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본 연구소 - 9 퇴락한 혁명의 나라 니카라과

갑과을 작성일 20.09.15 14:18:57 수정일 20.09.15 14:20:44
댓글 9조회 5,098추천 19

이번에도 적잖이 늦었습니다.

직업 특성상 코로나가 창궐하니 더욱 바빠져서….. 이렇게 글을 늦게 쓰게 되었습니다.

빨리 이 전염ㅇㄻㅇㄹ병이 가라앉아야 좀 여유도 생길텐데….. 허허 참

저번시간에는 니카라과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다루어봤습니다. 이제는 그걸 한 층 더 깊숙히 다가가고자 합니다.

니카라과에 대해서 다룰 것은 크게 두 가지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기다린 시간에 비해, 내용이 적잖이 빈약해 질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이 게시글은 ‘삼프로 tv’의 코너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의 내용을 토대로 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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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전과 운하

앞서 말씀 드렸지만, 니카라과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바가 별로 없다보니…… 이 나라의 특징적인 것을 다루어야 개괄적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특징적인 것이 무엇인고 하면….. 저기 제목에 나와 있는 것 처럼 ‘내전’ 그리고 ‘운하’입니다.

앞서의 편에서 간단하게 그리고 조금 가볍게 짚고 넘어갔기 때문에, 이번 시간에는 좀 더 깊이 파고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2) 쟤는 처음부터 마음에 안들었어

저번 게시글에서 이야기 했지만, 니카라과는 서쪽의 태평양 지역과, 동쪽의 대서양 지역이 별개로 살아오다가, 중남미 독립의 물결 ~ 멕시코 제국의 사분오열의 시기에 각자 살림을 차리는 분위기 속에서

 

“님”

“ㅇㅇ”

“어차피 거리도 가까운데 그냥 한식구 할래여?”

“콜”

 

이런 식으로 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다만, 인구의 분포가 5/6은 태평양 지역 / 1/6은 대서양 지역으로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태평양 지역이 아무래도 메인 스트림이 될 수 밖에 없겠지요.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사람이 모이면 티격태격 할 수 밖에 없나 봅니다.

5전체 인구의 5/6을 차지하는 태평양 지역은, 사람들의 갈등과 대립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고 해요. 대체 무엇으로 갈등을 빚었느냐…… 결국 부동산이었습니다.

대 토지를 소유한 지주와, 그 사람들에게서 노동력을 제공(혹은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땅”을 두고 갈등이 빚어졌대요.

 

우리나라도 갈등하면 떠오르는게 “지역갈등”과 “정치 갈등”일겁니다. 우리나라같은 경우는 지역갈등과 정치갈등이 얽혀서 복합적으로 일어나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갈등양상을 보면서 “이건 그냥…… 야구팀 응원과 비슷한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내가 대구에서 태어났으니 삼성팬을 한다’와

‘내가 대구에서 태어났으니 모 당을 지지한다.’

 

그리고

 

‘내가 광주에서 태어났으니 기아팬을 한다’와

‘내가 광주에서 태어났으니 모 당을 지지한다.’

비슷해 보이죠?

 

물론 “아닌데? 난 xx시에 사는데 ㅇㅇ당을 지지하는데?”라고 말하는 분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야구팬도 마찬가지일 테니….

 

니카라과도 이와 비슷합니다.

니카라과 역시 a라는 지역은 보수 / b라는 지역은 진보 이런식으로 정치 이념과 지역감정이 얽혀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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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 나오는 두 도시가 바로 각 진영을 대표하는 도시였습니다.

남쪽의 그라나다는 지주 중심 /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도시이고

북쪽의 레온은 노동자 중심 /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도시였습니다.

독립 전부터 이 두 지역은 ‘이 지역의 대빵은 당연이 나지’라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는데요

수면 아래에서 면면이 벌어지던 갈등이 독립을 기점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나라가 생기면 당연히 나라의 ‘수도’를 정해야겠죠?

짱공유가 나잇대가 지긋한 사람들이 모이긴 했어도, 1945년 이전에 태어나신 분들은 없다고 가정을 하자면, 나라가 새로 세워지는 것, 그래서 수도를 새로 정하는 것은 매우 생경한 경험일 겁니다.

뭐….. 한국의 경우에는 ‘서울이 500년 전 부터 수도였으니 그냥 여기로 해’라는 식으로 결정됐겠지만

니카라과의 경우에는 레온과 그라나다 모두

“당연이 새로운 수도는 우리동네 아니갔어?”라고 들고 나선거에요.

 

우리나라였다면…… 독립하자마자 수도를

“서울로 할래 평양으로 할래?”를 두고 내전이 벌어지기 직전까지 간 셈이지요.

이게 단순히 두 도시의 자존심 대결로 빚어졌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 당시 니카라과에서 수도를 정하는 문제는

“이 나라의 정치적 방향성을 이쪽으로 결정하겠다.”라고 하는 것과 같았기에

수면 아래의 지역갈등은 정치갈등과 연합하여 수면 위로 부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칫하다간 나라가 세워지자마자 총 칼 들고 싸움을 벌여야 할 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제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지요.

 

“야.”

“ㅇㅇ?”

“그냥 수도 정하는건데, 이러다가 다죽겄는디?”

