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별거 가정 (1) - 별거 가정이 뭔가요?

무럭무럭열매 작성일 22.03.28 15:59:43 수정일 22.05.02 08:3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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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부터 우리 부모님은 20여년을 별거했다. 내 기억 속 엄마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판촉 일을 했는데, 엄마가 가끔 회사에서 가전제품이나 게임기를 얻어 오면 동생과 함께 방방 뛰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홍역이 걸렸었는데, 덕분에 학교도 안 나가고 엄마가 회사에서 가져온 게임기를 집에서 하루 종일 붙잡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갈 무렵부터 엄마를 집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자 나는 그저 엄마가 많이 바쁜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아빠와 나, 그리고 두 살 터울인 동생까지 셋만 집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 이 사실을 깨달았는지는 모르겠다. 친구들은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학원을 이리저리 쏘다니는데 나만 시간이 남을 때? 선생님이 부모님 면담을 요청할 때? 모르겠다. 어떤 특별한 계기 없이, 마치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해가 지고 저녁이 온 것처럼 엄마가 불현듯 멀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별거 가정이 되었다. 엄마와 아빠가 서류상으로는 붙어있으면서 실제로는 떨어져 사는 가족, 별거 가정. 사실 나는 ‘별거 가정’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지만, 우리 가족을 한마디로 표현하기에 마땅히 어울리는 단어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떠올린 단어이다. 별거 가정. 나중에 찾아보니 아예 없는 말은 아니었다.

 

이혼 가정과 별거 가정은 엄연히 다르다. 이혼 가정에 비해 별거 가정은 뭐랄까, 다른 사람에게 ‘가족의 상태’를 밝히기에 애매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선생님이 가족관계를 조사할 때가 많았는데―요즘도 학교에서 가족관계를 조사하는지 궁금하다―어린 나로서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우리 가족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곤란한 경우가 많았다. 다만 굳이 나서서 티만 내지 않으면 우리 집이 별거 가정이라는 사실을 들킬 일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면 언제나 진실의 반은 감추는 쪽을 택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모두 건강하시지? 예 그럼요. 수학여행 안내서에 부모님 사인이 필요한데 어머니 아버지 사인을 받지 못할 사정이 있는 사람은 선생님한테 따로 말하렴. 받지 못할 리가 있나요.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들켜도 무슨 큰일이 났을까 싶지만, 어린 나이에는 으레 그렇듯이 부모님이 떨어져 산다는 사실을 들키면 하늘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쟤, 엄마가 집을 나갔대. 엄마가 없어서 그렇게 행동했구나. 이제야 이해가 되네. 그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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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가정은 별거 없다. 서류상으로는 누구도 떨어져나가지 않았고, 엄마는 집을 나갔다고는 하지만 개천을 사이에 두고 옆 동네에 살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엄마를 만났고, 만날 때마다 같이 햄버거나 짜장면 같은 것을 먹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매장에서 불고기버거를 먹고 있던 엄마가 느끼하다면서 김치를 찾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 나의 성향은 엄마의 그런 점을 많이 닮았다. 이른바 ‘안 될 거 없잖아?’ 정신. 먹고 싶은 것을 먹는 아내와 달리 나는 집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음식부터 찾아 먹는 편이다. 그럴 때면 오돌뼈볶음 같은 술안주를 밥반찬으로 먹을 때도 있고 치킨무를 김치 대신 밥에 올려 먹을 때도 있다. 아내는 그런 나의 상차림을 보면서 질겁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를 떠올린다. 이렇게 먹으면 ‘안 될 거 없잖아?’

 

아빠와의 오랜 불화 끝에 엄마는 우리가 살던 바로 옆 동네에 원룸을 잡았다. 엄마는 이것으로 인생에서 두 번째 독립을 했다. 다른 남자를 만나지도 않았고, 우리 곁에서 아주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다. 엄마는 그저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 떠난 것이다. 엄마가 떠나면서 나에게 말하는 듯 했다. 이렇게 산다고 안 될 거 없잖아? 어렸을 때는 엄마가 왜 떠났을까, 우리 가족이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있는 걸까, 같은 고민을 혼자서 많이 했는데, 서른이 넘은 지금은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별거하는 당사자의 마음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밑에서 자라는 자식의 눈에는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미워하는 것 같지도 않고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엄마와 아빠는 별거하는 동안 가끔 얼굴도 보고, 동생과 나의 학교일이나 경제적인 문제로 연락도 하면서 애매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 모습이 어린 나의 눈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른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단다, 얘야. 아이였던 나에게 지금의 내가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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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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