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별거 가정 (6) - 결국, 피는 못 속인다

무럭무럭열매 작성일 22.04.12 08:40:04 수정일 22.05.02 10: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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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성격은 타고난 게 삼분의 일, 세 살 이전에 부모님 품에서 형성된 게 삼분의 일, 후천적으로 형성된 게 삼분의 일이라고 한다. 내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이 이론은 꽤 신뢰할 만한 것 같다. 비록 엄마와 오랜 기간을 떨어져 살았지만 나는 지금도 성격 중 상당 부분은 어릴 때 엄마에게 받은 영향이 크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엄마는 평소에 나의 장난기를 다정하게 받아주다가도 이건 아니다 싶으면 즉시 불호령을 내리는 '투 페이스' 육아법을 운용했다. '아수라 백작' 육아법, 또는 '냉정과 열정 사이' 육아법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엄마의 눈앞에서는 밥알이 그릇에 한 톨이라도 남아 있으면 밥상에서 일어날 수 없었고, 어른에게 인사를 빼먹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냐는 야단이 곧바로 날아왔다.

 

나는 오랜 기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인사를 하지 않고 나가는 손님을 볼 때면 어딘가 모르게 위화감을 느끼고는 자연스럽게 엄마를 떠올렸다. 사람들에게 바르게 인사하라는 엄마의 불호령을 떠올리면서, 어렸을 때 받은 가정교육은 삶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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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격을 요약하면 감정적ㆍ즉흥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날씨 좋다 고기 먹으러 가자! 하고 수요일 저녁에 갑자기 연락을 하는 식이다. 엄마는 MBTI 검사를 해본 적이 없지만 예상하건대 ENFP와 INFP 사이 어디쯤인 것 같다. 언젠가 엄마의 MBTI가 궁금해서 MBTI 검사를 슬며시 권해봤는데, 엄마는 몇몇 문항을 반대로 찍더니 못해먹겠다면서 중간에 그만둬버렸다. 이마저도 ~NFP스러워서 새삼 속으로 감탄했다.

 

INFP끼리 대화를 나누면 서로가 동족이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아본다. 자신과 비슷한 부류를 감지하는 더듬이가 특히 예민하게 발달된 녀석들이 바로 INFP이기 때문이다. 논리보다는 감정을, 경험보다는 직관을 품은 유형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 역시 다섯 번의 검사에서 모두 INFP를 벗어나지 못한 ‘본투비 INFP’다. 생각난 김에 오랜만에 MBTI 검사를 해보니 역시나 이번에도 INFP 진단을 받았다. 직관형 83%, 여행갈 때 계획 따위는 없는 열정적인 중재자.

 

생각해보니 아빠의 성격도 엄마와 비슷한 점이 많다. 아빠 역시 엄마와 마찬가지로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편이고, 특별한 경우이긴 하지만 술을 마실 때만큼은 깨나 감정적으로 변한다. 발이 넓고 나가 놀기 좋아하는 아빠의 성격을 보면 ENFP에 가까운 것 같다. 동생도 MBTI 검사에서 한결같이 INFP가 나온다고 하는데, 이정도면 가족력이라는 단어가 무서워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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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뭘까. 태어날 때 가장 먼저 엮이는 집단이라고 하면 너무 삭막한 표현일까. 그 바이러스 때문에 참여한지는 꽤 됐지만, 예전에는 주기적으로 독서 모임을 나갔었다. 거기서 <완벽한 아이>라는 책을 놓고 ‘가족’을 주제로 여덟 명의 멤버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완벽한 아이>는 광신도였던 아버지의 잘못된 신념으로 인해 15년 동안 집에만 갇혀 지내다가 성인이 되어 세상으로 탈출한 프랑스 출신 심리치료사 모드 쥘리앵의 에세이다.

 

내가 놀란 점은, 그날 모인 멤버 중에 가족에게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이 대다수였다는 점이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 중 큰 상처를 고백한 사람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대부분 가족에게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오른손잡이가 될 것을 강요해서 양손잡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씁쓸한 표정으로 말해준 군대 후임, 아버지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을 무시해서 되도록 집에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대학원 선배, 어머니에게 어릴 적 받은 정신적ㆍ육체적 학대를 덤덤한 목소리로 고백한 독서 모임 멤버⋯⋯. 이들 모두 가족에게 받은 아픔을 타인에게 용기를 내어 고백한 사람들이다. 그런 아픔을 밖으로 꺼내지 않고 마음에만 담아두고 있는 사람까지 포함한다면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족으로 인해 고통을 겪은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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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피는 못 속이는 법이다. 외모로, 성격으로, 서류상으로 우리는 가족과 끊임없이 연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과의 관계가 너무나도 지긋지긋해 연을 끊기로 다짐한 순간에도 마음속에는 본능적으로 죄책감이 스며든다. 나를 낳았다는 이유로, 나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나와 오랜 기간 부대꼈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가도 거스를 수 없는 불가항력을 느끼며 다시 굴레 안으로 떨어진다.

 

그럼에도 나는 가족과의 연을 끊고자 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것 또한 삶에 펼쳐진 많은 가능성 중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일뿐이다. 그런 선택을 포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족의 의미는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때 단단해지는 법이다. 만약 자신이 가족에게 그렇게 단단한 유대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도리어 가족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있다면, 가족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세상에 두발로 서는 것은 포기가 아닌 용기가 되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B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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