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강 강사가 해주는 위로

woonyon 작성일 23.10.09 02:57:17 수정일 23.10.11 15:00:28
댓글 9조회 38,839추천 34

출처 공단기 유튜브
참고로 이 인강 강사님은 공무원 행정법계 스타강사 '써니' 박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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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마지막 날이니까 한 마디만 좀 말씀을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사실 강의를 이렇게 하다보면요.
 
많은 수강생들을 만나고 많은 합격생들을 만나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제 직업이 가지는 좋은 점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근데 그 합격생들의 얘기를 들어보면요. 정말 사연은 다 달라요.
 
전부다 고유한 사연 가지고 있고, 그리고 합격한 학생들이 와서 이런저런 얘기하는 거 보면
 
정말 제가 이제 스스로 감동을 받고,

제 스스로를 다그치고,

제 스스로를 동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닐 정도로

다들 이렇게 사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근데 그중에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런 수강생들이 있었는데,
 
2011년이었어요. 그때는 제가 오전 수업을 하고 저녁 수업에 저녁에 단과가 있었거든요. 
 
그때 오전 수업을 끝나고 연구실로 가고 있는 길이었습니다. 가고 있는 길인데
 
학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합격생들이 찾아왔으니까 점심 먹으러 오라 그래서 굉장히 의아했었죠.
 
왜냐하면 합격생들 온다고 밥 먹으러 오라고 그러지는 않거든요.

얼마나 많은데...당연히 그런 얘길 안 할 거 아니예요.

 

 

 

 

 

그래서 이제 갔더니 학원 관계자들이 있었고, 그리고 이제 합격생들로 보이는 학생들이 4명이 있었고
 
그리고 좀 나이가 많은 분들도 몇몇이 있었어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그 학생들이 시각장애인들이었어요.
 

 

 

 

 

시각장애인들이었는데, 그 때 그 당시 학원에서 시각장애인 연합회에다가 학원 강의를 제공을 했었던 겁니다.
 
그 학원 강의를 무료로 듣고 합격한 학생들이 네 사람이나 있었던 거예요.
 
보통 우리가 장애가 있으면 공부하는 게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특히 시각장애인들 같은 경우는 공부하기가 되게 힘들었을 것 같거든요.
 
안 그래도 그 학생들이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우리가 공부에 있어서는 제일 취약했을 겁니다."

라고...

 

 

웃으면서 얘기를 하는데 저도 이제 굉장히 참 놀라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해서 

몇 마디를 이제 물어 봤었죠.
 
물었던 내용 중에 하나가, 점자 책을 볼 때 색깔이 들어가 있거나 좀 강조 되어 있거나 하는 부분은 어떻게 공부를 했느냐.
 
그랬더니 웃으면서 하는 얘기가 점자 책은 볼 수가 없었대요.
 

 

 

 

 

왜 볼 수 없었냐 하니까, 너무 당연한 얘기였던 게,

사실은 이 책을 점자로 바꾸면 권당 억이 넘는대요.
 
수요도 없고 텍스트가 많으니까 권당 억이 넘는대요.
 
한 과목만 해도 몇 억이 넘는 거죠. 5과목을 다 합치면 10억이 넘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 어떻게 공부했냐고 물어보니까,  동영상강의를 순수하게 귀로 들어서 공부를 했었던 거예요.

 

 

 

 

 

근데 아시다시피 동영상 강의는 시각에 최적화된 거지, 

절대로 청각에 최적화된 강의가 아니었거든요.
 
근데 이 학생들이 동영상 강의를 듣기만 해가지고...
 
특히 저같은 경우는 판서가 별로 없지만, 판서 많은 강의 같은 경우는 정말 힘들었을 거란 말이야.
 
근데 그 강의를 들어가지고 합격을 한 거예요.
 
그리고 그 학생들이 공부할 때 제일 어려운 과목이 영어였다는 거예요.
 
영어 같은 경우는 철자를 봐야 되는데 그것도 안 보이고 하니까.
 

 

 

 

 

 

시험을 칠 때는요. 시험시간이 100분이면 시각장애인들 같은 경우는 150분의 시간을 줬대요.
 