“ㅇㅇ ㅠㅠ”

“내가 기가막힌 생각이 하나 있는디 들어볼려?”

“뭔데?”

“어차피 나는 니네 동네를 수도로 인정할 생각 1도 없고, 너도 우리동네를 수도로 인정할 생각이 1도 없으면.”

“ㅇㅇ?”

“제 3의 동네를 수도로 삼으면 되는거 아님?”

“어? 그러네?”

 

이성적인 비둘기파의 극적인 합의 덕분에, 레온과 그라나다의 중간쯤의 작은 도시였던 마나과는 그렇게 수도가 되었습니다.

 

저번편에 말했듯이 마나과는 니카라과의 두 거대 호수 ‘니카라과호’와 ‘마나과호’ 중에서 마나과 호에 딱 붙어있는 도시죠.

마나과 호수가 먼저 있고, 그냥 이쯤에서 도시하나를 수도로 만들되, 그 이름을 호수이름 따지 뭐 라고 했는지

아니면 그 전부터 마나과라는 도시가 있긴 했는데, 그냥 그 지점이 중간이니까 수도로 삼았는지는 사실확인이 필요하네요.

니카라과에 대해서 알고 계신 분이 계시면, 피드백을 부탁드립니다.

 

어쨌거나, 나라가 첫 걸음을 떼기도 전에 피바람을 맞을 뻔 했지만, 이성적인 합의 덕분에 니카라과는 피바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늘 운이 좋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3) 잠깐 옆길로 차선변경 하겠습니다. (Feat. 골드러시)

 

제목에서 언급되었지만 ‘골드러시’하면 어느 나라가 떠오르나요? 말 할 것도 없이 천조국이 떠오를 겁니다.

카우보이 / 현상금 사냥꾼 / 보안관 / 황야의 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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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시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

 

수컷 냄새, 모래바람 냄새 풀풀 나는 이야기에 의외겠지만 니카라과도 까메오…… 라기 보단 나름 조연급 배우로 출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 역사를 잘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야, 서부영화가 제공한 선입견(스테레오 타입)에 따라서 서부영화 하면 앞서 언급한 카우보이 / 현상금 사냥꾼 / 보안관 / 그리고 사막….. 같은 것이 떠오르겠지만

 

미국 사람들에게 선입견 대로

“니네는 서부 개척시대에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 처럼 말 / 마차 타고 서부까지 가겠다?” 라고 물어보면

미국사람들은 “ㅋ 뭐래?” 라고 한다는군요.

 

생각해보면 간단한 것이

서부 개척 당시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자기나라의 땅은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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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이 사는 동부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들 + 야생동물들이 사는 중부 대평원 + 로키산맥

금이 있다는 서부

 

 

우리의 선입견대로라면,

짐마차 + 말을 타고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종족 + 험준한 자연환경 + 있을지도 모르는 맹수들이

득시글 거리는 곳을 뚫고 가는건…..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선 “아 이건 좀” 하지 싶습니다.

 

물론 “나는 내 손의 총 한자루만 믿는다. 약진 약진 앞으로!”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건 매우 극 소수일 뿐이고요

대부분의 경우에는 “안전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뭣도 모르고 총 한자루 들고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느니, 기존에 있는 안전한 루트로 가면 되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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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진술에서 제시된 “기존에 있는 안전한 루트”가 바로 니카라과를 뚫고 가는 거였습니다.

물론, 우리가 볼때는 물음표가 뜨긴 해요.

 

아니 거리상으로 보면 너무 삥 돌아가잖아. 그냥 저기를 뚫고 가면 안되?

하지만, 거리상으로 가깝지만 danger한 길과

거리상으론 멀리 돌아가지만 safe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면?

나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온 가족을 대동해서 가야 한다면?

가장의 입장에선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 것이 자명한 일일 겁니다.

 

 

엥? 니카라과가 기존에 있는 안전한 루트라고? 하실텐데요.

실제로 니카라과는 미국인들에게 그런 취급을 받았대요.

니카라과는 1821년부터 독립을 했었습니다.

적어도 그 이전 300년 정도는 이미 그 존재가 북미지역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겠지요.

거기에 대서양쪽의 ‘모스키토 해얀’은 미국의 본가집인 영국 식민지였으니

에스파냐어를 사용하는 다른 지역보다 말도 잘 통했겠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봤을 때는 미국하고 니카라과? 서로 뭔 상관이야? 하겠지만

미국 사람들 입장에선 니카라과는 남쪽에 있는 작은 아빠네집 정도로 여겼을 거에요.

 

이런 배경 덕분에 니카라과는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에

“어서오세요 여기는 니카라과 입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어놓고

서부개척을 위해 뛰어든 미국인들을 상대로

ⓐ니카라과 횡단 가이드

ⓑ니카라과 관광

ⓒ니카라과 정착 알선 등

서부개척 코인을 쪽쪽 빨아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 이게 대체 니카라과의 내전과 무슨 상관이냐…….

이 다음장에 집중적으로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4) 여긴 이제 제 땅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서부개척시대의 흐름에 의해 니카라과와 미국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때야 뭐 좋았겠죠. 돈 많은 양키들이(물론 그중에서도 일확천금을 노린다는건 가난한 사람들이었겠지만) 돈을 펑펑 써대니 달러뽕에 잔뜩 취했겠지만

 

서부를 향해 나가던 미국인들 중 일부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아 이거 좀만 더 빨리 출발했으면 우리가 그 많은 금을 다먹을 텐데.”

