 많은 그리스도교의 생각과는 크게 다른 것입니다.

 

 

 

 

신플라톤주의

 

 스토아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5현제의 마지막 황제)가 죽은뒤, 로마 제국에는 오랫동안 격벽과 무질서의 시기가 뒤따랐습니다. 강성했던 제국이 무너지는 쇠퇴기에 사람들이 느끼는 무력감을 치유하기 위해 종교가 부활 했습니다. 3세기에 그리스도교와 더불어 유명했던 철학적 종교 운동은 플로티노스Plotinos(204~270)가 주장한 플라톤 철학의 신비적 형태였는데, 오늘날에는 그것을 신플라톤주의라고 부릅니다.

d9b407a99ec66f0fe63e70adeee4c7c1_662753.jpg

 우리는 앞서 플라톤을 이야기하는 곳에서 플라톤 사상이 피안의 이상 세계를 향하는 뿌리 깊은 경향이 있음을 본 바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도 바로 그런 점을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이상 세계를 숭배하는 플라톤의 주장은 3세기의 염세적인 분위기에 딱 맞아들었습니다.

 

 

 

일자一者

 

 플라톤처럼 플라티노스도 절대적인 진리와 확실성은 이 세계에서 찾을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플라톤은 세계의 변화를 초월하고 진리의 획일성에 도달하기 위해서 순수하게 이성적인 방법을 가르쳤지만, 플로티노스는 그 꿈을 실현하려면 이성을 초월해야만 한다고 주장햇습니다.

 즉 일자와 무아지경 같은 통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d47689d49394b74b644b340c5266f175_317192.png
플라톤에서 보여 드렸던 도표

 플로티노스가 말하는 일자란 ‘절대자’ 또는 ‘신’을 가르킵니다. 이성적인 견지에서는 일자에 관해 결코 알 수 없으며, 일자는 엄밀히 규정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닙니다. 플로티노스적인 입장에서 플라톤의 ‘선의 비유’를 살펴보면, 거기에는 언어가 있으므로 사유가 있고, 따라서 선분으로 구별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이를테면,"이것은 펜이다"는 말은 책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일자에서는 그런 구분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그것에 관해 어떤 사유나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다. 일자를 알기 위해서는 오로지 그것과 통일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그 통일은 신비로운 희열을 통해 찰나적으로 경험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죽음으로써만 가능 합니다.

 

 우리는 금욕이나 소행과 같은 고결한 삶의 방식을 통해 그 궁극적인 통일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굳이 플로티노스에게서 플라톤 식의 ‘선’을 찾는다면, 신 또는 절대자는 창조 행위를 하는게 아니라(창조란 오히려 신의 불변성을 모욕할 뿐입니다), ‘유출’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은 더 하위 단계들로 투사되며, 이 투사는 신의 완벽함을 어느 정도 모방하면서 더하위 단계들로 분화 됩니다(그 결과를 선의 비유로 나타내면 아래 그림처럼 애매모호한 모습이 됩니다).

 

bfa0395a05e46dfff367b27c0832fd08_482963.png

 

 이 형이상학은 실재와 신이 한 가지로보는 범신론과 유사 합니다.

 

4ea7e297863664fa15e1205cfd8cab83_946452.gif

 

 플로티노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전개한 철학은 고전 시대 최후의 철학이므로, 그가 재해서한 플라톤 사상은 거의 그대로 중세 세계에까지 전해 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중세에 범신론이 또다시 제기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전 철학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교 철학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은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통일하고 체계화해야 한다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널리 퍼져 있던 플라톤적인 형이상학을 바탕으로 삼았는데, 그들이 받아들인 플라톤 철학은 이미 플로티노스 사상으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은 것이였습니다.

 

 

용어 해석

 

쾌락주의hedonism : 쾌락과 고통이 올바른 행위의 유일한 동기여야 한다고 보는 견해

                      (에피코로스와 벤담이 옹호한 ‘도덕적 쾌락주의’), 혹은 쾌락과 고통이 자발적 행위의 유일한 

                      동기라고 보는 견해(홉스가 옹호한 ‘심리적 쾌락주의’)

 

범신론pantheism : 모든 것에 신성이 있다고 믿는 견해. 신의'피조물'은 사실상 신과 같다는 취지에서, 그리스어 

                     pan(모두)과 theos(신)를 합쳐 만든 용어.

 

 

 

 이상 기원전 철학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인문학 서적을 읽으실때 어느정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로오데의 최근 게시물

취미일반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