근데 막상 영어 푸는데 거의 시간을 90분을 다 썼답니다.
 
지금은 좀 나아졌는데, 그 때만 하더라도 그 시각장애인들이 시험을 칠때 리더기를 줬대요.
 
리더기를 줘서 영어를 쭉 읽으면 발음을 해 주는데, 그게 그냥 거의 뭐 기계음 있죠. 옛날 기계음.
 
그것처럼 나오다 보니까 또렷하지도 않아서 어떨 땐 알파벳을 하나하나 찍어 가지고 시험을 쳤다는 거요.
 
그래서 영어 푸는 시간만 보통 한 90분이 걸렸답니다. 그렇게 해서도 매번 간신히 과락만 면하는 점수를 얻었다는 거예요.
 
근데 그 학생들이 저를 콕 집어서 와 줬으면 했던 게...

 

 

 

 

그 당시에 그 학생들이 행정법을 고득점을 한 거예요.
 
영어는 과락만 면하고, 행정법을 잘 쳐가지고 저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그랬다는데,
 
저는 그때 제가 고맙다고 그 학생들한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말을 되돌려 줄 정도로,
 
그 날 밥 먹는 내내 1시간 동안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같이 오신 분들은 복지관 분들이셨어요.
 
눈이 잘 안보이는 분들도 약시가 있고, 전맹(全盲)이라 그래서 아예 안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 학생들은 완전히 앞이 안 보이는 학생들이었으니까 올 때도 혼자 못 오죠.

그래서 그 복지관 분들이 같이 온 겁니다.
 
이 합격생들이 합격을 하고 전국의 시각장애인 분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격려 전화를 받았대요.
 
그 전까지는 '시각장애인들' 그러면 특정 직업만 가지는 거라고 고착화가 되어 있었는데,
 
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정말 많은 격려 전화를 받았다고, 환한 얼굴로 돌아가셨어요.
 

 

 

 

 

 

그 학생들은 처음으로 남들이 안 가본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간 거 아닙니까.
 
그 전까진 합격생이 없었으니까.
 
남들이 안 가본 길을 그 당시에 그 친구들이 최초로 간 거였기 때문에,

저는 내심 그 다음해에 합격생들이 더 나올 거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발표가 그 당시에 9월에 났는데, 9월이 되어도 연락이 없어요.
 
연락이 없다가, 10월이 되어도 연락이 없어서 거의 뭐 반 포기하고 있었는데, 11월에 연락이 왔었어요.
 
연락이 와서 갔더니 이제 두 명이 앉아 있는 거예요.

 

 

 

 

 

 


두 명이 앉아 있는데.
 
한 학생은 28살 여학생이었고 한 학생은 35살 남학생이었습니다.
 
그땐 뭐 점자 이런 얘기를 안 하고 몇 가지를 편안하게 물어보는데, 공부 기간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죠.
 
그러니까 그 여학생은 12월 28일에 시작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보통 그렇게 얘기를 안 하잖아요.

 

 

 

보통은 몇 년 됐다, 몇 개월 됐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데 12월 28일이 뭘까 싶었더니
 
그 전 해 12월 28일에 시험을 쳐서 4월에 국가직에 합격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또렷하게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던 거죠.
 
게다가 그 학생은 또 다른 발표를 기다리고 있대요.
 
뭐냐고 그랬더니 7급 시험을 필기를 합격한 상태로 최종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 학생도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 학생이었어요.

그래서 올 때도 어머님과 같이 왔었던 그런 학생이었는데, 
 
나름 굉장히 학업에 대한 열의를 가지고 있어가지고 지방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원래 고향은 서울인데 지방에까지 대학원에 가서 다닐 정도로, 그 정도로 열의를 가지고 공부를 했었던 학생이었죠.
 
그러니까 그렇게 빨리 붙었던 거죠.
 

 

 

 

 

그리고 35살 남학생은요. 공부를 언제부터 했냐고 그러니까 3년이 됐대요.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해서 직업훈련만 받다 보니까 공부를 전혀 안 했대요.
 
공부를 언제 시작했느냐고 물어보니까, 3년 전부터 시작해서 알파벳부터 시작했답니다.
 