“ㅇㅇ 근데 우리는 좀 늦은 편이긴 하지.”

“어차피 가봐야 금도 원하는 대로 다 못먹을 거 같은데.”

“ㅇㅇ?”

“그냥 여기서 남을래? 어차피 여긴 농사도 잘 되잖아.”

“........ 그럴까 그냥?”

 

이런 생각을 한 일부 미국인들이 니카라과에 땅을 사서(상대적으로 더 쌌을 테니)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윽고

 

대토지를 소유한 농장주가 되었지요.

 

앞서 수도를 정하는 문제로 두 도시가 갈라져 서로 으르렁댔다고 했었는데 기억나시나요?

지주가 중심인 그라나다와, 노동자가 중심인 레온이요.

미국인 정착민들은 대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으니, 자연스럽게 그라나다, 혹은 보수 우파를 지지하는 쪽으로 재니 미국인(어째 사람 이름 같네요)들의 여론이 기울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라나다쪽은 어께에 힘이 들어갈 수 밖에 없었고

힘의 균형이 무너지는걸 레온쪽은 거세게 반항할 수 밖에 없었고

그걸 보는 재니 미국인들은 “아오 저것들 또 싸우네.”라고 불안해 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미국인들은 본국에 SOS를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입장에선…….

“안그래도 운하 파려고 했는데, 딱 적당한 후보지에 살고있는 자국민들이 도움을 요청하네?”

“명분 좋고. 가자!”

라며 신나게 해군을 끌고 니카라과로 진격을 했습니다.

 

“하이 헬로우.”

“읭? 니들이 여긴 무슨 일이냐?”

“니들이 하도 싸워대니까 니네나라에 살고있는 우리 미쿡인들이 불안하다고 해서.”

“그래서 뭐?”

“불안감을 없애줘야지.”

“그건 우리나라 경찰들이 알아서 할게. 돌아가.”

“시른데? 내가 니들을 어떻게 믿냐?”

“아니 근본적으로 못 믿겠다고 다른나라에 군대를 끌고 오는게 말이나 되냐?.”

“됐고. 이제 여긴 내땅이다.”

 

근현대사를 공부하셨던 분들이라면……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죠?

이렇게 미국은 1909년부터 1933년까지 장장 20년 가까운 시간동안 니카라과를 점령하였다고 합니다.

이때의 시기를 둘로 나누면 1909년에 한 번

1919 ~ 1933년까지 또 한 번

이렇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고 해요.

 

그럼 이때 미국 해병은 니카라과에서 뭘 했느냐……

ⓐ 일단 명분대로 자국민을 보호

ⓑ 여기에 운하를 팔 지도 모르니까 지질조사

ⓒ 여기에 상륙 + 점령하는 동안 애들의 저항이 거셌으니 이렇게 된 김에 상륙훈련 연습장으로 활용

 

이때 ⓒ를 언급하자면 상륙을 저지하던 니카라과의 저항에 부딪치면서

“이거 배만 잘 만들어서 되는게 아니구나, 결국 전쟁은 땅따먹기이니, 배에서 땅으로 올라오는 상륙하는게 제일 중요해”라는 깨달음을 얻은 미국은

 

이런 교훈을 토대로 미국 해병대는 세계 최초로 상륙 작전에 대한 전략을 연구하고 상륙 전용 설비 (이게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해병대 출신 짱공인의 피드백이 필요할 것 같네요)를 개발했고 그것은 시간이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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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함)

 

노르망디 상륙작전 / 인전 상륙작전 같은 대규모 상륙작전을 실행하는 토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거야 그거고…… 니카라과 입장에선 명백한 주권국가에 남의 나라 군대가 쳐들어와서, 내정에 간섭하고, 영토를 상륙훈련장으로 활용하고, 자기 나라 땅을 멋대로 측량을 하는데 그 꼴이 결코 좋게 보일 수가 없겠죠.

 

 

 

5) 호랑이가 떠난 굴은……

 

어쨌거나, 미국 강점기도 결국은 1933년에 끝이 났습니다. 가장 좋기로는 니카라과 국민들이 일치 단결해서 외국 지배자를 쫓아냈으면 좋겠지만……. 상대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잖아요? 그건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미국이 니카라과를 떠난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요. 일단 태평양 전쟁을 하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고, 서부개척시대도 끝난지는 한참이고 결정적으로

 

“여기 있어봐야 전략적으로 별 이득도 없네.”하는게 컸습니다.

 

멋대로 왔다가~ 바람처럼 홀연이 사라져버리는 미군의 뒷모습을 본 니카라과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됐을까요?

 

“야, 니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남의 군대 군홧발 아래에서 신음했잖아!”라고 책임소재를 따지고 싶었겠죠?

 

실제로, 그렇게 니카라과에선 내전이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진보진영에서는 “니들이 미국놈들하고 붙어먹어서 외국 군대가 이렇게 우리나라를 침략했잖아!”라고 했을 것이고

보수진영에서는 “니들이 우리 말만 잘 들었어도, 미국이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쳐들어 왔겠냐?”라고 했겠지요.

