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별거 가정 (8) - 엄마가 파산신청을 했다

무럭무럭열매 작성일 22.04.18 10:20:42 수정일 22.05.02 10: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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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우리 엄마는 파산을 한 적이 있다. 가족의 치부를 글로 쓴다는 건 썩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다. 글이 사람들에게 안 읽히면 안 읽히는 대로 몹쓸 넋두리가 되어버리고, 만약 베스트셀러라도 되어버리면(망상이다) 가족 팔아서 돈 번 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왜 가족의 치부를 드러내려고 하는가. 별거 가정을 주제로 하는 내 이야기에서 돈 문제와 가난은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난은 우리 가족의 치부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엄마가 있었다, 라고까지는 말하기 힘들지만, 아무튼 돈 문제로 골치가 아플 때면 나는 문득 엄마를 떠올리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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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빠가 젊었을 때부터 잘 맞았던 분야가 하나 있었다. 바로 재테크 분야였다. 재테크에 대한 철학이 서로 잘 맞았다기보다는 재테크에 서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놓고 갈등을 일으킬 일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이윤을 따지고 재산을 불리는 일에는 하나같이 관심이 없었다. 엄마와 아빠가 공통적으로 돈이나 명예에 얽매이지 않는 단순한 삶을 추구한 것도 있었고, 볼링장에서 볼링 강사 일을 하면서 당시 직장인들의 봉급보다 많게는 열 배 이상 벌어들였던 아빠의 넉넉한 재정 상황이 엄마와 아빠의 재테크 철학을 더욱 심플하게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일본의 부동산 버블이 가장 부풀어 있었던 시절 일본에서 ‘부동산 제왕’이라 불렸던 고지마 노부타카는 돈을 써야만 돈이 들어온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비록 버블 붕괴 이후에는 일본 최고의 빚쟁이로 전락했지만, 전성기의 노부타카는 신주쿠나 긴자 거리에서 밤마다 은행 관계자들을 상대하면서 술값으로만 백만 엔씩을 지출했다고 한다. 예상컨대 엄마와 아빠 역시 노부타카와 비슷한 경제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돈을 써야 다시 돈이 굴러들어온다는, 소비가 선순환을 만든다는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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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인생에서 두 번째 홀로서기에 나서면서 비교적 넉넉한 벌이를 유지했던 아빠와 떨어지자 안타깝게도 건강하지 못한 경제관념을 여실히 드러냈다. 나 역시 이십대 초반에는 항상 돈이 아쉬워서 주말마다 인력을 나가면서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었는데, 엄마는 당시 지내고 있던 원룸으로 나를 불러 앉혀놓고 뜻밖의 사실을 고백했다.

 

"엄마가 사실은 5부 일수를 빌려서 이자를 내고 있는데⋯⋯ 더 이상은 이자를 감당하기가 힘드네. 변호사를 만나서 파산신청을 해야 할 것 같아."

 

5부 일수란, 연이율 50%로 돈을 빌려서 매일 갚아나가는 방식의 대출을 말한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연이율 50%는 어마어마한 이율이다. 만약 천만 원을 빌렸다면 한 달에 이자로만 40만원이 넘는 돈을 갚아나가야 하는 터무니없는 조건의 사금융 대출이다. 나는 엄마의 말을 듣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5부 이자든 일수든 간에, 이런 정보는 살면서 알 필요도 없고 딱히 알고 싶지도 않은 정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어쩌자고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 나는 엄마의 눈을 보면서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

 

결국 엄마는 파산절차를 밟게 되었다. 나는 엄마가 문제없이 파산할 수 있도록 힘닿는 대로 도와주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엄마의 작은 파멸을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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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빠는 말했다. 엄마가 너희를 버리고 집을 나갔으면 혼자 떵떵거리면서 잘 살아야지,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뭐가 있겠냐. 다 돈 문제다. 너희 엄마에게는 돈 문제가 있다.

 

아무리 한쪽 귀로 흘려 봐도 결국 이런 말들은 내게로 흘러들어와 마음 한편에 고였다. 별거 가정이 이래서 싫다. 어렸을 때부터 자꾸 엮이고 싶지 않은 일에 엮이게 되는 기분이다. 엄마가 그저 제 몸 성히 건사하며 잘 지내기를 바랐을 뿐인데, 엄마는 성하지 않은 얼굴로 내게 찾아와 작은 재앙을 고백했다. 나는 엄마를 바라보며 답답한 마음을 쏟았고, 우리는 또 한 번 스스로에게 조금씩 실망했다.

 

변호사를 통해 파산절차를 진행한다고는 하지만 나 역시 이번 일을 계기로 파산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파산이 무엇인지 한번 찾아보았다. 그러나 파산에 대한 정보는 생각보다 얻기 쉽지 않았다. 파산하는 사람이 그만큼 흔치 않다는 거겠지. 나의 마음은 다시 한 번 무말랭이처럼 바짝 조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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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대물림. 그것은 얼마 안 되는 한줌의 돈을 대물림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돈에 대한 관념을 대물림하는 것이기도 하다. 동생과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눈앞의 이익을 좇지 말고 사람이라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성인이 되고부터 인문계 대학원에 들어가거나 소설을 쓰는 등 돈이 되지 않는 일에만 매달리는 걸까. 엄마와 아빠가 원하던 삶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들의 심플한 경제관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걸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예기치 않게 풀려버린 실타래처럼 죽 늘어진 생각들을 그러모으면서 생각을 바로잡았다. 정신 차려. 엄마와 아빠 때문이 아니야. 글쓰기는 네가 원해서 하는 거야. 돈이 그렇게 좋았다면 지금같이 키보드를 누르고 있을 시간에 구인정보를 찾아다니고 있었겠지. 네가 오래전부터 바랐던 일을 그런 식으로 스스로 매도하지 마.

 

마음을 가다듬고는 다시 모니터를 바라본다. 껌벅이는 커서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다음 문장을 생각한다. 머릿속이 왠지 이전보다 가벼워진 느낌이다. 글로 성공할 수도 있지, 글로 증명하면 되지.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가볍게 놀리면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경쾌하면서 끈질기게 이어가리라 다짐한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B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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