알파벳부터 공부를 해 가지고 어쨌든 3년 안에 붙어 낸 겁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 대단해서 그러면 체력관리는 어떻게 했냐고 그랬더니, 웃으면서 하는 얘기가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복지관에 가면 있대요. 일반적인 헬스클럽은 갈 수가 없고요. (시각장애인에게는)흉기니까.
 
다 위험하니까 갈 수가 없고, 복지관에 가면 그나마 시각장애가 있더라도 운동을 할 수 있는 고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데,
 
가는 데 2시간, 오는 데 2시간이어서 엄두를 못 냈대요.
 
그 학생은 그냥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특정 일을 계속 하다가

서른 둘에 모든 걸 접고 공부를 시작을 하면서 그때 알파벳 공부를 시작했던 거죠.

 

 

 

 

 

혼자 살면서 아침에 일어나서 밥하고 빨래하고 그러는 걸 운동 삼아 해서,

공부를 3년 해서 붙었다는 거예요.
 
지금 저는 이렇게 뭐 담담하게 얘기하지만, 막상 그 학생들이랑 얘기하는 순간에는 무슨 마술을 보는 것 같았어요.
 
일단 결심을 했다는 것 자체부터 엄청나게 대단한 거구요.
 
알파벳부터 공부해 가면서 모든 강의를 귀로 들어 가면서 하나하나 공부를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그 당시에는 감동이 되었거든요.

 

 

 

 

 

첫해에 그랬고, 그 다음해에도 그랬으니 그 다음부터는 합격자가 되게 많이 나올 거라고 기대를 했지만,
 
그 다음해부터 행정법이 선택과목으로 바뀝니다.
 
영어, 국어, 국사는 필수, 나머지는 선택과목으로 되다 보니까 아무래도 그 학생들은 영어를 잘 할 수가 없어요.
 
영어를 잘할 수가 없는 게, 영어는 독해 때문에 시간이 엄청나게 걸리고 독해 하는게 너무 힘들어서 시각장애인들이 잘 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 이거 이제는 안 나오겠구나' 싶었는데, 보니까 선택과목이 도입된 해에도 많은 학생들이 붙어서 메일을 보내오고 그랬었거든요.
 
지금도 묵묵하게 공부를하고 있는 학생들이 있을 거예요.
 

 

 

 

 

그 학생들이랑 밥을 같이 먹고 나서, 피상적으로 그냥 제가 좋아했던 시가 떠올랐었어요.
 
그래서 그때 저녁 수업시간에 가서,

오늘 오전에 수업 끝나고 이런 일이 있었다고 단과 수업시간에 얘기를 하면서 전해드린 시가 있었습니다.
 
한때 노벨상 후보까지 올랐었던 시인의 '길' 이라는 시가 있었어요.
 
 
길이 없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숨막히며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이 없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역사이다.
 
역사란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부터,
미래의 험악으로부터 내가 가는 현재 전체와
그 뒤의 미지까지 
그 뒤의 어둠까지이다.
 
어둠이란 빛의 결핍일 뿐.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이 없다. 
그리하여 길을 만들며 간다.
 
길이 있다. 
길이 있다. 
수많은 내일이
완벽하게 오고 있는 길이 있다.
 


라는 시를 전해드렸습니다.

 

 

 

 

 

그 학생들은 정말 길을 하나하나 만들어 갔었던 학생들이었거든요.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공부를 하실 때 정말 하나하나 길을 만들면서, 그러면서 공부를 해야 되는 분들도 계실 거고요.
 
그나마, 그나마 길을 만들지는 않아도 놓여 있는 길을 그냥 편하게 가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막상 길을 가다 보면은 목적지를 분명히 보고 갔는데,

가다 보면 점점 더 목적지가 가까워지지 않고,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경험을 하는 분도 계실 거고요.
 
분명히 길이라고 갔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장애물들이 하나씩 하나씩 여러분들 앞을 막아 나서는 그런 경험들도 많이 하고 계실 거예요.
 
앞으로도 많이 하실겁니다.
 
 

 

 

 

근데 원래 그렇습니다.
 
원래 어떤 목표라는 게 있으면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은 원래 쉽지 않아요.
 