 

어쨌거나, 그 두 세력의 갈등을 강제적으로 억누르던 미국이란 큰 힘도 없었으니….. 이들의 내전은 선을 한참 넘어…... ‘저놈을 죽어야 내가 산다.’라는 식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때 진보진영은 지도자의 이름을 딴 ‘산디노’라는 세력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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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좌파의 지도자 산디노

 

보수진영은 지도자의 이름을 딴 ‘소모사’라는 세력이었습니다.

길고 긴 내전 끝에, 승기를 잡은 ‘소모사’ 세력은 자신들의 라이벌이던 ‘산디노’를 체포해 처형하고 그 일가친척들을 모조리 죽여버렸어요.

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삼족을 멸족시켜버린 셈입니다.

 

그뒤에 니카라과는 힘의 논리에 의해…... ‘소모사’집안의 세도정치 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6) 소모사 집안의 세도정치

 

소모사 집안을 이끌던 이는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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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

 

이 사람이 모든 권력을 틀어쥐고 잡았다…...면 독재였겠지만

제가 굳이 세도정치라고 표현한 것은, 이들의 전횡이 조선말기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와 매우 흡사했거든요. 혼자서 다 해먹는게 아니라

 

“국방부 장관은 우리 큰아들럼이 하고”

“국토부 장관은 우리 둘째 동생이 하고.”

“외교부 장관은 우리 셋째 처남이 하고.”

 

이런식으로 주요 요직에 자신의 일가친척들을 앉혀놓고서 마음껏 국정농단을 벌이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족벌국가인 셈이지요.

여기서 약간 물음표가 뜨는 이야기가 있는데, 나중에 언급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르헨티나의 정계에 풍운아라고 불리는 후안 페론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좌파거든요.

근데 아르헨티나 좌파의 대표격인 후안 페론과 니카라과 극우의 대표격인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랑은 절친이었다고 합니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하는 모양이군요.

 

이 사람에 대해서 하나 더 여담을 하자면, 소모사 집안이 니카라과를 마음껏 해쳐먹을 때 당시 미국 대통령이 ‘프랭클린 루즈벨트’(뉴딜 정책을 시행한) 사람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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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평가가 시급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민주주의를 앞세운 미국이니, ‘야 저거 빼박 독재자 아님? 우리 아랫동네에 작은 히틀러가 설치게 놔둘순 없지.’라고 생각할 법 하지만……

루즈벨트는 “소모사? 니카라과 민주주의의 수호자 아님?”이라고 인정해줬다는군요.

물론 미국에도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 있으니. “이놈은 빼박 나쁜놈입니다 각하”라고 만류를 했지만 이때 루즈벨트의 반응은

 

“그래 그놈이 개객끼 일 순 있어. 하지만 그 개객끼가 우리 개객끼라고”이라고 대답 했다는 군요……

허……. 이거 참 루즈벨트도 재평가가 시급한 것 같습니다.

 

이 집안은 장장 70년간 니카라과에서 잔뜩 해먹었는데요. 아나스타시아 혼자서 해먹은 게 아니라, 아버지는 2차 대통령 집권기에 반군에 의해 암살당하고, 그 장남이 ‘소모사’집안의 정권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물론 아버지가 암살당한 판국이니, 처음에는 허수아비 대통령을 앞세워서 막후 조종을 하다가…… 1967년엔 “이젠 막후 놀이도 질렸어.”하며 전면으로 나섰대요. 어떻게 보면 최순실이 리모컨 집어던지고 “아오 내가 직접 나선다.”하고 전면에 나온 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소모사 집안의 세도정치가 하루 이틀이 아니라 장장 70년 동안 이어졌으니, 반항하던 사람들도 차츰차츰 변졀하고, 나머지 국민들도 “에휴 그냥 이렇게 답없이 살아야 하나보다…..” 하고 반쯤 포기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도 “니카라과? 그냥 소모사 왕국이지 뭐.”라고 생각할 정도였구요.

 

 

이런 분위기가 갑자기 반전되는 일이 벌어졌으니……

1972년에 엄청난 지진이 발생했어요. 어느정도로 엄청났냐면…… 전 국토의 90%가 지진의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2000년대에 그 옆동네 아이티에서 지진이 나서 전 국토의 90%가 피해를 봤다고 했지만 니카라과는 국토 면적이 그보다 더 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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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지진 당시 수도 마나과

 

어쨌거나, 한 나라가 지진으로 폭삭 망하게 생겼으니 당연히 국제 원조가 물밀듯이 들어왔겠지만…… 이때 가만이 있을 소모사 집안이 아니죠.

위기는 기회라고 “지진 코인 가즈아!!!”를 외친 겁니다.

 

“안녕하세요.”

“ㅇㅇ 어디서 오셨소?”

“아 네 저흰 한국에서 온 지원단입니다. 구호물자 가지고 왔는데 피해 주민들한테 나눠주려면 어떻게 해야하죠?”

“구호물자요? 아이고 환영합니다. 물자들은 저기 창고에 두시면 되요.”

“네? 그냥 저희가 직접 나눠드리려고 하는데.”

“에이 어차피 말도 안통할텐데. 그냥 우리가 알아서 나눠 주겠습니다. 저따가 두고 가세요.”

“읭?!?”

 

그렇게 전 세계에서 오던 구호물자들을 한데 모아두고…… 밤새 몰래 빼돌리는 겁니다.

