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별거 가정 (3) - 부부 사이도 과실비율이 있나요

무럭무럭열매 작성일 22.04.01 16:36:45 수정일 22.05.02 09:5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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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내가 기억하는 것 중 하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아빠의 잘잘못을 원치 않게 들어야 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나와 동생은 일찍이 엄마랑 있을 때면 아빠를 포함한 친가를 깎아내리는 말을 들어야 했다. 엄마는 아빠의 고약한 술버릇과 우유부단한 성격을 동생과 내 앞에서 흉보고는 했고, 엄마가 집을 나간 이유 역시 아빠의 술버릇 때문인 듯 보였다. 엄마가 그런 말을 할 때면 우리는 엄마의 말에 동조해야 할지, 한귀로 흘려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은 채 그저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서 듣고는 했다.

 

아빠는 누구를 쉽게 손가락질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자존심은 강한 사람이었다. 아빠는 우리 앞에서 엄마와의 관계를 얘기할 때면 본인은 내심 결백하다는 뉘앙스로 자기변호를 했고, 오히려 엄마에게는 돈 문제가 많다는 여지를 남겼다. 그럴 때면 동생과 나는 엄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만히 앉아서 아빠의 말을 들을 뿐이었다. 

 

엄마든 아빠든 결국 본인의 과실은 없다는 게 서로의 입장이었다. 거기에 대해 자식이 무슨 말을 꺼낼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많이 들었고, 조금 말했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쏟아내는 만큼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쏟아내지는 않았던 불균형을 보인 시기였다.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 나의 가정 사정을 우연히 알고는 단둘이 남은 교실에서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었을 때, 친구의 부모님 또한 떨어져 산다는 사실을 어쩌다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별다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많이 듣고 조금 말하는 데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새 과묵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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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엄마는 우리를 두고 떠났고 아빠가 우리를 길렀잖아, 그러니까 아빠가 더 낫지. 동생은 성인이 되자 이런 말을 서슴없이 했다. 동생은 엄마와 아빠의 말들을 취합하여 나름의 판단을 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낸 듯 했다. 제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엄마와 아빠의 문제에 대해 판단하는 것을 미룬 채 이십대를 맞이했다.

 

나는 대학에 들어와서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만 생각하면서 이십대를 보냈다. 인생의 첫 번째 독립이었고, 독립은 내게 꼭 맞는 옷 같았다. 몸에 질척하게 달라붙는 문제들이 근처에 없다는 사실이 상쾌했다. 그 상쾌함을 잃기 싫어서 나는 일부러 외면했다. 차를 타고 한 시간쯤 가면 나오는 익숙한 동네, 그 저변에 깔린 문제들을. 더 이상 골치 아픈 문제에는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대학 동기들은 술자리에 모이면 으레 그 자리에 없는 다른 동기나 선후배를 뒷담화하거나 저울질했다. 누군가를 입으로라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에 한창 재미를 붙일 나이였다. 나는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술자리에서도 말하기보다는 주로 듣는 입장에 섰다(대부분의 경우에는). 누군가를 저울질하는 일에 나는 너무 일찍, 그리고 자주 연루되고 나서 대학교로 들어왔다. 나에게 그런 문제들은 이미 시시해 보였고, 어떻게 보면 앞서 말한 경험을 통해 얻은 소득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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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말했다. 더 고민할수록 더 성숙해진다고. 적어도 나에게는 그 말은 거짓이었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이런저런 고민을 할수록 더 철부지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엄마와 아빠 중 어느 쪽이 더 낫고 아닌지를 판단하는 게 무언가 정당하지 않은 느낌, 어느 쪽으로 기울든 편파판정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나를 서늘하게 했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의 잘잘못을 가려야 할수록 나는 오히려 그 문제를 외면하려고 애썼다. 

 

외면하고 또 외면했지만, 결국 나에게는 외면보다는 판단이 필요했다. 어른들의 말을 어디까지 걸러들어야 하며, 또 어른들의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 나는 ‘괜찮은 어른’에 목말라 있었다. 내가 믿고 좇을 수 있는 어른은 어디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런 어른은 현실에서 상당히 희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또 한 번 현실이 시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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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부부 사이도 과실비율은 있는가. 법적 공방이 걸린 문제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거기까지 생각하면 문제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그 문제는 논외로 하고자 한다. 부부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에서 과실비율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따지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인간은 왜 사는가에 대한 문제와 비슷하다.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해볼 수는 있지만, 고민해봤자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뜻하지 않은 장소, 뜻하지 않은 시간에 현실로 던져졌다. 그렇게 현실로 던져진 김에 살아갈 뿐이다.

 

관계에는 수치로 계량할 수 있는 것보다는 그럴 수 없는 게 더 많이 남는다. 소소한 추억이나 애증 따위의 것들. 그렇기에 사랑하는 사람이나 아끼는 친구, 또는 딱히 어떤 관계라 말할 수 없는 누군가를 저울질하기를 보류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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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어른을 좇던 아이는 어느새 어른 비스무리한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와 어른의 문턱에서 나는 생각했다. 내가 좇고 있는 괜찮은 어른은 결국 내가 스스로 되어야겠지. 이 마음을 먹고부터 나는 긍정의 힘을 믿기 시작했다. 질투와 혐오,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사랑과 희망, 용서 같은 긍정적인 감정의 가능성을 믿었다.

 

조건 없이 사랑을 나누는 대상이 누구에게나 가족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가족이 아닐 이유 또한 없다. 진정한 사랑과 용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부터 시작할 수 있다. 아빠와 엄마는 서로에게 그런 여유를 보이기 힘들지언정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시시했던 현실이 조금은 따뜻해 보였다. 조금은 말랑해진 마음을 가지고 다짐했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말랑하게 만들면서 살아가야지.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B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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