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별거 가정 (2) - 엄마의 빈자리가 내게 남긴 것

무럭무럭열매 작성일 22.03.30 16:03:35 수정일 22.05.02 08: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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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나는 좋게 말하면 쾌활한 아이였고, 다르게 말하면 산만한 아이였다. 몸이 가만히 있을 때는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머릿속이 잠잠하다 싶으면 어느새 뛰거나 춤을 추고 있었다. 엄마는 지금도 내게 개다리 춤을 그렇게 잘 추는 아이였다고 말한다.

 

학교에서는 친구들 입에서 웃음을 터트리기 위해서는 야한 농담도 불사했고(철이 없었습니다), 조회 시간에 선생님 몰래 콧노래를 불러서 선생님이 누군가 음악을 틀어놓은 줄로 착각한 적도 있다(참으로 철이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속이거나 웃게 하는 게 당시 나의 의무이자 사명이었다. 초등학생 때 나의 장래희망은 해마다 바뀌었지만 주로 코미디언이나 예술가 같은 것들이었는데, 모두 관종력이 충만해야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여느 때처럼 관종력을 뽐내며 친구와 밖에서 놀던 어느 날이었다. 장을 보고 오는 친구의 엄마와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고, 친구는 멀리 있는 엄마에게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헤이, 김영옥 여사!"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친구의 엄마에게 인사를 건넸다.

 

엄마를 따라 집으로 간다는 친구를 보내고 나는 친구와 가지고 놀던 흙더미를 발로 술렁술렁 헤집었다. 한참을 흙에 대고 의미 없는 장난을 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반지하였던 우리 집에는 머리 쪽에 나있는 조그만 유리창에서 노을빛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일요일 저녁이었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기억이 조금씩 쌓이면서 나는 남들에게는 없는 한 스푼의 외로움이 있다는 사실을 차츰 깨달았다.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남들과는 어딘가 다르다는 서늘함.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엄마와 아빠가 떨어져 산다는 사실을 숨기는가. 대답할 수 없었다. 이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역시 대답할 수 없었다. 왜 숨겨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이미 들킨 사람처럼 행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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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어느 여름날이었다. 조별 숙제를 하기 위해 네다섯 명이서 친구 집에 모였다. 방에서 다 같이 숙제를 하고 있는데, 당시 반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와 사소한 일로 시비가 붙었다. 애들 싸움이 으레 그렇듯이 사소했던 말다툼은 금세 절정으로 치달았다(어른 싸움이라고 안 그런 법은 없지만). 일어선 채로 한창 서로를 쏘아붙이고 있는데, 친구가 문득 나를 보며 말했다.

 

“집에 엄마가 없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야?”

 

친구의 표정은 비열하면서도 의기양양했다. 친구는 약을 올리는 동시에 싸움의 승기를 잡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원래 의도했던 효과를 아득히 넘어섰다. 나는 단순히 말싸움에서 패한 것을 넘어서 의식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주변의 소리가 물에 잠긴 듯 먹먹하게 울렸다.

 

학교에 그런 소문이 있다고? 그런 소문은 누구한테 들은 거지? 얼마만큼의 애들이 얼마만큼의 사실을 알고 있는 거지? 그날 조별 숙제를 끝내지 못한 채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별거 가정이라는 사실이 나에게 무력감을 안기는 첫 번째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한동안 고민했다. 나와 내 가족에 대한 것을 어디까지 감춰야 하고 어디까지 드러내야 하는지. 끝내 답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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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올라오자 누군가의 관심을 얻는 일이 더 이상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학교나 집에서는 말수가 적어졌고, 사람과 부대끼는 모든 일이 시시해보였다. 친구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광대를 자처하는 일도 없었고,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관심을 얻기 위해 무언가 노력하는 일도 없었다. 내가 변한 것을 스스로도 느낄 정도여서, 교복이란 게 이 정도로 무게감을 주는 것이었나, 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당연히 그것은 교복 때문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내면에 천천히 쌓이기 시작한 자격지심은 나의 중학교 시절을 이전과는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나의 중학교 생활은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었다. 게임과 만화. 이들의 공통점은 혼자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아빠와 동생과 큰방에서 같이 잘 때면 나는 늦은 밤 이불 속에서 슬금슬금 빠져나와 컴퓨터가 있는 작은방으로 향했다. 숨죽여 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앉아서 RPG, 격투, 레이싱, 퍼즐 등 잡히는 대로 게임을 했다. 만화 역시 장르를 가리지 않고 게걸스럽게 읽어나갔다.

 

어두운 방에서 홀로 깨어있는 시간⋯⋯ 현실이 아닌 세계로 깊숙이 몸을 던지고 나서 멍한 기운으로 아침을 맞아 학교로 가는 생활을 이어갔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에 하는 것도 있지만, 다른 무언가를 외면하기 위해서 하는 것도 있다.

 

아빠가 삶의 고단함에 못 이겨 술에 절은 채로 집으로 돌아와 자고 있던 동생과 나를 깨워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을 때, 답이 보이지 않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버릇처럼 던질 때, 그럴 때면 나는 현실에 주어진 고민을 외면하기 위해 게임과 만화 속의 세계에 몸을 던졌다. 중학교 시절이 게임과 만화에만 파묻힌 시간은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있을 때면 마음속에서 자격지심이 불현듯 고개를 들었기에 당시 내가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은 게임과 만화뿐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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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빈자리는 어린 시절 내게 무엇을 남긴 걸까. 일찍이 깨닫지 않아도 되었을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누군가와 함께여서 마음이 허전할 수도 있다는 사실. 아빠와 있을수록, 동생과 있을수록, 친구들과 있을수록 엄마의 빈자리는 커졌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내게는 어떤 것이든 좋은 면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엄마의 빈자리가 내게 안겨준 것은 무엇인가. 자격지심이나 무력감, 상실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감정이다. 일찍이 이런 감정에 눈뜬 나는 다른 사람의 무력감과 상실감에 공감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세상의 아픔을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글을 쓸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별거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세상을 편협하지 않은 시각으로 볼 수 있었다. 엄마의 빈자리는 내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결국 세상에는 완전한 가정은 없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나 어두운 감정은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의 아픔이 위로가 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내게는 그렇다. 이런 상황에 놓인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 커다란 위안감이 내 몸을 휩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이 글을 쓰기로 다짐한 이유이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은, 그리고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리기 위해. 여기, 당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 한때는 아픔을 겪었지만 지금은 아픔을 딛고 괜찮은 사람들과 괜찮은 삶을 이어가고 있다. 당신 역시 그럴 수 있다. 나 또한 그랬기에.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나는 오늘, 여기에 글을 남긴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B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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