그리고 나선, 자국 국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비싼 값을 받고 파는 거지요. 최순실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창조경제”는 다 이미 이런 선례들을 충실히 따랐던 모양입니다.

 

 

 

7-1) 님 우리가 호구로 보이죠? - 1

 

이렇게 소모사 집안이 구호물자로 창조경제를 이뤄내기 11년 전, 니카라과의 어느 구석에 산디니스타라는 집단이 창설을했습니다. 정식 명칭은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사회주의 성향의 정당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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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디니스타 정당기

 

지금이야 정당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무장단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어쨌건, 이들은 처음에는 지방에서 깔짝거리는 게릴라 정도였지만…… 11년 동안 존버를 하다가 1972년에 마침내 그들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소모사 집안이 지진 구호물자로 장난질을 한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국민 전체가 들고 일어선 것이죠. 이때 산디니스타 반군은 “우리가 국민과 함께 하겠습니다!”라며 맨 앞에서 선봉장을 자처하며 들고 일어섰습니다.

전 국민이 들고 일어 섰고, 그걸 등에 업은 산디니스타 반군은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로 진입해, 드디어 ‘소모사’집안을 모조리 축출 할 수 있었습니다.

 

70년 동안의 독재에 시달리던 국민들이 소모사 집안에게 ‘님 우리가 호구로 보이죠?’라며 쫓아낸 사건이죠.

 

아마, 키드갱에서 나온 ‘신당동 떡볶이가 니카라과 족벌 독재 정권에 반한 니카라과 혁명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과 뭐가 다르냐.’드립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1987에 버금가는 해피엔딩이겠으나…….

 

 

‘님 우리가 호구로 보이죠?’는 니카라과 국민들의 전매특허가 아니었다는게 문제였습니다.

 

 

 

7-2) 님 우리가 호구로 보이죠? - 2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서사구조는

나쁜놈에게 고통받는 착한 사람 -> 구원자의 등장 -> 나쁜놈 축출 -> 해피엔딩 일 겁니다.

이런 서사구조는 아무래도 곰팡내 나는 ‘동화책’에서나 볼 법 하구요.

 

요즘 시대의 서사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쁜놈에게 고통받는 착한사람 -> 대 역전극 -> 나쁜놈 축출 -> 해피앤딩 + 속편 예고(대부분 나쁜놈이 복수를 다짐)

 

 

니카라과의 경우는……. 전자였다면 국민들이 행복했일지도 모르겠지만

요즘시대의 서사구조를 철저하게 따랐습니다.

 

장장 70년을 해먹다가 하루아침에 맨몸에 빤스바람으로 쫓겨날 처지에 놓인 ‘소모사’잡안은 이를 뿌득뿌득 갈았습니다.

“두고봐라 이놈들아!”라고 전형적인 악당의 퇴장되사를 읊조리는 대신

 

ⓐ 그들이 그동안 슈킹쳐 놓은 돈들을 탈탈 챙겨서 해외로 반출

ⓑ 몸을 챙겨서 다른 나라로 탈출

 

그래요…… ⓐ까진 그럴 수 있다고 치자구요. 하지만 기왕 ⓑ를 할거면, 손도 닿지 않을 바다건너 유럽이나 아프리카로 가서, 그 돈으로 떵떵거리며 살면 됐을 것을……

산디노 가문은 ‘두고봐라’라고 말을 했기 때문에…….

 

바로 이웃나라인 코스타리카와 온두라스로 도망을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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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바로 이웃나라로? 거기로 갔다가 거기 지도자들이 니카라과로 넘겨버리면 어쩌려고?” 라고 생각하실텐데요. 당시 중남미는 미국의 위성국가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그 나라의 지도자들도 사실 소모사와 도찐개찐인 터라, ‘우리가 남이가?’를 외쳤거든요.

 

그래요 뭐….. 이웃나라로 도망쳤다고 칩시다. 그래도 거기에서 그냥 짱 박혀서 가지고 온 돈으로 잘 먹고 잘 살면 되겠지…...하겠지만

 

소모사 집안은 자신이 슈킹쳐온 돈을 풀어서…… 반군의 반군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반군의 반군이라…… 산디니스타가 반군이었으니, 그에 반대하는 군대는 반군의 반군이겠죠. 어떻게 보면 참 웃기는 말장난이지만…… 이게 말장난이 아니라, 피의 보복으로 이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이때 만들어진 반군의 반군의 이름은 ‘콘트라’ 중남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면 들어는 봤을 콘트라 반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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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반군 콘트라 반군

 

이들의 주요 활동무대는, 아무래도 자신들을 지원해주는 소모사 집안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온두라스 - 코스타리카와 가까워야겠죠? 니카라과의 변두리 지역에서 주로 활동을 했고, 그런 지역은 아무래도 농촌 지역이다보니….. 농촌 지역에서 우파 반군의 대량 학살극이 자행되었습니다.

 

 

 

8) 저놈들이 개객기인건 맞어 그런데……

 

미국 입장에선….. 소모사 집안이 축출되고 나서 머리가 아팠을 겁니다.

“아오 저놈들 그러니까 적당히 해쳐먹었어야지. 구호물자까지 빼돌려서 팔어?”