어떤 하나의 목표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는 것 자체는 원래 사람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목적을 위한 과정은 원래 힘든 길입니다.



(중략)

 

 

 

 

 
'이 또한 지나가리라' 는 말은요. 내가 지금 힘들고 괴로운 상황을 꼭 참고 이겨내면 행복한 미래가 보장된다는 뜻이 절대로 아니에요.
 
우리 삶은요. 늘 굴곡이 있습니다.

삶이라는 것 자체는, 올라가기만 하는 삶도 없구요. 내려가기만 하는 삶도 없습니다.
 
늘 삶이라는 것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게 돼요.
 
우리 많이 보지 않습니까.

최정상에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을 엄청나게 많이 보지 않습니까.
 
연예인, 정치가, 운동선수...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추문을 저지르면서,

본인의 모든 것들을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사람들을 우리는 지금도 너무나 많이 보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 사람들이 무명 시절의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런 일들은 안 일어났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바닥에 있더라도 비굴하고 좌절하지 말고,

어느 정도 성공을 했더라도 교만하지 말고 무리하지 말고...
 
어느 정도 성공이 있을 때에는 똑같이 옛날에 힘들었던,

노력했던 그 과거를 생각하면서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
 
감사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나중에 밀알이 될 거란 말입니다.
 
저는요.

'제 수업을 들으신 분들은 전부 다 100% 합격할 겁니다'

이 말씀을 못 드려요.
 
경쟁률이 1:1이 아닌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 시험에 합격했다고 성공, 떨어졌다고 실패했다는 말에도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신도 사람이 죽어야 평가를 내리는데,

우리가 어떻게 사람의 단면만 보고 '잘했다, 못했다' 는 평가를 내리겠습니까.

 

 

 

 

그러나, 그러나 여러분.

작물을 수확해서 먹고 사는 농부도 가을에 낫 들고 뛰어가지는 않습니다.
 
엄청난 수고를 겨울과, 봄과, 여름에 하기 때문에 가을에 작물을 걷을 수 있는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죠.  

가만히 있다가 운 좋아서 덜컥 걸리는 시험은 그것은 복이 아니라 나중에 엄청난 독으로 돌아올 거예요.
 
내가 지금 땀을 흘리지 않고, 내가 노력을 하지 않고 얻은 결과는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노력을 하고 내가 수고를 했었을 때 얻어내는 결과가 내 것이 되는 거죠.

 

 

 


그러나, 여러분.

농사를 짓는 사람도 아무리 노력을 해도 태풍으로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병충해 때문에 날아갈 수가 있습니다. 양계장을 하기 위해서 엄청난 공을 들이고 엄청난 노력을 했더라도 조류독감이 퍼지면 다 날아갈 수가 있어요.
 
특히 우리 공부는 상대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어느정도 노력을 했더라도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온다고 보장하기는 어려워요.
 

 

 

 

 

그렇지만 여러분. '조류독감이 올해도 올 거야' 라고 하면서 아무 노력도 안 하고 있는 사람과
 
열심히 노력했는데 조류독감 때문에 양계장을 망친 사람은 그 다음이 달라질 거예요.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은 그 다음에도 똑같이 아무 노력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겠지만,
 
적어도 양계장을 해서 엄청난 노력을 했었던 사람들은 그 노력과 수고의 결실을 알기 때문에 성공할 수가 있게 되는 거죠.
 
예측은 아무도 못 합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서 그때그때 노력하는 것.
 
여러분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여러분들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게 최선을 다해 가십시오.
 
 

 

 

 

 

지금 여러분들의 삶이 힘드실 거예요.
 
그러나 적어도 20년 뒤 30년 뒤에 여러분들은 정말 지금의 여러분들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을 겁니다.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의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들이 이 시기를 정말 강하게 잘 이겨내어서 여러분들이 또 다른 훌륭한 자산을 쌓기를 바라고 있을 겁니다.
 
제가 확실히 드릴 수 있는 말씀은 그거에요.
 
지금 여러분들이 힘드시겠지만 이 과정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이 시간들은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정말 축복의 시간이 될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잘 일어나 가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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