“에헤이 참어. 그렇다고 쟤들 쫓겨나면 니카라과는 그대로 빨갱이 소굴 되는거야.”

“으…..응? 말 하기가 무섭게 쫓겨 났네?”

“아이고 두야…..”

 

그 뒤에 소모사 집안이 “i will be back”을 외치며 콘트라 반군을 꾸려나갔을 때는

“하….. 저놈들 다시 정권 잡겠다고 농촌에서 깽판을 치네.”

“저렇게 눈에 보이는 대로 족족 죽여버리면 대체 정권잡고 누구를 지배하려는거야?”

“그러게 말이여….. 그냥 평화롭게 바나나 농사 잘 지어서 팔면 될걸 왜 저리 총질이야?”

“근데 이대로 두고만 볼겨? 끝은 봐야지?”

“ㅇㅇ”

 

 

미국은 은밀하게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는 동시에 니카라과의 정권을 장악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을

 

“니들은 빨갱이에 테러단체들임 ㅇㅇ”

“?!? 국민들 지지를 업고 정권 차지했는데 뭔 개ㄴㅇㄻㄴㅇㄹ소리?”

“아 모르겠고. 안그래도 턱밑에 쿠바도 짜증나 죽겠는데. 니들까지 빨갱이 되는건 더는 못봐. 어금니 꽉물어 경제제재 들어간다.”

 

이런 식으로 테러단체 지정 + 경제제재 콤보를 먹여버립니다. 그냥 뭐…… 말려 죽여버리겠다는 거죠.

안그래도 1959년에 바로 턱밑에 쿠바가 공산화도 됐겠다. 그거 때문에 짜증나 죽겠는데 재들까지 공산화 되면 답도 없을 거라는 계산이 나왔던 걸 겁니다.

저놈이 개객기인건 알아. 하지만 우리 개객기라고 말했던 루즈벨트의 재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미국이 경제제재 를 걸어버리면 사실 피를 보는건 니카라과입니다. 니카라과의 제일 큰 시장이 미국인데 미국이 “니들 물건 안삼 다른 나라도 못사게 만들거임ㅇㅇ.”이라고 해버리면

그냥 바나나 껍데기만 벗기며 살아야 할 판이거든요.

 

처음에는 “뭐래? 우리 알아서 잘 살거거든?”하던 니카라과 국민들도 서서히 지쳐갔고

산디니스타도 그런 국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는 없었는지

 

“야 양키 코쟁이들아.”

“ㅇㅇ?”

“졌다 졌어. 알았다.”

“ㅇ? 그럼 이제 니들 물러남?”

“주권 국가에서 순순이 물러날 수는 없지. 우리는 국민의 뜻을 묻겠다.”

“?!? 어떻게?”

“총선거 실시하면 되지. 국민들이 누굴 지지하든 우린 그 뜻대로 하겠다.”

 

솔직히 미국입장에선 “뭐래? 그냥 소모사 앉혀라.”라고 하고 싶겠지만…..

명분이 도저히 서질 않거든요. 그래서 미국도 콜을 했습니다.

 

산디니스타 반군 입장에선 “그래도 우리 지지율이 높으니 우리가 될걸?”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저런 딜을 하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실제로도, 선거 결과 산디니스타 쪽이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고, 그 지도자였던 ‘오르테가’가 대통령에 집권하게 되었습니다.

 

 

 

9) 예산이 없으면? 빼돌리면 됩니다.

 

어쨋거나 캐삭빵을 걸고 미국과 딜을 한 산디니스타, 그리고 그걸 받은 미국의 대결인

총선 즈음에….. 미국 의회에선 이런 이야기가 오고갔어요.

 

“하 참 나 바나나 농사나 짓던 놈들이 캐삭빵을 걸고 딜을 해?”

“그러게. 우리가 뒤에서 공작질 하면 어떻게 될 줄알고?”

“진짜로 ㄱㄱ 할까?”

“에이 뭐. 내비둬. 어차피 우리가 경제제재를 씨게 때려놔서. 니카라과 애들도 완전 질렸을 걸? 그리고.”

“그리고?”

“이제 저 콘트라 반군 애들도 몸 사리고 있으라 해야겠구먼.”

“아하, 그렇지. 저것들도 선거 나와야 하는데, 농민들한테 총알밥 먹여놓은 애들이 고개 숙여가며 ‘깨끗한 한 표 부탁합니다.’라고 하면 누가 표를 주겄어?”

“그래그래. 쟤들도 이미지 메이킹 하라고 그러자고. 그런 의미에서 국방부 장관 나와.”

“ㅇㅇ? 부르셨음?”

“이제 콘트라 반군 지원 하지 마.”

“네? 이제 걔들 좀만 더 힘내면 수도까지 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하이고 장관. 장관은 그게 문제야. 뭐하러 총알값 아깝게 싸움을 해? 그냥 선거로 깔끔하게 이기면 되는걸. 선거 끝날 때 까지는 올 스톱해. 지원 ㄴㄴ야.”

“아오……”

 

그렇게, 미국 의회는 미국 정부에게

ⓐ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지 마라

ⓑ 이제 쟤들한테 지원하는 예산은 안줄거임 ㅇㅇ

이라고 통보를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 미국 정보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아오 저거 쫌만 더 도와주면 정권 뒤집어 엎는건데…..”하면서 아쉬워 했더랬지요.

하지만 뭐. 하지 말라고 했고, 돈이 있어야 지원을 하든가 할텐데, 예산도 끊어버렸으니… 안하면 되는데

 

“돈이 없어? 그럼 돈을 벌면 되지.”라고 직접 돈을 법니다.

 

 

왓…….?

 

뭔가 상상을 초월하는 발상이죠?

국가의 예산은 국회가 결정하는 건데, 돈을 못받으면 당연이 그 사업은 못하는데,

그 사업을 하기 위해 돈을 벌다니? 어떻게?!?

 

미국이 “어디 돈 나올 데 없나?” 하며 지구본을 빙빙 돌리다가

미국의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 뙇하고 눈에 띄었습니다.

이란이에요. 이란은 당시 미국과 철천치 원수였지만…… 한때는 미국의 핵우산 아래 “중동의 경찰” 소리를 듣던 둥개둥개 총아였거든요.

그러다보니 미국산 무기들이 의외로 이란군에 많이 배치가 되어있었는데

 

미국이 경제재제를 때려버리니 전투기 탱크 부품이 없어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란이 이라크와 피터지게 한판 싸우고 있었습니다.

 

“헬로 미스터 이맘?”

“아오 이 양키새기들 또 왔네. 왜 뭐 왜?”

“니들 이라크하고 피터지게 싸우느라 바쁘더라?”

“ㅇㅇ 그러니까 용건만 말하고 꺼져. 아니 그냥 꺼져.”

“그런데 만약.”

“?”

“내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면?”

“?!?!?”

“니들 우리꺼 전투기 부품하고 탱크 부품 필요하지 않음?”

“그렇지?”

“그걸 우리가 준다면?”

“?!?!?”

“물론 돈 받고.”

“콜”

 

 

미국 국방부에서 이란이 간절하게 바라던 전투기 부품을 제공하고, 그로인해 번 돈을 가지고 남미로 가져가서 콘트라 반군에게 지원을 해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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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바퀴를 아우르는 이란 - 콘트라 게이트

 

우리나라로 치자면…… 행보관이 부대에 있는 수통과 탄피를 빼돌려 청계천에 내다 팔고, 그 돈으로 회식비를 조성한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가막힌 방법이군! 하겠지만

기가막힌 불법이죠. 본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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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비리계의 금언

 

 

그리고 기왕 잘못을 하면 안걸리면 될텐데. 그걸 또 멍청하게 걸려버립니다.

미국이 철천치 원수 이란에게 무기를 몰래 팔아서, 그 돈으로 니카라과에서 학살을 저지르는 콘트라 반군에게 지원을 해준다. 딱 봐도 언론이 좋아할 만한 제목이 수도 없이 뽑혀 나올 소재 아닙니까?

이 일은 이란-콘트라 게이트라는 이름으로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고 이 일의 총 책임자인 노스 중령이 의회의 청문회에 불려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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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의 몸통으로 지목된 노스중령

 

“노스중령.”

“네.”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인정 합니까?”

“네.”

“잘못을 시인하는 거죠?”

“아닌데요?”

“?!?”

“이게 뭐 잘 못 된 일입니까? 빨갱이 새기들 막겠다는데 뭐 왜 뭐!”

“님 미쳤어요?”

“잘못이 있으면 돈 안준 니들 잘못이지.”

“헐……”

 

지금 입장에서 보면 뭐 이런 뻔뻔한 놈이 다 있냐? 싶겠지만 당시는 냉전 상황이었고….. 노스 중령의 이런 막나가는 발언은, 미국 국민들에게 인기몰이를 하게되었다는…… 혼란스러운 결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일을 간접적으로 다룬 영화가 있는데요.

아메리칸 메이드라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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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주인공 톰 크루즈는 마약 밀수범으로 나오는데요. 그들이 나르던 물건들 + 돈의 일부가 콘트라 반군에게 흘러들어갔다고 하는군요. 아무래도 미국도 본인들이 직접 나서면 껄끄러울 테니. 이렇게 밀수꾼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나선 모양입니다.

 

어쨌거나 이런 온갖 공작에도 산디니스타가 정권을 재창출 한 거 보면, 니카라과 국민들도 미국과 소모사 집안이 어지간이 미웠던 모양입니다.

 

 

 

10) 에휴….. 니들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산디니스타가 정권을 재 창출했으니 니카라과 국민들이 일치 단결해서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었답니다…….라는 해피엔딩을 기대하셨다면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그런 결말이 아니더라구요.

 

“사람의 본질을 알려면 그사람에게 권력을 쥐어줘 봐라.” 라는 말이 있듯이 피끓는 혁명 정신으로 부패한 족벌세력을 몰아냈던 산디니스타도 권력의 맛을 알아가면서 차츰 차츰 부패해지기 시작했어요.

 

오르테가(산디니스타의 대장이자 대통령)의 개인 + 가족 스캔들이 연일 터지고 국민들은 연일  실망하며 인기가 식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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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락한 혁명 영웅 오르테가

 

거기에 미국이 경제재제를 해도 냉전 시기에는 소련이라는 큰 형님이 “나만 믿고 따라와”하며 캐리를 해줬지만…… 소련의 붕괴로 냉전도 끝이 나버렸고

 

“이제 나는 누구와 싸워야 한단 말이오.”하는 상황이 와버린 거지요.

결국 산디니스타는 “다시 한 번 총선 할게. 경제재제좀 풀어봐.”라며 딜을 했고

선거 결과…… 우파가 당선되는 결과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독재와 맞서 싸우던 피끓는 혁명전사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외부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꿎꿎하게 국민을 믿고 재창출을 해냈던 산 디니스타는……

 

내부의 부패 + 외부의 압박으로 무너져 버린 겁니다.

 

근데, 막상 정권을 잡은 우파도 그닥 국정 운영을 잘 한 편도 아니었고, (나중에 다룰) 베네주엘라의 차베스가 만들어내는 오일머니에 힘을 등에 업고 2005년에 오르테가가 다시 한 번 대권에 도전해서 다시 당선 됐다고 합니다.

참 요지경 같은 일이죠?

 

 

뜨거운 사랑으로 연애를 시작했다가, 사랑이 식어서 결별했다가, 새로운 애인도 영 별로고….. 옛 애인은 ‘그래도 다시한번’을 외치며 재결합을 한…… 뭐 그런 상황인거죠.

 

참고로, 지금 오르테가 대통령은 지지율이 영 개판이지만, 딱히 대안 세력도 없고 해서….. 지리한, 차라리 끝나는게 나을 것 같은 이 연인 관계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합니다.

 

이 게시글의 토대가 되는 최준영 박사는 이런 니카라과의 역사를

‘퇴락한 혁명의 역사’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게….. 맞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11) 내전이 남긴 상처들

 

니카라과 첫 편에서도 언급했지만,

오랜 내전으로 “너도 한방 나도 한방”하다보니 얌전한 사람들만 남았다고 했는데

반쯤 농담 섞인 말이지만, 자세히 알고나니, 그 속에서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아픔이 있는지 절절이 알게 되었는데요.

사실, 니카라과의 내전은 그것만 남긴게 아니에요. 내전이 오래되다보니, 니카라과가는 여러가지 행정 체계가 완전히 붕괴되게 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사법체계가 붕괴되어 “너도한방 나도 한방”이 된 것 뿐 만 아니라

주소체계 까지 붕괴됐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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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의 붕괴된 주소체계

 

최준영 박사가 2011년에 중남미를 방문했을 때, 대사님에게서 명함을 받았는데

전화번호는 적혀있는데, 주소가 영……. 길었다고 합니다.

어떤 식이었냐고 하면

 

“구 대성당 터에서 동쪽으로 몇 페덤”

페덤은 스페인의 옛날 거리 단위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리’정도 될 겁니다.

한국 식으로 번역하면 이렇게 할 수 있죠.

“구 대성당 터에서 동쪽으로 15리.”

 

읭?!? “xx동 xx번지”도 아니고, “xx길 xx” 도 아니고? 뭐야 저게?

 

왜 이런 일이 생겼고 하면

(1) 일단 주소체계라는게 제대로 형성되기 전에 내전이 발생

(2) 내전으로 그나마 몇개 없던 우체국들이 죄다 파괴됨

(3) 내전을 피하려 몰려온 피난민들이 남는 땅만 있으면 뚝딱뚝딱 판자집을 마구잡이로 지어댐

이러니….. 주소체계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는 사태가 벌어지는 거죠.

 

 

그래도 “나는 어디 살어.”라고 이야기는 해야하니…… 공식화된 주소가 없는 대신

ⓐ랜드마크를 찍어두고 / ⓑ방위를 알려주고 / ⓒ거기에서 얼만큼 떨어져 있는지 /ⓓ 그리고 그 건물의 특징은 어떻게 되는지

 

이런식으로 자기들 나름대로의 주소체계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런 상황이니 나라에서 세금 고지서를 날릴 수도 없겠구먼이라고 생각하겠는데

하도 이런게 일반화 되다보니 그래도 요즘은 그런 주소로 고지서가 날아온다고 합니다.

 

여담을 하자면, 니카라과만 주소가 없는 건 아니에요.

카타르 이야기를 하면서 드문드문 출연했던 ‘두바이’도 주소 체계가 없다고 합니다.

두바이의 사람들은 “나 어디 살어.”를 동 지번으로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

나 “알자지라건물 303호에 살어.”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는군요.

아무래도 바람 한 번 불면 지형이 홱홱 바뀌는 유목민의 전통이 오래되다보니 문화적 관습상 그렇게 되나 보더라구요.

 

 

그건 그거고 니카라과는 니카라과니…… 허 참 딱하다 할 순 있겠으나, 사실 영미권에서는 “야 굳이 우리가 도로명 주소같은걸 해야되? 헷갈리잖아. GPS뒀다 뭐하냐? GPS 좌표야 말로 지구 상에서 제일 객관적인 주소 아녀?”라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새로운 GPS좌표 체계가 보급된다면, 니카라과야 말로 그런 시스템에 제일 먼저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위로의 말을 던져보겠습니다.

 

 

 

12) 마치며

아이고….. 미루고 미뤄 왔던걸 빨리 해치워야지 하다보니, 분량이 엄청나게 길어졌습니다 ㅠ

운하 이야기는 아무래도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네요 ㅠㅠ

긴 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치기 전에 출처를 밝히자면, 이 게시글은 “삼프로 TV”의 코너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를 토대로 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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